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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나님께 실망했다고 느낄 때 (창세기 4장 1절 ~ 10절)
성경책 맨 앞 두장 창세기 1~2장과 맨 뒷 두장 요한계시록 21~22장은 영원에 잇대어 있다. 첫 두 장과 마지막 두장은 깨끗하고 흠이 없으며 영광스럽고 찬란하게 시작하고 끝을 맺는다. 그러나 그 사이의 창세기 3장~요한계시록 20장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다. 사람의 역사는 다 엉망진창이다.
처음의 두 장은 에덴동산에서 시작하고, 마지막 두장은 에덴의 동쪽에서 끝난다. 에덴의 동쪽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멀리 도망간 곳이다. 이 broken world는 불의가 가득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 가득한 깨어지고 무너진 세상이다. 그 깨어진 곳의 첫번 째 이야기가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이다.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가인vs아벨이 아니라 가인vs하나님의 갈등이다. 두 형제 모두 희생이 있는 예배를 드렸고 확신과 희망을 가지고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다. 왜 그러셨을까??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것은 농업이 나쁜 직업이거나 피의 제사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 때는 율법이 생기기 이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다 받지 않으신 것일까? 이와 같이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지고 열심을 내어도 가인의 예배와 같이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경우가 있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께 실망을 느끼게 된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을 경험한 사람은 또 있다. 욥이다. 욥은 “어느 날”, “갑자기” 예상치 못한 일이 닥쳤다. 이 때 욥에게 세 명의 친구가 다가와서 수많은 설명을 한다. (잔소리, 네 노력과 열심히 부족해.. 등등의) 그러자 욥이 욱하며 반응하게 되었고 그때 하나님께서 ‘폭풍속에서’ 나타나셨다.
이 세상에는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많이 있다. 하나님은 그럴 때 하나님과 1:1로 직면하는 것을 원하신다. 욥은 친구들의 수많은 설명을 물리치고 폭풍속의 하나님을 직면하고자 하였다.
성경은 “왜”를 해결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책임을 느끼시지 않는다. 그러나 유사시, 우리가 하나님께 실망할 때, 우리의 반응에 대한 관심이 있으시다. 실생활의 우리 삶은 ‘협상 테이블’의 연속이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주고 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무의식 중에 하나님과 협상하는 신앙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과 거래하는 것이다. 이것을 가장 잘 알았던 것이 바로 사탄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사람들은 까닭없이 예배하지 않는다’라고 하며 욥의 고난이 시작된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이것이 하나님의 관심이다.
가인은 이해할 수 없는 제사의 사건에서 어떻게 반응하였는가? 하나님의 관심이 없는 것을 본 가인은 분노하였다.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보다 가인의 반응에 관심이 있으셔서 ‘네 죄가 문 밖에 엎드러져 있다’고 마지막까지 부르셨다.
실망스러운 일이 올 때 인간은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일어나거나, 타인에게 분노를 표현하는 냉소의 두 가지 반응을 한다. 이러한 실망스러운 사건이 있을 때 내 자신을 알게 된다. 이유를 모르는 채찍이 있을 때는 가서 안겨야 한다. 때릴 때 아버지에게 가서 안기듯 고통과 실망이 있을 때 하나님께 안겨야 한다. 하나님은 마지막 순간에서도 신실함을 버리지 않으시고 부르신다.
아담은 히브리어 보통명사로 사람을 뜻하고, 아다마는 먼지와 흙을 뜻한다.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흙이라는 사실을 잊고 산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우리의 삶의 폭풍같은 시련의 비가 내릴 때 우리의 쌩얼이 드러난다. 바로 연약하고 죽을 수 밖에 없는 mortal being의 존재라는 사실이다.
하나님과 멀어질 수 밖에 없는 실망의 때에 더 안겨야 한다. 채찍질하는 것은 우리를 붙잡고 계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내게로 돌아오라”는 목소리이며, 우리는 그 목소리에 반응해야 한다.
적용질문 - 하나님께 나는 어떠한 일로 실망했는가?- 나는 어떻게 그 실망을 표출하는가?
미영
지난주에 가정에서 섬기는 자가 되기로 적용하였는데, 엄마가 새로 가게를 오픈하시면서 집안의 실생활비를 내가 담당하였으면 하는 마음을 비추셨다. 하나님께서 ‘네가 감당하라’는 마음을 주셨지만 선교를 위해 쓰고 싶은 내 마음에 계속 외면하고 있었다. 재정적인 부분에 대한 문제가 불거지자 엄마와 갈등이 있었다. 집안에 믿는 사람이 나 하나인데 순종하지 못하고 사랑으로 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처절하게 회개기도를 하였다. 다음날 나의 잘못을 인정하고 집안의 일정 부분을 내가 감당하기로 하였다.
-> 선교를 하고 싶어하는 마음도 하나님께서 아시는데, 12일자 QT 말씀에 “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일일이 고하라 하시니”라고 하셨다. 엄마의 구원을 위하여 애통한 마음이 있어도, 모든 문제에 돈이 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일일이/ 고하라”고 하셨다. 재정적인 부담은 ‘생색이 나고 분이나지 않을 정도로’ 맡는 것이 좋다. 어머니께 진정성 있게 말씀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너무 잘 적용하고 있다. 생활예배 잘 드리고 말씀을 가지고 균형잡고 서있으면서 하나씩 적용하다보면 어머니께서도 너를 통해 예수님을 보게 되고 믿게 되실 것이다. 성도의 최고 무기는 “말씀”이다. 그날그날 주시는 말씀이 너무 오묘하기 때문에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힘들었던 일은 진솔하게 나누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나도 신년에 지체의 문자에 불편한 마음이 있었다. 외면하고 싶었지만, 금요일 목자모임에서 너무 회개가 되었고 내 부분을 인정하면서 그 벽이 사라짐을 느낄 수 있었다.
혜성
#8211; 교직원 근무평정이 있었다. 교감 샘과 1:1로 독대하는 것이다. 나 스스로 많이 변했다 생각하고 있었다. 작년에 개인적인 일은 안 되고 좌절하고 실망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아이들과의 관계는 참 좋았다. 그래서 이 부분은 괜찮겠다 생각했다. 교감선생님께서는 이번에 말씀하시길 ‘덕을 쌓으라’, ‘학생들이 와서 안길 수 있는 사람이 되어라’라고 하시는데, 변명하고 싶고 화가 좀 났다. 집에 오면서 생각해보니 5년동안 반복적으로 들었던 지적이었다. 나는 변했다고 생각했는데 리더의 눈에는 여전히 부족한 상태인 것이다. 정말 미비하고 너무 미약한 변화여서 티가 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서 “난 왜 같은 이야기를 또 들었을까.” 고민이 되었다. 정말 되었다 함이 없는 인생이라는 생각에 내 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수요예배 말씀 중 목사님께서 “구원의 표정을 짓고 사람들을 어루만지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이것이 내게 주시는 답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고민은 “과연 어떤 것이 구원의 표정을 짓게 되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지금 중국에 억류되어 있는 사람들 중 한 명이 우리 학교와 관계가 있다. 이쪽을 살리려면 저쪽이 죽고 저쪽을 살리려면 이쪽이 죽는 딜레마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살려달라는 기도 밖에 없었다. 내 죄 때문에 저들이 고난 받는구나, 내가 자족할 줄 몰라서, 나의 감사 없음에 회개하게 되었다. 예수님을 모르는 상황 속에서 억류되어 있는 저들의 공포가, 부끄럽게도 8년만에 처음으로 전해져왔다. 오늘 그 곳의 사람들을 대신해서 예배하겠다는 마음으로 드렸는데, 내 신앙은 솜사탕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는 그럴 듯하지만 실속이 없는. 내가 나름 사역을 한다고 하면서도 낭만과 내 열심에 취해서 있었던 것 같아 회개가 되었다.
->언니의 중보기도 문자를 받았을 때 그들의 상황에 마음이 아팠다. 물론 우리 삶에서 거품을 빼야할 부분이 있다. 내 현실을 인정할 필요는 있지만 정죄감에 있으면 안 된다. 생사여탈권은 하나님께 있다. 귀신들린 아들을 예수님께 인도하고자 할 때 귀신은 그것을 방해하려고 아들을 방해한다. 마가복음에는 기도 외에는 다른 유가 나갈 것이 없다고 했다. 언니는 깨달아진 만큼 기도하는 것이 지금 해야할 일이다. 찬양할 때 목사님이 기뻐하라고 했을 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받은 자로 기쁘게 찬양해야한다. 삶과 죽음은 하나님께 있고, 살려달라는 기도 이전에 복음을 알고 죽게 해달라고 해야 한다. 우리는 천국의 기쁨과 소망을 알 수 없기에. 너무 많은 정죄감에 빠지지 말고 지금 있는 자리에서 충실하게 기도하면서 자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부인을 하며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이 매우 어렵다. 그것을 티끌만큼 이해하고 경험했다면 이타적으로 사는 것이 최고의 응답이다. 탈북자들의 아픔을 알기에 지금 내가 신앙생활하는 것, 한국교회가 신앙생활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잘못된 신앙’이야 라고 판단하고 편견에 사로잡히면 안 된다. 사실 우리는 그럴 수 밖에 없고 그 모습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싸워야한다. 패배의식, 열등의식, 비교의식, 주류의식 등은 무너지도록 기도해야 한다. 탈북자들의 고통에 많은 생각을 하며 아픈마음으로 잠잠하게 찬양을 하는 것은 중요하나, 감정의 주인도 내가 아니기 때문에 찬양을 인도하는 목사님의 말씀에 따를 수 있어야 한다. 나의 무력감을 알면서도 그 무력감 자체에 짓눌려 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기도제목
김영화 #8211; 1. 오빠네 가정이 말씀 듣는 환경으로 인도함 받도록 2. 조카들이 건강하게 양육되도록 3. 동생의 건강과, 평안을 위하여 4. 엄마와 QTin 잘 하실 수 있도록 5. 겸손한 마음으로 믿음의 배필 만날 수 있도록
이미영 #8211; 1. 나의 연약함을 잘 드러내고 오픈할 수 있도록 2. 엄마에게 생활비를 겸손히 잘 드리도록 3. 내 생각과 마음이 아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대로 직장, 가정, 모임을 섬기도록
채혜성 #8211; 1. 담임을 맡게 되었는데 기도하는 지혜로 준비하도록 2. 31명의 안전을 위하여 3. 겸손한 마음으로 믿음의 배필을 만날 수 있도록
김은정-1. 병원에서 여러 일로 힘들고 지치는데 예배와 날마다 큐티 통해 새힘을 얻도록 2. 이번에 양육을 받으려고 하는데 병원일이 많은데 양육받을 수 있는 환경 인도해 주시도록 3. 마음이 강건해지고 믿음의 배필을 만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