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국의 비전과 새로운 소식을 안내합니다.
청년 공동체의 삶과 고민을 함께 나눕니다.
청년 공동체의 생생한 모습을 전합니다.
목자와 공동체 리더를 위한 소통 공간입니다.
청년국 양육 과정의 피드백과 평가를 나눕니다.
- 본문
10 네가 네 형제 야곱에게 행한 포학으로 말미암아 부끄러움을 당하고 영원히 멸절되리라
11 네가 멀리 섰던 날 곧 이방인이 그의 재물을 빼앗아 가며 외국인이 그의 성문에 들어 가서 예루살렘을 얻기 위하여 제비 뽑던 날에 너도 그들 중 한 사람 같았느니라
12 네가 형제의 날 곧 그 재앙의 날에 방관할 것이 아니며 유다 자손이 패망하는 날에 기뻐할 것이 아니며 그 고난의 날에 네가 입을 크게 벌릴 것이 아니며
13 내 백성이 환난을 당하는 날에 제가 그 성문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고난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재물에 손을 대지 않을 것이며
14 네거리에 서서 그 도망하는 자를 막지 않을 것이며 고난의 날에 그 남은 자를 원수에게 넘기지 않을 것이니라
15 여호와께서 만국을 벌할 날이 가까웠나니 네가 행한 대로 너도 받을 것인즉 네가 행한 것이 네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16 너희가 내 성산에서 마신 것 같이 만국인이 항상 마시리니 곧 마시고 삼켜서 본래 없던 것 같이 되리라
- 말씀
9년전 아내가 목세 가자고 했는데 가지 않았으나, 오늘날 우리들교회에서 사역하고있다. 우리가 멀리 오신 분은 잘 섬길 수 있다. 오히려 가정에서는 어렵다. 열왕기하에 나오지 않았지만, 불에 타는 성전 건너편에서 그 날 그 성에 들어온 정복자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밖에서 불타는 것을 구경하는 것이 있었으니, 에돔 족속이었다. 그냥 형제가 아닌 야곱의 쌍둥이 에서의 후예들이다. 오바댜는 에돔의 입장에서 쓴 역사서다. 열왕기하 무너지는 장면을 보고 있는데, 같은 사건을 에돔사람의 시선으로 본다. 오늘 본문은 기가막히게 지난주 열왕기하 주일설교와 큐티가 이어진다. 우리도 고우나미우나 형제로 묶여있는 공동체이다. 형제의 날, 곧 그 재앙의 날에 같이 무너지지 않고 살아나려면 어떤 고백을 해야할까요? 그게 무엇인지 3가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1. 나도 ‘원 오브 뎀’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돔의 죄를 한 방으로 알려준다. ‘포학’ 이라한다. 11~14절 보면 에돔이 처음에 한 것은 잔인한 폭행, 포학이 아니었다. 그냥 멀리서 구경하고 기뻐했고 네거리를 가로막아서 멀리 떨어져서 도망가는 유다백성을 잡히게 한 것 뿐이다. 칼만 휘두르지 않으면 된 것인가? 아니다. 창세가 6:11 노아의 홍수 때에 '포악이 땅에 가득한지라.' 원어로 같은 의미다. 그런데 이 포악이 더 잔인하다. 형제가 힘들 때 찾아오지 않는 포악이다.
그 날 에돔이 어디 있었어요? 내가 멀리 있었다한다. 멀리는 눈에 안 보이는 진짜 먼 곳이 아니다. 진짜 문자적으로 멀 리가 아니라 건너편, 맞은편 이다. 건너편에 불타는 것을 보고있다. 심리적, 감정적, 조금더 어렵게는 실존적으로는 거리가 멀리 서 있는 것이다. 유다를 보는 에돔의 마음이 그렇다. 가족도 실존적, 감정적으로는 남남 이상으로 멀리 살 수 있는 것이다. 에돔은 그런 마음으로 맞은 편에서 불구경을 하고 있었다. 너도 그들 중 한 사람 같았느니라. 너도 원 오브 뎀이더라. 라고 한다. 너도 그들과 똑같다는 것이다. 파괴하고 제비뽑고 불태우던 바벨론과 같은 원오브뎀이다. 이 말에 에돔도 할 말이 있다. ‘저는 그러지 않았어요 저는 불태우지 않았어요 저는 제 삶 살기 바빠요. 쟤가 내 인생에 한 일이 뭔가요, 하나님이 알아서 하는 일인데요 제가 어찌하겠습니까.’ 이게 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변명이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이 에돔에게 ‘너도’라고 하신다. 맞은편에 서 있다. 그냥 그것을 구경하고 있다. 하나님은 무엇을 했느냐 안했으냐만 물으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태도를 보신다. 어떠한 마음과 태도로 있는지 서있는지 보신다. 우리는 공동체에서 아프고 사업이 망하고 힘든 일들을 듣는다. 그런데 사실 그 사람들에게 연락하거나 직접 찾아가는 일은 없을 수도 있다. 복도에서도 멀리 서 있는 경우도 있다. 남의 고난에 저절로 들어가기는 너무 어렵다. 그러나 그것을 당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나는 그냥 멀리 서 있었을 뿐인데, 내 영역을 지키고 살고 있을 뿐인데, 그 형제는 외로움 가운데 신음하고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가 중환자실 있을 때, 상황상 한두번 밖에 못 가고 있다. 이게 남의 얘기가 아니다. 다 이런 상황에 놓여있지 않은가? 형제의 날에 맞은 편에 서 있는 에돔이 우리가 우리 삶을 살면 맞은 편에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다. 저는 원오브뎀 받아들이는 게 힘들었다. 이번 목세에 저는 치리 콘서트에 참석했습니다. 부모님께 학교에서 한번도 혼나본 적이 없는데, 그것도 교회에서 혼나는 것을 지나서 치리 콘서트 간 것이 인정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맨 마지막 타자입니다. ‘저는 저분들과 다릅니다. 저는 그냥 책임자로서 책임지는 의식을 가지고 치리 받은 것입니다.’ 하는거죠. 책임자는 맞는데 책임은 없다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뭐라 하나요? 바보라는 거죠. 같은 자리에 앉아있으면서도 나는 저들과 달라, 원오브뎀 아니다. 지구 끝에서 앉아있는 것처럼 나는 말을 한다. 그 때 담임 목사님이 말씀하신다. ‘저 사람도 치리 받았으니 앉아있는 거에요. 그렇지 않으면 여기는 자격이 안되어서 못 나와요.’ 이 말이 번뜩했다. 그제서야 나는 치리 동창생시구나. 치리라도 받았으니 치리 콘서트 나와 섬길 수 있구나. 심지어 치리라는 자격이 있어서 여기 있는 것이다. 여러분도 원오브뎀이다. 여러분 엮이기도 싫은, 이름이 나란히 써지기도 싫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 저도 원오브뎀입니다.' 너무 싫지만 오바댜 말씀 의지해서 하나님 말씀에 의지해서 이런 고백이 입술에서 삶에서 고백되기를 기도합니다.
[적용질문] 최근 가족이나 목장 식구의 어려움을 알고도 모른 체한 일은 무엇입니까? 그 사람 곁에 가면 내가 무엇을 손해 볼 것 같았습니까? 나는 누구와 같은 죄인이라고 인정하기가 가장 싫습니까?
2. 그래도 내 형제입니다.
형제의 날은 잔칫날이 아니다. 형제가 재앙을 당하는 재앙의 날, 심판의 날이다. 방관하지 말라는 것이다. 방관은 멀리서 구경하는 것이 아니다. 구경하면서 속으로 좋아하는 것이다. ‘고소하다 꼴좋네’ 하는 경우 없으신가요? 말은 안해도. 기뻐하는 것이 있는 것이다. 기뻐하다보면 그리고 입을 크게 떠벌린다. 내가 그렇게 까불 때부터 알아봤다고~ 하면서 하는 뒷담화하는 그 모습이다. 손은 대지도 않았는데 발은 아직 가지도 않았지만 마음과 입이 그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13 내 백성이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성문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고난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재물에 손을 대지 않을 것이며
이제 발이 성문에 들어가고 손이 재물에 댑니다. 그래서 모든 것의 끝에 돈이 있다는 것이다. 형제가 모아둔 재물을 가지고 나옵니다. 형제의 환난 가운데 내 몫, 한 몫 챙기는 것입니다. 에돔은 쟤네 죄 지어서 당하는 것이잖아. 그래도 싸 라고 비난한다. 비난하고 조롱하는 것이다. 기고만장해있다. 틀린말은 아니다. 유다는 아무리 하나님이 말해도해도 듣지 않아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고 있다. 그 비난받고 불타는 순간에도 유다는 하나님의 내 백성인것이다. 지난 주 말씀에 불타는 순간에도 버려진 성전이 아닌 ‘여호와의 성전’인 것이다. 버려진것 같지만 하나님우 여전히 그 순간에도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나님은 일방적 사랑, 무조건적 구속의 은혜로 우리를 이끌어 가신다. 하나님이 내 백성이라 불러주기에 에돔과 같은 형제에게도 내 형제라 불러주신다.
멀리 서 있던 사람이 성 안에 들어와서 네거리, 골목을 딱 막아섭니다. 서서 목숨 하나 건지려는 유다 백성을 가로막아선다. 그 때 내가 어떻게 했는지 내가 다 알아. 라고 말을 한다. 다 멸망하고 피난처로 도피하는 중에도 에돔은 유다를 도와주지 않고 바벨론에 넘긴다. 막지말라는 도피성으로 이끌라. 나의 수고가 더 크게 느껴지고 손해보는 게 싫다. ‘교회 목장나가고 섬기려 할때 집에서나 잘해’ 라면서 그 의지를 꺾는 것이 도망가는 백성을 막는 것이다. 창세기의38장 ‘그는 나보다 옳도다’ 구속사의 말씀이 있다. 한국 교계의 센세이션을 일으킨 담임 목사님의 ‘요셉이 아니고 유다다’ 말씀이 있다. 예수 계보에 올라가는 것은 흠없는 요셉이 아니라, 모자르고 예수님 앞에서 깨어진 유다다. 저는 늘 칭찬받고 공부 잘하고 살아서 요셉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어려서부터 제 꿈은 위대한 목사였다. 요셉은 예수의 계보에 올라가지 못하는 것보다 더 속상한 것이 있다. ‘내가 유대와 비교되는 것.’ 지금 웃으시는 분들은 그럴 가능성이 있다 요셉은 왜? ‘나만’ 인정받고 특별해야되니까. ‘요셉이 아니고 유다다’ 인정이 잘 되는 분들은 뭘까요. 아멘 안되는 분들은 애석하지만 저랑 같은 과다. 아멘 잘되는 분들은 유다에 가깝다 생각하시는 분들은 안심하시면 안된다. 사고 좀 치고 놀아봤다고 죄 지어 봤다고 ‘다 그는 나보다 옳도다’ 인정이 되는 것은 아니다. 본질상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후에 우리는 다 내가 옳다 하는 요셉이다. 겉으로 잘나서 채색옷 입든지 누더기 옷 입고 있던지 내가 가장 인정받아야하고 옳아야하는 것이 우리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정말 절망되고 죽는 것밖에 길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 순간도 다 내 자신을 위한 것이다. 겉으로 아닐 수 있지만 속으로는 다 우리가 요셉인 것이다. '언니가 선택한 거잖아, 당신이 틀리고 내가 옳아.'그게 다 뭔가요? 우리가 다 요셉이라는 증거다. 저는 결혼할 때 ‘그대는 목사 사모할 필요 없어, 그냥 내 아내만 하면 돼’ 진짜 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니 '당신은 내 말만 들으면 돼' 이 의미였다. 실제로 하고 싶은 말, 그게 나의 옳은 말 맞는 말이다. 그런데 결혼 첫 날부터 문제가 생깁니다. 결혼 예배 끝나자마자 아내 입에서 분노가 나온다. 제가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혼란과 혼돈이 나왔다. 어떻게 나에게 그럴 수 있느냐, 그래서 7년 동안 싸우고 싸우다 미국 유학중에 아내가 여기까지다 하고 이틀만에 아들 데리고 한국으로 가버렸다. 지금 웃으며 말씀 드리지만, 그 때 너무 죽고 싶었다. 성실하고 열심히 산 것밖에 없는데 이렇게 비참하게 있으니 미국의 반지하 방에서 죽을 생각만 했다. 신학 논문 쓰던 컴퓨터로 쉽게 죽을 방법만 검색했다. 오늘 본문의 에돔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였다. 그래서 '그게 아니라 다 이유가 있다'고 피해 나가려는 습관이 있다. 요셉 족속은 안타깝게도 스스로 아무런 재능이 없다. 인생의 문제를 풀어갈, 천국을 향해서 갈, 소망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떠신다. 히브리서 2:11에 형제라 하나님은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 하신다. 여러분이 저를 보고 어찌 저런 사람이 있냐 한심해하실 수 있는데, 저도 제 자신이 부끄러운데 예수님이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 떠난 아내가 감사하게도 먼저 말씀이 들려서 큐티인 보내주고 같이 큐티하자고 초대해 주었다. 저는 면접을 화상으로 면접을 부끄럽게도 보기 싫었습니다. 그런데 화상으로 면접을 하면서 면접을 죽을 쑤었다. 목사님이 감사하게도 그 사모 좀 나와보라고 해, 잠옷차림의 아내가 저 대신 면접을 봐 주어서 합격을 했다. 그래서 이제 합격을 해서 아내가 보내준 큐티인을 제가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기적이다. 놀랍다. 저는 제 인생을 생각하면 밋밋한 사람인데, 뜯어서 생각하면 다이나믹한 인생이다. 이게 다 은혜인 줄 믿습니다. 주님이 저를 형제인 줄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겠습니다. 우리는 결단해야한다. '공동체에서 그게 아니구요 하지 않겠습니다. 부끄러워도 당신이 나보다 옳습니다 가정과 교회서 하겠습니다.' 요셉 족속분들, 여러분들은 모두 요셉 족속입니다. 그냥 받아들이세요. 지금 머릿 속에서 형제로 엮이기 싫은 분들을 떠올려보세요. 자 따라해보세요. ‘하나님 그래도 제 형제입니다.’
[적용질문] 나는 누구에게 “네가 그 때 어땠는지 다 알아” 하며 돌아올 길을 막고 있습니까? 내가 가족에게 자주 하는 ‘맞는 말’은 무엇입니까? ‘그래도 내 형제’인 그 사람에게 이번 주 먼저 건넬 말은 무엇입니까?
3. 없어질 나를 살리셨습니다.
셋째 고백은 살리셨습니다 인데, 그 본문은 살리는 게 아니라 벌하는 말씀입니다. 15절에서 11번째 날이 나오는데 여호와께서 만국을 벌할 날이다. 여호와의 심판의 날이 온다. 내가 행한 대로 너도 받을 것인즉, 하나님이 홧김에 하시는 말이 아니라 백프로 옳으신 하나님께서 작정하시고 받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남에게 할 때는 속시원하다. 그런데 그 말을 그 마음을 품었던 에돔에게 그대로 돌아오게 하신다.
마신 것 같이 만국인이 항상 마시고 곧 삼켜서 본래 없던 것 같이 되리라 하신다. 에돔이 언제 망했나요. 하나님의 성산에서 그 잔을 마셨다고 한다. 그대로 심판의 잔이 되었다한다. 마시고 삼켜서 본래 있던 것까지 없어진다. 주일 예배 나오는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의 태생으로 언젠가 진노의 잔을 마시고 이 생이 끝나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심판의 잔을 두고 마태복음 26:39에서 내 원이 아니라 아버지 원대로 하소서 하셨다. 주님이 받으신 것은 주님이 행하신 대로 받은 게 아니다. 주님이 하신대로 받으시려면 영광의 면류관을 받아야한다. 저와 여러분들이 행한대로 우리의 죄를 받으신 것이다. 히브리서 13:12에서 그러므로 예수도 성문 밖에서 고생을 당하셨다. 저는 행한대로 받으려면 벌써 없어져야할 사람이다. 저처럼 위선적인 사람은 말씀을 전할 수 없다. 지금 제가 말씀 전하는 게 기적이다. 우리 가족, 친구를 향해 잔을 전해야한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고백할 것은 '하나님이 없어질 저를 살리셨습니다’ 이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살아난 것 기억 못하고 불평 속에 매말라간다. 이것은 믿음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는 본질적으로 이렇다. ' 힘들때는 내가 은혜를 잊어버렸구나. ' 생각해보세요. 시간 지나고보니 우리는 형제에게 하는 말들이 결국 내게 하는 말들이다. 나는 저 지경이 아니야 하지만, 우리 인생은 그냥 재앙당하는 인생이다. 그래서 우리 인생은 재앙 당하는 인생이다. 그래서 주님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헌신, 마음도 다 변합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이 주님입니다. 그래서 필요합니다.
[적용질문] 내가 남에게 했던 ‘맞는 말’ 중, 그대로 돌려받으면 가장 두려운 말은 무엇입니까? 그 잔을 주님이 대신 받으셨는데, 나는 아직 누구에게 "행한 대로 받아야지!" 하고 있습니까? 이번주 어려움을 겪는 누구 곁에 서서, 나를 살리신 주님을 전하겠습니까?
모인 장소: 카페 롤링삐삐
모인 인원: 목자1, 부목자2, 목원1
기도제목
A
- 순간순간 올라오는 내가 옳다는 요셉 족속의 본성을 십자가로 쳐낼 수 있도록- 아버지 SG공동체에서 1박 2일로 MT 가셨는데(수~목), 은혜 가운데 안전히 다녀오시길- 오빠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결혼예배 아직 결정되지 않은 세세한 부분들 인도해주시고, 일가친척 대부분 믿지 않는데 그 한 사람, 한 가정이 살아나는 시간 되길- 질병의 고난 속에서 주님 은혜 구하고, 신교제&신결혼 인도해주시길- 형제로 묶어주신 우리 목장과 마을, 동료들 주님이 살려주신 은혜 잊지 않고 살아내도록
B
1.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고 내 모습과 마음을 객관적으로 볼 수있도록(목장처방 잘 실천하도록^^)2. 식약청 점검이 예정되어있는데 잘 받을수 있도록3. 거주할 처소를 허락해주세요 4. 어머니의 무릎통증이 완화되도록5. 신교제, 신결혼의 과정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 나갈 수 있도록
C
1. 내가 같은 죄인이라 비교 당하고싶지 않은 그 사람도 결국 내가 닮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회개하기를
2. 요셉같은 나의 자기애가 깨어지기를3. 결혼 20년차 사촌언니가 이혼서류 준비중이라 들었는데, 15년이상 안보고 사는 사이이지만 이번주 문자할 수 있기를4. 영육간 강건5. 가족 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