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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8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열왕기하 25:8-17
[8]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열아홉째 해 오월 칠일에 바벨론 왕의 신복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9]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귀인의 집까지 불살랐으며
[10] 시위대장에게 속한 갈대아 온 군대가 예루살렘 주위의 성벽을 헐었으며
[11] 성 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자들과 무리 중 남은 자는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모두 사로잡아 가고
[12] 시위대장이 그 땅의 비천한 자를 남겨 두어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더라
[13] 갈대아 사람이 또 여호와의 성전의 두 놋 기둥과 받침들과 여호와의 성전의 놋 바다를 깨뜨려 그 놋을 바벨론으로 가져가고
[14] 또 가마들과 부삽들과 부집게들과 숟가락들과 섬길 때에 쓰는 모든 놋그릇을 다 가져갔으며
[15] 시위대장이 또 불 옮기는 그릇들과 주발들 곧 금으로 만든 것이나 은으로 만든 것이나 모두 가져갔으며
[16] 또 솔로몬이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만든 두 기둥과 한 바다와 받침들을 가져갔는데 이 모든 기구의 놋 무게를 헤아릴 수 없었으니
[17] 그 한 기둥은 높이가 열여덟 규빗이요 그 꼭대기에 놋 머리가 있어 높이가 세 규빗이요 그 머리에 둘린 그물과 석류가 다 놋이라 다른 기둥의 장식과 그물도 이와 같았더라
1, 예루살렘을 무너뜨리십니다.
하나님은 단번에 무너뜨리지 않으시고 여러차례로 나눠서 무너뜨렸습니다. 하루 아침에 무너뜨리는 왕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이 기다려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벨론은 눈을 뽑고도 그만두지를 않았습니다. 믿고 있는 성전까지 무너뜨린다고 합니다. 배반할때도 당할때도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던 성전까지 무너진게 아니라 여호와의 성전까지 무너졌다고 합니다. 항상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전자리에 하나님이 있어야 하는데 우상이 있으니깐 던져버린다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결심하시고 또 결심하셔서 행하였습니다. 빨리 항복을 해야 하는데 항복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겁니다. 바벨론에게 항복을 하라는 것이 주된 메시지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성전보다 무서운 우상은 없는 겁니다. 믿는 자 내용물이 없으니깐 믿는 사람이 와서 판단을 해주는 겁니다. 잡혀가면 예루살렘에서 살던 행복은 이제 없는 겁니다. 끌려갔다고 끝난것도 아니고 남았다고 좋은 것도 아닙니다. 예배는 은혜로 주신 겁니다.
적용 질문) 예배에 나온다는 사실로 덮어 온 내 불순종은 무엇입니까? 내 불순종을 정당화하려고 내세운 신앙 이력은 무엇입니까? 끌려간 사람과 남은 사람처럼, 형편만 보고 속으로 판단해 온 지체는 무엇입니까?
2, 섬기던 그릇까지 가져가십니다.
놋바다는 회개를 의미 하는 겁니다. 여호와의 성전에서 쓰임을 받게 되는 것을 놋그릇이 되어서 없어지는 겁니다. 성경은 여호와의 성전에 놔둔 놋그릇이라고 합니다. 기둥처럼 눈에 띄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숟가락도 적혀있습니다. 성전이 있어도 섬길 그릇도 없어지는 겁니다. 하나님 집에 있는 것을 내것처럼 옮겨놓는 겁니다. 섬기라고 주신 자리도 자기 맘대로 하는 겁니다. 교회도 비난이 되고 그 옆에 있는 지체도 비난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을 섬기라고 주신 자리를 나를 섬기는데 사용을 하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니깐 우리가 섬길 수 있는 겁니다. 하나님이 백성을 넘겼습니다. 하루아침에 넘긴게 아닌 기다리고 기다가 결국 넘긴 겁니다. 아무리 사건을 주어도 다른 우상을 섬기는 것을 멈추지 않으니깐 넘기는 겁니다. 예레미야의 입장이고 참된 선지자라면 이런 욕과 핍박을 받으면 좋은 겁니다.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항복을 하고 바벨론 성전에 가니깐 모든 성전 기구가 있는 겁니다. 하나님은 전부 빼앗지 않습니다. 육이 무너지는 만큼 성전이 세워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적용질문) 은혜로 받은 섬김의 자리를 내 자랑으로 삼아, 사랑하지 못한 지체는 누구입니까? 내 수고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서운해했던 일 가운데, 공동체 앞에 내 죄로 내놓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드린 것 가운데, 내 것처럼 내 마음대로 옮겨 놓은 것은 무엇입니까?
3, 잃은 은혜를 헤아리게 하십니다.
여호와의 성전이 벌써 네번째나 나오고 있습니다. 성경이 쓴 말이 여호와의 성전이 라고 씁니다. 잃고 나니깐 주신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다 가져갔다하고 끝나면 되는데, 없는 것을 다시 세우게 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받은게 많다는 것이 깨닫게 되는 겁니다. 나를 위해 만들고 나를 위해 썼다는 겁니다. 잃고 나니깐 나를 위한 것이라고 깨닫게 되는 겁니다. 평안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주신게 아니면 사용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데 우리의 죄때문에 십자가에 매달려 피를 흘리셨습니다. 우리는 혼자서 할수는 없습니다. 벽돌 하나로 건물을 세우지는 못합니다. 결론은 내 죄때문에 죽으신 예수님과 가까워졌으니깐 섬기는 겁니다.
적용질문) 받은 은혜를 헤아려 볼 때, 하나님을 섬기라고 받고도 나를 위하여 쓴 것은 무엇입니까? 함께 지어져 가야 할 지체 가운데, 내가 아직 마음을 닫아 둔 지체는 누구입니까?
주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이번 주 내가 섬기며 복음을 전할 이웃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 바질
▪︎이번 주에 업무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 잘 해낼 수 있기를.
▪︎불안한 마음이 있는데 평안함 주시기를.
- 토마토
▪︎이번 한 주에도 잘 살아갈 수 있기를.
▪︎신교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