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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 주일]
< 구원받은 사람들 > -계7:9~17
소아마비 백신을 발견한 조나스 설크(Jonas Salk)와 피뢰침을 발명한 벤자민 플랭크린(Benjamin Franklin)은 인류를 위해 특허를 내지 않고 누구나 쓸 수 있게 했다. 이처럼 복음도 죽은자를 살리는 특허와 같은데 주님이 특허를 내지 않으시고 누구나 쓸수 있도록 하셨다. 죄로 죽어가는 우리를 영생으로 살려내주신 받은바 은혜가 커 구원받은 사람은 앉으나 서나 구원을 외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럼 구원받은 사람의 특징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1. 구원찬송을 할 수 밖에 없다.
9~10) 6번째 인이 끝난 후, 사람들이 바위틈에 숨어 무서움에 떨때에 중간계시인 144,000에 대해 알려주시며, 구원하심이 어린 양 앞에 있다 하셨다. 바위틈에 숨어 무서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과 어린 양의 진노 앞에 선 사람들이 흰 옷(제사장들 입는 옷,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을 입고 종려나무(승리를 상징)를 든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여주시며 정답을 알려주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인 날이 내 생일보다 더 중요하다. 각자 아름다운 왕따가 되어 하나님보다 더 좋은건 없다는 것을 알리고 가야한다. 세상에서 자기 가증보고, 십자가 지고, 십자가 보고 사는 것이다. 흰 옷입고 승리의 종려나무 들고 승리의 깃발을 들고 가길 바란다.
이렇게 진정한 구원을 외치면,
2. 화답찬송이 오게 되어 있다.
11~12) 예수 믿는 우리는 하나님을 부르고 가는게 천국인다. 하나님 자체가 상급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 자체만이 찬양의 대상이다. 하나님만 부르는자는 이미 천국을 살고 있는 것이다. 내 구원이 진짜라면 내 옆에 있는 사람들도 저절로 화답할 수 밖에 없다. 무엇을 하든지, 받든지 하나님때문이어야 한다. 바른 소리를 해도 방법이 올바라야 하고, 기다려줘야 하고, 화가나면 아직 때가 아니구나 알고 물러날 줄 도 알아야 상대가 진정성을 느끼게 된다. 우리의 구원의 외침도 살리고자 하는 것이지 죽이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비판도 살리고자 하는 것이지 죽이고자 하는 것 아니다. 상대가 내 구원이 찬송에 화답 찬송할 수 밖에 없는 언어와 태도를 쓰길 바란다.
3. 큰 환난에서 나온자이다.
13~14) 성경에 나오는 구원받은 사람은 큰 환난에서 나온 사람들이다. 세상사람들이 보기엔 내가 환난속에 있지만, 난 자존심을 내려놓는 구체적인 적용을 통해 환난중에서 나오는 것이 구원받은 사람이다.
구체적 적용을 하면,
4. 하나님이 장막을 치신다 (공동체의기쁨을 알게 하신다)
15) 밤낮 하나님을 섬기며 장막을 치니 공동체의 도움으로 살아나게 된다. 말씀이 왕노릇하는 공동체에 있다보면, 환경이 하나도 안변해도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성숙해지면 내 안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기쁨을 느끼게 하시는데, 공동체를 허락하심으로 알 수 있다. 진짜 회개를 해야 나의 가증함을 보게되고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장막을 쳐 주신다. 구원받은 자도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에 실수 하고 죄를 짓는다.
그럼에도 구원받은 자에게는,
5. 하나님의 위로가 있다.
16~17) 성경은 우리가 누릴 영광ㅇ을 십자가의 고난보다 크게 얘기하지 않는다. 고난과 십자가, 지옥 얘기를 더 많이 하셨다. 나중에 누리게 될 영광을 지금부터 알 필요는 없다. 진짜 구원받은 부모도 자녀에게 허풍떨지 않고 사실만을 얘기해준다. 하나님의 위로와 사람의 위로는 비교 할 수 없다. 사람들도 판에 박힌 위로 싫어한다. 대책도 없이 아무 생각없이 서로 위로하는 말은 서로를 파괴시킬 뿐이다. 고난이 계속 오겠지만, 말씀대로 적용하고 가는 수 밖에 없다. 비통한 현실을 더 철저히 인식하고 인정하고 가면 어떤한 죄의 결과에서도 잘 싸우고 갈 수 있다. 좌절하지 않게 된다. 복음은 장차 받을 환난인데,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게 이상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회복사역을 허락하셨다. 넘어졌다 일어나는 기쁨을 통해 이 기쁨이 계속되는 천국이 있겠구나 깨닫게 하신다. 영광과 존귀가 하나님께 있다고 고백한 사람은 이미 천국이 임한 것이다. 우린ㄴ 나그네 인생임을 계속적으로 인정하고 가치과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걸어가기 때문에 힘들 것이라는 것 인정하고 가면 된다. 근데 이런게 힘들다고 빨리 찬국가고 싶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 고통 끊고 싶어서 가는 곳이 천국이 아니다. 비통한 현실을 인정하고 가는 것이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가는 것이다. 별 인생 없으니 그저 감사하며 살고, 하나님이 씻겨주실 눈물이 있는 인생을 살기를 바란다. 나의 가증과 죄책감을 보는 것은 다르다. 큰 구원에서 나온 사람만이 섬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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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반만의 목#8228;보계로의 컴백......그동안 급한일이 많아서 중요한 일을 하지 못하고 있었어요...죄송~ 흠....왠지 처음 목보 쓰던 때가 생각나내요...아~ 감을 잃은 것 같기도 하고.....ㅋ^^;;
이번주 저희 여섯처녀들은 나눔을 위해 든든히 배를 채우고, 2차로 Droptop으로 향했습니다.(윤희는 일이 있어서 얼굴만 잠깐 보고 함께 하지 못했어요...이윤희!! 너......그럴꺼야? 응?응? ㅋㅋ) 저~~~~번에 조인했던 박민욱목장 식구님들도 드롭탑에서 잠깐 해후를 했지요......아무튼 저희는 여전한 방식으로 말씀요약과 나눔을......다른 목장 다 끝나갈 시간에 시작했답니다.^^
채연숙:
지난 주 면접에 합격을 하고, 금요일날 사전교육을 받으러 다녀왔다. 전화예약 관련 일이라 스피치교육을 받았는데, 조리있게 말 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이일이 싫었지만, 교육을 받으면서 괜찮은 일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동안 내가 전공한 일과 전혀 상관없는 일을 종종 하다보니 다른 사람들이 물어보면 대답하기가 곤란했었다. 근데, 오늘 말씀 들으며 잘 대답하면 되는데 괜한 부담감을 가졌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 일하게 된 곳이 근무조건이나 복리후생쪽은 좋은 편인데, 출근시간이 일러서 이사가기로 했던 문제와 겹치며 고민이 되는 부분이 있다.
말씀 중에 비판하는 것도 살리고자 하는 것이지, 죽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생각해보니 그동안 난 상대가 미워서 비판했지 살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한게 아니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일하게 된 곳에서도 당연히 고난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잘 대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여기가 마지막 직장이라면 그동안 힘들었던 과정이 필요한 과정이 아니었나 싶다.
→ 목자: 직장된 것 잘 된 것 같긴 한데(취업한 게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이번에는 잘 적응해서 다음번에 일대일양육 받게 되면 좋겠다. 아직 자기생각이 너무 강해서 아닌건 아니다 인게 있다. 육적인 문제(예를 들면, 취업)에는 안달복달 하며 바로바로 해결하려 애쓰지만, 영적인 문제는 육적인 것보다 덜 안달복달 하지 않나 싶다. 내 생각과 경험으로 지금의 회사가 시스템은 잘 되어 있다 느끼지만 하나님보다 시스템에 더 의지하는 건 아닌지 돌아봤으면 좋겠다.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지금까지 잘하고 있고, 직장도 하나님께서 필요해서 주셨을 것이지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가길 바란다.
김기혜:
고난이 있다없다 하다보니, 앉으나 서나 구원을 외치지 못한다. 그렇기에 주변인들에게서 화답송을 듣지 못하는 것 같다. 믿지않는 친척들이나, 고난중에 있는 친구에게 예수 믿으라고 하기가 차마 입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상대의 반응이 두렵기 때문이다. 아직 사람들의 반응과 기분에 비유 맞추려 함과, 나를 이상하게 볼까 두려운 마음과, 수치스런 소리 듣기 싫은게 있음을 인정한다. 말씀에 아름다운 왕따가 되라 하셨는데, 왕따되기 두렵다.
지난 토요일 큐티를 보니 지금 내 현재상태인 것 같아 찔림이 많았다. 정말 나에겐 ‘간절함’이 없다. 어릴 적 충분한 부모님의 사랑과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하다보니,,,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잘 주는 법인데 사랑을 잘 주고 받지 못하고 어색하다. 그리고 워낙 혼자 지내온 시간이 많다보니 되도록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던 습관 때문에 누군가에게 의지하거나 도움을 잘 청하지도 못한다. 근데 중요한건 이런 나의 습성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나를 너무 사랑하시는 건 알겠는데, 나는 하나님께 그만한 사랑을 드리지 못하고 ‘전적의존’하지 못한다. 지금의 난 하나님과 친하지 않다. 아빠의 고난도 오래되다보니 고난에 무감각 해져감을 느낀다. 아빠에 대한 애통함이 없다. 간절한 기도가 나오지 않는다. 직장도 이번달이면 상사가 그만두는데 아직 후임자가 정해지지 않아 사무실에 혼자 있게 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럴때면 문득문득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회사에 있는게 맞는 것 같은데 뒤숭숭하고, 애매한 상황에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들며 갈등된다. 그렇지만 그만둔다고 해서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있지는 않다. 예전에는 하고 싶은 일이 많았는데, 현실적으로 이루기 어려운 일이라 하지 못하게 되다보니, 그 후론 삶의 의욕을 많이 잃어버린 것 같다. 사는게 기쁘고 즐거운 사명을 찾고 싶다.
→ 목자: 개인 경건시간은 어떤지? / 큐티는 하고 있는데, 기도는 잘 안된다.
우리는 하나님을 너무 하나님(옥황상제 내지는 직장상사, 교수님의 느낌)으로만 본다. ‘예를 들면, 내가 연애를 하고 있는데, 상대가 유명인이라 그와 관련된 자서전이며 책이며 모임 등등이 굉장히 많이 있다 하자. 그래서 그를 좋아하니까 그와 관련된 책도 사서 읽고, 모임도 다 참여하고 그런다. 근데 정작 그 사람과는 대화가 없다. 그 사람의 입장에선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네가 기도하지 않는다는 건 이런 모습과 같다고 생각한다. 직장문제도 네가 그곳에 평생 있을 건 아니기 때문에 집 근처라든지, 교회 주변지역에서 잘 찾아봤으면 좋겠다.
양혜주:
일대일양육교사과정이 드디어 끝났다. (짝짝짝~!!)
양육을 받으며 전도하고 싶은 친구가 생겼다. 그 친구도 지금 힘든 고난중에 있는데, 우리들교회에 데려오고 싶다. 예전에는 내 믿음 챙기며 나만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양육 통해 하나님이 친구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고, 그 친구를 전도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신 것에 감사하게 됐다. 양육시작하기 전에, 12주 양육을 받으면 세상을 구원할만한 큰 사명을 주실 줄 알았다. 근데 막상 끝나고 나니 내가 할 수 있는 가족, 지체, 친구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을 주셨다. 엄청나게 큰 육적소명을 주실 줄 알았지만, 하나님은 나에게 청지기적 삶을 요구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전 내 삶을 돌아보면, 내 죄 보고, 오직예수라고 말 할 수 있는게 쉽지 않음을 알았다. 그래도 내가 세상 유혹에 흔들릴때에 나를 잡아줄 수 있는 공동체가 있음에 감사하게 됐다. 양육하면서 보니 역기능 가정에서 자랐기에 내 죄를 볼 수 있었고, 자존심만 쎄고, 자존감은 낮은 내 모습을 보게 됐다.
→ 목자: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매일매일 말씀보고 가라. 일단 나 자신과 내 주변의 구원에 대해 신경쓰길 바란다. 말씀에 좀 더 욕심냈으면 좋겠다. 달라진 너를 기이히 여기는 세상 친구들을 전도해야 하는 사명이 있지만, 갈 모임 안 갈 모임을 잘 분별해 최소한의 순종(주일,수요,목장 시간 지켜 사수하기, 매일큐티)을 지켜 행하길 바란다. 최소한의 순종에 기름을 부으신다 했다.
오지혜:
(지혜는 지지지난주에 새로 등반한 자매입니다. 81또래구요, 국악을 전공하는 박사과정 중에 있는 재원이지요, 지금 애석하게도 남친은 있구요,,,,모태신앙이고, 우리들교회 온지는 일년 조금 넘었답니다. 몇 년 전에 미국 유학을 갔다가 귀국하게 되었고, 말씀은 좋았지만 등록하기를 주저하고 있었는데 엄마의 소원으로 얼마전에 우리들교회에 등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난 주 학교에서 학술대회가 있었다.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힘든 것 많았지만, 참고 일했다. 내 안에 있는 억울함과 생색을 말하기 싫었다. 속으론 싫었지만, 겉으로 쿨한척 했다. 일을 하다보면 항상 끝맺음이 잘 안된다. 일하면서 힘든 것은 당시엔 그냥 넘겨버리고, 나중에 친구 만나서 놀며 보상받는 것 같다. 사람들과 왈가왈부하기 싫다. 나에게 있어서 중요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얻을 영화가 없다는 생각이 드니 더 그러는 것 같다.
요즘은 말씀이 사모가 안된다. 은혜를 받긴 하지만, 보여지는 은혜받은 척 하는 건 싫다. 이번 수련회도 전체 참석 한다고 동그라미는 쳐놨지만 재미없으면 어쩌나, 내가 이번에도 은혜받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망설여진다.
행위로 환심을 사서 사람을 전도하고 싶진 않다. 전도하기 위해 인간적 열심냈던 행위들을 다시하긴 겁이 난다. 내가 전도한다고 해도 사람마다 다 때가 있는 건데 내가 한다고 되겠나 싶지만, 한편으로는 전도하지 않는 것에 대해 죄책감도 든다.
말씀에 내 구원이 진짜면 비통한 삶을 인정하고 가는 것이라 하셨는데, 난 비통한 삶이 인정이 안되고 나를 비통하게 대하는 사람에겐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속으론 ‘그래, 알았어. 넌 내 인생에서 out이야!’를 외친다. 나를 비통하게 한 사람에게 건재한 모습으로 남고 싶은 마음이 있다. 때로는 내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오해를 푸는 정당한 말도 하기가 싫을 때가 있다. 예전에 사기를 당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그 사람에게 이렇다 저렇다 말을 안하고 그냥 '그래 난 믿는 사람이야. 내가 하나님께 받은 복이 뭐가 있지' 생각하며 ‘그래 난 받은 복이 있으니까 그냥 퉁쳐줄께!’ 하며 상대를 용서한 적이 있다. 내가 그 문제에 대해 신경쓰기 싫어서 그런 것도 있고, 기분 나쁜일을 당하면 내가 받은 복을 생각하며 용서하면 편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힘든일이 있으면 잊고 싶어서 재미있는 일을 찾아 나가는 것 같다.
→ 목자: 지혜는 자존심은 쎄고, 진정한 자존감이 없는 것 같다. 건강한 자존감이 없어서 힘든일을 직면하기 싫어한다. ‘그렇게 하는 게 편해’하면서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 마치 이게 진짜 편한 것처럼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며 직면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아픈 정도가 다르고, 체력상태가 달라서 그렇지 다 환자다. 예를 들어, 암 걸린 사람한테 적절한 치료는 안하고, 링거주사랑 진통제만 놓고, 비타민만 먹이면 이게 암환자한테 도움이 되겠나? 효과적인 암 치료의 시작은 환자 본인이 암에 걸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한다. 자기 암에 대해 알고, 적극적으로 치료하고, 의사말에 순종하는게 병을 낫게 하는 것이지, 근본적인 수술과 치료가 없는 상태에서 홍삼 먹고, 산삼 먹는다고 도움이 되겠나? 지혜가 반드시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찌 보면 영적인 암에 걸려있을 수 있다. 건강한 사람은 몸에 아무 불편함이 없고, 몸이 자유하고, 가뿐하다. 이처럼 진정한 자존감이 있는 사람은 ‘너 나한테 그랬어? 어~그래, 너 out이야!’라고 하지 않는다. 오해가 생겼을 때 이건 이래서 이렇고, 저건 저래서 그렇다 라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문제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이 아니라, 진정한 치료를 받지 못한 너의 영적인 병과 아픔 때문에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힘든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수련회도 어떤 재미나 아니면 은혜 받아서 성령으로 짠!하고 변화되는 것들을 생각하지 말아라. 한번에 바뀔려고 욕심내지 말고, 수련회를 통해 그냥 너의 환부를 드러낸다고 생각해라. 너의 학습된 무기력과, 받은 복을 생각한다는 ‘나는 선하다’라고 여기게 하는 가치관에 속지 말고, 솔직해져라. 솔직해진다는 것의 의미는 너의 희노애락을 건강하게 표현하라는 뜻이다. 힘든 순간을 모면하고 회피하는 것이 어디서 출발하게 됐는지 살펴보길 바란다.
김현아C:
난 스스로의 율법에 나를 좀 가둬뒀던것 같다. 이제는 큰 테두리 안에서의 원칙은 지켜가되 자유롭게 하고자 한다. 우상만큼 더럽다고 하셨는데 나도 내 수준에서의 우상이 있다. 성공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오직 예수가 안된다. 하나님 자체가 상급이 된다는 것 아직은 잘 모르겠다. 수련회때 성령에 불타는 순간이나, 성령 충만하여 아주 거룩할 때 빼고는....... 말씀 들으며 나도 환난에서 나오는 적용하고 있는가 생각해 보았다. 큐티인 작업을 하면서 적용에 신경쓰지 못했던 것 있다. 육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책이 나와서 조금 한가해진 틈을 타 지난주에 집에 내려갔다 왔다. 작은언니와의 돈 문제, 신용카드로 인한 아빠의 오해와 분노 사건 때문에 아직 서운한 감정이 남아있는 상태였지만, 그래도 마주하게된 작은언니를 (서운한게 남아 있지만) 아무렇지 않게 대했다. 처음엔 그냥 시큰둥한 것 같았는데, 언니도 나중엔 아무렇지 않게 대해줬다. 먹고 싶은 게 뭐냐고 물으며 사주겠다는 말도 해주고 그럭저럭 잘 지냈다. 근데, 아빠에게는 살갑게 대하지 못하고 올라온게 마음에 걸린다. 아빠랑 떨어져 살아서 그렇지, 아직도 마음 밑바닥에 해결 안된 게 있나보다.
가족들이나 사람들이 나를 볼 때는 교회 열심히 다니고 일 열심히 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나도 내 안에 나름의 가증함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하나님을 대변할 수 있게 해주신다. 씻겨주실 눈물이 있어야 한다는데, 요즘 종종 흘리는 눈물은 회개의 눈물보다는 원통함의 눈물이 많다.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 있다. 말씀 하나 붙들고 나름 십자가 지고 가는데, 이도저도 안되면 하나님, 정말 책임져 주실꺼예요? 하는 마음이 있음을 고백한다. 그래도 공동체가 있어서 이렇게 솔직하게 나누고 갈 수 있음에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장수정:
이번 말씀으로 위로 많이 받았다. 그동안 목장에서 나눔을 하며 자존감이 많이 회복됐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들의 나눔을 들어보니 다 똑같구나 하는 위로감이 온다. 예전에는 안되는, 못하는 나 스스로를 정죄했었다. 이제는 나를 직면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에 통기타모임에서 만난 언니들과 얼마 전에 모임을 갖고 얘기하다보니 요즘 내 고민을 말하게 되었는데, 우리들 공동체같은 피드백이 안되는 곳에서, 해놓고 금방 후회가 드는 이야기까지 하게 되는 나를 보니 내가 얼마나 외로웠으면 그랬을까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내가 그들에게 얼마나 관심을 갖고 만나는지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과의 관계성에 대한 회의감과 앞으로의 관계성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며칠 전, 엄마가 돌아가신 꿈을 꾸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 엄마가 살아계심에 절로 감사가 나온다. 이혼하지 않고 아빠랑 살아주신 것, 소소한 것에 즐거워하시는 것이 예뻐보이고, 우울증 없이 씩씩하게 살아주신 것 등등 모든 것에 다 감사하는 마음이 생겨서 전화로 표현도 했다. 엄마는 내려와서 같이 살자는 말씀도 하시는데, 막상 내려가서 살다보면 엄마랑 싸울 것이 예상되지만, 그래도 지금은 다 감사하다.
[기도제목]
채연숙
* 생활예배 잘 드리도록
* 지각하지 않고 사람들한테 먼저 다가갈 수 있도록
* 하나님을 의지하며 내 의를 내려놓을 수 있도록
김기혜
* 개인 기도시간의 회복을 위해
* 환난에서 나오는 구체적 적용이 생각날 수 있도록
* 아빠의 구원을 향한 애통한 마음을 주시도록
김현아C
* 건강의 회복을 위해
* 재정을 채워주시도록, 금전훈련 잘 받도록
* 가족의 구원을 위해
장수정
* 개인예배 훈련을 잘 받을 수 있도록
이윤희
* 25일 주일에 이종사촌 예배시간에 맞춰 교회 올 수 있도록
양혜주
* 생활예배 잘 드릴 수 있도록
* 연말이라고 들뜨지 않고 술자리 가지 않도록
* 하나님께 묻고 행동할 수 있도록
* 주야로 기도할 수 있도록
오지혜
* 공동체에 잘 속하고 공예배 열심히 참석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