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국의 비전과 새로운 소식을 안내합니다.
청년 공동체의 삶과 고민을 함께 나눕니다.
청년 공동체의 생생한 모습을 전합니다.
목자와 공동체 리더를 위한 소통 공간입니다.
청년국 양육 과정의 피드백과 평가를 나눕니다.
<하나님께 실망했다고 느낄 때>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에덴동산 바깥에서의 최초의 이야기
우리는 원래 하나님과 함께 있는 에덴동산에서 살았어야 하는데
하나님 앞에 대항하고 대드는 에덴 동편에 살기 시작
우리는 천국이 아닌 깨어지고 일그러진 왜곡된 세상인 '분당'에 살고 있음.
모든 것 하나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은 가운데 살고 있음.
큰 아들과 작은 아들 사이의 갈등의 이야기가 아니라
큰 아들 가인과 하나님 사이의 갈들의 이야기
두 아들이 함께 예물을 가지고 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림
가인은 농부였기에 곡식을
아벨은 양떼 중에서 가장 좋은 양 한 마리
둘 다 희생이 따르는 기도였고 예배였음.
우리들 또한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하러 예배당에 나옴.
하나님은 아벨의 희생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희생제사는 받지 않으심.
왜 한 사람의 예배는 받으시고 한 사람의 예배는 받지 않으실까.
왜 어떤 사람의 기도는 응답하시고, 어떤 사람의 기도는 응답하지 않으실까?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실 때 "밭을 갈고 살아라."라고 하셨는데
농부는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직업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곡식을 드렸다는 것은 나쁜 것도 아니었음.
아벨의 제사가 피의 제사라서 하나님이 받으셨던 것도 아님(피의 제사는 모세 때부터 정해졌기 때문에 그리고 이때도 곡식의 제사가 있었음)
하나님은 가인의 예배와 가인의 예배는 받지 않으셨고 아벨의 것은 받으심
하나님은 지금도 어떤 사람의 예배는 받으시고, 어떤 사람의 예배는 받지 않으심
우리는 하나님께 바라는 것을 기도함. 그렇게 많이 간절하게 기도함에도 하나님께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하루를 QT로 기도로 시작하였지만 비참하게 하루를 마감하는 적도 많음.
-가인이 되어보는 기분을 우리는 알고 있음.
내 나름대로 예배하고 QT하고 성경 읽고 기도하고 신실하게 살려 고하는데
하나님께서 내 예배를 받지 않으실 때의 기분.
이런 상황에서 가인은 하나님께 실망을 느낌. 하나님께 버림받았구나 하는 실망감.
하나님께서 나의 예배에 NO라고 하시는 이유를 들어 본적은?
병든 자를 위해서 간절히 수많이 기도했지만 그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이유를 이해하려고 애쓰고 고통해본적은 있는지.
간절히 꿈꿔온 비전에 대한 기도. 하지만 그 꿈들이 물거품처럼 다 사라졌을 때.
매우 조심스럽게 인생을 설계하고 그렇게 만들어가려고 애를 쓰고 있는데, 결국은 우리의 삶이 도랑에 처박힌 것처럼 비참한 자기 자신을 발견 하였을 때.
이런 일을 당할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은 "왜!"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고민함. 그 모든 고민들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길과는 다른 길을 다른 방식을 갖고 계시는 하나님이 계심'
그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부단히 애를 쓰고 노력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했던 모든 설명들 모든 이해들이 공허하고 허무하다는 것을 깨닫게 됨.
구약성경의 '욥'
욥은 자기에게 일어난 일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음. 그 욥에게 친구들의 수많은 설명들 이해들 가르침.
욥은 결국 "입 닥쳐! 차라리 가만히 있어"
욥이 그런 가운데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폭풍가운데 만나주심.
욥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 내는 수많은 이유들과 설명들 "하나님 이런 분이야. 네가 이렇게 하면 하나님 이렇게 할 거야……."
수많은 인간적인 깔끔한 설명보다는, 차라리 이해할 수 없는 폭풍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을 직면하기로 하여 북쪽으로 하나님을 쳐다봄.
북반구에서 가장 험한 산은 북쪽을 향한 산들인데,
폭풍가운데 설명할 수 없는 그 하나님을 욥이 직면하게 됨. 하나님과 직면하고 조우함.
"왜 이런 일이 나에게 닥칠까……." 수많은 '왜'들에 대해서 성경은 대부분 대답하지 않음.
성경의 하나님의 관심사는 우리가 던지는 의문이 아니라,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가 보이는 반응에 관심이 있음.
하나님께 실망했다고 느껴졌을 때, 어떻게 우리가 반응하는가.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는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반응을 보이는지 하나님께서 깊은 관심을 보이고 계심.
협상테이블. '당신이 나에게 이렇게 해주면 나는 이렇게 해주겠다.'
신앙과 영성의 문제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음.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인가 열심히 바치면 하나님도 우리에게 보상을 해주실 것이라는 '거래'
사탄도 이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사탄이 하나님께 찾아가서 이런 말을 함.
'이 세상에 수많은 교회가 있지만 사람들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겠습니까.'
좀 더 나은 직장, 가정, 인간관계, 건강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를 할 수는 있지만,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거래협상 테이블의 맞은편에 앉은 당사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뭔가 이상한 것.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일들에 관해서 우리가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가.
하나님이 거래하시는 분이실까.
진정한 신앙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이해 할 수 없는 하나님.
그 수많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응답해야 할 것인가.' 이것이 진정한 신앙의 핵심.
하나님이 내 기도가 하나님께 빠꾸 당했다는 것을 느꼈을 때, 하나님께 제거되었다 생각되었을 때.
가인의 반응은 '분노'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 기도는 받지 않으셨을 지라도, 가인 자신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계속 관심을 갖고 계셨음.
우리가 하나님의 의해서 내가 실망을 당했다 느껴지는 그 순간이라도 '나 자신마저 버리신 것은 아님'
하나님은 그 때 가인에게 찾아가셔서, 왜 분노하니, 네가 무엇인가 잘 했다면 어찌하여 그 예배를 받지 않았겠니.
마지막 순간에서라도 사랑의 끈을 놓지 않고 부르시는 하나님.
'죄가 네 문 앞에 엎드러져 있어 죄의 갈망이 네게 있다'
'그러나 너는 죄의 갈망을 통제하고 지배해라'
가인은 열심히 노력하고 신앙생활하고 기도하고 밭일하고 곡물을 얻었지만,
가인이 생각하기에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호의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함.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종교적인 달리기를 부지런히 달림. 이 일도 하고 저 일도 하면 하나님께 눈도장을 받을 수 있다는.
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대로 예배하고 기도해야 하는데, 내가 하고 싶은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대하는 하나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이 아니더라도 열심히만 하면 하나님께서 받아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종교적인 노력이나 속도에 점수를 주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해 주신 숙제는 다른 곳에 있음. 희생 제물로 양을 바칠 것인가 곡물을 바칠 것인가 가 숙제가 아니라.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는,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기대에 따라서 보상하지 않을 때, 내가 간절히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았을 때,
우리는 실망하고 분노하게 되는데 그 때에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숙제.
죄가 문 앞에 엎드러져 있다
죄는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격리시키고 하나님이 싫어서 멀리멀리 가게끔 하는 것이 죄.
성경에는 지옥은 아주 뜨거운 지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추운 지옥도 있음.
하나님이 싫어서 하나님께 대드는 것도 죄이지만 하나님의 면전에서 멀리 떨어지는 것도 죄.
빛이신 하나님을 떠나 어두운 곳으로 가는 것도 죄. 이것이 지옥.
가인이 가고자 했던 지옥은, 하나님과 결별하여서 하나님의 낯으로부터 멀리멀리 가려고 하는 죄.
'하나님께 내가 실망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할 때가 우리가 하나님과 멀어질 수 있는 그 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고 선하게 살고 헌신했고 신실했는데 왜 이런 일이 오는가. 하나님은 아닌 것 같아.
하나님께 드린 기도에 대해서 항상 응답받는 아벨 같은 자들.
공평치 않다고 느끼는 때, 하나님은 좋은 거래처가 아니라고 느끼게 되는 때
이 때 우리는 시험에 빠짐. 바로 우리는 하나님과 멀어지는 죄에 잡혀먹을 위험한 처지에 놓이게 됨.
가인의 진짜 갈등은 아벨과의 갈등이 아님. 사실상 하나님과의 갈등. 신앙의 갈등.
우리가 느껴왔던 인간관계의 갈등들은 우리 주위사람들과의 갈등이 아닌 우리 위에 계신 하나님과의 갈등.
이런 거룩한 갈등들을 해소하는 가장 좋지 못한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옆 사람에게 쏟아 붇는 것.
이 하나님과의 진정한 갈등 자체를 바로 내가 보이는 바로 옆의 사람들에게 해소할 때, 다시 돌아오기 힘든 길을 떠나게 됨.
가인의 길을 걷게 됨. 하나님의 면전에서 멀리 떠나게 됨.
우리의 잘못을 묻기 위해서 많은 합리화를 시키고 변명으로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한 후에 우리의 행동을 덮으려고 함.
아벨의 장례가 끝난 후에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오셔서 '내 아벨이 어디 있느냐' 물으심.
하나님이 물으시는 그 아벨이 바로 내 부모, 가족, 상사
*하나님께 실망했다고 느껴질 때,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이것이 바로 평생 풀어야 할 숙제 중의 하나
살면서 만나는 크고 작은 실망들.
그러나 이 결정적인 순간에 오히려 아벨(시어머니, 며느리, 남편, 아내, 직장상사)에 대해서 더욱 더 부드럽게 대하며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이런 실망들에 응답하는 사람들이 있음.
이런 위기의 때를 통하여서 자기 자신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업그레이드의 기회로 삼고, 심지어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한다면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잘못되었을 것' 이라고 생각
아니면 동일한 실망과 힘든 시기를 만나면서 전혀 다르게 반응하는 사람들.
어둡고 분노하는 냉소로 반응.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하나님은 결국 이런 식이시군"
피해의식이 강해지면서, 이 피해의 분노를 하나님이 아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폭발시킴.
그러나 그 모든 분노의 폭발 자체는 하나님에 대한 분노를 폭발.
마지막 순간에 가롯유다에게 찾아오셔서 "나와 함께 떡을 떼는 자가……." 라고 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라도 가롯유다가 돌아오길 원하시는 예수님의 마음
우리의 신앙의 본질이 드러나는 바로 그 때.
'사람'은 히브리어로 '아담'
'흙'은 히브리어로 '아다마'
이 세상에 살면서 모든 사람(아담)들은 학벌, 스펙, 직위, 돈, 차, 자식자랑 등등 흙덩어리에 이것저것 찍어 바름
하지만 우리의 정체성은 '아다마' 흙덩어리
비 왕창 맞으면 맨얼굴이 드러나듯이
우리의 인생가운데 이런저런 일들 때문에 시련, 고난, 실망의 비들을 왕창 맞으면 '나는 흙이구나!'를 깨닫게 됨.
man, human being
mortal being=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 연약한 흙덩어리
이 죽을 수밖에 없는 흙덩어리 같은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마지막 순간까지 오셔서 돌아오라고 하심.
수많은 어려움들이 있을 때들이 하나님의 돌아오라는 부르심.
어떤 사람은 분노를 웅크리고 껴안고 앉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다치게 하는 일 외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을 정도로 깊이 병든 영혼도 있음.
우리는 우리의 가까운 사람을 피해의식의 해소대상이 아니라 따스하게 조심스럽게 돌보는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았음.
우리의 변덕스러움과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에게 신실하심.
기도제목
송수빈 : 복학준비를 위해서, 내 열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신실하게 찾아와 주시는 하나님을 알도록
박창의 : 주일 말씀 한 주 동안 잘 묵상하도록, 알바 잘 구해서 시작할 수 있도록
이일선 : 식이요법 시작하시는 어머니 건강을 위해서, 복학준비 잘 하도록
김제우 : 진로에 대한 걱정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셨으면
우종현 :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것을 깨닫도록, OT 때 술 때문에 실수하지 않도록
진성민 : 재수하려고 했지만 마지막에 붙은 학교를 가게 되었는데 다니는 순종 잘 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