복 있는 자(요한계시록 22장 13~15절)
우리가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복인데, 우리가 환경에서 자꾸 내려가 보지 않으면 자기 환경만 생각하면서 비교하는 게 악이다. 그러면 지금 나의 환경을 감사할 수 없다. 고린도전서 15장 58절을 보면 주 안에서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우리는 나의 수고가 헛된 것 같아서 자꾸 실망하고 낙심한다. 이 세상이 자꾸 다인 것 같아서 낙심되어진다. 그래서 계시록 마지막에 진정한 복이 있는 자는 누구인지 말씀하신다.
1) 주님만이 시작과 끝이라는 것을 아는 자가 복이 있는 자이다.
‘나’는 예수님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삼위의 하나님으로 창조에 함께 참여하셨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구원의 사역을 완성하셨다. 그리고 계시록에서 살펴본 것처럼 장차 다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새 하늘, 새 땅, 새 예루살렘 성을 이끄실 것이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임이 다시 오셔서 사단의 세력들을 심판하시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실 것이다. 예수님은 알파와 오메가이시다. 알파 되시는 예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면 오메가 되신 예수님이 오셔야 끝내신다는 것을 믿어야 복 있는 자이다. 주님이 내 삶의 시작이고 끝임을 알면 내 내면의 삶이 완성된 것이다. 어떤 환경에서도 주님만이 시작과 끝이다. 어떤 환경도 주님이 시작하시고 끝내신다. 모든 사건은 하나님이 시작하셨다. 하나님이 끝내시길 기도해야 한다.
2) 두루마기를 빠는 자가 복이 있는 자이다.
두루마기는 겉옷이다. 성도들을 다들 각자의 색이 다른 두루마기를 입고 있다. 속에는 누추한 옷을 입어도 두루마기로 겉을 치장할 수 있다. 그런데 주님은 겉을 빨라고 하신다. 문제는 더러워지고 색이 변한 두루마기의 색을 본인은 모르고 하나님만이 아신다. 복 중의 복은 자신의 더러움을 아는 자이다. 더러워진 두루마기는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빨아야지 깨끗해진다. 그것은 내 안에 선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두루마기를 빠는 것은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인생의 더러움을 놓고 드러내야 정결해진다. 바울은 그리스도로 인하여 자신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했다. 그런데 배설물은 배출해야 건강해진다. 우리도 배설해야 살 수 있다. 인생의 모든 것은 주 안에서가 아니라면 모든 것이 배설물이다. 나는 죄인이다 라고 인정해야 한다. 두루마기를 빨고 흰 옷을 입는 것처럼 나의 겉의 수치를 빨아야 한다. 나의 더러움을 오픈하게 되면 나의 영적인 교만, 수치가 보이지 않게 된다. 나의 육적인 더러움을 씻으면 영적 수치가 보이지 않게 된다. 빠는 것이 현재 시제인 것은 천국 가는 그날까지 두루마기를 반복적으로 빨아야 한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회개해야 한다. 계시록 22장의 가장 큰 복 있는 자는 두루마기를 빠는 자이다. 두루마기 빠는 것이 복이 있고 권세가 있다. 이는 두루마기 빠는 것이 회개이고 구원이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4:12에 오직 예수의 이름(보혈의 피)으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두루마기를 빨 수 있다. 잔느 귀용에 따르면 철저한 자기 포기로 자신이 극도의 빈곤, 무기력함을 인정할 때 그리스도의 피로 빠져든다.
에스겔 29장 1~6절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400년 애굽 생활을 하고서도 애굽을 벗어나지 못하고 애굽을 의지한다. 그래서 여호와를 알게 하기 위해 의지하던 애굽이 결국 무너진다. 이는 인격적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닌 돈으로 맺어진 관계이기 때문에 다 깨어진다. 그런데 들에 던져지기 전까지는 사랑이 없는 물의 본질을 모른다. 이스라엘은 악어 비늘(애굽) 곁에 기생하는 고기와 같다. 예수 안 믿는 애굽의 사랑은 인격적인 사랑이 아닌 본능적인 사랑에 불과하다. 예수 없이는 어떤 부모, 가족, 권세도 다 썩어 없어질 갈대 지팡이다. 인간은 사랑을 할 수도 만들 수도 없다. 착한 건 구원이 아니다. 본능적인 사랑은 대가적인 사랑이다. 여호와께서 알게 하시기 위해서 들에 던진 사건이 있습니까? 아직도 집착하고 매달리는 나의 애굽이 허상인 것을 깨달아야 한다.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야지 주님의 보혈로 풍덩 뛰어든다. 산고의 고통이 필요하다. 들에 던져져야 한다.
나사렛 목수의 아들, 처녀가 잉태한 아들 예수는 구세주였지만 도덕적, 세상적으로 무시되어졌다. 누가복음 16장 13~15절에 불의한 청지기 비유에서 바리새인들에게 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지 못함을 말씀하셨다. 바리새인들처럼 예수를 믿으면서 돈을 좋아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비웃어서 깨달아지지 않는다. 돈을 좋아하는 자는 사람 중에서 높임을 받는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고자 하는 자는 말씀이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성령은 악하고 교만한 세상을 좋아함을 깨닫게 하신다. 성령은 눈물이 마르지 않는 인생, 죄가 죄인 줄 모르고 사는 인생을 배설물로 여기게 하시며 깨달아지게 하신다. 교양을 배설물로 던지고 겉옷 두루마기를 평생 빨아야 한다. 내가 죄인이라고 돈을 좋아한다고 고백하며 이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순종할 때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다. 두려움을 권세로 바꿔주셨다. 악어 비늘 곁에서 기생하던 사람이 겉옷을 빨아대며 나가면 놀라운 복을 나눠주는 사람이 된다.
예수님의 마태복음에 8복 이야기가 나온다.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하고 화평하고 의를 위해 핍박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계시록에서는 7복에 대해 얘기한다. 계시록 1장 3절에 오직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 작은 이유로 주 안에서 죽는 자가 복이 있고, 자기의 영적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가 구원을 받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5복은 하나도 없고 오직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고, 내가 인내하다가 주 안에서 죽는 복,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구원 초청을 받는 자가 복이 있는 자이며, 그리고 이 복 있는 자는 마지막까지 자기의 두루마기를 빠는 자가 복이 있는 자이다. 이 7복 받기 바란다. 8복을 받고 7복의 주인공 되길 바란다. 계시록 3장 10절에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해 인내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시험의 때를 피할 수 있다고 하셨다. 이사야 1장 18절에도 복 중의 복은 죄사함의 복이라고 말씀하신다. 죄를 깨닫는 복이 임하였으면 좋겠다.
3) 성 밖에 있는 자는 복 있는 자에 들어가지 못한다.
성 안의 자와 비교하면서 성 밖에서 다섯 가지 죄를 지으면서 구원 받지 못하는 자의 특징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특히 계시록의 가장 반복되는 죄는 거짓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계시록에는 개들이라는 단어가 하나 더 나온다. 이는 현대인의 성경에서 개 같은 사람이하고 나온다. 잠언 26장 11절에 보면 개 같은 자는 온갖 더러운 것들을 거듭 행하는 자를 의미한다. 자신의 죄와 그릇된 습관으로 고통을 당하고 반복하는 어리석은 인생들을 토한 것을 다시 먹는 개로 표현한다. 우리가 아무리 교회를 가도 같은 죄를 반복해서 짓고, 위선을 쫓고, 포장하고, 음욕을 품고, 미워하고 자식 우상, 돈 우상 때문에 툭하면 거짓말이 나온다. 그런데 잠언 19장 22절에 보면 거짓말 하는 자가 가난한 자보다 못하다. 거짓말을 하려면 가난해야 한다. 요한복음 8장에 보면 우리는 거짓아비 마귀에서 났다고 한다. 그래서 성 밖에 있는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물에 있으면 깨닫지 못하고 들에 던져져서 비로소 내 죄악 된 모습을 보게 되었다. 두루마기를 빠니까 점점 빨 것이 더 많아 진다. 하지만 우리는 두루마기를 입으로만 빨기에 우리는 알면서도 안 되는 게 있다. 자꾸 같은 죄를 반복하는 이유는 중독이 돼서 죄의식이 없는 것이 문제이다. 그래서 계속 죄를 짓게 된다. 그래서 두루마기를 빠는 나눔을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복 있는 나눔이다. 하지만 나의 힘으로는 두루마기를 빨 수 없다. 우리가 끊임없이 영적 전쟁 속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이것이 계시록의 주제이다. 예수님께서 진정한 주님이시지만 내 속에 악한 세력들이 예수님을 반대하는 한 우리는 성도의 속한 고난을 계속해서 인내해야 한다. 수없이 마음으로 다짐하고 회개한 죄악들을 계속해서 지을 수밖에 없는 이 더러운 본성의 두루마기를 빨아야 한다. 성 밖에 죄를 짓고 있다면 예수님의 보혈로 두루마기를 빨고 세탁해야 한다. 회개가 안 됨을 기도하며 잃었던 생명을 찾고 광명 얻기를 바란다.
우리들의 나눔
은영 목자님 : 전도하려던 물리치료사의 곤고함이 갑자기 사라져서 전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때를 보고 늘 전도하려는 마음을 잃지 않아야겠다. 관계 속에서 늘 같은 문제가 반복됨을 알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음을 고백한다. 먼저 사과하는 적용으로 관계를 개선해가고 있다.
은아 언니 : 건강의 문제에 부딪히면서 배우자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고 대신 소망을 품게 하셨다. 지난주에 입원했지만 무사히 퇴원하면서 주님만으로 만족하는 가운데 감사하며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동생들과 그 예비 배우자들은 곤고함이 없어 전도하기가 힘들다 믿음이 들어갈 수 있도록 기도해야겠다.
부목 자영 : 전도자 중 한 명이 갑자기 시간이 어려워지면서 오늘 전도 축제에 참석하지 못했다. 대신 두 분 다 11월 중에 나오시기로 하셨다. 그런데 그 순간 내 안에 영적 교만이 있었음을 깨닫게 하셔서 회개의 눈물이 났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는 내 열심히 컸고 인정받고 싶었다는 걸 깨닫게 해주셨다. 그 분들이 나를 위해 수고하셨고 주님 만나는 시간이 늦춰짐에 회개가 됐다.
막내 은숙 : 믿기 전의 습관들은 많은 부분 고쳐졌지만 솔로라서 시간이 여유 있는데, 그 시간에 자꾸 텔레비전을 본다. 중독의 문제가 되지 않도록 줄여야겠다. 대신 회식이나 그 밖의 믿는 자로서의 지켜야 할 일들은 잘 지켜나갔지만 회사에서 믿는 사람으로서 본이 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예수님 닮은 화평함으로 나를 보고 다른 이들이 주님을 믿었으면 한다.
우리들의 기도 제목
은영 목자님
내 방법대로 조급해 하지 않고 하나님의 때를 구하며 기다릴 수 있도록
하나님이 붙여주신 영혼들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내 안에 선한 것이 없음에 고등 교만에 대해 옳소이다가 되어지도록
은아 언니
처음으로 긴 휴식 후에 직장에 다시 나가는데, 적응 잘하고 믿음의 사람답게 행동할 수 있도록
동생들의 가정이 믿음의 가정으로 바로 서도록
말씀으로 잘 깨질 수 있도록
건강 원인 찾고 지켜주시도록
진경 언니
일본에 있는데, 컴퓨터 자판이 빨리 고쳐져 기도 제목 받아 볼 수 있도록
윤선 언니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부르심에 대한 하나님의 뜻 알기를
직장에서 동역자 더 많이 붙여주시도록
교육 공무원 내에 전체적으로 신우회 조직이 활성화 되도록
승아 언니
파주에서 직장 생활하는데, 갈급한 마음 주셔서 다시 예배에 나오도록
부목 미나
하나님 앞에서 나를 정직하게 대면하고 매일 삶의 기본에 충실함으로 주어진 모든 것을 잘 누리도록
가족 개개인이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고 개인의 삶의 각 영역이 회복되며 서로 진솔한 소통을 할 수 있도록
만성 기침이 멎도록
부목 자영
양육 교사 계속 은혜 안에서 잘 받을 수 있도록
배우자를 분별하면서 내 두루마기를 빨며 갈 수 있도록
전도 대상자 두 분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준비시켜주시고 그 때를 계획해주시도록
남동생 부부가 신앙생활 잘 하도록
막내 은숙
소망하는 믿음의 가정을 꾸릴 수 있도록
결혼 전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진심으로 소중하게 생각하도록
하루 2시간 이하만 텔레비전 시청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