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국의 비전과 새로운 소식을 안내합니다.
청년 공동체의 삶과 고민을 함께 나눕니다.
청년 공동체의 생생한 모습을 전합니다.
목자와 공동체 리더를 위한 소통 공간입니다.
청년국 양육 과정의 피드백과 평가를 나눕니다.
양성훈(77) - 작곡가. 누나와 초등생 영어 공부방 운영중. 1~3부 찬양팀 섬겼었다. 1~2부 드럼치고 있음. - 가난한 집에서 1남3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늦둥이였다. 어렸을때 부터 차별받는 지역 출신 지역이었다. 부모님이 학벌도 없고 무시받았다. 서울로 올라오셔서 비천한 일을 하고 있었다. 우리집은 늘 억울한 일이 많았다. 잘못한 일이 없어도 머리를 늘 조아려야했다. 맨날 우시는 어머니가 불쌍했다. 그리고 고개숙이는 아버지가 무시됐다. 반지하실에서 6식구가 살았는데 주인집 형들이 창문으로 누나들 옷갈아입는 것을 훔쳐보곤 했다. 어머니가 그걸 보고 주인집에 올라가서 모라고 했는데 맞았다. 근데 아버지가 그걸 보고 굽씬굽씬것을 해서 손에 야구베트를 감고 주인집형들을 패러갔다. 얼마 시간이 지나서 자랑하고 싶어서 어머니에게 그 사실을 말했다. 이 때부터 다혈질 적인 성격이 나왔다. 비슷한 일이 생기면서 조금 더 우왁스럽게 이 집에 구세주인것 처럼 됐다. 난 이집에 해결사 인줄 알았다. 이렇게 우왁스럽게 살았다. 믿음 하나도 없던 시절부터 교회를 다녔다. 교회에서 드럼을 배우고 드럼 학원을 다니면서 드럼을 배웠다. 그러면서 음악으로 대학을 가서 내 인생을 음악으로 펼쳐볼려고 했다. 맨날 사고를 치면서 음악을 하러 다녔다. 아저씨와 같이 밴드를 하도 다녔고 그리고 대학을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다. 드럼만 치면 학교를 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음악학원을 다니는데 빛을 내서 오토바이를 샀다. 산날 소나타가 툭 치고 지나가서 사고가 났다. 결국 그래서 볼 생각이 없던 수능을 봤다. 그래서 전문대 학교를 갈 수 있게 됐다. 풍진이라는 유행성 전염병에 걸려서 대학을 못가고 방사선과라는 학과로 진학을 하게 됐다. 공부는 재미 없었고 술,담배, 여자 이런 것이 삶의 #45211;이였다. 군 제대 후 학교를 다니면서 이 일로 계속 다녀야겠다라고 생각했고 음악을 안할려고 했다. 그 병원에서 한 의사를 따라나가서 실장으로 있게 돼었다. 내 인생에서 술을 빼놓고 말 할 수 있는게 없었다. 날이면 날마다 술 마시면서 어울리는 것이 좋았다. 남자들과의 음란의 술자리를 좋아했다. 음란하게 놀아도 매춘까지 안 한다는 내 안의 의로움이 있었다. 그러다 믿고 나갔던 원장이 5년만에 병원을 팔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온 사람은 전 의사의 수하들을 다 짤라서 내가 짤렸다. 둘째 누나가 결혼하고 살고 있었는데 사업을 한다고 했다. 매형이 일주일에 2번정도만 집에 왔다갔다했다. 매형의 아버지가 후처를 드리고 사는 사람이였다. 의심이 많은 어머니가 흥신소에 사람을 사서 매형의 뒷조사를 했다. 근데 생각하던 것이 맞았다. 그 때 말씀이 없어서 온 가족이 이혼을 요구 했다. 간통죄를 적용할려고 흥신소에서 알려준 대로 그 집에가서 현장을 잡았다. 그래서 결국 이혼은 했는데 통장에 600만원 밖에 없었다. 둘째 누나가 죽을려고 짐싸고 준비하던 중에 김양재 목사님 말씀을 들어서 “저 교회 한번 가봐야겠다”라고 생각해서 우리들 교회로 오기로 했다. 나와 어머니는 누나를 보고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둘째 누나는 매형이랑 다시 살겠다고 이야기 해서 우리들 교회를 했다. 첫날 갔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나와서 목사가 개 소리하면 목사를 해할려는 마음으로 갔다. 두번째 갔는데 또 이상하게 눈물이 나오고 두번 세번 방문하다가 새신자 일어나라고 해서 일어났다. 그래서 목장에 등반하게 됐고 여기까지 왔다. 그때는 독기가 가득해서 목장사람들이 큰일이다 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지금은 감사하는 인생을 살고 있다. 나의 인생의 반을 내 맘대로 살았으니까 남은 인생의 반을 주님을 위해서 살아야 겠다고 생각한다. 지금 음악을 다시 시작한 것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이다. 지금은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공동체 안에서 자매를 만나서 신교재를 하고 있다. 신결혼을 위해서 두 사람이 기도를 하고 있는 중이다. 정말 개같이 살았다.
김윤곤(78) - 회사에서 자동차 부품 영업을 하고 있음. 2011년 9월 부터왔음. - 모태신앙이 아니고 불교, 무교의 가정이였다. 6살인가 쯤에 옆집사는 친구 쫓아서 교회간다고 때를 쓰는 것을 엄마가 말렸다고 했는데 옆집에서 같이 데려간다고 했다. 그 계기로 교회를 다니게 됐다. 고등학교때 분당에 30명도 안되는 개척교회를 다녔다. 중고등부 회장도 하게됐다. 그러면서 명절에 제사때 절하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장남이라도 교회다녀서 절을 안하니까 할머니가 푸 대접을 했다. 누나가 있었는데 내가 고3때 사고로 죽었다(96년10월 롤링스톤이라는 락카페사건). 친구따라서 놀러갔다왔는데 거기서 죽은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나 막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수능도 제대로 못봤다. 부족하지 않게 살았는데 사업을 새로 하셨는데 부도가 나서 분당집을 팔고 잠실로 이사갔다. 차압을 한번 당하고 나서 집안이 더 힘들어 졌다. 아버지가 작은 아버지하고 새 사업을 한다고 하셨다. IMF ~ 2000년 초반까지 힘들었다. 그러면서 할머니가 챙기는 조상들이 모가 있느냐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원래 하는 형식의 제사를 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매년 이런 이야기가 나올때 시끄럽게 싸우셨다. 원래 작은 집도 아무도 안 믿었었는데 이런 일이 있고 부터 교회를 다니는 식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할머니가 상은 차려놓는데 추도예배를 드린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구나 라는 사건을 계속 주시는 것 같다. 평범한 대학을 갔는데 공대 화학가를 갔는데 무슨 말인지 모라서 공부에 취미가 없었다. 군 제대하고 나서 산업공학과로 바꿨다. 공부를 아무리하고 재 수강을 해도 B가 최대 받는 점수 였다. 그리고 어학연수가고 싶어서 알바로 돈을 모아서 갔다. 그래서 7개월 있다가 왔다. 그러면서 거기서 도움이 많이 돼서 영어 실력이 늘었다. 토익점수가 잘 나와서 회사에 지원하기 시작했다. 초반에 떨어지다가 어떤 회사에서 해외영업을 뽑는데 공대생을 뽑는 다고 했다. 그래서 거기에 넣는데 딱 됐다. 그 과정중 좋았던게 가고 싶은 회사(테스코)가 있었는데 거기는 3일 일하고 쉬고 그래서 일요일날 오라고 했는데 안갔다. 엄마는 무슨 배짱이 있어서 안가냐?라고 말했다. 나는 더 잘될 것 같아서 안갔다고 했다. 지금 그 해외영업쪽에 다니다가 연관성 있는 회사로 옮기게 되어서 커리어를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잘 쌓게 된것 같다. > 같은 말씀을 듣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 다른 교회에서 9살정도 차이 나는 여자의 목장에 묶어줬었다. 그때 여자에게 관심도 없었고 그 친구에게 연락하면 씹고 그랬었다. 목장 끝나고 그 여자와 사귀게 되었다. 그리고 결혼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친구 고향이 군산이고 작은 아버지가 군산에있는 교회에 목사님이였다. 그 쪽에서는 당장 결혼을 안 시킬꺼다라고 했다. 그리고 1~2년 지나고 나서 나도 나이가 있으니 어느정도 결정해야하지 않겠냐?라고 하셨다. 어머니가 급하셔서 추진을 하시게 돼었다. 근데 회사를 가야해서 나만빼고 5명이서 만나게 되었다. 근데 그 만나기 전에 목사님이 안 좋은 꿈을 꾸어서 아직 시기상조라고 했다. 작년에 군산에 찾아가서 단판을 볼려고 했다. 근데 죽어도 안된다고 하셨다. 그분이 예전에 말했어야 하는데 너네 둘은 안되겠다고 했다고 했다. 꿈을 꿨는데 어머니가 흘긴곳을 봤는데 내가 상복을 입고 울고있어서 결혼은 반대라고 했다. 여친이 나를 더 좋아했다. 여친이 애를 가지면 돼지 않을까 라고도 이야기 했다. 처가에 인정도 못받고 사는 사람이 되기 싫어서 헤어졌다. 내 또래도 없고 코드도 안 맞아서 교회를 옮기게 됐다. > 그 교회는 이상한 교회같고 목사님의 이야기가 상식적이지 않은 것 같다. - 그 교회설교는 멀쩡해 보인다. 그리고 고난을 피하지 말라라는 설교를 잘 한다. 그리고 여친은 아버지를 존경한다. > 하나님은 그날 그날 말씀으로 훈련시키신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의 특정한 꿈에서 말씀을 전하시지 않는다. 그러면 예수님이 오신 의미가 없다. 이런 사건이 내 인생에 왜 찾아왔는가? 라는 것을 더 생각했으면 한다. 축복에 통로로 윤곤이를 쓰신것 같은데 이런 사건이 찾아 온 것은 이유가 있다. 이 것을 잘 묵상하면 좋겠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너를 놓고 다른 사람을 통해서 말씀하지 않는 것 같다. 그것은 무속 신앙과 다를 바가 없다. 다음 교제 할 때는 말씀으로 인도 받으면서 하는 교제를 하길 바란다. 일대일 양육도 가능하면 하면 좋겠다. 이것도 한발짝 결단이다. 하나님 말씀을 내 말씀으로 받는 훈련. 우리가 듣는 간증이 너의 간증이 되었으면 한다.
김경덕(80) - 아이들 영어 과외하고 있다. 교회다닌지는 얼마 안됐다. - 모태신앙은 아니고 아버지는 불교 외할머니가 불교시다. 어머니도 불교를 믿게 되셨다. 난 외할머니와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 기독교는 안좋은 곳이다라는 고정관념이 있는 상태로 자랐다. 어렸을때 부터 부모님과 많이 떨어져서 지냈다. 아버지가 전라도 분이셨는데 올라오셔서 어머니를 만나고 사업기반을 외가 쪽에서 받았다. 우리 집이 외가집과 티격태격한 부분이 없잖아 있다. 어렸을때는 왜 친척끼리 안좋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부모님이 대학교를 못나오셔서 서울 목동에 있는 친척집에 살면서 서울 유학을 하게 되었다. 6학년때는 부모님이 목동으로 오셔서 같이 살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중학교때까지 공부하다가 중 3때 호주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그래서 가족과 떨어져서 혼자 살게 되었다. 그 때 처음으로 교회를 가게 되었다. 호주에 큰 섬이 있는데 거기로 가게 되었다. 믿음이 있어서 교회를 가게 된건 아니였고 홈스테이하는 곳의 가족이 믿는 집안이여서 가게 되었다. 기숙사를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교회를 잘 안가게 되었다. 고등학교때는 거의 할게 없었다. 그때는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시드니대학도 넣었는데 주립대학에 붙었다. 그때부터 시련이였다. 시골에서 대학생활을 해야한다는 것에 고민하게 돼었다. 2지망은 도시공학을 넣었었는데 그게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결국은 시드니로 오게 되었다. 시드니에서 리사스버그 대학교를 가게 됐는데 거기 하필 내가 들어가는 년도에 한국사람이 7명이 몰리게 돼었다. 과 자체도 맞지가 않았지만 어찌어찌하여 공부를 하게 되었다. 대2때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지셨다. 넉넉하고 돈이 많은 집안이 아니였는데 돈이 떨어지면 손을 벌렸다. 어머니가 쓰러지신 병명이 뇌졸증이다. 오른쪽 아예 못쓰시고 언어도 알아 들을 수 없게 이야기 하신다. 어머니가 이야기 하시면 감으로 알아듣는다. 쓰러지시면 바로 와서 한국와서 군대도 갔어야하는데 외가쪽에서는 너가 와도 변화가 없다라고 말했다. 어머니를 생각하고 들어왔어야 하는데 그때 여자친구도 있었고 어머니의 병이 중증이라는 생각도 못했다. 그러다가 끝내고 한국에 들어와서 어머니를 #48476;는데 어머니의 머리가 아예 하얗게 변하신 것이다. 그런것 때문에 마음이 많이 아팠다. 대학교 그 과를 나왔지만 그 일을 안하고 있다. 군대전역하고 나서 그냥 일을 하고 있다. 군대에서 교회를 다니게 된 계기가 내 주위에 있는 사람중에는 교회 다니는 사람이 없다. 시드니에 있을때도 순복음 교회를 갔었는데 무서웠다. 그때 교회는 무서운 집단이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2년전에 여친을 만나게 됐는데 여친은 억지로 교회를 끌고 올려고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경주에 광주에 사시는데 평화교회에 있는 장로님이 아버지를 전도하시고 아버지가 어머니를 대리고 가셨다. 부모님이 교회를 가니까 너도 따라오라고 해서 갔다. 그때 선입견이 바뀌기 시작했다. 작년 여름 부터 교회를 한두번씩 따라오게 됐다. 오늘도 회개한게 큐티를 잘하는 것. 다다음주에 세례를 받는다. > 부모님 간섭을 떠나서 유학 간 사람들 중 폐인이 되어서 온 사람이 많다. 성실한 성품인것 같다. 한국인 들이 많은 곳이 아니라서 그런듯. 나는 영어를 진짜 못하는데 선생하고 있다. 물리 화학은 다 ‘가’를 받았다. 세례받는 다니까 축하한다. 분당은 2부 세례식 밖에 없다.
> 우리가 죄인인 것을 생각할 때 막연하게 생각하는데 내가 진짜 하나님 앞에 씻을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느끼면 하나님이 도우신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인간과의 관계로 설명 할 수 없다. 우리 목장은 죄에 민감한 목장이 되었으면 한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늘 넘어지는 죄악이 있다. 그 문제 앞에서면 늘 넘어지는 죄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 앞에 이런 죄를 내려놓고 그 죄가 힘을 잃는 그런 목장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