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국의 비전과 새로운 소식을 안내합니다.
청년 공동체의 삶과 고민을 함께 나눕니다.
청년 공동체의 생생한 모습을 전합니다.
목자와 공동체 리더를 위한 소통 공간입니다.
청년국 양육 과정의 피드백과 평가를 나눕니다.
<설교 요약>
제목 :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 기도 (요한계시록 8장 1절 ~ 5절)
안 믿는 사람에게 왜 안들리느냐고 야단친다고 들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 나라와 하나님 나라는 소통이 안 되기
때문에 안 들리는 사람은 떠들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기 얘기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 가진
자는 유혹적인 얘기 말고 세상 얘기를 계속 들어주다보면 하나님 얘기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
들어줘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심판의 말씀을 계속 주시는데
백성들은 듣기도 싫고 들으려고 하지도 아니하고 들리지도 아니하여서 안타까운 하나님께서는 거꾸로
조용해지셨습니다. 기도가 너무 듣고 싶으셔서 주님께서 고요해지셨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하면서도 내가 무슨 기도를
하는지도 모르고 얼마나 안들리는 기도를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도 기도 듣고 싶으셔서 조용하셨는데
여러분들도 좀 조용하면 안될까요? 자식 이야기도 조용해야 들립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 기도 첫번째는
하나님의 침묵을 겪어야 합니다. 다같이 뭐라구요?
① 하나님의 침묵을 겪어야 합니다. (계 8:1~2)
로마의 핍박이 굉장히 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우리가 이렇게 고난이 많은가가 주제입니다. 그러더니 일곱
교회의 악을 보여주시면서 너희 악이 더 세다, 그래서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하시면서 여섯째 인까지 떼셨습니다.
여섯째 인 떼어지고 나서 구원받은 십사만 사천명을 얘기하시고 일곱째 인, 일곱 나팔 재앙이 엄청난 심판으로 계획되고
있는데 그때 반시 동안 하늘이 고요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셨다는 것입니다. 지금 로마가 저렇게 우리를
핍박하고 있는데 저 세력들을 부셔버려야 하지 않나요 하나님! 그런데 왜 침묵하고 계신가요? 하나님 안 계세요?
(합 1:13) 이 물음이 우리 주제가 아닙니까? 우리 개인의 삶을 들여다 보아도 하나님은 침묵하고 계신 것 같지 않습니까?
일본의 작가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에서는 일본에 선교하러 갔던 포르투갈 페레라 신부가 배교했다는 소식에 그
제자인 로드리게스 신부가 실상을 알아보기 위해 1년 걸려서 일본에 들어가서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나는 끓는 기름
가마 속에서 성도들의 비명 소리가 날마다 들렸다. 그래서 날마다 눈물로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침묵하셨다. 그래서 나는 죄없는 성도들을 살리기 위해서 배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로드리게스 신부도 스승을
따라 배교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래 나를 밟아라. 나는 밟히기 위해서 이 세상에
왔다. 너희는 밟는 것 자체로 너희 아픔이 충분하다. 나는 침묵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나는 고통을 같이 나누고
있었다” 주님은 늘 고통당하는 현장에 너와 같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재앙을 의미하는 나팔을 받은
천사들이 하나님의 보좌 옆에 서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재앙은 다른데서도 아닌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존귀와 능력과 권세이신 것입니다. (사63:9~10)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셔서 대적하여서
치시기도 하지만 안기도 하시면서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십니다. 반시 동안은 짧은 시간을 의미하는데 아주 짧은
시간동안 하나님이 고요했습니다. 하나님이 잔소리를 딱 끊으시면 두려움이 몰려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마지막
표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반시동안이 너무나 평생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욕도 하고 도리질을 하고
별 짓을 다 하면서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로마제국 전역에서 대규모의 핍박과 조롱이 성도들을 항해 퍼부어져
정신적으로 무너져야 마땅하지만 그들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침묵 앞에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꼭 없는 것처럼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내 상황에서 내가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 기도가 무엇인지 수 없이
경험을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이 없는 침묵이 아니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침묵을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② 금향로에 담으시는 기도가 있습니다. (계 8:3~4)
금향로에 들어가는 기도를 네 가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번째, 공평과 정의의 바른 기도를 금향로에 넣으십니다. 바른 기도는 땅에 떨어지지 않고 담기는데 (아5:24)
이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기준은 공평과 정의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롬 3:12) 다 치우쳤습니다. 영양이 과다하면
비만이고 부족하면 영양실조입니다. 감정에 치우치면 정신이 없고 이성에 치우치면 메말라 있습니다. 성적으로도
부족해도 넘쳐도 다 문제인 것입니다. 죄의 어원은 ‘과녁을 빗나가다’에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큐티, 기도, 금식, 구제,
성경공부 등 어느 한가지에 치우치면 이단입니다. 균형잡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맨날 균형 잡자고 우리는 큐티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자신이 치우쳤다는 것을 모릅니다. (딤후3:1~2) 그래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어떤 사건에서도
자기가 치우쳐 있고 자기 자신의 공평치 못함이 보이는 것이 택한 백성입니다. 한가지로라도 안 치우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금향로에 담으시는 기도는 하나님만은 내 자신에 대해서도 공평하게 다스리시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반드시 공평하고 다스리신다는 것을 믿고 기도 드리는 것입니다. 공평과 정의는 항상 하나님 편에서 균형있게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로마의 박해가 날로 심해지고 지하 카타콤에서 점점 죽어가고 있는 성도들이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자신들을 공평하게 다스린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 상황에서 자신들의 치우침을 볼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너무 치우쳐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남편이 수고하고 아내가 수고하는 것입니다.
공평과 정의의 바른 기도를 한다는 것은 치우침 없는 기도를 하는 것인데 우리 가운데에는 늘 치우침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치우침을 보는 것, 보는 것이 안 보는 사람하고 좀 다르다는 것입니다. 결국 성도들의 기도는 응답이
되었습니다. 313년에 기독교가 자유를 얻었고 395년에는 로마의 국교가 기독교로 되는 역사적인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다 들으시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막 11:24) 우리의 분량대로 기도가 응답된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공평과 정의의 기도를 하기가 너무 어려우니까 로마에도 300년이 넘게 걸린 것입니다.
두번째, 저절로 나오는 간절한 기도를 담으십니다. 영국의 피터 그리그 목사님의 부인이 뇌종양이 걸렸습니다.
그는 갑자기 쓰러져서 발작하고 경련을 반복하는 아내 옆에서 두려움에 좋은 말로는 어린아이처럼 기도했지만 나쁘게
말하면 만병통치약을 찾아다니는 돌팔이 약장수처럼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병원 복도에서 아내의 뇌수술이 무사히
끝나기를 기다리는 동안은 아무것도 생각이 안나고 “아 하나님” 두 마디 밖에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뇌종양
걸린 것도 너무 길어 보이지만 뇌수술하는 동안은 더 길어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이 반시라고 합니다. 내가
괴로운 시간이 반시 밖에 안되는데 다 평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반시 동안에 가장 간절한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침묵이 정말 축복이 아니겠습니까.
세번째, 금향로에 담는 기도는 성실하게 준비하는 기도입니다. (골 4:2)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그런데 여러분들이 항상 기도에 힘씁니까? 언제나 그 기도의 결론이 감사함으로 깨어 있습니까? 우리는
오랫동안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데 길들여져 있어서 육체와 습관은 기도에 익숙하지 않아서 기도 훈련을 해야합니다.
그래서 항상 기도에 힘쓰기 위해서 외적 훈련부터 해야 합니다. 시간을 정해서 기도하고 기도할 줄 모르면 “주님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를 반복해도 좋습니다. 음식 앞에서 언제나 감사기도 드려도 하루 3번입니다. 회사나 불신 친구 앞에서
더욱 더 기도하시고 식기도, 아침에 일어나서, 잠자리 들기 전에, 차 타고 가면서, 신문 보면서, 소리내서도,
침묵하면서도, 공예배 기도도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공예배 기도 때 기도문을 써서 국어 읽듯이 읽으면
은혜가 안되고 안 쓰고 하면 자기 마음대로 합니다. 그러니까 원고를 갖다 놓고 거의 외워서 하는 수준으로 성실하게
기도를 준비하시면 성령이 임재하셔서 하나님의 쏟아놓으시는 말을 쏟아놓기 때문에 서로 은혜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 준비하는 자세에 하나님이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용서해주세요.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합니다.”를 기본틀로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엡6:18) 시간 정해서 하는 기도보다 무시로 하는 기도가
더 영적이고 성숙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무시로 기도하려면 훈련이 필요합니다.
내가 외적 기도 훈련하다 보면 내적인 기도 훈련의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5세기 베네딕트 수도사는 성경 묵상을 통해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깊이 묵상한다는 것은 성경을 깊이 생각하고 인격적으로 읽는 가운데 성경 본문을 통해서
하니님께서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는 훈련을 말합니다. 기도는 일방통행이 아니고 하나님의 마음을 살피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래서 평소에 친밀함이 필요하고 말씀 묵상이 필요합니다. 말씀 묵상하는 사람은 하나님 뜻에 맞춰서
나를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세련된 사람입니다.
네번째, 기도의 결론은 전도입니다. 바울 사도는 내가 메인 환경이 복음을 전할 환경이라고, 나는 감옥에서
풀려나기보다 온 천하에서 열매 맺어서 자라나는 것이 더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내 환경에 잘 메어 있는 것이
내 시간을 가장 절약하는 길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못 믿고 로마를 무서워하고 미워하면 전도도 못하고 내 자신에게
심판이 임하는 것입니다. 당신 때문에 내가 되는 일이 없다고 하면서 누구를 무서워하고 미워하는데 어떻게 전도를
하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를 믿어도 맨날 아픈 것입니다.
③ 심판을 불러오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계 8:5)
심판은 사실 구원인 것입니다. 금향로에 담을 기도를 쌓아놓으면 내 기도가 심판을 불러온답니다. 성도의 기도와 함께
심판을 결정하신답니다. 그러니까 세상의 운명을 결정하는 자는 대통령도 아니고 어떤 유명인사도 아닌 성도들입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훌륭해도 우리나라를 바꾼 것은 선교사들입니다. 복음을 통해서 모든 권세를 행하고 있는 성도들이야
말로 하나님의 동역자인 것입니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세상 세력 때문에 세상 세력이 부지중 나를 통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것을 늘 안타깝게 여기면서 기도를 할 때,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를 하면 그런 기도가 금향로에
모아져서 금향로가 쏟아지면 이 땅에 공평과 정의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쉬운 말로 믿는 사람은 “나를 괴롭히는
저 세력을 물리쳐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이 나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고 내 자신이 돈을 좋아해서
이 남편을 만났더니, 내 자신이 돈에 치우쳐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돈을 안 주시는군요. 내가 돈에 치우쳤습니다.”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돈을 안 줘도 내 자신이 통곡으로 회개 기도를 하게 되면 그 괴롭히는 세력에게 하나님이
번개와 지진을 내리셔서 돌아올 기회를 주신다는 말입니다. 제 남편에게 번개와 지진 같은 암 재앙을 주셨지만 그것
자체가 돌아올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심판이 구원으로 변한 것입니다. 예수 잘 믿는 한 사람이
있으면 그의 기도와 예수님의 중보기도가 합해져서 심판이 옴으로 육은 죽고 영은 살아남으로 구원 받았기 때문에
사실 암 사건이 너무 감사한 것입니다. 천국 가는 것이 최고의 유산이고 더 귀한 선물은 없습니다. 나의 기도로,
우리의 기도로 로마 같은 사람이 예수 믿고 돌아온다는 것이 심판을 불러오는 기도라는 뜻입니다. 육이 조금이라도
무너지지 않으면 영이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육이 조금 무너지기 시작하면 거기를 다 영으로 채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이 제대로 깨달아졌다면 우리의 고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열심으로 울며 불며
기도하지만 내가 평안하지 않은 이유는 환경의 고통보다는 말씀이 들리지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들리지
않으니까 환경을 더 집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제대로 기도를 하게 하기 위해서 나를 버린 것처럼 침묵 속에
두실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달라 달라하는 기도에서 나의 치우침과 가증을 볼 수 있는 기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것 같으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내 옆에 계십니다. 내가 수준이 높아서 오래
걸리고 수준이 낮으면 빨리 응답이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미사여구가 들어가서 들으시겠습니까. 내가 공평과
정의를 행하고 간절한 기도로 성실히 준비하고 결론으로 전도한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안 들어주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의 아픔이 없어지는 기도가 아니고, 나의 가증과 부패를 보면서 내가 전도하고 주를 위해서 살겠다고,
하나님 제 사명을 깨닫게 해주세요 하는 기도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는 기도인 줄을 믿습니다.
<목장 나눔>
성탄 주일에도 여전한 방식으로 목장 나눔을 하였습니다. 예수님 생일날에 정현형 생일 주간이라 다 함께 축하도 하고
케익도 먹으면서 알차게 올해 마지막 목장 모임을 가졌습니다.^^ 중보 기도의 힘을 다시금 새기면서 목장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 형제님들을 포함한 천대근 목장 형제님들을 위해서 기도 부탁드립니다. 한해 동안 고생 많으셨고
새해에도 주님의 은혜가 가득하시길 기도 드립니다. 아멘
▶ 질문
- 자신에게 치우친 것은 무엇인가? 치우치지 않은 기도는 무엇인가?
-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에 침묵하시는 것 같은 때는 언제인가?
▷ 임정현 형제님
애초에 내가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기에 기도합니다. 예를 들어서 배우자 기도 같은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과 하나님의 뜻이 합당해야 들어주실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입장 바꿔서 생각하면 사람의 생각으로는 침묵 속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하다면 주시거나 지금 당장이 아니라도 나중에 보면 더
좋은 것을 주실 테니까 시간을 더 두고 봐야 할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공예배 기도 순서에 대해서
가장 와 닿았습니다.
▷ 엄상준 형제님
말씀 들으면서 내 기도 중에 하나라도 올라갔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치우치지 않은 기도를 안한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치우치지 않은 기도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여름에 제일 좋은 로펌에 서류 통과하고 최종까지
가면서 1차 취업 기회를 얻었을 때 엄청나게 기도를 했었습니다. 사람이 뭘 바라거나 큰일이 생겼을 때 기도를 많이 하게
되는데 미사여구를 많이 넣어서 붙여주세요 라고 기도하였는데 결국 떨어졌습니다. 떨어진 다음에는 기도가 잘
안되었습니다. 이번 겨울에 2차로 기회가 생겼을 때에도 공동체 얘기도 하고 주위 사람들 얘기도 하면서 기도를 했지만
결국 붙여달라는 얘기였는데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마음을 바꿔 먹고 결과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맞게 주시고
저는 무조건 거기에 따르겠습니다 라고 기도 드리는데, 그것이 맞다는 것은 알지만 진심으로 잘 안 나오고 진심일 때는
일주일에 한두번 정말로 은혜 받았을 때 뿐입니다. 한마디로 치우치지 않은 기도를 못 해봤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치우치지 않은 기도를 하려고 하고 있고 제 생각에는 치우치지 않은 기도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계획대로 무조건
따른겠다는 것인데 그것이 사실 어렵습니다.
▷ 강원희 형제님
저도 나름대로 기도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저는 교회 다니기 전부터 특별히 운이 좋은 편이 아니어서 어떤 횡재를
기대하는 편이 아닙니다. 그냥 무난하게 노력한 만큼 왔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교회 와서도 결과를 가지고 어떻게
해달라고 하기 보다는 과정에 있어서 끝까지 노력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공인중개사 공부할 때도
마지막에는 불안한 마음에 붙여달라고 기도는 한적은 있지만, 평소에는 결론이 붙여달라고 하기보다는 손 안 놓고
열심히 공부할 수 있도록 끌어당기고 밀어주시길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결과에 대해 어떻게 해달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은 예전에 했던 자동차 공업사 일을 하고 있지만, 공인중개사로서 취직에 좋은 기회가 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쉽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고, 자꾸 뭐를 달라는 식의 기도는 되도록 안 하려고
합니다. 진로에 대해서 고민이 되고 잡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 김철주 형제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제가 치우쳐 있는 부분은 아직도 제가 세상일에 대해서 우선을 두고 있다는 것인 것 같습니다.
제가 한 주 동안의 생활을 돌아보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쌓는데 쓰기보다는 개인적인 일이나 업무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큐티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시간을 딱 놓쳐버리면 빼먹기 일쑤입니다.
그리고 요즘은 모든 일을 결혼하고 연관시키는 것이 치우친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회식 자리에서 오랜만에 뵌 팀장님께
인사를 드렸는데 나를 좀 꺼려한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한참 동안 결혼 언제 하냐는 설교를 들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관심의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안 좋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나의 자격지심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그런 것들에 대해서 좀 내려놓고 그런 생각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 천대근 목자님
저는 요즘 진짜 교회 와서 기도가 안 되는 것이 최고인 것 같습니다. 기도하려고 하면 왠지 기도의 내용이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으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목사님 말씀대로 남 탓, 환경 탓하지 말고 내 문제를 보는 기도를 하려고
하면 그 동안 힘든 과정을 거쳐왔는데도 아직까지 나만 힘들어야 하는 기도를 해야 하나는 갈등도 많아서 기도가 잘
안됩니다. 그러다 보니 목원들을 위한 중보기도도 소홀하게 됩니다. 직장에서 그 동안은 내 힘으로 할 수 없다는 고백이
나올 정도로 하나님께 전적으로 매달리는 형국이었는데, 지금은 업무가 익숙해지고 내 힘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럼에도 생기는 스트레스와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매달리지 않아서 기도가 잘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직장에서도 요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이 복지계에는 운동권 출신들이 많아서 정치적 이슈에 대해서 급진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보니 저는 거의 왕따입니다. 그 분들도 치우쳐져 있고 그 분들이 보기에는 나도 치우쳐져 있다고
생각할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들의 가치관에 대한 열정이 저의 예수님에 대한 열정에 비해 부족한 것 같아서
자괴감도 듭니다. 이번에 에스겔과 요한계시록 말씀을 보면서 내 안의 말씀을 거부하는 힘을 느꼈습니다.
<기도 제목>
1. 김민철 형제님
- 홍콩 여행 잘 다녀올 수 있도록
2. 박승호 형제님
- 신교제 잘 할 수 있도록
3. 조철우 형제님
- 어머니과 철우형이 건강할 수 있도록
4. 임정현 형제님
- 모든 만남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도록
- 동생 유학생활 잘 할 수 있도록
- 가족 건강
5. 김철주 형제님
- 신교제, 신결혼
- 새해에 업무 가운데 주님 인도 잘 받을 수 있도록
- 가족의 마음을 열 수 있도록
6. 강원희 형제님
- 부모님께서 교회에 올 수 있도록
7. 엄상준 형제님
- 부모님 전도할 수 있도록
- 여자친구와 관계 회복할 수 있도록
- 로펌에 취직될 수 있도록
8. 천대근 형제님
- 연말 평가 업무 잘 처리할 수 있도록
- 신교제 할 수 있도록
- 치우치지 않는 기도를 성실히 할 수 있도록
9. 이계휘 형제님
-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 잘 마무리 할 수 있도록
- 체력 관리 잘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