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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계 21:9-21)
천국은 가치관의 변화을 의미하는 것이다. 천국이 확실히 믿어지기 때문에 순교도 핍박도 받게 되는 것이다. 새 예루살렘은 어떤 성인지, 반드시 존재하는 그곳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똑같은 천국을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으로 표현한다. 오늘의 주제는 ‘거룩’인 것이다.
1. 마지막 재앙이 끝나야 누리는 성이다.
천사에 대한 수식을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천사 중 하나’라고 하면서, 그가 어린 양의 신부를 보이겠다고 한다. 17:1에서는 음녀 바벨론이 받을 심판을 보이겠다고 하셨는데, 그 둘을 비교해보라는 것이다. 하나는 재앙을 이야기했고, 하나는 신부를 이야기하겠다고 하는데, 마지막 재앙이 임해야 음녀 바벨론이 죽고, 어린양의 신부가 된다는 이야기다. 바벨론에 살면서 새 예루살렘에서 사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세상에서 나오라고 하신 것이다. 공의의 심판이 선행되어야만 세상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재앙과 구원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항상 똑같다. 에스겔서에서 1장에서 경고의 말씀을 시작하시고 43장에서 회복의 말씀을 시작하신 것처럼, 경고의 말씀을 듣는 자가 회복의 말씀도 들을 수 있다. 그래야만 어린 양의 신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에게 하시는 모든 말씀은 축복이다.
2.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야 영광이 보이는 성이다.
똑같은 말씀인 17:3에서 음녀 바벨론의 멸망을 말할 때는 광야로 데려갔다. 굳이 비교하자면, 인생길이 광야지만 그 광야에서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야만 영광이 보이는 것이다. 그래야만 어린양의 아내가 되어 거룩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이다. 행복에는 고통이 따라오지만, 거룩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은 육이 무너지는 것만큼만 영이 무너져서 세상을 내려놓게 되고, 자기 본질과 주제를 알게 되면 하나님을 알아서 벽옥, 수정같이 맑은 보석이 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영광을 통해서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
크고 높은 산으로 가는 가치관이 천국의 가치관이다. 크고 높은 산으로 가는 것은 거룩하게 사는 것, 구별되게 사는 것을 말한다. 행음을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시대에, 잘못된 성적 연합에 빠져 나오기가 힘들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크고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셔야만 한다. 나의 크고 높은 산은 무엇인가?
3. 비천한 자들의 이름이 있는 성이다.
12사도, 12지파가 훌륭해 보이지만, 우리는 그들이 훌륭하지 않은지 다 알고 있다. 그런 사람들의 이름이 천국 문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아무리 약해도 들어가게 하지만, 음녀들은 열두 천사들이 문을 지키고 못 들어가게 한다. 진정 더럽고 추한 자는 회개하지 않는 자들이다. 하지만 자신의 죄를 인정만 하면 들어갈 수 있도록 동서남북으로 문이 세 개씩이나 있다. 지금이라도 내 자신이 얼마나 비천한 자인지를 깨닫고 인정하고 거룩한 성에 들어가길 바란다.
4. 척량하는 성
계속 나 자신을 척량하는 성이다. 15절의 금 갈대는 불변하기 때문에 들어갈 자 못 들어갈 자를 정확히 척량한다는 것이다.
12000스다디온은 서울-부산 간의 6배나 되는 크기인데, 삼위일체의 수와 땅의 수를 곱한 세제곱의 수로 완전한 결과를 의미한다. 또한 좁아서 못 들어갈 사람이 없다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성에 비해 성곽은 144규빗으로 매우 작은데, 중요한 것은 본질이다. 성곽이 중요한 게 아니라 본채인 성이 중요한 것이다. 또한 이것은 사람의 척량이라고 했는데, 사람의 척량은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로마 사람은 이런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본질, 즉 구원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내적인 거룩 없이 외적인 것만 내세워봤다 아무 소용이 없다. 성전은 늘 척량을 당하는 것이다. 남들이 날 먼저 척량하기 전에 내가 나를 스스로 척량하는 것이 큐티이다. 이것이 거룩이고 머리가 좋은 것이다. 남들이 말하기 전에. 계속 날마다 척량해야 한다.
전도를 하려면 거룩하게, 구별되게 살라는 것이다. 언제나 내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어서, 이게 바로 천국의 모습으로 보여야 하는 것이다. 이론만이 아니라 삶으로 증명하는 것이 전도다.
나눔
각자의 큐티 생활은 어떤가? 혹은 하루 일과 중 언제 큐티를 하며, 큐티에 가장 방해 받는 것은 무엇인가?
황진주(81또래) : 주로 아침에 큐티를 하려고 노력하다가 남자친구와 일주일을 나눠서 큐티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큐티를 위한 큐티를 하게 되는 것 같았고, 큐티를 하는 것 자체가 율법이 되어 상대를 정죄하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은 규칙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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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 때문에 내가 동생을 챙겨줘야 했는데, 해주면서도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 늘 불안함이 있었고, 착한 장녀병으로 살아오다가 뒤늦게 사춘기가 왔다. 내가 서른 살쯤에 동생이 아팠는데, 그 때 부모님께 폭발했고, 그동안 부담감을 d란고 성품으로 애쓰며 살다가 하지 않아도 될 것까지 해주면서 생색을 났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전에는 ‘내가 왜 해야 하나?’라고 생각하는 게 나쁘다고 느꼈고, 부모님도 내게 ‘네가 하면 안 되겠니?’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고, 동생에 대해 동정심을 느끼면서 나 또한 정신적으로 동생에게 의존을 했다. 하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각방을 쓰게 되자, 동생과 나와의 관계가 병적으로 의존하던 것에서 벗어나 정상적으로 변하게 된 것도 있고, 지랄총량의 법칙대로 한번 사춘기를 앓고 나니까 나에 대한 부모님의 태도도 많이 변하셨다.
이윤희(83또래) : 마지막 큐티가 수요일 본문이었는데, 말씀을 읽고 무슨 표현이 좋다는 둥 비평을 하고 있는 수준이다. 한 주간 회사에서 이렇게 화내 본 적이 없다 싶을 정도로 화를 냈다.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별로 상태가 좋지 않아서 말씀을 보며 자위를 하는 수준이다.
류선혜(83또래) : 내 큐티 생활은 아침에 짧게 읽고 일을 하는 수준이다. 일이 너무 바빠서 묵상까지는 못한다. 성경에 대해 알지 못해 해설부터 읽고 말씀을 읽는다.
그런데 밖에서 활력이 있는데 집에 가면 방전이 된 것 같아서 말조차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내성적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 친구도 만나는 친구만 만난다. 교회에 오는 것이 나에게는 큰 모험인 셈이다. 그래서 일대일 양육도 자신이 없다.
김슬기(83또래) : 큐티 안 한다. 교회에 나왔을 때, 악한 사람은 그 행위대로 벌을 받을 거라는 말에 위로가 되었다. 그런데 그 벌이 언제 내리는지…….
김수현(85또래) : 내 큐티 생활도 감상 수준이다. 쉬고 있어서 스트레스가 없다. 바쁜 게 없어지니까 쓸데없는 생각이 드는데, 최근 일어난 범죄를 보면서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무서운 상상을 하게 된다.
기도제목
이윤희 : 회사에서 화가 날 때, 예수님을 생각할 수 있도록
류선혜 : 관대한 양육교사를 만나고, 밀린 월급이 속히 들어오도록
김슬기 : 동료 안소라에 대해 잊고 즐겁게 지내도록
김수현 : 마음속 생각을 잘 표현하고, 공부법을 빨리 찾을 수 있도록
황진주 : 예배를 사모하면서 잘 지킬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