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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8 목장보고서 (김지용 00)- 참석자ABCDE[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열왕기하 25장 8~17절2008년 2월에 숭례문이 불탔다. 그날 밤 티비로 보면서 600년 넘게 서울이 지켜온 문이 5시간만에 누각되었다. 어떤 이슈가 있는 것도 아닌 어떤 사람이 그냥 불을 질렀다. 이건 하나님의 심판일까? 인생이 해석이 잘 되지 않는다. 어느 건물이 불타고 무너졌다고 심판이라고 판정할 고난은 없는데, 믿는 사람은 해석한다. 항상 자신만을 생각해봐야한다. 오늘 본문에서 예루살렘이 불탄다. 그 불길 속에 성전도 있는데, 시드기야왕은 이미 끌려갔다. 남은 도성에서 성전이 불타고 헐리고 백성이 끌려간다.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길 때 쓰던 그릇까지 끌려나간다. 예배의 자리가 무너진다. 하지만 본문에서 크기를 말하며 성전을 위해 만들던 것까지 가져간다고 한다. 하나님의 집이 무너지는데, 무너지는 것만 보아서는 안된다. 자기 백성의 죄를 그냥 두지 않고 무너뜨리시는 것이다. 하지만 끝이 멸망은 아니다. 예수님 안에서 진짜 성전을 세워가신다. 바로 우리이다. 1. 예루살렘을 무너뜨리십니다.(8) 하나님이 우리를 멸망시키실 때 단번에 무너뜨리지 않으시고 1,2,3차로 두시고, 포위 이후에도 19개월을 두셨다. 우리가 망하는 것은 기다리고 또 기다리신 이후에 멸망시키시는 것이다. 항복하라고 말을 해도 왕은 따르지 않았다. 그 성에 바벨론 왕의 시위대장이 정권을 바꿔 들어온다. 바벨론이 초반 포로 데려갈 때는 잔인하지 않았으나, 계속 배신이 이어지니 바벨론이 잔인해지기 시작했다. 사람과의 약속도 무거운데, 하나님과의 약속은 더더욱 무겁다.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도 지키시고, 회복도 지키신다. 바벨론은 잔인하게 눈을 뽑고도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네가 믿는 성전을 무너뜨리고 불사르겠다고 한다. 우리는 배반을 하고 당할 때 배후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상대방이 배반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것이다. (9) 여호와의 성전으로 말이 시작한다. 왕이 다스리고 백성이 살던 곳뿐만이 아닌, 성전 또한 불탔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열왕기의 실제 시대는 짧지만 여기에서 많은 파생 성경과 의미가 나온다. 예레미아서에는 망한 이유에 대해서 말을 해준다. 예레미야가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고 수없이 외쳤으나 외적인 성전만 숭배하고, 성전 자체가 우상이 되었기에 성전을 불사를 수 밖에 없었다. 불고 헐고 끌고 가는 것은 다 바벨론 사람들이다. 하나님이 하셨다는 말이 없음에도 일은 갑자기 온 것이 아니다. 성전을 솔로몬이 다 지었을 때 이미 하나님은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경배하면 이스라엘에게 땅을 끊고 이 성전이라도 던져버리리라고 말을 하셨다. 성전이 가짜라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름을 두신 집에서 이것을 우상처럼 섬기고 있기에 던져버린다고 하시는 것이다. (10) 성벽이 뚫렸다. 그리고 이젠 아예 헐어버린다. 성전이 없는 성벽도 기가 막힌데, 아예 씨를 말려가려는 바벨론이다. 숭례문은 우리가 판정할 수 없다고 했지만 예루살렘은 다르다. 망한다고 이미 말씀하셨고, 성경이 이를 해석해주신다. 예레미야애가에는 시온의 성벽을 헐기로 결심하셨다. 결심하시고 예루살렘을 무너뜨리셨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왜 이럴까 싶다. 갑자기 우리에게 이런 일이 온 것이 아니다. (11,12) 성에 남아있던 사람도, 항복한 사람도 무너지니까 다 끌려간다. 마지막이라도 항복한 사람은 목숨을 건졌다. 왜냐하면 항복하는 자는 살리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육적으로 가난하고 부유하다고, 안잡혀가는 것도 아니고, 빨리 잡혀가는 것도 아니다. 성전이 우상이기 때문에 그것과 관련없이 철저히 무너지게 하는 것이다. 성전에는 형식과 내용물이 있는데 바벨론은 이 둘을 모두 무너뜨린다. 믿는 우리들의 내용물에 의해서 성전이 지금 가려졌다. 예루살렘에서 살던 삶은 이렇게 잡혀가며 끝났다. 그럼에도 순종을 하는 것은 내 형평을 위한 거래가 아니다. 순종했다고 잘 사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끌려갔다고, 남았다고의 문제가 아니다. 내 속을 비추는 거울의 사건이다. 유다사람들은 성전이 여기 있는데 설마 망하겠냐는 생각을 한다. 내가 모태신앙인데 설마 우리집이 무너질까? 싶다. 예배는 드리고 식구들에게 말은 그대로 한다. 버리라는 욕심도 붙들고 있고, 끊으라는 거짓말도 계속한다. 이게 불신교제는 안된다고 함에도 계속 붙들고 있고, 하려고하니 거짓말도 살짝씩 해줘야 한다. 주일 예배 드리는 것으로 덮고 있다. 예배 안빠지는 것으로 다 방어를 한다. 예배는 은혜로 주신 것이나, 우리의 안전의 보증서로 썼다. 내 안전으로 쓴 죄이다.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고백할까? 예배로 내 불순종을 덮었다고 고백해야한다. 예루살렘을 그래서 무너뜨리신 것이다. 그래서 100% 옳으신 것이 하나님이다. 자기 죄가 안보이니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 있나 싶다. 이런 사람은 내 죄의 심각성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적용: 예베에 나온다는 사실로 덮어 온 내 불순종은? 내 불순종을 정당화하려고 내세운 신앙 이력은? 끌려간 사람과 남은 사람처럼, 형편만 보고 속으로 판단해 온 지체는?한 지체는 최고학력으로 증권에 대한 전문가이신데, 직장 명예퇴직하고 투자했는데 바닥까지 뚫었다. 시드기야가 죄에서 돌이키지 않고 눈을 뽑히지만 평안히 갔다고 하는 설교를 듣고 힘들었지만, 시드기야의 이야기가 많이 은혜로 다가왔다고 한다. 그러나, 돈이 생기면 또 할 것이라고 하신다. 돈 생기면 주식할 사람이라는 것이 인정이 되었다고 한다. 주식을 안하는 것은 더 이상 할 돈이 없고, 목장을 나가기 때문에 안한다고 한다. 목장에서 날마다 나누고 가야 여호와의 성전에 거할 수 있다. 이 집의 가장 큰 축복은 돈이 없다는 것이다. 똑똑한데 돈까지 있으면 지하실에 있다가 산골의 폐가에 들어가야할 것이다.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내가 하나님 자리에 놓고 있는 최고의 것이 성전이라고 하셨다. 그걸 무너뜨리고 던져버리겠다고 하셨다. 내가 하나님 자리에 놓고 있는 교제, 연애, 외모, 스펙 등 하나님 자리에 가있으면 그걸 다 던져버리겠다고 하신다. 2. 섬기던 그릇까지 가져가십니다. (13) 성전이 불탔으면 다 끝난 것만 같다. 시드기야 죽고, 성전 불탔는데 이제는 성전 안에 있던 기구들을 가져간다. 두 기둥과 바다와 받침들이 너무 커서 그냥 가져가기 힘드니 여호와의 성전을 위해 쓰임받던 것들이 깨져서 실려간다. 이 기둥들의 이름을 보면 마지막까지 회개가 안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걸 가져가는 장면에서도 여호와의 성전의 두 놋기둥, 놋바다라고 말씀하신다. 꺠지고 실려가도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택자는 하나님이 끝까지 책임지고 가져가신다. (14) 작은 기구들이 나오는데, 눈에 띄는 것도 아닌데 숟가락 이름까지 나오며 이것들을 섬길 때에 쓰는 그릇이라고 말씀하신다.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길 때 쓰던 그릇들, 이 섬김이 없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이 기구들을 가져가니 예배를 드릴 수가 없다. 철저히 지금 예배를 막는 것이다. 섬기던 자리가 통째로 없어지는 것이다. 교회는 이것들이 없으면 성전의 역할을 할 수 없다. 연초에는 목장 식구에게는 애틋하나 점점 연락도 뜸해진다. 목자의 한 마디가 사람을 살린다. 이걸 기억해야한다. 그런데 우리는 목원들을 섬기기에 어떤 목원은 전화를 하면 너무 싫어한다. 어떤 사람은 안하면 섭섭해한다. 굉장히 아주 컨트롤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십자가, 부지꺠 하나도 다 하나님이 섬기라고 주신 것이다. 큰 그릇, 작은 그릇 다 다름에도 그걸 들고 섬기는 것이 은혜이다. 나라가 위태로우면 이렇게 예배드리던 순간이 얼마나 그리워질지 예상이 안간다. 왜 그립냐면 이 땅에서 아무리 잘먹고 잘살아도 끝에는 돈이 있다. 돈은 이 땅에서 결국 없어질 것이지만 예배에서는 남을 위한 이타적 사역이 천국을 보여준다. 얼마나 그리울지 우리가 생각해야한다. 그런데, 아직도 끝이 아니다. (15) 그냥 다 가져갔다. 13절에 나온 받침과 놋바다에 손을 댄 것은 아하스왕 때 다매섹 방식 들여놓는다고 한 적이 이미 있다. 왜냐하면 앗수르가 너무 잘 사는 것 같으니 앗수르 방식으로 믿는다고 성전에다가 이따위 짓을 했다. 하나님 집에 있는 것을 자기 마음대로 옮긴 것이다. 우리도 바로 아하스이다. 하나님께 드린 것도, 드리기로 한 시간도, 드리기로 한 물질도 내가 쓰고 싶은 일이 생기면 슬그머니 내 쪽으로 바꾸기 시작한다. 그럴 떄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주일에 아이들 앞에 서는 일 등 그 자리에서 그냥 내 이름을 남기려고한다. 내가 얼마나 섬겼는지 셈을 한다. 내가 이만큼 했는데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슬퍼한다. 그 서운함으로 이제 지체를 밀어낸다. 이 때 가족끼리 한마음이 딱 되면 교회 너무 이상하다고, 초심 잃었다고 말을 한다. 근데 가족끼리 하나가 안되면 교회가 너무 옳다고, 기쁘다고 한다. 하나님을 섬기라고 주신 자리를 우리는 나를 자랑하는 자리로 써버린다. 은혜를 내 자랑으로 세운 내 죄인 것이다. 섬기는 자리에서 내 이름을 남기고 싶었다고 회개해야한다. 우리가 섬겨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살려주셔서 섬기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길 수 있었던 그 자리가 처음부터 은혜였다. 우리들이 성품으로 섬기려니 너무 힘들 수 있다. 그러니 이 말을 처음부터 들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역대하는 이 일을 하나님이 갈대아 왕에게 이스라엘을 넘기셨다고 하기에 그릇 하나까지 다 넘기신 것이다. 아무리 말씀하셔도 불신, 연애, 세상이 좋으니 하나님이 망하게 하시는 일을 허락하신다. 그래서 바벨론 포로 생활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예레미야에서는 하냐냐는 그래도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며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예레미야의 목 멍에를 돌려가며 이렇게 바벨론왕을 만들것이라고 하며 팬덤이 형성된다. 근데 예언은 성경을 잘 깨달아서 십자가를 잘 지게 하는 것이다. 그런 말씀 자체를 멸시하고 비웃고, 거짓선지자가 참 선지자를 비웃고 멸시한다. 우리가 참 선지자라면 누구의 욕을 먹어도 괜찮아야한다. 자기가 인정받으려고 예언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하냐냐가 예레미야를 하도 무시를 해대니 그냥 자기길을 예레미야가 갔다고 한다. 그렇게 자기 길을 가니 하냐냐에게 다시 가서 말하라고 하신다. 왜 거짓을 믿게 하냐고, 금년에 죽을 것이라고 하고 하냐냐는 두달후에 죽었다. 자기가 말한 예언조차도 보지 못하고 하냐냐는 죽었다. 백성은 이쯤되면 알아야 하지만 계속 안망한다로 세뇌가 되어 예레미야 말을 듣지 않았고, 그래서 예루살렘이 멸망했다. 이단들이 휴거 데이 정해놓고 그 날이 지나도 잘 살아서 넘어간 것이라며 세뇌를 한다. 이단이 안없어지는 것처럼 예레미야 28장에서 거짓 선지자이야기를 현실감 있게 해주고 있다. 한뼘인생에서 우리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잘 사는 것에 세뇌가 되어 돈이 인생의 목적이 되어 맹목적으로 삶을 살아간다. 십자가 지기 싫다고 하다간 내가 싫어하던 세상에 종살이를 하게 된다. 가치관의 변화가 정말 중요하다. 순종을 잘하면 뭘 뺏기고, 안끌려가고가 문제가 아닌 하나님의 주권을 깨닫고 하나님께 항복하고 회개하는 것이다. 이 한마디하면 순종하고 포로가 된다. 두려운 바벨론에 가보니 성전기구가 다 있는 것이다. 그리고 돌아올 때는 성전기구 다 가지고 돌아온다. 잠시 심판하고 가르치려는 사건에서 영원인줄 알고 울고 분다. 불태워진 성전을 다시 지을 수 있다. 이 땅을 주님의 시간만큼 쉬게 하시고 예배가 회복되게 하신다. 사로잡아 황폐하게 하신 것이 사실 가장 쉬게 하시고 예배를 회복하게 하신 것이다. 황무할 때 예배가 회복이 되는 것이다. 신앙이라는 것은 신앙고백, 즉 자발적으로 해야한다. 누구한테 인정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적용: 은혜로 받은 섬김의 자리를 내 자랑으로 삼아 사랑하지 못한 지체는? 내 수고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서운해했던 일 가운데 공동체 앞에 나눠야할 것은? 하나님께 드린 것 가운데, 내 것처럼 내 마음대로 옮겨 놓은 것은? 하냐냐의 예언과 예레미야의 예언 중 좋은 것은?성품이냐 믿음이냐 이야기를 하는데, 성품으로 믿는 것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건 생색을 필연적으로 불러일으킨다. 성품으로 믿다가 목자가 되면 너무 좋겠다고 보이는 사람들도 있지만, 목장에 너무 힘든 고난을 이야기하는 친구를 보면 정죄가 되고 체휼이 되기도 한다. 그런 사람일수록 집안이 하나가 되어있어서 뭐라뭐라 한다. 집안이 하나가 안되어있으면 목장이 너무 기쁘다. 교만은 폐망의 선봉이다. 남을 함부로 정죄하고, 판단해선 안된다. 3. 잃은 은혜를 헤아리게 하십니다. (16) 벌써 기둥과 받침돌을 가져갔는데, 이번에는 솔로몬이 여호와의 성전을 위해서 만들었다는 말까지 붙었다. 불탈때도, 깨질때도, 가져감을 당할 때도 여호와의 성전이란 말이 붙는다. 놋이 얼마나 많았는지 무게도 헤아릴 수 없었다고 한다. 열왕기상에서도 이 놋무게를 측량할 수 없었다고 한다. 만들 때도, 빼앗길 때도 많았지만 빼앗기고 나서야 얼마나 많이 주셨는지 깨닫게 하신다. 잃은 그 자리에서 은혜를 헤아리게 하신다. (17) 다 가져갔다고 끝이 아닌 또 기둥의 높이와 머리를 말하고 그물과 석류를 말한다. 없는 것까지 헤아리게 하니 받은게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 함께하는 지체, 주신 말씀 전부 다 하나님을 섬기라고 주신 것인데 우리는 다 잃어버리고 나니까 오직 나를 위하여 썼다는 것이다. 예배도 내 안전을 위하여, 섬김은 내 자랑을 위하여 쓴 것이다. 헤어려보니 내 결론은 죄라는 것이다. 잃고 나서야 그것이 깨달아졌다. 내가 얼마나 은혜였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성전이 무너졌으니 하나님께 나아갈 길이 끝났을까? 이미 솔로몬 때 기도를 했었다. 백성들이 사라잡혀 간 땅에서라도, 배반을 했을지라도 들어주시겠다고 기도를 하신다. 이렇게 기도했기에 시드기야에게 평안히 죽을 길을 허락하셨다고 하는데 평안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영역이 아니고서야 쓸 수 없는 말이다. 불신교제, 불신결혼에서는 쓰일 수 없는 말이다. 행복이라는 말초적인 단어가 있을 순 있으나, 오늘 권사님이 최고의 학벌과 미모와 최고의 신랑과 결혼을 했으나 지금 힘드신 것을 보면서 우리는 주님이 주신 평안을 누려야 한다. 그래서 무너져도 회개의 길은 닫히지 않았다. 포로에서 돌아온 뒤 다시 성전을 짓고 또 무너진다. 그래서 예수님은 훗날 이 성전을 헐라고,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킨다고 하신다. 유대인들은 어떻게 이걸 70년동안 만들었는데 어떻게 일으키냐고 묻는 말에 성전은 육체라고 말씀하신다. 성전은 이스라엘의 죄 때문에 무너졌지만 예수님은 죄가 없으심에도 자신을 희생하셔 죄를 속량하셨다. 우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가는 것이다. 하지만 혼자선 안된다. 벽돌 한장이 혼자 집이 될 순 없다. 서로 이어져야 집이 되는 것이다. 우리 삶에도 무너지는 날이 온다. 가정이 흔들리고, 몸이 흔들리고, 한순간에 실려나간다. 600년 된 숭례문이 무너질 줄 누가 알았을까? 그러나 받은 은혜를 어떻게 썼는지도 말씀 앞에서 헤아려 보는데까지 가는 것이다. 헤아려보니 결론은 내 죄이다. 그 죄를 들고 예수님께로 가야하는 것이다. 에베소서는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다고 한다. 내가 섬겨서 가까워진 것이 아닌, 가까워졌으니 섬기는 것이다. 내가 밀어냈던 지체에게 먼저 가는 것이다. 내가 밀쳐내서 미안하다고, 내 이름을 위해서가 아닌 하나님이 거하실 집을 위해서 섬기는 것이다. 하나님 집 밖에 있는 한 사람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적용: 받은 은혜를 헤아려볼 때, 하나님을 섬기라고 받고도 나를 위하여 쓴 것은? 함께 지어져 가야 할 지체 가운데, 내가 아직 마음을 닫아둔 지체는? 주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이번 주 내가 섬기며 복음을 전할 이웃의 이름은?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예루살렘을 무너뜨리신다고 한다. 내가 하나님 자리에 놓고 있는 것을 무너뜨리지 않으면 성전을 위해서 살 수 없다. 내가 성전이고 하나님이게 되기 떄문이다. 예배로 내 불순종을 덮을 순 없다. 그리고 섬기던 그릇까지 가져가신다. 망해서 쓸 돈도 없고 차비도 없는 것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섬기는 자리가 얼마나 귀한 줄 알아야한다. 입만 열면 시간탓, 핑계를 대며 그만하고 싶다고 하면 엄청난 바벨론이 기다리고 있다. 내 일이 부지께밖에 안되어도 나중에 잃은 은혜를 헤아리지 말고 지금 감사하면서 내 자랑을 위해서가 아닌 여호와의 성전을 위해서, 진노하심도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신 한량없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깨달아야한다. - 한주간 어떻게 살았는지A: 내일 이제 검사를 봄. B: 아버지 사건 때문에 힘들었는데 양교 덕분에 스스로 죄를 조금이나마 봤음. 아버지에게 사과하는 적용도 했음. C: 시험 준비하면서 별 일은 없었음. D: 학교 다니면서 일함. 아는 동생 차바꾸는거 도와주면서 본인도 차바꾸고 싶은 마음이 올라옴. E: 수능 30일 정도 남음. 많이 힘듦. - 기도제목A: 내일 검사받는데, 잘 받을 수 있도록. 시험기간이라 시험공부 열심히 할 수 있도록. B: 아버지에게 회개의 영이 부어질 수 있도록. 공부 잘할 수 있게. C: 짜증이 없어질 수 있도록. 시험공부 잘할 수 있도록. 절제하고 인내할 수 있도록.D: 시험준비 잘할 수 있도록. 허리 아픈데 안아플 수 있도록. E: 수능공부 잘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