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국의 비전과 새로운 소식을 안내합니다.
청년 공동체의 삶과 고민을 함께 나눕니다.
청년 공동체의 생생한 모습을 전합니다.
목자와 공동체 리더를 위한 소통 공간입니다.
청년국 양육 과정의 피드백과 평가를 나눕니다.
두 증인
계시록 11:1~6
교회를 오는 데 산에 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저분들은 평생 저렇게 산을 다녔겠구나 나는 평생 교회를 다녔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 내내 성경을 연구하고 묵상하고 주일에 교회 가는데 손해 보는 것 하나도 없이 살았다. 그분들은 자신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긍휼한 마음이 들었다.
증인은 곧 순교자라는 뜻이다. 목숨을 걸고 주님을 증거하는 것이다. 스펄젼 목사님 설교 중 나오는 바틀러 부인은 병약한 사람이었다. 교사를 자원하였으나 자리가 없어 보조교사로 일하며 ‘죽어가는 제 말 좀 들어보세요’ 라고 6,700명을 전도하였다. 메트로폴리탄 테버네클 교회에 그녀가 별세 한 후 비문을 세웠는데 ‘우리의 어머니인 그녀의 말을 새깁니다. 죽어가는 제 말 좀 들어보세요’라고 써져있다고 한다.
우리도 죽어간다. 육신은 죽어가면서 영원하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계시록의 일곱인, 일곱 나팔 재앙 즉 땅, 바다, 물, 흑암, 황충, 유프라테스 유역의 여섯째 나팔재앙까지 나왔는데 재앙으로는 안 되니 복음으로만 변하기 때문에 중간계시를 통해 작은 책의 권세를 주시고 나의 밧모섬에서 말씀을 씹어 먹은 것을 예언하라고 사명을 주신다. 그러면 나의 삶에서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 증거해야 한다. 결국 이 땅이 아무리 우리를 괴롭혀도 참 교회는 승리한다. 이 때 두 증인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1. 성전을 척량하는 일을 한다.
척량하는 것은 보호받을 참 교회와 보호받지 못하는 거짓 교회를 엄격히 골라내는 것이다.
1절 -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성전 안에 경배하는 자들은 택한 백성이다. 척량은 건축 전에 하는 내 소유로 확정짓는 일이다. 왜 척량하는 일을 할까? 요한은 에스겔을 인용하였다. 에스겔 40장 15절에서 갈대로 측량하였다. 바벨론 침공 후 무너진 성전을 세우기 위하여. 계시록도 이때는 AD95년인데, AD70년에 디도장군에 의해 헤롯 성전이 초토화되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내가 세우겠다 척량하라 하신 것임. 세상의 성전은 무너져 가는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성전을 내가 건축하겠다고 명령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명령하실 때는 자신이 있으신 것이다. 이 일을 행하시겠다는 것이다. 성전은 곧 나이다. 나의 모든 것이 훼파되어도 하나님께서 세우신다.
성전 척량은 지팡이 같은 갈대로 한다.
우리가 뭔가를 세울 때 황금홀과 빈 칼로 해야겠는데 ‘지팡이 같은 갈대’로 하라 하신다. 초라하고 연약하여 누구나 무시할 수 밖에 없는 갈대로 나가면 누가 듣겠는가? 노사도 요한은 늙었으니 의지할 것이 지팡이 뿐이었다. 이것은 속은 곧고 겉은 부드러운 갈대로 누구든지 그 사람에게 맞게 증거하는 것이다. 그럴 때 참된 예배자를 골라낼 수 있다.
요한에게 ‘책을 먹어라’ 먹으니, ‘척량하라’ 갈대로 척량하였다. 늘 큐티하다 묻자와 가로되 하다보면 내 일을 가르쳐 주시는데, 어떻게 한다는 것이냐면. 우리는 황금홀 간증은 잘 듣지만 갈대같은 간증은 무시한다. 어떻게 성전을 갈대로 측량하겠는가.
떨어지고 떨어지고 또 떨어지는 간증을 하면 내 얘기로 들어야하는데 ‘하는 얘기가 떨어지는 것밖에 없어’하면 척량당하지 못한다. 은혜를 받아야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되는데 무슨 얘기만 해도 ‘저거 나랑 상관없어.’, ‘왜 찌질한 얘기만 해.’ ‘붙어서 영광돌려’라고 한다. 즉 예언을 할 때 어떤 태도로 듣는가를 통해 분별할 수 있다. 갈대로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배우자를 고를 때도 황금홀을 가지고 분별하지 않고 갈대를 가지고 분별해야 진짜를 분별할 수 있다. 동업자도 친구도. 학벌 돈 자랑 하며 만나는 친구가 진짜일까? 갈대로 척량하자. 나의 없는 것을 자랑하며 사람들을 분별하길 바란다.
2절에 성전 밖 마당은 그냥 두라고하신다.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말을 듣지 않는 성전 밖은 그냥 두라고 하신다. 소망이 없으니 덮으라는 의미이다.
성전의 구조는 맨 바깥에 이방인의 뜰이 있다. 이방인들 중 유대교 개종자들을 위한 것이다. 이들은 성전 안에 들어갈 수 없다. 이방인의 뜰이 밖에 있고 성전 안으로 여인의 뜰, 이스라엘 인의 뜰, 제사장의 뜰, 성소와 지성소가 있었는데, 모든 구조가 성전 안에 뜰이 있는데 밖에만 오직 이방인의 뜰이 있다. 이들은 성전 안에 한 발짝만 들여놔도 죽음이다.
교회와도 뜰만 밟고 가는 이들은 구원받지 못한다. 성전 안의 인은 구원이나 바깥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다. 영적 유대인은 구원받으나 영적 이방인은 구원받지 못한다. 교회가도 마당만 밟고 왔다갔다 하면 구원과 보호를 받을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런 성전 밖 마당을 42달 동안 이방인들에게 주었다. 우리가 성전인데, 내가 나의 내적인 부분은 보호하시나 육적인 현실적 환경은 보호하지 않으신다. 내 속의 원수가 가장 큰 원수이다. 내 속의 분노, 시기가 또아리를 트는데 어떻게 안 만나겠는가? 내가 나를 미워하는 것이 제일 문제이다. 내 속의 원수가 많고 내 속에도 척량 받아야할 부분이 많은데, 아직도 성전 밖에 어슬렁거리는 내 원수가 너무 많으니, 하나님께서 성전 박 마당을 이방인에게 짓밟히게 하신다. 저들이 ‘거룩한 성’을 짓밟는다고 하셨으니 성전 밖 마당도 ‘거룩한 성’이다. 우리가 일곱 나팔 재앙을 통해서 신자-불신자 동일하게 노출되게 하셨듯이 하나님의 허락하심에 의해 성도의 육적 짓밟힘이 일어날 수 있다. 그 와중에 나의 이방인 (남편 아내 자식 등등)에게 짓밟히는데 하나님이 성도를 보호하셔서 바깥에 있던 부분이 거룩해 질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겉은 짓밟아도 예수 믿는 것이 없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 환경을 짓밟도록 두시고 144000을 고르시고 인치시고 구원받은 자로서 성전 밖을 짓밟는 마귀와 전투를 힘겹게 해야 하는 것이 두증인의 역할이다.
척량이 안 되는 곳은 42달 동안 이방인이 짓밟게 두신다. 내가 안 되는 것 때문에 42달 동안 짓밟도록 하신단다. 42달은 3년 반, 1260일이다. 다니엘 9장에 받은 계시에 7년 종말은 마지막 한 이레에 일어난다고 한다. 7년은 전 3년 반, 후 3년 반 즉 초림과 재림사이를 나타내는 표현, 각자의 인생 길이를 나타낸다. 이 초림과 재림 사이에 복음이 제일 전파되고 적대 세력도 가장 고조되는 기간이다. 두 증인이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는데 사단도 열심히 왕 노릇 하는 것이다. 인생 내내 교회시대 전체, 인생 내내 전체 공격을 받아 고통을 당하나 그것이 우리에게 유익이므로 하나님이 공격을 허락하신다. 이것이 이방인에게 뜰을 주셨다는 것이다.
우리가 짓밟히는 동안 우상숭배와 위선과 핍박이 차보이지만 42달의 제한된 기간이라는 것이다. 왜 알아듣지 못하게 표현하셨을까? 로마가 알아들을까봐 이렇게 쓰신 것이다. 공산주의와 독재국가를 생각하면 이것을 어떻게 알아듣게 썼겠는가? 누가복음 씨부리는 비유에서도 허락된 자들만 깨닫게 비유로 말씀하신다라고 하셨다. 이 때에 갈대로 척량하여 참 성도가 되길 바란다. 외모로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 갈대로 온 목원이 우리에게 예수님으로 나타나신다.
2. 회개의 권세로 예언한다.
3절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복음 때문에 두 증인은 굵은 베옷을 입었다. 나의 물리적 힘으로 싸우다가는 백전백패이다. 회개와 참회하는 모습으로 예언해야 한다. 우리가 나가서 늘 예언을 할 때 하늘에 속한 성도의 권세를 가진 신분과, 42달 동안 짓밟힌 십자가 밑에 있는 교회로서의 성도의 신분을 구분해야한다. 나는 하늘에 속한 신분이나 이 땅에서는 짓밟히며 십자가를 잘 져야 한다.
삶으로 입으로 복음을 전하며 살 수 있는 힘이 권세이다. 이것을 성도에게 주셨다. 42달 동안 짓밟힘은 십자가요 곧 영광이며 영광은 무게라는 뜻이 있다. 무게를 잰다면 하나님보다 무거운 사람이 있겠는가? 하나님의 무게를 가볍디가벼운 내게 주신다는 것이다. 이런 내가 십자가를 잘 지면 하나님의 무게가 입혀져 권세가 있게 된다. 짓밟히는 것 같으나 권세가 있는 것이다.
내가 이 땅을 살아가며 십자가에서 살아지는 일이 있을 수 있다. 죽어지고 썩어지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생동안 하늘의 영광의 권세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복음의 예언을 주실 것을 믿는다.
1260일 동안 밟히게 놔두시면서도 신앙인들에게 환란이 휘몰아칠 것인데 예배하며 기쁘게 좁은 길을 가는 신실한 증인들을 보존하셨다. 너무 적다. 2증인이라고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 입장에서 숫자의 많고 적음은 상관없다. 신명기에도 맹세를 위하여 2명이 족하다고 되어 있고, 예수님도 전도를 하러 갈 때 두 명씩 파송하셨다. 둘씩 가면 온 세계에 복음을 전파할 수 있다. 증거 할 때 사람들이 핍박하면 죽어가는 세상을 향해 애통하는 증인인 것이다. 남들이 나를 욕하면 나는 그 사람의 죄를 보며 애통하는 것이다.
짓밟은 사람은 42달이지만 당해도 1260일이다. 이는 교회사의 인생 기간이다. 인생 내내 지속되어도 하루하루가 새롭고 하루하루 기도하고 살 수 없게 하시는데 이야말로 큰 권세로 입히는 일이 아닌가?
내가 하루하루 기도하고 사는데 남편 한사람이 괴롭혀 병약할 수 있는데 그래서 6,700명을 전도할 수 있었다. ‘죽어가는 내 말 한번만 들어주세요’하며 바틀러 부인처럼 힘들 때 구해야 한다. 복음 때문에 고난을 자처하며 회개하는 자의 기도는 특1호 응답 기도이다. 기도 응답을 위해 힘든 자리를 선택하면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이므로 듣지 아니할 수 없다. 회개가 되지 않는 것은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많아서 그렇다. 회개의 권세가 필요한데 내 죄를 봐야 한다. 좁은 길 가는 것은 내 죄를 보는 것이 우선이다. 내 죄를 봐야지 증인이 되어 예언할 수 있다.
고난당하는 1인의 기도로 우리가 사는 것이다. 교회는 고난당한 1인의 기도로 산다. 엘리는 형편없는 제사장이었으나 고난당하는 한 사람 한나가 지키고 있기에 이스라엘이 살았다. 교회가 무너지지 않은 것은 고난당하는 1인 때문이다. 우리는 떡고물과 같은 은혜를 받고 있는 것이다.
적용 하는 자의 권세가 이런 것이다. 적용은 회개이고 권세이다. 우리가 권세가 없는 것은 회개할 줄 모른다. 어떤 경우에도 윤리, 도덕적인 죄 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그렇게 잘못하도록 나는 무엇을 했는가? 먼저 믿은 자로 내가 무엇을 했는가? 이것을 돌아보며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불쌍히 여길 수 있는 마음이 생긴다. 내가 권세 없는 이유는 회개하지 않기에, 좁은길 가지 않기에 권세가 없다.
3. 회개의 권세로 예언하는 사람은 끝까지 말씀의 등불을 끄지 않는다.
4절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감람나무는 기름을 의미한다. 그 기름을 부어서 두 촛대로 세상을 밝히는 사람이 되어 회개의 권세로 예언을 하는 이는 저절로 남을 비춰주는 인생이 된다. 감람나무=>기름=>메시아. 2증인 초림, 재림 예수님. 이것은 1차적인 해석이다. 감람나무을 입고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성도들이며 촛대는 하나님의 교회를 상징한다.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다. 이것은 전체로서의 교회를 뜻하나 두 교회는 특별히 증거사명을 맡은 교회이다. 서머나, 빌라델비아 교회만 증거했다. 42달 1260일 동안 교회가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는 존재가 되어 환란 중에 주의 복음을 들고 나서는 증인들은 기름 즉 성령님 의 절대 공급을 받는 자로 암흑같은 이 세상에 빛을 전하는 촛대의 역할을 할 것이다.
토마스 선교사는 대동강 변에서 자신을 죽이려는 자에게 웃으며 성경을 마지막까지 던졌고, 결국은 많은 이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죽으면서도 마지막까지 말씀의 등불을 끄지 않은 것이다. 내가 회개의 권세를 가지고 티끌같은 내 존재를 깨달으며 나갈 때 두증인의 권세를 얻게 된다.
4. 기적의 권세를 주신다.
5절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지니 누구든지 해하려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증인의 입에서 불이 나오는데 이것은 말씀의 불이다. 성도는 말씀의 검을 가진다. 여기서는 말씀의 불을 가진다고 한다. 성도의 공격무기는 말씀이 최고다. 그러므로 말씀전파가 확실한 교회는 절대로 마귀가 틈탈 수 없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 입에서 나오는 말씀의 불이 마귀를 이기기 때문이다.
아무리 와서 공격을 해도 말씀의 불이 입에서 나오기에 웬만한 사람들은 분별이 가능하다. 그러나 말씀이 들리지 않고 비판적인 사람들은 사단의 밥이 된다. 그러므로 일곱 교회 중 말씀전파, 목회자의 설교는 영적 전쟁에서 강력한 공격 무기가 된다.
6절-[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 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두 증인이 참 권세로 능력 있는 말씀을 전하는 공동체는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참된 복음이 전파되는 곳은 기적이 일어난다. 사도 요한이 비가 오지 않았던 엘리야의 기적과 물이 피가되는 모세의 기적사건을 인용한 이유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은 하나님 백성의 능력이 막강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와 성정이 같은 엘리야가 3년 6개월동안 비오지 않을 것을 예언하였다.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로 승천한 엘리야이다. 북이스라엘이 극심한 우상숭대 할 때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 죽이는 혁혁한 공을 세웠는데 이세벨이 죽이려니 도망가며, 실의에 빠져 나를 죽여달라, 도대체 하나님은 어디계시냐고 했다. 하나님께서 나는 바람, 지진, 불가운데 있지 않고 오직 세미한 음성가운데 있다고 하셨다.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가. 이 말씀에서 불같은 은사를 받아 지진가운데서도 역사하시지만 말씀을 씹어먹는 세미한 음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신다. 엘리야는 혁혁한 공을 세우고 죽을 뻔한 위기에서 말씀의 위력을 깨닫고 엘리사에게 자리를 물려주며 자신은 승천했다.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은 사람은 나 혼자 사역할 수 없다. 내가 하나님의 통로인 것이지 내가 850명을 죽인 것이 아니다. 어찌 내가 감람나무일 수 있어요? 감람나무는 예수님 밖에 없다. 나는 통로일 뿐이다. 두 증인의 태도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통로일 뿐이다.” 의 자세이다. 이 마음을 갖는 자에게 기적의 능력을 보이신다. 내게 선한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비를 오게도 말게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모세와 엘리야는 강력한 사탄의 권세와 싸우며 주눅들지 않고 영적으로 승리하였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되었다 함이 없어 죽을 뻔한 일이 있으며 별 인생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신다.
두증인의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는 이세상의 우상숭배와 적대적이다. 교회는 이 땅에서 적대적 우상숭배 세력과 싸워 십자가에서 죽는 존재 목적이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모세와 엘리야가 이겼듯, 예수님이 이기셨 듯이 우리도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두 증인이 되어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예언을 하려면 증인이 필요하다. 법정에서는 증인의 여부가 재판이 좌우된다. 증인은 사건의 목격자 된 사람이 하는 것이다. 눅 1:2에 보면 “말씀의 목격자”로서 말씀을 보았다고 한다. 성경을 읽어 예수님을 체험하면 예수님의 목격자로 예수님을 보여주는 인생이 된다. 그러면 저절로 일꾼이 되어 ‘죽어가는 이의 말 한번만 들어달라’고 하여 저절로 사명을 감당하게 된다.
누가가 데오빌로 각하 1명에게 편지를 쓴 가장 중요한 주제는 ‘너는 증인이 되어라’는 것이다. 어떻게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내 주 그리스도가 되셨는지 증거하라는 것이다. 내가 증인이 되기 위하여 해 받는 것이 확실한 증거로 예수님의 친히 사심을 나타내는 비결인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고난의 환경에서 억울하고 짓밟히는 환경에서도 어떻게 내 환경에서 예수님이 사셨는가? 이것을 나타내는 것이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다. 이것이 누가복음, 에스겔, 계시록에도 있는 것이다.
두증인은 참교회를 말한다. 두 증인은 성전을 척량해서 참과 거짓을 골라낸다. 연약하고 수치스러운 지팡이 같은 갈대로 예언을 할 때 저절로 분별이 되고 척량이 된다. 우리는 갈대같은 이생이 되서 내가 얘기할 때 다른 이들이 하나도 듣지 않는데 그때 들어내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을 향하여 두 증인이 되어 걸어가라고 하신다. 이세상은 다 죽은 것 같아도 두 증인을 신실하게 보전하여 남겨두셨기 대문에 회개의 권세로 굵은 베옷을 입고 복음을 전하게 하신다. 나의 척량되지 못한 부분 때문에 내 주변이 나 때문에 42달 동안 짓밟느라 수고하고 있다. 내가 아직도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를 짓밟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모든 사건을 보며 내가 회개의 권세로 나아갈 때 끝까지 내가 말씀의 등불을 끄지 않고 비추고 있는 것이다. 내 가족이 돌아오라고 마지막 한사람이 돌아올 때 까지 등불을 키고 있을 때 모두가 구원의 예수를 믿는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이것을 바라보고 하나님은 참 교회를 완전히 보호하고 결국은 승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삶의 주변에서 말씀의 등불을 끄지 않을까?
해 받는 사건에서 예수님의 살아계심을 어떻게 나타내고 있는가?
나는 말씀의 갈대로 척량하는가?
나는 짓밟는가 짓밟힘을 당하는 자인가?
김영화 79
2007년도에 불신교제로 우리들 교회를 친구소개로 오게 되었다. 그 당시 우울증이 심했었다. 처음에 우리들교회에 왔을 때 목원으로 있었던 것이 참 힘들었다. 그러나 교회에 붙어 있으면서 그 친구를 끊어내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말씀듣는 자리로 불러내어 주셔서 목자자리까지 오게 되었다.
부모님의 불화가 심한 편이었고 3살 위의 오빠와 1살 어린 동생 사이에서 부모님께 질서순종이 많이 어려웠다. 그러나 양육을 받으면서 부모와 내가 객관화가 되고 용서를 하는, 용서를 구하는 마음이 되었다.
내가 열심이 많은 성격이고, 동생에 대한 열등감과 비교의식이 해결되지 않아서 우리들교회에 있으면서도 계속적인 갈등이 있었지만, 큰 고비를 넘기고 나의 열심이 빠진 뒤에 목자가 되었다. 목자가 되었음에도 되었다함이 없는 것은 여전히 자격지심의 문제로 동생과 티격태격하는 것이다. 최근 새언니가 셋째를 출산하면서 두 조카를 돌보게 되었는데, 조카들 앞에서 내 잘못을 인정해야하는 ^^ 상황도 생겼다.
채혜성 78
사명감에 불타 현재 직장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6년쯤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의지로 버티는데 한계를 만났다. 나는 도저히 학생들을 완전히 끌어안을 수가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절대적인 사랑의 결핍으로 안팎의 상처가 많은 학생들을 품는 것이 자기의로 가득 찬 내게는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영적으로 공급받아야할 교회에서는 분립개척 된 지 얼마되지 않아 예배보다는 일에 매여 있었다. 나처럼 자기의가 강한 사람은 질서 순종이 너무 어려웠고, 결국 공동체에서 나와야했다.
당시 학교에 계신 미술치료 상담 선생님께 상담을 요청하였고 우리들 교회 목자이셨던 선생님께서는 우리들 교회의 양육 방식으로 큐티를 알려주시고, 미술치료를 하시면서 지금의 공동체로 인도해주셨다. 이제는 그때그때 감정에 따라 하던 적용에서 말씀이 조금씩 채워지면서 그 진폭이 줄어들었다. 학교에서도 학생들에 대한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학생들과도 편해지게 된 것이 있다.
김은정 80
현재 전문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전주에서 서울로 병원을 옮기면서 간구했던 것들을 모두 이루어주셨지만 그것은 육적인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병원을 통해 나를 훈련시키고 계신다. 원장님과 동료간호사들 사이의 관계에서 고난을 받으면서 나의 내면을 보게 되었다. 모태신앙으로 구원의 확신은 있었지만, 말씀을 그저 읽었을 뿐 적용의 삶은 없었다. 우리들 교회를 통해 말씀이 채워져 가고 있다.
아버지와의 갈등이 오래되고 해결이 되지 않은 상태로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예수님을 만났지만 아버지에 대한 상처가 온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이 상처가 사회생활에서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아서 현재 상담을 받고 있다. 상담을 받으면서 현재까지 직면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아버지에게 편지쓰기 과제를 두고 주저하고 있다.
--> 다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한 단어만 써도 적용이다. 시도한 것과 생각하는 것은 다르므로, 오늘은 한 단어, 내일은 또 다른 한 줄 써보는 적용을 하면 좋겠다. 정말 감사한 것은 QT를 통하여 상황을 해석하며 가고 있다는 것이다. 조금씩 물꼬가 트일 것인데 양육을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네게 기적의 권세를 주실 것이다. 그러면 성령님이 주시는 권세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QT한 말씀에 100% 동의가 되지 않아도 양육을 통해 돌 같은 마음에 이슬비로 촉촉하게 적셔주실 것이다.
나도 아빠를 많이 미워했지만, 결국 아빠에게 감사하다. 예수를 믿게 해주신 최고의 아버지라고 감사하게 되었다. 하루에 다 써야한다는 부담보다는 조금씩 조금씩 쓰면서 감정을 직면해가면 좋을 것 같다. 양육을 기대하자.
같이 일하는 간호사의 성격이 나와 너무 비슷하여 이해는 되지만 받아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다. 뒤에서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을 알았는데, 한마디 하고 싶다.
--> 그 친구가 불쌍하다. 그 간호사선생님의 말과 행동이 상식적이지 않고 객관적이지 않다. 삼육대를 나와서 예수님도 올바로 알지 못하지 않은가... 그 친구가 택자가 아니라면 지옥말고는 갈 데가 없다. 그 친구가 밉던 싫던 이 병원 나오기 전에 큐티인 전해주는 것이 적용이다.
이미영 80
역기능 가정 속에서 자랐다. 유교사상과 정령숭배가 만연한 가정에서 자랐으며 현재 어머니는 다른 종교(남묘호랑교)를 믿고 계신다. 어린 시절 부모님간의 갈등 부모님 형제간의 갈등과 반목을 보면서 자라야했다. 그로인해 내게는 열등감, 피해의식, 낮은 자존감이 있었고, 교회 안에서 사람들을 만났을 때 상대적 박탈감에 많이 묶여있는 상태였다. 예수님 믿기 전에는 삶의 방향성이 없었고,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부러움이 많았다. 교회 와서도 변화되지 않았던 것은 지렁이 같은 교만함이다. 나를 너무 비하하면서 상대방을 높여주는 태도가 있었다. 그것이 겸손이라고 생각했었다. 나에 대해 자신이 없어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2008년에 등록하고 지금까지 순적히 왔다. 세례를 받고, 1대1 양육을 받고, 양육교사를 받고 초등소년부에서 봉사하고 있다. 현재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있다. 나는 내가 말씀 안에서 변화되었듯, 그 가치관으로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일을 하고 싶다.
요즈음에는 내 삶의 세밀한 부분 (언어습관 생각 등)을 하나님께서 하나하나 고치시는 것을 체험하고, 자연히 내 안의 쓴뿌리들이 회복되고 있는 것을 느낀다. 내가 살아가는 것 자체가 정말 감사하다. 나의 모든 힘든 일들이 예수님을 깊이 만날 수 있는 세팅이었음을 말씀 안에서 가르쳐주셨다. 비록 영이 다른 어머니이지만,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여전히 우리 어머니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려주셔서 아멘으로 받았다.
--> 말씀으로 잘 깨닫고 분별하고 있다. 금식은 몸을 살펴가면서 하면 좋겠다. 몸이 강건해야 영적으로 강건할 수 있다.
김영화
1. 부천에 있는 초등상담교사에 이력서 두 곳 넣으려고 하는데 직장으로 순적하게 이끌 어 주시도록
2. 새 언니가 건강하고, 찬미, 주희, 찬영이가 말씀안에서 양육되도록
3. 오빠가 말씀이 들리는 환경에 있을 수 있도록
4. 겸손한 마음으로 믿음의 배우자를 만날 수 있도록
5. 소년부 다시 시작했는데 겸손함과 성실함으로 섬길 수 있도록
채혜성
1. QT를 잘 챙겨서 할 수 있도록
2. 새 학급을 마음으로 잘 기도하며 준비하도록.
3. 고등부 전화심방 챙기도록
4. 믿음의 배우자를 만날 수 있도록
김은정
1. 하나님께서 받은 말씀에 대하여 순종을 잘 하도록
2. 아버지가 구원받기를 바라는 사랑의 마음으로 지혜롭게 편지 쓸 수 있도록
3. 혈기가 온유함으로 바뀔 수 있도록
4. 건강한 자아가진 사람이 되도록
이미영
1. 하나님의 세심한 음성을 듣는 사람으로 여전한 방식의 큐티, 기도, 예배로 균형잡힌 삶의 한주가 되도록
2. 직장, 가정, 교회의 영역에서 권위에 대하여 순종하도록
3. 가족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