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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25.(주일) 오바댜 1:10-16 「형제의 날」 이성훈F 목사님
10 네가 네 형제 야곱에게 행한 포학으로 말미암아 부끄러움을 당하고 영원히 멸절되리라
11 네가 멀리 섰던 날 곧 이방인이 그의 재물을 빼앗아 가며 외국인이 그의 성문에 들어가서 예루살렘을 얻기 위하여 제비 뽑던 날에 너도 그들 중 한 사람 같았느니라
12 네가 형제의 날 곧 그 재앙의 날에 방관할 것이 아니며 유다 자손이 패망하는 날에 기뻐할
것이 아니며 그 고난의 날에 네가 입을 크게 벌릴 것이 아니며
13 내 백성이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성문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고난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재물에 손을 대지 않을 것
이며
14 네거리에 서서 그 도망하는 자를 막지 않을 것이며 고난의 날에 그 남은 자를 원수에게 넘기지 않을 것이니라
15 여호와께서 만국을 벌할 날이 가까웠나니 네가 행한 대로 너도 받을 것인즉 네가 행한 것이 네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16 너희가 내 성산에서 마신 것 같이 만국인이 항상 마시리니 곧 마시고 삼켜서 본래 없던 것 같이 되리라
형제의 날에 할 고백 첫째는,
1. 나도 ‘원 오브 뎀(one of them)’입니다(10-11절)
10 네가 네 형제 야곱에게 행한 포학으로 말미암아 부끄러움을 당하고 영원히 멸절되리라_옵 1:10
하나님이 에돔의 죄를 한 단어로 지금 알려 주십니다. ‘포학.’ 그런데 여러분 이상하지 않으신가요? 우리가 읽었지만 11절부터 14절까지 에돔이 처음 한 일은요, 잔인한 폭행이 아니에요. 그냥 멀리 지금 서서 구경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기뻐하고, 그러다가 말로 하고, 그러다가 재물에 손대고, 그리고 들어가서 이제 도망치는 형제를 막아서는 것, 그리고 넘기는 것 뭐 그 정도인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직접 칼만 안 들면 괜찮은 걸까요? 안 괜찮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걸 다 묶어서 ‘포학’이라고 말씀하시는거예요. 노아 때 홍수가 온 이유가 뭐였죠?
“포악함이 그 땅에 가득한지라”(창 6:11).
원문으로 보면 이 ‘포학’이나 창세기에 있는 ‘포악함’이나 같은 단어입니다. 형제가 당하는 재앙을 멀리 서서 구경하는 것, 그것 자체가 홍수 때 그 죄라는 말씀이죠. 그리고 그 포학이 향한 곳은 형제예요. 그래서 이게 더 잔인한 겁니다. 어려울 때 남이 안 온 건 그냥 서운한 일이죠. 그런데 내 형제가 오지 않은 것, 멀리 서서 구경한 것은 정말 당하는 사람에게는 포학한 일, 잔인한 일인 거예요.
11 네가 멀리 섰던 날 곧 이방인이 그의 재물을 빼앗아 가며 외국인이 그의 성문에 들어가서 예루살렘을 얻기 위하여 제비 뽑던 날에 너도 그들 중 한 사람 같았느니라_옵 1:11
그날, 이 에돔은 어디 있었나요? “네가 멀리 섰던 날” 멀리 섰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여기 “멀리”는 안 보이는 곳이 아니에요. 문자적으로는 바로 맞은편을 뜻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던 그날, 에돔은 그 맞은편에서 지금 불구경하고 있었단 말이죠. 11절 끝에 뭐라고 하십니까? “너도 그들 중 한 사람 같았느니라.” 너도 그들 중 한 사람 같았느니라. ‘원 오브 뎀’이라는 말이에요. 그런데 이 ‘뎀(them, 그들)’이 누구예요? 그들이 누구입니까? 예루살렘 성문에 들어가서 불태우고 부수고 빼앗고 또 제비 뽑던 그 바벨론 사람들, 잔인한 이방인, 잔인한 정복자예요. 에돔한테도 사실 할 말은 있죠. “아, 그거 바벨론이 한 일이잖아요. 저희는 그냥 구경만 했다고요. 저희가 한 일이 아니에요. 저희는 그럴 힘도 없어요.” 그런데 여러분, 바로 이게 우리 변명 아닙니까? “아이고, 내가 한 일도 아닌데 왜 그러세요? 아휴, 저도 제 코가 석 자예요. 저도 바쁘다고요. 제가 한 거 아니에요.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거를 제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내 가족과 지체와 이웃의 그 재앙을 보면서 우리가 그렇게 얘기를 한단 말이죠.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에돔에게도, 또 우리에게도 “너도”라고 하십니다. “너도 원 오브 뎀이다. 너도 그들 중 하나다.” 에돔이 아무것도 안 했나요? 아니에요. 서 있었어요. 어디요? ‘맞은편’에 서 있었던 거예요. 물리적인 거리로는 바로 맞은편이지만, 심리적으로는, 조금 어려운 말로는 실존적으로는 너무 멀리 서 있었던 거예요. 남의 일로 여기고 ‘저 사람 당해도 싸다’고 여기면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서 있는 그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했느냐만 보시지 않아요.‘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어디에 서 있었는가?’ 하나님께서는 그것도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목장에서, 교회에서 한 지체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사업이 기울고, 자녀들이 사고를 치고, 부부가 갈등을 겪고 있고 그런 소식을 들으면 “아, 그 집 어떻게 됐대?” 이렇게 자세히는 물어요. 그런데 정작 그분께 직접 연락하고, 그분께 직접 가서 보살피는 일은 우리가 사실 잘 안됩니다. 저절로 되는 일이 아니에요. 주일에 예배당에서 마주쳐도 그냥 눈인사만 하고 지나칠 때가 너무 많지 않습니까? 멀리 서 있는 게 사실 우리에게는 훨씬 더 편한 일인 거예요. 그런데 이 일이 당한 사람 쪽에서는 이렇게 보입니다. 시편 38편 11절입니다. [시38:11] 내가 사랑하는 자와 내 친구들이 내 상처를 멀리하고 내 친척들도 멀리 섰나이다나는 그냥 멀리 서 있을 뿐인데, 거리 두기를 하고 있었을 뿐인데 그 형제는 거기서 혼자였던 것이죠. 지난주 목장에서도 형제를 외면했던 자기 마음을 고백한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계실 때 ‘간다, 간다’ 이 마음은 간절했지만, 한두 번밖에 못 가뵙고 아버지를 보내드린 분, 또 친구가 암으로 투병한다는 소식을 듣고도 내 형편이 안 돼서 가보지 못했다는 분. 여러분, 이것이 다 우리 모습인 거예요. 우리 형편인 거예요. 오늘 형제의 날에 맞은편에 서 있는 에돔이 바로 저와 여러분입니다. 저는 이 ‘원 오브 뎀’을 인정하는 것이 사실 너무 힘들어요.
이번 목세에서도 저도, 이제 ‘치리 콘서트’라는 게 있거든요. 치리 콘서트에 제가 앉았습니다. 부모님께 혼난 적도 없는 제가 무려 교회에서 ‘치리’ 상상도 못하던 이 단어인 치리를 제가 받고, 그 자리에 그런 다른 치리받은 분들과 같이 앉아 있는 거. 제가 이렇게 생각을 하면요, 정말 기가 막힌 일이에요. 제 인생에서 있을 수가 없는 일이 아닌가. 그래서 제 나눔은 거의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아우, 저는 저분들과 다릅니다. 저는 저분들과 달라요. 제가 받은 치리는 제가 잘못해서 받은 게 아니라고요. 저는 그냥 책임자였기 때문에 책임자로서 받은 거예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말은 그럴듯하잖아요? 좀 재수 없긴 하지만. 그런데 생각을 해보면 책임자인데 책임 없대요. 책임자인데 내 책임 아니래요. 여러분, 이거 바보가 하는 말이잖아요. 완전히 바보인 거예요, 바보.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제가 진짜 얼마나 바보 같은 사람인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같이 앉아 있으면서도 마음으로는 거리를 멀리 두고 있는 것이죠. “나는 저들과 다르다. 나는 저들과 다르다.” 바로 이때 목사님께서 이제 저를 두고 하신 한마디가 저의 정신을 번쩍 들게 했습니다. “저 사람도 치리받았으니까 저기 앉아 있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여기는 자격이 안 돼서 못 와요.” 제가 성대모사를 조금 더 잘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여러분, 그제야 제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나도 치리 대학교 동창이구나. 내 치리 동창이구나. 내가 그걸, 아 그러네. 치리를 받아, 치리가 자격이 되니까, 치리 자격증을 받았으니까 지금 내가 여기서 목세를 섬기고 있지. 내가 무슨 자격으로 목사님들 앞에서 이렇게 말씀을 나누겠나.’ 그제야 지금 제가 생각이 되더라고요. 오늘 11절이 그래서 바로 다른 사람이 아니라, 정말 설교 준비하면서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더라고요. “너도 그들 중 한 사람 같았느니라, 너도 그들 중 한 사람 같았느니라. 너도 그들 중 한 사람 같았느니라.”그래서 오늘 저부터 하나님 앞에 고백합니다. “하나님, 저도 원 오브 뎀입니다. 저도 원 오브 뎀입니다.”
진짜 우리가 다 무시되는 사람이 있잖아요? 너무 싫은 사람이 있잖아요. 마음속으로 다 있으시죠? 얼굴 한번 떠올려 보세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너도 그들과 하나야. 너도 그들과 같아”라고 하면 너무 싫잖아요, 그죠? 그런데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에요. “너도 원 오브 뎀이다. 너도 그들 중 하나다.” 이 고백을 같이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 적용 질문
Q. 최근 가족이나 목장 식구의 어려움을 알고도 모른 체한 일은 무엇입니까?
Q. 그 사람 곁에 가면 내가 무엇을 손해 볼 것 같았습니까?
Q. 나는 누구와 같은 죄인이라고 인정하기가 가장 싫습니까? 내가 ‘원 오브 뎀’이 되기 제일 싫어한 사람 누구예요?
두번째는
2. 그래도 내 형제입니다(12-14절)
12 네가 형제의 날 곧 그 재앙의 날에 방관할 것이 아니며 유다 자손이 패망하는 날에 기뻐할 것이 아니며 그 고난의 날에 네가 입을 크게 벌릴 것이 아니며_옵 1:12
형제의 날은 잔칫날이 아니에요. 재앙의 날입니다. “그날 방관할 것이 아니며” 하세요. 그런데 여러분, 여기 나오는 이 “방관”은 그냥 구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쳐다보는 게 아니에요. 쳐다보면서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아이고, 고소해라. 쌤통이다. 아이고 쟤네 저럴 줄 알았다. 내가 저럴 줄 알았다.’ 다 그러신 적 있으시죠? 그렇게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게 지금 여기 이 “방관”인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그다음에 뭐라고 하십니까?
“기뻐할 것이 아니며.” 쳐다보다가 기뻐하게 된다는 것이죠, 속으로. 그리고 기뻐하다가 뭐 해요? “입을 크게 벌려서” 말을 한다는 거예요. “내나 저럴 줄 알았다. 내 저럴 줄 알았어.” 이렇게 얘기를 한다는 거예요. 딱 그 장면이 생각나시죠? 형제가 어려움을 당하고 환난을 당하고 있는데 지금 우리가 그런 눈으로 쳐다보고,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되고, 그런 말을 한다는 거예요. 손은 아무것도 안 댔어요. 거리 두기를 하고 있어요. 제가 재앙을 준 게 아닙니다. 그런데 이 마음과 입은 벌써 그쪽으로 향하고 있는 거예요.
13 내 백성이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성문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고난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재물에 손을 대지 않을 것이며_옵 1:13
그런데 이제 발이 성문에 들어가고, 이제 손이 또 재물에 갑니다. 여러분 결국 끝에는 돈이 있는 거예요. 그거 재물 가지려고 지금 때를 보고 기다리다가 발을 들이밀고 결국에 손을 탈취하는 일에 쓰는 겁니다. 형제의 환난 가운데 그냥 내 몫 챙기는 거, 이게 이제 세상에서 지혜라고 하는 것이죠. 제일 무거운 말은 이 13절 맨 앞에 있죠. ‘내 백성.’ 유다는 죄 때문에 지금 하나님의 매를 맞는 중입니다. 우리가 열왕기하에서 지금 계속 보고 있잖아요. 에돔은 이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평생 아주 그냥 역사를 두고서 라이벌이자 원수이자… 출발점은 같지만―쌍둥이 형제였지만―평생 라이벌이잖아요. 경쟁자였잖아요. 서로 침략하기도 하고 침략받기도 하고, 정복하기도 하고 당하기도 하고. 이런 관계의 유다가 이제 진짜 망하게 되었으니 에돔은 이렇게 생각을 했을 거예요. ‘쟤네 저렇게 잘난 척하더니 이제 진짜 저렇게 되는구나. 죄 많이 지어서 저렇잖아.’ 이거 틀린 말 아니에요. 맞아요. 지금 유다는 죄에 대한 심판을 받고 있는 거 맞습니다. 그런데 지금 에돔 사람들이 비난하는 조롱하는 그 ‘쟤네’는 여전히 누구예요? 하나님께서 내 백성이라고 부르는 유다 백성이란 말이죠. 그러니 죄가 드러난 날, 형제가 죄가 드러난 날에도 여전히 그는 내 형제인 거예요. 왜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이라고 불러주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4 네거리에 서서 그 도망하는 자를 막지 않을 것이며 고난의 날에 그 남은 자를 원수에게 넘기지 않을 것이니라_옵 1:14
멀리 섰던 사람이 이제 ‘네거리’ 길목에 섭니다. 목숨 하나 건지려고 달아나는 형제를 그러지 못하게 막아서는 거예요. ★‘방관’은 가담의 반대말이 아니라 가담의 첫 시작이 첫 걸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돌아오려는 사람 앞에서 “네가 그때 어떻게 어땠는지 알아!” 이러면서 우리가 길을 막는 일이 있어요. 교회 나오려고 할 때, 큐티 하려고 할 때, 예배드리려고 할 때, 뭔가 봉사를 해보려고 할 때, 섬기려고 할 때 “야! 야! 야! 네가 지금까지 한 일이 뭐 내가 다 아는데 네가 뭔 자격으로 그런 걸 하려고 그래?” 이렇게 우리가 길을 막고 있는 일, 정말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가족에게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그 사람의 돌아오는 길목을 막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한 영혼이 돌아오는 기쁨보다 내가 힘들고 귀찮고, 손해 보는 게, 더 크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이제 하지 말라가 계속 나오잖아요. “…않을 것이며, …않을 것이며, …않을 것이니라” 하지 말라는 뜻인데 이 말씀을 뒤집으면 뭐 어떻게 됩니까? “방관하지 말라”는 ‘달려가라’, “기뻐하지 말라”는 ‘우는 자들과 함께 울어라’(롬 12:15), “막지 말라”는 ‘길을 열어주라’, “넘기지 말라”는 ‘품어줘라’.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 자리가 형제의 자리인 겁니다. “언니가 선택한 거잖아.” 여러분 이거 틀린 말이에요? 말은 맞는 말이에요. 옳은 말이에요. 그런데 그 옳은 말 하는 동안 그 언니는 혼자였던 것이죠. 여러분 그게 ‘맞은편’이에요, 맞은편. 이제 그 곁에서 다독이겠다는 것. 언니가 이제 와 다시 우리 집에 오면 다독여주겠다는 것, 그것이 바로 형제의 자리입니다. ★맞은편과 형제의 자리 이 두 개가 있는 거예요. 고통 중에 있는 언니, 그래서 무시가 될 수 있는 그 언니가 바로 그래도 내 형제인 겁니다. 형제가 망하는 날 맞은편에 서는 사람은 누구인가요?가 옳다”는 사람이 맞은편에 서는 사람이에요.“내가 옳다”는 사람이죠. “내12절에 ‘망하는 형제’는 유다잖아요. 유다 하니까 목사님 말씀이 또 생각이 나더라고요. “요셉이 아니라 유다다. 요셉이 아니라 유다다.” 참 이 한국 교계의 센세이션을 일으킨 “요셉이 아니라 유다다”. 예수님의 계보에 올라간 건 흠 없는 요셉이 아니라 “그는 나보다 옳도다”라고 고백한 유다입니다. 저는 감히 이 요셉 족속을 대표해서 한번 생각해 봤어요. 목사 집안의 장손으로 또 이 사랑을 아주 그냥 어려서부터 듬뿍 받고 자랐습니다. 채색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어요. 전혀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당연히 내 거다. 말썽 한 번 안 부리고 어딜 가나 그냥 칭찬만 받았습니다. 학벌을 쌓았어요. 저의 어려서부터의 꿈은 ‘위대한 신학자, 위대한 목회자’가 저의 꿈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정도면 요셉 족속을 대표할 자격이 있는 거 아니에요? 제 생각은 그렇다고요. 제 생각은. 이게 이제 요셉 족속이라는 증거예요. “제 생각은 그렇다고요.” 남이 뭐라고 하든 상관이 없어요. 내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게 답인 거예요. 요셉 족속이에요. 이게. 그런데 “요셉이 아니라 유다다”라고 하면 ‘아멘’이 잘 안 나오는 거예요. ‘아멘’이 안 나오는 거예요. “저는 사고도 안 쳤잖아요. 어떻게 저런 유다와 저를 비교를 하시는 거예요?” ‘원 오브 뎀(one of them)’은 진짜로 싫고, 그냥 저만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이 표현하지 않아도 그냥 마음 바탕에 그게 그냥 깔려 있는 것이죠. “요셉이 아니고 유다다.” 이 말씀에 ‘아멘’이 잘 안 나오시는 분들 애석하지만 저와 동족이신 거예요. 그러면 ‘아멘’이 잘 나오시는 분들. “나는 그래도 요셉 족속은 아니지~ 나는 아유 나는 저 저 지경은 아니야~ 난 저 지경은 아니야~” 그러시는 분들 안심하시면 안 됩니다. 사고 좀 쳐봤다고, 죄 좀 지어봤다고, 간증 거리 좀 있다고, 고난 좀 당해봤다고, 저절로 “그는 나보다 옳도다”가 되는 건 또 아니라고요. 아니라고요. 사고 쳤다고 다 유다가 되는 게 아니라고요.
그리고 또 중요한 게 있어요. 선악과를 먹은 뒤로 우리는 겉은 몰라도 속으로는 전부 다 “내가 옳다”를 외치고 있어요, 속으로는. 겉에 채색옷을 입고 있지 않아도 마음속으로는 내가 채색옷을 입고 있는 거예요. 그 채색옷이 뭐예요? ‘내가 옳아! 내가! 내가 중요해!’ 여러분 내가 중요하지 않은 인생이 사실 어디 있겠어요? 그렇지 않습니까? 살기 싫은 마음이 들고, 우울하고, 인생을 마감하고 싶은 그 깊은 절망 속에 있어도, 그래도 내 인생이 중요한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는 속으로는 다 요셉 족속이신 거예요. 그러니까 저를 보면서 ‘아우 나는 저 지경은 아니야’라고 하시는 분들 속으로 요셉 족속인 것을 인정하시고, 저와 기꺼이 동족이 되어 주셔야 되겠습니다. “언니가 선택한 거잖아”, “당신이 틀렸어. 내가 옳아” 이런 것들이 다 요셉 속으로 요셉인 우리가 하는 말입니다. 이런 요셉이 결혼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잘못한 건 지금도 자꾸 설명을 하고 싶어요. 제가 잘못했다고 누군가 지적을 하거나 얘기를 하면 자꾸 설명, 변명을 하고 싶은 것이죠. “아유~ 그게 아니에요. 다 이유가 있다고요. 그거 모르셔서 그래요.” 이게 뭐예요? 결국에 내가 옳다는 얘기를 그렇게 지금 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여러분 이런 요셉 족속은 진짜 인생에 스스로는 아무 소망이 없습니다. 소망이 없어요. 겉으로 화려한 진짜 요셉이든 겉은 아니지만 속으로 ‘내가 옳다!’를 주장하고 있는 이 속으로 요셉이든 우리 인생은 우리 힘으로는 아무런 소망이 없는 거예요. 하지만 우리 주님은 우리를 어떻게 대하십니까? 히브리서 2장 11절에 보니까 주님이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라고 하셨어요.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저들과 나는 다르다” 하면서 같이 묶이기도 싫어하는 그 저를, 사실 이거 영적으로 완전히 쓰레기잖아요. 그렇죠? 지체와 묶이기 싫어하는 그런 쓰레기 같은 저를 그래도 주님은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고요.
생각하면요. ‘어떻게이럴수가있는가!’싶어요.어떻게이런일이있을수가있는가!참저같은이소망없는인생인데. 제가 품지 못했던 그 사람을 통해서 주님이 저를 형제의 자리로 불러주신 것인 줄 믿습니다. 주님이 저를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으니까 저도 이제는 그 어떤 부끄러움이든 잘 감당해야 하겠어요. 공동체에서 제 잘못을 지적해 줄 때 “그게 아니고요. 그 이유가 다 있어요.” 그렇게 하지 않고 먼저 잘 듣겠습니다. 부끄러워도 “제가 그랬습니다. 당신이 나보다 옳으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하겠습니다. 가정과 목장에서부터 말이죠. 요셉 족속 여러분! 겉 요셉뿐만 아니라 이 속 요셉도 다 포함해서 우리 요셉 족속 여러분! 모두 저와 함께 그렇게 하십시다! 형제의 날은 멀리 있는 게 아니에요. 바로 지금 여러분들 곁에 다 형제의 날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누구를 “당신이 선택한 거잖아” 하면서 혼자 두고 계세요? 오늘 저와 함께 고백합시다. 이거 고백을 같이 한번 해볼까요? 우리 요셉 족속이니까 대동단결해서. “하나님 그래도 제 형제입니다. 하나님 그래도 제 형제입니다.” 시작! “하나님 그래도 제 형제입니다.” 여러분 그 머릿속에 떠올린 그 사람을 향해서 하나님 앞에서 지금 고백하는 거예요. “하나님 그래도 제 형제입니다.” 왜요? 주님이 우리를 여러분 자신을 형제로 여기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기 때문이에요. ★형제의 재앙은 나의 기회가 아니라 나의 사명인 겁니다.
Q. 나는 누구에게 “네가 그때 어땠는지 다 알아
Q. 내가 가족에게 자주 하는 ‘맞는 말’은 무엇입니까?
Q. ‘그래도 내 형제’인 그 사람에게 이번 주 먼저 건넬 그 한마디는 무엇입니까?
세 번째는,
3. 없어질 나를 살리셨습니다(15-16절)
15 여호와께서 만국을 벌할 날이 가까웠나니 네가 행한 대로 너도 받을 것인즉 네가 행한 것이 네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_옵 1:15
이 셋째 대지 “없어질 나를 살리셨습니다.” 이 고백은 이 ‘살리셨습니다’잖아요? 그런데 15절은 사실은 살리는 말씀이 아니에요. 벌하는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날’이 10번 나왔어요. 다 ‘형제의 날’을 가리키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15절에 이제 11번째 ‘날’이 나와요. 그런데 이 ‘날’은 ‘여호와께서 만국을 벌할 날’, 형제의 날을 구경하던 에돔에게 이제 여호와의 날, 여호와의 심판의 날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날 무슨 일이 있습니까? “내가 행한 대로 너도 받을 것인즉” 하나님이 홧김에 하시는 말씀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100% 옳으시기 때문에 반드시 행하시는 일입니다. 이 말 남한테 할 때는 참 속 시원해하죠. “행한 대로 받을 것입니다. 행한 대로 받는 거지~” 이거 남한테 할 때 너무 속 시원해요. 에돔도 아마 그랬을 겁니다. 하나님은 그 맞는 말을 그대로 에돔에게 지금 돌려주시는 거예요. “네가 행한 대로 너도.” 내가 형제를 판단한 그 판단이 나의 머리로 돌아오는 겁니다. 예수님 말씀 그대로예요. 저는 아내한테 했던 그 맞는 말 옳은 말만 저에게 돌려받아도 저는 그냥 인생 끝인 거예요.
16 너희가 내 성산에서 마신 것 같이 만국인이 항상 마시리니 곧 마시고 삼켜서 본래 없던 것 같이 되리라_옵 1:16
‘마신 것 같이’ 에돔이 언제 마셨어요? 형제가 망하는 날, 형제의 날 그 성문 안에서 하나님의 성산에서 마셨습니다. 형제의 멸망을 보면서 마신 그 술이 그대로 심판의 잔이 되는 거예요. 그 잔을 마시면 어떻게 됩니까?“마시고 삼켜서 본래 없던 것 같이 되리라.” 그냥 없어지는 거예요. 멸절되는 거예요. 이게 형제의 날에 맞은편에 섰던 우리 자신의 실상입니다. 누구라도 심판의 잔을 피할 수가 없어요. 주일마다 예배당에 앉아 있는 우리도 사실은 예외가 아닙니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그 진노의 잔, 심판의 잔을 받아서 그 잔을 손에 들고서 마실 날만을 기다리면서 살아가는 인생이에요. 그런데 여러분 그 잔이 오늘 우리 손에 들려 있지 않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뭐라고 기도하셨죠?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 잔’, 바로 이 잔이 내가 받아야 할 그 심판의 잔인 거예요. 진노의 잔인 겁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 잔을 지나가게 하지 않으셨어요. 아들에게 주셨습니다. 주님이 받으신 건 주님께서 행하신 대로 받으신 게 아니에요. ★주님이 받으신 건 저와 여러분이 행한 대로 받으신 것입니다. 그 잔을 어디서 받으셨습니까? 히브리서 13장 12절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에돔 같은 우리는 한몫 챙기려고 형제의 날에 성문 안으로 들어가서 재물에 손을 대려고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거꾸로 성문 밖으로 나가서 우리가 마실 심판의 잔을 우리 대신 받으신 겁니다. 저는 행한 대로 받았으면 정말 없어졌을 죄인이죠. 정말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교만하고 악하고 잔인한지. 그건 진짜 저와 하나님이 아시는 거예요. 하지만 지금 이렇게 여러분과 함께 예배의 자리에 있습니다. 제가 마셔야 할 그 잔을 예수님께서 대신 마셔주셨기 때문인 것이죠. 그러면 이렇게 살아난 사람은 뭘 해야 합니까? 형제의 날에 이번에는 맞은편이 아니라 곁에 서야 되는 거예요. 그 잔을 대신 마신 주님을 아직 모르는 그 형제 곁에 말입니다. 교회 안에도 그 은혜를 ‘아직’ 모르는 지체들이 있어요. 그 곁에 서는 것, 그것이 바로 전도인 것입니다. 목세에 이번에 세 번째 오신 목사님이 계시더라고요. 성도들 가정에 감당할 수 없는 문제가 계속되어서 ‘어떻게 하면 이 성도들을 좀 살릴까’ 그냥 백방으로 살릴 길 찾아다니다가 목세까지 오셨다는 거예요. 이번엔 성도 한 분과 같이 오셨습니다. 목사님이 그 성도에게 그러셨대요. “형제 때문에 내가 우리들교회를 찾았다.” 얼마나 속을 많이 썩였다는 뜻이겠죠. “형제 때문에 내가 우리들교회를 찾았어요. 이번에 꼭 같이 해야 되겠다.” 그래서 이제 같이 오게 되었는데 이제 그 제안을 듣고 이 성도는 아내한테 “아내가 바뀌어야 됩니다. 우리 집안은 제가 바뀔 게 아니라 아내가 바뀌어야 됩니다”라고 하면서 아내를 좀 데리고 가라고, 아내한테도 “당신이 가라”고 막 그렇게 하셨다는 거예요. 그런데 결국에는 본인이 휴가를 내고 아주 멀리서 목세에 오셨답니다. 아내가 “목세 가자” 했을 때 “뭐 그렇게까지 하냐?”라고 했던 저보다 사실 이분이 훨씬 나은 거예요. 진짜 믿음이 있으신 겁니다. 근데 이분이 목장 탐방을 하시고 이렇게 소감을 말씀하셨어요. “오늘 나눔이 너무 제 얘기네요. 너무 제 얘기네요. 제가 아내 하나 살리지 못하는 가장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목세에 오시기 전에는 ‘아내가 목세 가야 돼. 아내가 문제야. 아내가 바뀌어야 돼.’ 이러던 분이 이제 목세에 오셔서 말씀을 듣고 목장에서 나누는 거 보시더니 내가 문제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신 것이죠. 그 목사님도, 그분들을 또 목장으로 섬긴 여러분도 정말 형제의 자리에 서신 것 맞습니다. 한 목회자가 살면 한 교회가 살아나는 거예요. 여러분의 섬김으로 그런 교회들이 다 살아날 줄 믿습니다. 여러분 곁에 지금 재앙의 날을 지나는 그 사람은 그 잔을 대신 마신 주님을 알고 있습니까? 모른다면 우리가 가야 되는 것이죠. 먼저 그 주님을 안 우리가 그 곁으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번 전도 축제에 이런 마음으로 진짜 한 사람 품으시고 한 사람 생각하시면서 그 곁에 서서 주님을 전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오늘 저와 함께 고백합시다. “하나님 없어질 저를 살리셨습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요, 아까 우리 영상에서도 선교사님 말씀하셨지만 처음 마음 진짜 너무 늘 잊어버리는 것 같아요, 우리가. 우리가 살아나서 사실 여기 다 있는 건데 저도 그렇고 일하고 섬기고 봉사하고 예배하고 이렇게 하다 보면 그 처음에 살아난 그 감격을 사실 다 잊어버리더라고요. 그리고 그냥 지금 내가 하는 이 수고, 내가 쏟고 있는 이 열심, 이 봉사, 이 정성…… 이것만 그냥 크게 보이는 거예요. 그러면서 거기에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고 불평하고 원망하면서 그렇게 스스로 지옥을 사는 인생으로 만드는 모습이 우리 가운데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실은요, 우리가 형제의 날을 당하고 있는 거는 우리 자신인 거예요. 그렇더라고요. 형제 가족을 향해서 이웃을 향해서 우리가 막 그렇게 이제 쏟는 그 모든 생각 “나는 쟤들과 달라.” 이런 말이 사실은 스스로를 그렇게 무시하고 경멸하고 그렇게 죽이고 있는 생각이더라고요. 사실 우리가 다 형제의 날을 당하고 있는 인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디로 가야 되는 거예요? 주님 곁으로 다시 돌아가야 되는 거예요. 살려주신 그 은혜의 자리로 다시 가야 되는 겁니다. 이번 주에 진짜 그렇게 살아난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가서 그 은혜를 회복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Q. 내가 남에게 했던 ‘맞는 말’ 중, 그대로 돌려받으면 가장 두려운 말은 무엇입니까?
Q. 그 잔을 주님이 대신 받으셨는데, 나는 아직 누구에게 “행한 대로 받아야지!” 하고 있습니까?
Q. 이번 주 어려움을 겪는 누구 곁에 서서, 나를 살리신 주님을 전하겠습니까?
목장 중보기도입니다.
같이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가
1. 아버지 황인수의 건강과 구원을 위해
- 위암 4기로 항암치료 중이신 아버지의 고통을 덜어주시고, 치료와 회복의 은혜가 임하도록.
- 아버지의 구원을 위해 태어나 처음 쓰는 편지에 진심과 복음이 담기고, 아버지께서 마음을 열어 예수님을 영접하시도록.
2. 어머니 박현숙과 소망의 집을 위해
- 어머니의 영혼과 마음과 육체가 온전히 치유되고 회복되도록.
- 운영하시는 소망의 집과 함께 일하는 직원들, 장애인 가족들, 섬기고 후원하는 모든 손길을 축복하시고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시도록.
3. 나의 건강과 다이어트를 위해
- 8체질 검사에서 목양체질로 나왔는데, 내 몸에 맞는 건강한 식습관을 찾고 꾸준히 다이어트할 수 있도록.
- 당뇨와 고지혈증, 마음의 건강이 회복되어 의료진의 도움 아래 약을 줄이거나 중단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해지도록.
- 나 자신을 미워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몸과 마음을 사랑하며 소중히 가꾸도록.
4. 하반기 목장과 목장 식구들을 위해
- 목장 식구들과 말씀 안에서 더욱 화목하고 행복한 공동체를 이루도록.
- 다음 달 결혼하는 주영은 언니의 가정을 축복하시고, 목장 식구들과 자주 만나 맛있는 음식도 나누며 즐거운 추억을 쌓도록.
5. 대한민국과 한국 교회, 우리들교회를 위해
- 태아의 생명이 보호받고, 동성결혼 법제화와 차별금지법 등의 논의 가운데 하나님의 지혜가 임하며 성경적 가정의 가치와 모든 사람의 존엄이 존중받도록.
- 위정자들에게 지혜를 주시고, 다음 세대가 말씀 안에서 건강하게 자라며 한국 교회에 회개와 부흥이 일어나도록.
- 김양재 담임목사님의 영육을 강건하게 하시고, 우리들교회의 모든 사역자님들과 성도들을 축복하시도록.
6. 건강검진과 새로운 시작을 위해
- 다시 도전하는 건강검진을 두려움 없이 끝까지 잘 마칠 수 있도록.
- 이번 검진을 계기로 내 몸을 더욱 아끼고 사랑하며 건강한 삶을 시작하도록.
7. 직장과 맡겨주신 사명을 위해
-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직장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기쁨으로 일하며, 담임을 맡은 아이들을 사랑과 지혜로 지도하도록.
- 학부모님들과 동료 선생님들, 함께 일하는 모든 분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고,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도록.
8. 매년 3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 1년 단위로 계약하며, 12월에 재계약을 앞두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유치원 이전과 규모 축소가 예정되어 있고, 이사님께 퇴사 의사를 내비친 적도 있어 마음이 불안합니다. 나이와 외모, 부족한 능력에 대한 자신감도 없지만, 내년이면 이곳에서 7년 차를 맞이합니다. 주님, 부족한 저를 긍휼히 여겨 주시고 내년에도 재계약하여 계속 일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혹여 재계약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낙심하지 않고, 주님께서 예비하신 새로운 일터로 인도받을 수 있도록 제 앞길을 선하게 이끌어 주세요.
나
1. 알맞은 때와 방법, 타이밍에 집을 구할 수 있는 길을 꼭 열어 주시기를.(전세임대주택 되도 안되도 주님뜻)
2. 진료결과가 어떠하든 두려워하지 않고 영육을 잘 돌보고 회개할 수 있는 은혜의 시간되기를
3. 목장식구들 영육의 건강 모두 책임져 주시고 감당할만한 고난만 허락해 주시기를
4. 유제품, 단음료, 밀가루 최소한으로 줄이기! 12시 전에 취침하는 적용! 육의 성전 잘 돌보기
5. 내가 에돔임을 깨닫고 가족 구원을 외면치 않는 인생이 되길
6. 신교제에 대해 간절함이 회복되고 사명을 위한 만남이 이루어지도록!
7. 부모님의 건강, 사업, 남동생집안의 구원 을 위해
8. 첫째조카 외롭고 힘들 때 주님찾고 건강과 학업 가운데 지혜 허락해 주시기를
다
1. 큰 외삼촌이 돌아가셨는데, 엄마의 마음에 위로가 되길
2. 얼마 남지 않은 결혼 예배 가운데, 결혼준비 하면서 지치기도 하는데,
말씀과 기도로 준비되는 시간되길
3. 엄마 아빠 체력적으로 많이 떨어지셨는데, 건강을 지켜 주시길
라
1. 내 생각과 감정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해주시길
2. 뒷목과 어깨에 담이 걸려 불편하고 통증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만져 주셔서 뭉친 근육이 풀리고 통증이 사라질수 있도록
3. 하나님의 뜻 안에서 신앙과 마음으로 준비하여 예비된 배우자를 만날수 있도록
4. 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감사와 기쁨으로 하루를 살아가도록
5. 유치원에 맡고 있는 열매반 친구들이 다치지 않고 안전하고 행복하게 생활할수 있도록
마
1.저희 어머니 자궁내막암 대장암 지금처럼 잘 유지되기를
2.신교제 신결혼 간절히 소망합니다.
3.제 동생 가족 11월3일(입국)11월9일(출국)하는데 오고가는길 지켜주시길
4 제 동생 가족 내년 한국 오는데 거처와 직장 허락해 주시길
5.11월3일 이직 할 직장 첫 출근인데 긴장하지 말고 차분한 마음으로 임하길
6.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 30일 까지 출근하는데 마무리 잘 하길
7.교회와 목장 사랑부 그리고 십일조 생활 꾸준히 잘 하도록
바
1. 성령충만..예배가 우선이 되고 하나님 의에 합한 자 되도록.
2. 가족들의 영혼 구원과 건강
(아버지의 치매로 인하여 아버지, 어머니 모두 힘들어하시는데 두 분 모두 잘 이겨내시고 구원 받으실 수 있도록//
여동생 수술이후 회복중인데 예수님 믿을 수 있도록 )
3. 신교제, 신결혼
( 비록 결정사에 등록한 상황이지만 우리들교회에서 믿음의 배우자 만날 수 있기를)
4. 직장과 가정에서 빛과 소금 감당할 수 있게
5. 자격증 시험 준비 잘 할 수 있도록 체력과 지혜 부어주시기를.
6. 다음 진로를 위한 준비 잘 할 수 있도록 해주시고, 주일에 온전히 교회에 집중할 수 있는 새로운 직장 주시기를..
7. 목장 지체들 모두 건강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