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2025.10.19.(주일) 사도행전 16:26-32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김성우목사님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28.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30.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하나님 아버지, 거룩한 주일을 구별하여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주님, 이 시간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감사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지금 사도 바울은 2차 선교 여행, 2차 전도 여행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어디 있나요? 빌립보 감옥에 지금 갇혀 있죠.
지난주 말씀부터 우리가 한번 살펴보면 지난주에 1차 선교 여행이 끝이 났죠. 안디옥 교회에 와서. 그런데 1차 선교 여행이 끝이 나고 안디옥 교회를 섬기면서 사도 바울이 바나바에게 “우리가 선교했던 곳들을 한번 돌아보자” 합니다. 바나바가 “좋다”고 그래서 이제 바나바와 바울이 다시 떠나려고 하는데 큰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왜 싸움이 일어났습니까? (마가 때문에) 맞아요. 다들 큐티하시네요.
바나바가 자기의 조카 마가라고 하는 요한을 데리고 가자고 하니까 바울은 “안 된다. 마가는 (1차 전도여행 도중에) 돌아갔기 때문에 토로스 산맥이 높아서 돌아간 그는 같이 갈 수 없다” 싸움이 일어나서 갈라졌습니다. 그래서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떠나고,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온 실라를 데리고 수리아 안디옥 교회에서 길리기아 지방, 소아시아 쪽으로 떠나게 됩니다. 그렇게 떠난 게 이제 2차 전도 여행의 시작이에요.
지도를 한번 보여주시면,
바울은 (수리아) 안디옥 교회에서 지난주에 우리가 함께 봤던 더베를 지나서 루스드라로 갑니다. 이 루스드라 어떤 일이 있었죠? 사도 바울이 돌을 맞았잖아요. 여기서 거의 죽을 뻔했습니다. 그때 그 둘러선 제자들 가운데 누가 있었습니까? 디모데가 있었죠. 그런데 이번에 루스드라에 도착해서 그 디모데를 데리고 갑니다. 그래서 2차 선교 여행에 디모데가 동참하게 됩니다. 그리고 루스드라를 지나서 이고니온을 거쳐서 드로아에 이르죠. 드로아는 우리가 너무 잘 아는 ‘트로이’라는 지명입니다. 오디세우스, 오디세이아를 읽어보신 분들은 알지만 그 오디세우스 왕의 전략으로 트로이 목마를 이곳에 두고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뒀습니다.) 너무 유명하죠. 이 드로아에서 사도 바울이 환상을 보게 됩니다. 원래 이 드로아에서 사도 바울의 2차 선교 여행의 목표는 오른쪽으로 꺾어서 다시 아시아로 가는 것이었어요. 아시아로 가는 건데, 이 드로아에서 환상을 보게 됩니다. 어떤 환상입니까? 어떤 한 사람이 “와서 나를 도우라” 합니다. 아시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유럽으로 향하게 하십니다. 처음으로 복음이 유럽을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도착한 첫 도시가 네압볼리입니다. 네압볼리는 항구예요. 이 네압볼리를 지나서 도착한 마게도냐의 첫 성읍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빌립보’에 도착을 합니다. 이 빌립보에서 사도 바울이 누구를 만나죠? 자색 옷감 장사 루디아, 루디아를 만났죠. 빌립보에는 회당이 없죠. 유럽이라서 회당이 없었습니다. 빨래터에 가서 전도를 하다 보니까 루디아를 만나고, 그다음에 또 기도하러 가다 보니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납니다.
귀신 들린 여종이 쫓아오니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냅니다. 귀신을 쫓아내니까 여종은 구원을 받았을지 몰라도 이 여종을 통해서 이익을 얻던 주인들은 여종이 귀신을 빌려 점을 치지 못하니까 사도 바울과 실라를 옥에 가둬버려요.
빌립보라는 도시가 어떤 도시였냐면 굉장히 유명한 도시인데, 이 ‘빌립’이라는 이름은... 이 빌립보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 누군지 아시나요? 알렉산더 대왕입니다. 이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의 이름이 빌립(필리포스 2세)이에요. 이 빌립이 만든 도시입니다. 그리고 또 유명한 것은 우리 로마 황제 시저(ceaser, 율리우스 카이사르) 아시죠? 이 시저를 암살한 사람이 누구죠? 브루투스(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이 브루투스가 시저를 암살하고 도망간 곳이 이제 빌립보인데 이 빌립보에서 이 시저의 양아들 아우구스투스와 함께 한번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그리고 이 빌립보에서 브루투스에게 승리한 아우구스투스가 이 빌립보를 로마의 식민도시, 로마의 대표 도시로 만들어버리죠. 그래서 빌립보는 굉장히 화려하고 큰 도시였고, 현역 군인들과 퇴역 군인들이 많이 모여 있는 로마의 중심, 거점 도시였습니다. 이 빌립보를 관통하는 도로가 하나가 있는데 ‘에그나티아’ 도로(Via Egnatia)라고 로마에서 터키의 콘스탄티노플까지 이어지는, ‘로마의 대로’라고 하는 마차가 쌍방으로 다닐 수 있는 대리석 도로를 쫙 깔아버리죠. 이 도로가 빌립보를 관통합니다. 근데 이 빌립보에 이 군인들이 많고, 또 이런 도시이기 때문에 이제 감옥이 있었죠. 그 감옥에 (바울과 실라를) 넣어버립니다.
바울과 실라를 이제 깊은 옥에 집어넣었는데 어제 큐티 본문에 사도행전 16장 25절에 이렇게 기록돼 있습니다. 제가 읽으면,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깊은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가 이제 그 밤중에 찬송하고 기도를 했다. 그리고 이제 죄수들이 듣더라. 그리고 이제 오늘 본문이 시작됩니다.
오늘 본문, 우리가 오늘 제목으로 이제 제가 뽑았던 31절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굉장히 유명한 본문이죠. 이 말씀은 교회를 다녀봤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구절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좀 붙들었으면 좋겠어요. 이것이 내 말씀이라고 좀 붙들었으면 좋겠는데,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너와 네 집’. 여기서 ‘너’가 누구죠? 바울이 누구에게 이야기를 하는 거죠? 간수에게! ‘너’가 간수고 ‘네 집’은 간수의 집이에요. 그런데 간수와 간수의 집이 구원을 얻기 위해 제일 필요한 게 뭘까요? 이 간수는 예수에 대해 모르잖아요. 이 예수를 전달해 줄 바울이 풀려나는 겁니다. 나와 내 집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바울이 풀려나야 되죠. 바울이 풀려나서 이것을 전해줘야 믿음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바울이 풀려나기 위해서 하나님이 역사하기 시작하는데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오늘 좀 묵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나와 내 집이 구원을 얻기 위해 먼저 바울이 풀려나기 위해서는,
첫 번째로 큰 지진이 나야 합니다(26절).
26절이에요. 다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시작~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큰 지진이 나야 바울이 풀려납니다. 바울이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아까 제가 말씀드렸듯이 빌립보 도시라는 그 감옥에 있습니다.
사진 한번 보여주시면,
이 빌립보라는 도시가 아직도 잘 보존이 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빌립보 여행을 가면 이 감옥을 볼 수가 있는데 이 앞에서 막 사진도 찍죠. 이 감옥에 저기 앞을 문 안으로 이렇게 내려다보면 이 감옥이 그냥 1층 구조가 아니라 깊이 지하로 파져 있습니다. 그리고 깊은 곳에 지난번에 제가 설교했던 내용처럼 상층, 중층, 하층 하옥까지 있습니다. 이 깊은 곳에 지금 사도 바울이 갇혀 있는 것이죠. 그리고 이 감옥 뒤에는 이제 로마로 직통으로 연결되는 에그나티아 도로가 이렇게 쫙 있고, 이 감옥 주변에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 빌립보는 너무 강력한 도시였던 것이죠. 화려한 도시였고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이 화려함의 깊은 내면에는 누가 있죠? 바울과 실라가 갇혀 있는 거예요. 왜 가둬놨습니까? 필요 없기 때문에. 이들이 있으면 손해를 끼치기 때문에. 내게 손해가 되기 때문에 이들을 가둬버리는 것이죠. 아무도 드러나지 않도록. 나는 지금 화려한 도시의 삶을 살아야 하고, 승승장구해야 히고, 이 에그나티아 도로를 타고 로마까지 가서 내가 진출해야 하는데 이 바울과 실라는 불필요한 존재였던 것이죠. 그래서 상층 중층보다 더 깊은 하옥의 하층 감옥에 가둬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이렇게 살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세요. 내 삶에 기도와 찬양을 가둬버리지는 않는지, 하나님을 주일에만 가둬버리지는 않는지, 하나님을 내 생각으로 가둬버리지는 않는지. ‘이건 하나님도 못해.’ 하면서 말이죠. 내가 월요일 다시 삶을 살 때는 이 믿음과 기도와 찬양을 가둬버리는 거죠. 왜? 나에게 손해를 끼치기 때문에. 내가 그리스도인 것을 드러내면, 내가 믿는 자임을 드러내면 내 삶에 손해가 오기 때문에, 부끄럽기 때문에, 수치스럽기 때문에 가둬버리는 것입니다. 내 생각 안에 하나님을 가두는 것이죠. 기독교인인 것을 드러내면 손해를 보기에 우리는 주님을 숨깁니다. 공부해야 할 시간, 영업해야 할 시간, 이제 평일에 교회를 가고 목장을 가면 내 물질에 손해가 오고, 그리고 내 시간에 손해가 오고 내 감정에 손해가 오기 때문에 가둬버리죠. 그리고 주일에만 섬깁니다. 이성과 믿음을 나눠버리고 가둬버리는 것이죠.
저 역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냥 일상의 삶이 아니라 저도 사역자임에도 불구하고 이걸 가둬버리면서 사역을 했습니다. 어떻게 했냐면 이제 우리들교회에 오기 전에 제가 잠깐 사역을 쉴 때 그냥 일반 교회에 평신도로 다닐 때 평신도로 아내와 함께 다니는데 아내가 결혼하고 너무 힘들었던 거죠. 제 과거가 또 힘들었기 때문에. 아내가 너무 힘들어가지고 “우리 남편이 결혼 전에 이러이러 했어요” 하면서 그 교회의 어떤 사역자분하고 상담을 한 거예요. 그 사실을 제가 듣고 아내에게 막 화를 내면서 “지금 내 사역을 망칠 일이 있냐! 그런 얘기를 왜 하냐! 내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내가 하나님 앞에 돌이켰으면 됐지! 왜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냐?” 했어요. 에그나티아 도로를 지나서 이제는 사역을 탄탄대로로 달려야 하는데… 이것은 내가 가둬놨던 죄이고, 수치잖아요. 그러니까 아내에게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왜요? 내게 손해를 끼치기 때문에. 우리들교회에 와서도 당분간 결혼 전에 저의 음란했던 시절과 그리고 아버지가 감옥 가시고 알코올중독자며 어머니가 집을 떠난 사실을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깊이깊이 숨겨놨죠. 깊이깊이 숨겨놨어요.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이자 심리학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 우리, 너무 잘 알죠? 프로이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표현되지 않은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잠복해 있다가 더 파괴적인 방식으로 나타난다.”
우리가 표현하지 않는다고 이것이 사라지지 않는 거예요. 지하 깊숙한 곳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이 내가 간수가 되어서 이것을 꽁꽁 싸매고 지킨다고 드러나지 않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더 파괴적인 방식으로 드러난다는 겁니다. 우리에게 힘이 생기고 권력이 생길수록 우리의 감옥은 더 깊습니다. 그림자가 더 짙은 것이죠. 간수의 힘이 셀수록 문은 더 굳건해집니다. 가둔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가 나이가 들어서 이제 부모가 되고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되었을 때 어떤 식으로, (세례 간증하신 우리 집사님도 어느 순간에 이것이 확 폭발해 버렸다잖아요? ) 더 파괴적인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어떨 때? 우리 삶에 지진이 일어났을 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지진의 사건을 허락하십니다.
26절에 한번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에 갑자기 큰 지진을 허락하십니다. 그리고 큰 지진이 일어났을 때 묶여 있던 것, 내가 숨겼던 것, 내가 정말 감추어 놨던 것들이 풀리고 튀어나오는 거죠.
그런데 이 풀리고 튀어나오는 것들이 좋은 감정입니까? 아니에요. 지금 보면 그 하옥에는 흉악한 죄수들이 갇혀 있습니다. 내 안에 그 감정들, 불필요한 감정들, 내 안에 그 원망스러운 감정들이 지진이 일어났을 때 튀어나온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 지진은 믿는 자에게는 반드시 일어나야 합니다. 지진이 우리 인생의 큰 고난일 수도 있고, 아내가 떠나간 사건일 수도 있고, 해달별이 떨어진 사건일 수도 있고 실직의 사건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지진이 나니까 옥터가 움직이고 메인 것이 다 벗어졌다’ 이게 뭐냐 하면 전부 수동태예요. ‘옥터가 움직인다.’ ‘지진이 나다.’ ‘메인 것이 벗어졌다.’ 수동태라는 뜻은 하나님이 내 삶에 허락하셨다는 것. 내가 원해서 지진이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갑자기 우리 인생에 이런 일들이 찾아오는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건들이에요.
어떻습니까? 지난주 제가 설교했듯이 하나님의 나라가 나에게 임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요? 나의 나라가 무너집니다. 나의 나라가 무너지는 그것이 지진이에요. 결국은 내 삶에 갑자기 지진이 일어난 것은 지금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진다는 것이에요. 믿는 자에게는 이 지진이 계속 일어납니다. 갑자기 내 모든 뿌리가 흔들리는 일들이 찾아와요. 큰 지진의 사건은 멸망의 사건이 아니라 구원의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큰 지진을 통해서 우리를 흔들어 깨워 회개케 하시는 임재이기 때문입니다.
옥터가 움직이듯. 옥터가 움직인다는 것은 뭐죠? 내가 지금 딛고 있는 이 땅이 흔들린다는 거죠. 내 존재의 기초가 흔들린다는 것입니다. 내 존재의 기초까지 말씀으로 뒤흔들어 깊은 회개를 할 때 우리 삶의 모든 닫힌 문들이 구원을 향해서 활짝 열리게 됩니다. 옥터가 움직였다는 것은 기초가 흔들렸다는 거예요. 우리의 기초 우리의 가장 근본 내 삶의 가장 그 기초가 뭐죠? 죄입니다. 죄. 우리는 뼛속까지 죄인인 것이죠. ★우리는 죄에 갇혀 있습니다. 따라서 내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가 봐야 하는 것은 우리의 죄악을 봐야 되는 거예요.
갑자기 내 모든 것들이 올라오고 오픈되고 풀리고 모든 그 안에 있는 죄수들이 올라올 때, 우리가 주목해야 될 것은 죄를 봐야 되는 거예요. 지진 같은 사건에서 내가 무엇을 가두고 살았는지, 내 지하 밑바닥에 무엇이 있는지를 우리는 확인해야 됩니다.
그 속에 수많은 죄수들이 있었는데 또 누가 있죠? 바울과 실라가 있잖아요. 택자에게는 지진이 일어났을 때 그 수많은 올라오는 감정과 함께 뭐를 주목해야 하냐면 말씀을 주목해야 됩니다. 그 안에 말씀과 기도와 찬양이 있어요. 여기에서 ‘기도와 찬송’이라 번역되어 있는데(행 16:25) 이 찬송은 ‘찬미’입니다. 찬미가 뭐냐 하면 그냥 우리가 막 찬송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찬양하는 찬양’을 찬미라고 합니다. 시편이 그렇죠. 그래서 바울과 실라가 그 감옥 그 하층 감옥에서 기도도 말씀으로! 들었던 말씀으로 기도하고, 찬양도 들었던 말씀으로! ★결국은 내 삶을 뒤흔드는 내 모든 그 악한 감정들, 죄수 같은 그 감정들이 지진으로 인해 풀려나서 드러날 때! 말씀이 기억나야 된다는 것이죠! 말씀이 들려야 됩니다! 그러면 그 모든 감정을 하나님께서는 기도와 찬양으로 바꾸십니다. 이게 얼마나 놀라운지 몰라요.
지진이 일어났을 때, 우리의 밑에 뿌리, 그 해결되지 않은 감정들이 올라오죠. 우리는 그것을 주목해야 됩니다. ‘내가 왜 이런 것들이 올라왔는지’
제가 이제 호주 아웃리치를 갔을 때 어떤 사역자분께서 자신의 간증을 하면서 이런 사진을 보여주셨어요. 그러면서 자신의 삶을 간증하는데 자신은 어렸을 때 어머니 아버지에게 버림을 받아서 자기 안에 밑은, ‘감정의 그 하층 상층 중층 하층 그 가장 밑바닥에는 거절감(REJECTION,[리젝션])이 있다’ 이 거절의 감정이 있다. 제가 얼마나 공감이 됐는지 몰라요. 왜냐하면 저도 어머니가 저를 떠나갔을 때, 제가 느꼈던 감정은 거절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거절감이 그냥 숨겨두고 내가 죄수가 되어서 지킨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더라고요. 이분이 이렇게 고백을 하면서 이 거절감(REJECTION,[리젝션])이라는 것이 이제는 자라나서 FRUIT of REJECTION[프룻 오브 리젝션]. 이 거절감의 과일(열매)를 맺는데 그게 뭐죠?
첫 번째로 자신감 부족 (lack confidence) 그리고 거절에 대한 두려움(fear of being rejected) 그리고 반항(rebellious), 고집이 쎈 (Stubborn) 그리고 완고함(Hard heart) 또 낮은 자존감 (LOW self image) 이런 것들이 올라온다는 거죠. 그리고 자기에만 집중하는 (Focus only on self) 그리고 또 뭐가 있습니까? 음란(Lust).
계속 이제 거절당하는 그 상처가 내가 이것을 숨기는 게 아니라 지진이 일어날 때마다 이런 것들이 자라서 열매를 맺어 숨기면 숨길수록 지진이 아니죠. 숨기면 숨길수록 다른 방향에서 파괴적으로 드러난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거는 우리가 안에 있는 이것을 우리는 띵크(think)하지 않으면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알아차리지 못해요. 왜 알아차리지 못하냐면 이 하층 구조에 있는 내 감정을 내가 2차 방어 기제로 숨겨버립니다. ★2차 방어 감정으로 이걸 덮어버리기 때문에 우리가 깊이 띵크하지 않으면! 지진이 일어나지 않으면! 이걸 알아차리기가 힘들어요. 2차 방어 감정으로 덮어버리는데 이게 뭐죠? 방어 기제인 거죠. 유머로, 그리고 회피로, 동일시로. 그래서 “나 화났어!” 굉장히 분노를 많이 내는 분노 조절 장애가 있는 분들 “나 화났어” 이렇게 말하는 사람의 그 심층을 깊이 들어가 보면 어떤 마음이 있냐면 그 뿌리에는 뭐가 있냐면, ‘나는 두려워. 버려질까 봐 두려워. 버려질까 봐 무서워.’가 숨어 있습니다. 억압된 감정. 이 억압된 감정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알아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죠. 내가 이것을 간수처럼 지키고 있는 거죠. 지켜서 억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진 같은 사건을 통해서 이런 감정들이 풀려나는 것이죠.
이제 지진이 일어나서 이런 감정들이 풀려나면 어떻게 됩니까? 누군가를 원망하게 됩니다. 아까 우리 간증했던 우리 집사님은 그 안에 뭐가 있었죠? 복수심, 왕따 당했던 그 수치심, 그 복수심 이것이 9년 동안 이제 자라나는 거죠.
누군가를 원망하고 결국에는 하나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왜 나에게 이런 사건을 주셨나요?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셨나요?’ 그런데 아까 제가 설교했듯이 우리가 하나 기억해야 됩니다. 가장 하층에 또 누가 있다고요? 바울과 실라! 내 뿌리 깊은 곳에 이 죄수들만 있는 게 아니라 기도와 찬송과 말씀이 있는 거예요. 이 지진 같은 사건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야 돼요. 그리고 이 말씀 가운데 내 죄가 보이면 말씀이 들리는 겁니다. 이 말씀! 내 안에 내가 들었던 그리고 지금 내가 듣고 있는 이 말씀이 내 삶에 들리기만 한다면, 나의 이 수많은 죄수 같은 감정들이 어떻게 된다고요? 기도와 찬양으로 바뀌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께로 나아오기만 한다면! 이 말씀을 듣기만 한다면! 이게 진정한 풀림이고 열림입니다! 나의 그 수많은 감정들이 사라지는 게 아니에요. 죄수들이 사라지는 게 아니에요! 그것을 하나님이 기도와 찬양으로 바꿔버리는 거예요. 죄수인 줄 알았는데 수치인 줄 알았는데 어둠이며 멸망이며 죄악인 줄 알았는데 기도와 찬송으로 변화되는 것이죠. 이 일들을 통해서 이 일들을 행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간증이고, 이것이 기도와 찬송이에요.
저 역시 어머니가 떠났던 그 시간들이 정말로 저에게 수치스러운 시간들인 줄 알았는데, 하나님이 이 일을 통해서 말씀이 들리게 하시니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시니 기도와 찬양으로 바뀌어버리게 되는 것이죠. 이것이 해석입니다. 그래서 ★이 지진에서 우리가 해야 될 것은 더 말씀에 집중해야 되고, 이 말씀이 들리기 시작하면 내 삶의 지진이 일어나고, 이것이 해석되어질 때 이제 우리는 상대방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이 용서가 상대방을 무너뜨리는 또 다른 지진이 되는 것이죠. 이때 가족이 구원을 얻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지진은 내가 감추어 두었던 말씀이 내 밖으로 드러나는 거예요. 지진이 일어나니까 모든 것이 다 풀리고 열리고 드러나잖아요. 내가 감추어 두었던... 정말로 내가 믿기 싫었던 그 말씀이 이제는 내 삶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담임 목사님이 늘 말씀하셨죠. 뭐라고 말씀하셨냐면 “내가 하나 적용하면 하나 풀리고, 내가 하나 적용하면 하나 열린다.” 결국은 지진 같은 사건에서 들린 말씀으로 내가 적용할 때 하나가 풀리는 거예요. 내가 적용할 때 하나가 열리는 것입니다. 말씀이 내 삶에 임하는 것이 지진이에요. 왜냐하면 이 적용이 우리는 너무 싫잖아요. 적용하는 게 너무 싫어요. 내 모든 삶을 부정하면서 내가 힘을! 힘을! 내서 하는 것이 적용입니다. 목장에서 이거 적용하라고 하면 우리는 막 반발이 확 일어나요. 내 안에 있는 쓴 뿌리 감정들이 확 일어나잖아요.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적용을 할 때 에너지가 필요하죠. 이 에너지가 지진이에요. 적용도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적용도 수동태요. 말씀이 내게 임하니까 그것으로 내가 적용하는 겁니다.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용서도 수동태예요. 말씀이 내게 임하니까 수동태로 용서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 에너지가 뭘 태우냐면 내 안에 있는 죄를 태워요. 에너지는 뭔가를 태우잖아요. 내가 뭔가 하나 적용할수록 내 안에 죄가 타는 겁니다. 그러면서 내 삶의 지진이 임하면서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이죠. 너무 싫지만 정말로 우리가 적용하고, 그리고 하나님 말씀이 임했을 때 내가 깊은 회개의 눈물, 내 죄를 보면서 깊은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죠. 눈물은 내 모든 정서와 이성을 뒤흔들고 내 내면의 깊은 곳까지, 내 내면의 깊은 이 어두운 감정까지 기도와 찬양으로 변화시킵니다. 이것이 지진이에요.
적용 질문드립니다.
Q. 손해 볼까 봐 기독교인인 것을 숨기고 가두고 있나요?
Q. 내 내면 가장 깊숙한 곳에는 어떠한 감정이 자리 잡고 있나요? 그런 감정이 어떻게 형성 되었나요?
Q. 아직도 삼중으로 가둬놓고 지키며 고백하지 않는 연약함과 죄는 무엇인가요?
Q. 내가 결코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Q. 지금 내가 말씀으로 적용해야 될 것은 무엇인가요?
그러니 지진이 일어나서 내 이 수치와 내 숨기고 싶었던 것들이 드러나는 것이 축복입니다. 그러니까 들켜야 돼요. 강제 오픈 당해야 됩니다.^^ 저도 이제 아내가 이렇게 얘기를 해 가지고 강제 오픈을 당했잖아요. 근데 그 강제 오픈을 당했을 때 막 올라오면서 막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오픈되어졌을 때 이 말씀이 있으면 “맞다. 내가 그 사람이다. 맞다” 이렇게 인정하는 것이 내 삶에 지진이 일어나는 겁니다. 이 말씀으로 내 모든 감정들이 기도와 찬양으로 바뀌는 거예요. “맞다. 내가 그런 사람이다. 당신이 옳습니다.” 해야 되는 것이죠.
나와 내 집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이렇게 이제 다 풀려났을 때 이 바울이 어떻게 하느냐? 바울이 풀려나야 나와 내 집이 구원을 얻잖아요. 근데 풀려났을 때 바울이 지금 어떻게 하냐면 “여기 있습니다!” 이렇게 외쳐요.
두 번째, 여기 있어야 합니다(27-28절).
27절에서 28절입니다.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28.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지진이 일어나면 아까 첫 번째 대지에서 얘기했듯이 풀려 나버리죠. 죄수들이 풀려나니까, 내가 감당 못하는 감정들이 막 올라옵니다. 감당 못하는 감정들이 올라오니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죽으려고 하죠. 너무 수치스러워서. 이것이 들키면 이것이 드러나면 너무 수치스러워서. 저도 예전에 결혼 직전에 이런 모든 것들이 제가 드러났을 때, 너무 수치스러워서 어떻게 했냐면, “이거 제가 책임지고 죽겠습니다.” 하고 하나님 앞에서 이제 자살 시도를 했어요.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이 정말 자살을 막아주셨지만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이런 수치와 이런 지진 같은 사건이 일어나면 칼을 빼서 죽으려고 합니다. 회피하고, 내가 이걸 책임지고 내가 이것을 끝내려고 하는 것이죠. 내 손으로 끝내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끝내셔야 돼요. 내가 끝내서는 안 됩니다.
제가 중고등부 아이들을 섬기는데 우리 중고등부 아이들이 요즘 너무 힘이 듭니다. 우리가 예전에 생각했던 그런 학교가 아니에요. 우리 기성세대들은 기본적으로 ‘학교는 어떠어떠하다’라는 그런 믿음이 있는데 그 믿음조차 다 깨어진 곳이 지금 공교육의 현실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정말 절실히 기도해야 됩니다. 아이들이 느끼는 감정들이 뭐냐 하면 아이들에게 왕따당하고 친구들에게 배신당하고 뭔가가 거기에서 고립되면 모든 불안이 올라오는 거죠. 성적이 떨어지고 뭔가 하면 불안해서 이 모든 감정 내 안에 지진 같은 사건이 일어났을 때 내 안에 그 수치스러운 감정이 다 일어나면 우리 아이들이 하는 게 뭐냐 하면 칼을 듭니다. 칼을 들어서 자해합니다. 이 자해하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요. 그런데 이 자해를 하는 이유는 그 모든 불안함과 두려움과 그 수치스러운 감정들을 회피해서 죽으려고 자해하는 게 아니에요. 더 살고 싶어서!! 더 살고 싶어서 잘 살고 싶어서 자해를 하는데 이게 뭐냐 하면 그 불안한 감정보다 더 큰 고통을 자기에게 주면서 더 큰 고통을 회피해버리는 것이죠. 더 잘 살고 싶어서 자해하는 것이죠. 근데 자해하면 이제 또 그 고통 뒤에 어떤 쾌감이 있다고 합니다. 극심한 고통 뒤에 쾌감이 있는데 이 쾌감으로 도망쳐버리는 것이죠. 그렇게 칼을 들어서 정말 자해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그때 어떻게 해야 됩니까? 왕따당하고, 배신당하고, 성적이 떨어지고, 부모님이 갑자기 이혼하는 지진 같은 사건 앞에서 정말로 우리는 어찌 해야 됩니까? 28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28절 다 같이 시작~
28.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크게 소리 질러야 되는 거죠! 그 아이들을 향해서, 우리 목장 식구들을 향해서, 칼을 들고 인생의 절망 가운데! 지진이 일어난 이 사건 가운데! 모든 것이 풀려서 감정이 드러난 그 수치 가운데! 우리가 크게 소리 질러야 합니다. 뭐라고요? “우리가 다 여기 있다! 우리가 다 여기 있다!!” 이 크게 소리 질러야 된다 이 말은 막~~ 소리를 지른다는 게 아니에요. 그 사람이 들리는, 들을 수 있는 언어로 이야기하는, 그 사람의 귀에 들릴 수 있는 언어로 이야기를 한다는 겁니다. 여기에서 사도 바울은 왜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까? 사도 바울은 여전히 감옥 가운데 있고 간수는 저 밖에 있기 때문에. 자기는 하층 감옥에 있고 (간수는) 밖에 있기 때문에 크게 소리를 지르는 것이죠. 간수에게 들리게! 뭐라고 합니까? “우리 다 여기 있다.” 목장에서 공동체에서 “내가 너를 떠나지 않았다! 내가 너와 함께 있다!!” 크게 소리를 지르는 것입니다. 이 크게 소리를 지르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금 사도 바울이 “우리가 여기 있다!!”라는 그 여기가 어디예요? 감옥이에요. “우리가 여기 있다!!”라고 하는 그 자리가 어디입니까? 죄인의 자리입니다. 그러니까 간수에게 말하는 거예요. 내가 풀려나서~ 로마 황제의 권력을 얻어서~ 내가 뭔가 잘 돼서~ “여기 있다”가 아니라!! “여전히 내가 너와 같은 죄인이다. 나도 그랬다! 나도 그랬다!” 우리 아까 간증한 우리 집사님 “나도 그런 왕따를 당했다.” 우리 아이들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이죠. “우리가 여기 있다.” 할 때 간수가 칼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식으로 우리의 권력으로 뭔가를 해결해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죄인의 자리에 앉아서 “내가 이 죄인의 자리에 앉아 있다. 나도 예전에 살해자였고 박해자였고 수많은 사람을 죽였던 죄인이었다. 나도 그랬다!!” 이것을 외칠 때! 간수가 칼을 내려놓는 것이죠. 그리고 칼을 놓고 내려놓고 어떻게 됩니까? 그 가정에 복음이 임하는 것입니다. “내가 여기 있다.”
우리 주님이 그랬죠. 우리가 정말로 죽고 싶은 그 감정이 올라왔을 때 홀로 있을 때, 우리 주님이 저 천국에서 그냥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내려오셨어요. 점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점으로 내려오셔서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나를 우리 주님께서 껴안아 주셨죠. 지금 내 말씀이 내 삶에 해석된다는 것은 지금 들은 내가 이 말씀으로 과거의 나를 껴안아 주는 거예요. 이게 해석입니다. 우리 주님이 낮고 낮은 점의 모습으로 우리를 껴안아 주고 우리의 죄 대신에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이 정말 그 주님 앞에 눈물로 고백 되어진다면! 이제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다른 사람을 향해 나아가서 “우리가 여기 있다!!” 이야기해야 되는 거예요. 목장에 나아가서 “나도 똑같은 죄인이다.” 내가 풀려났던 그 수치와 감정들을 고백하고 그것을 고백할 때 이것이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변화되는 것이죠. 여전히 우리는 갇혀 있습니다. 외쳐야 됩니다!!
문이 열렸음에도 바울은 나가지 않아요. 우리는 사건만 해결돼버리면 떠나려고 하죠. 뭔가가 짜잔~하고 열리면 이제 더 이상 공동체에서 막 그런 힘든 소리는 듣기 싫어하죠.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됩니다. 내가 여전히 이 자리에 앉아서 다른 사람의 아픔을 껴안아 주는 이것이 사명이에요. 직면해야 됩니다.
저는 이러지 못했어요. 저는 정말로 이제 20대 때는 늘 그냥 한국을 떠났습니다. ‘이 지긋지긋한 한국은 내가 살기 싫다.’ 아버지는 여전히 노숙자로 술에 취해 있고, 어머니는 다른 가정에 계시니까 방학만 되면 해외로 떠났어요. 열리기만 하면 그냥 나갔습니다. “우리가 여기 있다!!”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사건을 겪고, 또 이제 어머니에게도 지진과 같은 이 사건이 온 것이죠. 늘 어머니 앞에도 잠깐, 1년에 한 번? 아니면 아예 안 갈 때도 있고 뵐 때면 그냥 떠나버렸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어느 날 치매에 걸리셨다는, 그리고 새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고 이사를 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저한테는 지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를 회피하면서도 어머니가 예쁘시고 너무 잘 사시는 게 저는 너무 좋았거든요. 자랑이었어요. 그래서 어머니에게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고백하지 않아도 어머니는 잘사시니까. 그런데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고 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때 이제 기억이 납니다. 처음에 어머니를 뵈러 갔어요. 어머니를 뵈러 가고 처음으로 어머니와 큐티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어머니께 “아들이 여기 있습니다.” 아들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죄를 지었는지 제 안에 꽁꽁... 어머니 앞에서는 꽁꽁 숨겨두었던 그 감정들을 고백했어요. 그러니 어머니가 그 고백을 들으시고 함께 예배를 드리시고 돌아가면서 기도하는데 그걸 고백하는 순간 제 인생의 정말 이렇게 많이 통곡했던 적이 없습니다. 이 울음이 지진처럼 터져 나오는데 엄청나게 어머니 앞에 통곡하는 거예요. 어머니 앞에 서면 저는 늘 고등학생 같아요. 이 통곡이 일어나서 마무리 기도를 이어갈 수가 없는 겁니다. 막 우는데 그때 아내랑 셋이서 예배를 드렸는데 아내는 옆에서 막 저를 휴지 갖다주면서 토닥거리면서 마치 이렇게 어린애 달래듯이 하는데... 그것도 막 수치스럽고 저는 이제 우는 게 수치라고 느꼈기 때문에. 어머니 앞에도 처음 울어본 것 같아요. 이 통곡을 하면서 정말 많이 울고 그렇게 하고 이제 돌아가면서 기도하는데 그때 어머니가 이 말씀을 듣고 이제 기도를 하는데 앞에 있는 이제 그 기도 내용은 거의 다 놓치고 이제 거의 마무리쯤에 ‘야! 이 역사적인 어머니의 기도를 내가 녹음해야겠다.’ 그래서 제가 어머니 기도를 조금 녹음해 봐서 편집을 좀 해 봤습니다. 한번 들어보시죠.
“나는 죄가 많아. 너희들한테 상처 준 것도 잘못한 거지. 근데 (가정을) 안 깰 수가 없었어. 어찌 효진이랑 성우한테 애들 키우면서 상처 주고 한 게... 성우 너한테 너무 미안한데... 네가 상처 많이 받았잖아. 효진이는 터키에 있었고, 너는 집에 있으면서. 그때 뭐 불도 안 들어온 데서 있었다며? 그거 지금 생각하니 너무 가슴이 아프다. 우리 성우... 목사 하는데.... 울지 마! 왜 울어? (눈물이 나니까 그렇지) 눈물이.. 옛날 생각 하니까? 다들 불쌍하고... 우리가 어려서는 너무 이쁘게 잘 키웠는데 왜 중간에 그래서.. 하나님이 알아서 해 주시려나...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굉장히 긴데 제가 막 너무 질질 짜는 게 수치스러워서 짧게 편집했습니다.
도스토옙스키의 “눈물은 이성의 벽이 무너지고 진짜 자아가 드러나는 내면의 지진”이라 말합니다. 눈물은 존재의 근원적인 흔들림입니다. 내면이 새로운 균형을 찾기 위해 재구성의 흔들림이죠. “내가 여기 있다!!” 외침으로 하나님 나라에 또 한 사람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지진이 일어났을 때, 그리고 그 가운데에 말씀이 기억날 때, 그리고 그 말씀 앞에 내가 회개의 눈물을 흘릴 때, 하나님은 그 순간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십니다. 나뿐만 아니라 한 사람이 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세요.
하나님께서는 이 현장에서 빌립보 교회를 세우십니다. 이 빌립보 교회는 우리 담임 목사님께서 아까 말씀하셨듯이 죄인들이 모인 곳이에요. 여기 감옥에 있던 죄수들, 내 안에 있는 그 불필요한 감정들, 내 안에 있는 수치들 그 모든 것들이 모여서 교회가 세워집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지 몰라요. 이게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교회가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이죠. 우리의 그 어두웠던 모든 내면들. 아오리스트 시제를 얘기하니까 되게 막 어렵다고들 그러는데, 그 나의 과거와 그 모든 아픔들을 주님은 하나의 상(이미지)으로 보시고, 그것을 하나하나 껴안아 주시면서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시고, 나를 통하여서 내 가족을 하나님의 교회로! 구원의 참여하는 사람으로 만드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나님이 반드시 세우실 것을 믿고 “하나님, 내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 내가 여기 있습니다. 주님, 이 지진의 사건, 이 감정들이 올라오는 이 순간에도 내가 이 집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아내, 하나님이 맡겨주신 남편, 하나님이 맡겨주신 자녀, 부모를 떠나지 않고! 주님, 문이 열리고 모든 것이 풀려났지만 내가 여기 있겠습니다. 아내의 자리, 남편의 자리에 있겠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한 자리를 결코 떠나지 않겠습니다!” 고백해야 되는 것이죠. 그리고 그 고백 위에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십니다.
적용 질문드립니다.
Q. 해결되면 어디로 떠나가고 싶나요?
Q. 지금 내가 여기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입니까?
Q. 내 삶의 지진이 기도와 찬양으로 변화되었나요?
(제가 1부 때와 다르게 2부 때 시간이 막 쫓겨 강박이 와가지고.. 막 빨리 이렇게 좀 설교를 하지만 잘 알아서 들으시기 바랍니다. 계속 시계를 보게 되네요.)
세 번째로는 다 구원을 얻습니다(30-32절).
오늘 말씀의 제목이죠. 오늘 본문이 저에게 주신 본문 같아요. “다 구원을 얻는다.” 정말 하나님이 저와 제 가정에 주신 말씀 같아요.
우리가 어떻게 “여기 있습니다” 할 수 있죠? 우리는 정말 뼛속까지 죄인이기 때문에 고난이 없으면 여기 있을 수 없습니다. 저도 그랬겠죠. 저도 고난이 없었다면 어머니, 아버지를 그 하층 감옥에 가둔 채, 이 기억으로 가둔 채 그냥 살았을 겁니다. 승승장구하면서. 여전히 내 삶에 고난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자리에 있는 것이죠. 그 고난이 축복입니다. 그리고 내가 그 고난으로 끝까지 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나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구원을 주세요. 이게 얼마나 놀라운지 몰라요! 이걸 좀 고백하고 싶습니다. 다 구원을 얻습니다. 30절에서 32절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30.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죄인의 모습인 바울. 그 죄인의 자리에 여전히 머물고 있는 사도 바울에게 이제 간수가 묻습니다. 우리는 뭔가가 내 수치를 드러내고, 뭔가 내가 이렇게 내 죄가 들키고 드러나면 우리는 굉장히 낮아지고 수치스럽다고 느끼는데 아니에요! 하나님이 그 사람을 높이십니다! 말씀 앞에 내 죄를 드러내고 말씀 앞에 고백한 그 사람은 하나님이 높이세요. 그러니 위에 있던 간수장이 하옥에 있던 바울에게 뭐라고 부릅니까? “선생들이여”라고 부릅니다. 호칭이 바뀌는 것이죠. 하나님이 높이세요. 우리의 모든 수치를 하나님이 가려주십니다. 이것이 복음이고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이에요. ‘선생’이라고 부르는데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31절에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 그런데 이 대답은 이 간수가 물었을 때 나오는 대답이죠.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제가 이 증인들 설교에서도 한번 얘기했는데 누군가 나에게 많은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증인이라는 거에요. “어떻게 그 삶에서 살았습니까? 어떻게 가정을 지켰습니까? 어떻게 떠나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그렇게 살았습니까?”
제가 지난주 수요일 날 이제 울림 웬즈데이 워십이 끝나고 이렇게 뒤로 가는데 예전에 저희 부부 목장에 부목자님이 또 저를 보면서, 이 부목자님은 저만 보면 껴안습니다. 이렇게 탁 껴안으면서 왜 껴안느냐면 저한테 지은 죄가 많아가지고. 목장에서 이제 술을 마시길래 제가 “술 마시지 마세요.” 목장에 와서 술을 드시는 거예요. “술 마시지 마세요” 이랬더니 “아 내가 이거 술병을 안 보이게 위장해서 왔는데 괜찮지 않냐?” “안 됩니다.” 이렇게 했더니 나가서 이제... 비 오는 거리였어요. 나가는 거예요. 이제 막 나가고 제가 이제 또 잡으러 갔죠. 잡으러 가서 제가 택시 태워서 보내드렸는데, 집에 가서 이제 저에게 입에 담을 수 없는 험난한 쌍욕의 문자를 저에게 보내는 겁니다. 아주 약한 레벨을 제가 하나 알려드리면 “교회에서 눈 뜨고 다니지 마라. 눈 뜨고 다니면 니 눈깔을 다 뽑아버리겠다.” 그래서 어? 굉장히 육두문자를 막 보내서 제가 집사님에게 “집사님, 눈 깔고 다니겠습니다. 목장만 나오세요. 깔고 다니겠습니다.” 이렇게 막 했는데 이 집사님이 결국 이제 저희 목장은 아니지만 목장에 계속 붙어 계셨던 거예요. 목장에 계속 붙어 계시면서 또 이제 몇 달 뒤에는 이제 담임 목사님 말씀을 듣고 회개해 가지고 또 저에게 사과를 하고 저도 너무 좋아서 이렇게 기뻐하는데 몇 달 뒤에는 또 한밤중에 저한테 전화가 와서 자기 자살하겠다고 욕조에 있는데 칼을 들고 있다고. 제가 전화드릴 수 있는 분이 목사님밖에 없다고 마지막이라고 하면서 저에게 전화를 주셨더라고요. 이분 말씀으로는 “목사님만이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입니다.” ^^;; 이렇게 저의 자랑을 좀 하자면~ 자랑이에요. 제가 자존감이 낮아가지고^^
결국은 그분이 칼을 내려놓고 자살 시도는 안 했지만 이분이 수요일날 딱 와 가지고... 그 뒤에도 이제 알코올 병원에도 가고... 정말 다른 목사님들이 정말 수고하셨거든요. 수많은 수고를 통해서 이분이 술을 완전히 끊게 된 겁니다. 이분 아는 분들은 기적이라고 해요. 그리고 지난주 수요일 날 저한테 “담배도 끊었습니다.” 이러는 거예요. 제가 그래서 질문을 했어요. “어떻게 그렇게?” 이 질문을 하게 되는 거죠!! 질문을!! 진짜 하나님의 역사예요. 이분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단 한 가지입니다. 제가 봤을 때 쭉 봤을 때 단 한 가지! 목장이에요. 목장이 이분을 둘러싸고 목장이 이분에게 “다 여기 있다! 네가 그럴지라도 내가 여기 있다!” 다 외쳐주니까. 그리고 또 누구냐 하면 그 옆에 있는 아내 집사님! 이 아내 집사님이 얼마나 고난을 겪었는지 알 거예요. 그렇게 목장이 “다 여기 있다”고 하고, 아내 집사가 엄마의 자리, 아내의 자리를 지키니! 내가 다 여기 있다 하니 이분이 변화된 것이죠. 칼을 내려놨습니다. 그리고 묻는 거죠.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이것이 정말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예요! 답은 하나입니다. 목장입니다! 교회입니다! 공동체예요! 사도 바울이 얘기하고 싶은 것은 여기에서 공동체가 세워진다는 거예요. 빌립보 교회가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내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이 구원은 개별입니다. ‘구원을 얻으리라’도 2인칭 단수예요. 구원을 얻는다. 내가 주 예수를 믿는 것도 내 믿음이고, 구원을 얻는 것도 나의 구원! 2인칭 단수인데, 왜 뒤에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사도 바울이 이야기했냐면 지난주에 말씀했듯이 내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내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면 어떻게 된다고요? 이 하나님의 나라가 나를 통해서 여전히 내가 예배의 자리를 지키고 목장을 지키는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된다는 거예요. 둘러싼 그 사람들이 바울이 되고! 둘러싼 그 사람들이 디모데가 되고! 하나님의 그 둘러싼 죄수들이 듣고! 그 죄수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진다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내 삶에 임한다는 거예요! 거기에는 나의 모든 아픔과 그 슬픔의 감정이 말씀이 들리는 시간이 돼야 된다는 겁니다.
우리에게 있는 이 고난이 얼마나 축복인지 몰라요. 제가 이 말씀을 읽으면서 너무 은혜를 받았던 것이 제 삶을 돌아보니 그렇더라고요. 저희 아버지가 칼을 들었을 때 제가 그 아버지의 손에 칼을 잡고 저를 찔렀습니다. 그때 이제 아버지가 힘을 줘서 탁 비켜서 옆으로 탁 갔던 기억이 있고, 저희 어머니가 저를 떠났을 때 어머니를 이제 제가 군대 가기 직전에 한 달 정도 같이 있었는데 어머니가 그때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아버지 말대로 바람을 피웠다 뭐 이런 얘기를 저에게 한 적은 없지만 어머니가 그때 그 밤에 집에서 나왔을 때 나올 수밖에 없었고 나왔을 때 죽으려고 했다. 2천만 원이 있었는데 누나 천만 원, 너 천만 원 주고 이젠 죽으려고 했다. 이렇게 고백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다 깨어지고, 저를 봐도 다 깨어지고 부서지고 정말 죄인들의 그런 박살난 가정이었는데... 이 놀랍지 않습니까?! 20년에 아버지께서 이제 아버지와 함께 예배를 드리고 아버지가 우리들교회에 오셨어요. 사진 한번 보여주시면,
이렇게 아버지가 창립 20주년 전도 축제의 기념일 때 오신 거예요. 또 넘겨주시면 이렇게 새가족실에 가서 이렇게 등록카드 쓰고 나눔도 하고. 이때 목장에 소속 돼 가지고 저희 아버지 병원에 목장 식구들이 두 번이나 심방을 왔습니다. 얼마나 아들도 못 가는 그곳에.
그리고 3년 뒤에 어머니가 우리들교회에 또 오셨어요. 사진 한번 보여주시죠.
이렇게 어머니와 함께, 담임목사님과 함께. 그렇죠. 진짜 하나님께 박수를 드려야 됩니다. 놀라운 분이세요. 그리고 또 보여주시죠. 활짝 웃는 사진. 정말 하나님께서는^^ 너무 웃었나요? 놀라운 분이세요.
우리의 모든 그 지하에 있는 그 감옥에 있는 그 감정들을 하나님 변화시키십니다. 하나님이 이 구원을 주세요. 언제? 내가 믿음으로 이 자리를 지킬 때. (이제 사진 좀 내려주시죠. 계속 띄워..^^)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지 모릅니다. 이제 새가족 전도 축제잖아요. 저희 어머니는 3월에 부활절 전도 축제 때 오셨는데 이제 곧 2~3주 뒤에 새가족 전도축제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이름을 적었으면 좋겠어요. “주님, 내가 이 자리를 지키겠습니다. 나와 내 집을 구원해 달라고.. 그리고 내 안에 있는 이 올라오는 감정들 가운데에서 내가 숨겨놨던 그 말씀.. 그 말씀을 듣겠습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겠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걸 제가 하나 말씀드리고 이제 말씀을 맺을 텐데, 더 놀라운 거는 이제 저희 어머니가 처음 제가 그렇게 아까 울면서 예배를 드리는 그 예배 드리기 전에 이제 커피숍에 갔는데 어머니를 이제 모시는데 어머니가 막 그때 이제 막 변도 묻으시고 했는데 그 어머니가 고백하는 게 죽고 싶다. 새 아버지가 너무 힘들게 한다는 거예요. 물론 어머니가 정신이 온전치 못해서 기억이 그럴 수도 있지만 그 새아버지 때문에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서 죽고 싶다고 하는데 제 마음이 막 억장이 무너지면서 어떤 마음이 들었냐면 ‘이 새아버지에 대한 이런 또 그런 마음도 올라오면서 어머니를 내가 데리고 와서 내가 모셔야겠다’ 이런 마음들이 올라오는데 또 저는 데릴사위잖아요. 이게 또 모실 수도 없고 어떻게 모셔야 되는지 막막하고 그러면서 이제 또 어머니를 막 찾아뵈려고 하니까 담임 목사님께서 이제 메일을 한 통을 저희 이런 걸 또 나누니까 담임 목사님이 메일을 주시는데 담임 목사님께서 ‘너 사역 그만두고 어머니한테 가라.’ 이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그때 제가 이 말씀 앞에 회개했습니다. ‘정말로 하나님께 어머니를 맡겨야 되는데 또 내가 인간적인 그 마음과 인간적인 그 사랑으로 대하려고 했구나. 정말 하나님께 맡겨야 되는 거구나.’ 그래서 목사님께 ‘죄송하다’고.. 정말 목사님 앞에도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하나님 앞에도 회개하면서 ‘하나님이 나를 사역자로 사명의 길로 이끄셨는데 또 내가 뒤를 돌아보고 또 내가 열리니까 또 딴 데로 가려고 하는구나. 문이 열리니까 또 다른 데로 가려고 하는구나.’ 회개하고 맡겼더니 정말 어머니를 지키던 그 간수 같은 새아버지가 오늘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아니하고 어머니와 함께 교회를 나가시는 겁니다. 놀랍지 않나요? 얼마 전에 추석 때 새아버지를 만났더니 새아버지가 그날 들었던 말씀을 저에게 막 얘기하시는 거예요. “아 우리 목사님 이런 얘기하셨다면서~ 좀 더 재미있었으면 좋겠다~” 이러면서.. 구역 예배도 나가시고 너무 놀랐어요. 그리고 어머니를 돌보는 권사님이 오셨는데 이 권사님 동생이 목사인 거예요. 이 권사님이 요양보호사로 돌보는데 어머니 집에 가면 어머니가 건강하실 때 했던 살림과 반찬보다 더 깨끗하고 깔끔하게 살림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붙여주시는 거예요. 그 어머니의 연약함과 제가 수치와 원망이라고 생각했던 그 시간을 통해서 새아버지를 구원하시고, 또 감사하게도 새아버지의 할머니를 제가 마지막에 가서 영접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새할머니의 장례까지 제가 기독교 장으로 인도를 했습니다. 이게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몰라요. “너와 내 집이 구원을 얻는다!” 이것을 제가 자랑하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저를 통해서 성도님들께 보여드리는 것 같아요.
정말로 이런 소망을 품으시고, 오늘 하루 내가 정말 포기했던 그 한 사람, 용서하지 못했던 그 한 사람에게 정말 이제는 작정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요즘에 어머니를 뵈면은 이제 아내가 이제 가끔씩 가는데 저는 사역 때문에 잘 못 가고 아내가 가끔씩 가는데 어머니를 만나면 새싹 큐티를 합니다. 한번 보여주시죠.
치매에 걸렸을 때는 새싹 큐티를 해야 돼요. 이게 사도행전 처음에 시작할 때 어머니가.. 이제 처음에 “예수님을 누구에게 전해야 됩니까?” 이제 어머니가 쓰시는 거예요. 누구를 썼냐면 “김흥곤, 지혜, 다연” 이렇게 쓴 거예요. 김흥곤은 저희 새아버지 이름이고, 지혜 다연이는 그 새아버지의 자녀들입니다. 제 이름은 없더라고요^^. 그 뒤에도 이렇게 하면서 교회, 이렇게 기도 쓰시고, “내 마음에 성령이 얼마나 충만한지 보세요” 하니까 빨간색으로 다 이렇게 색칠하시고. 정말 치매 걸리신 분들은 이 새싹 큐티가 진리입니다. 꼭 하세요. 가서 할 일 없으면 새싹 큐티 하시고 그냥 오시면 됩니다. 그리고 복음 전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놀라운 일을 하셨는지 저에게 간증하라고 이 자리에 서게 하신 것 같습니다.
정말로 칼을 빼고, 그 칼과, 피와, 고함과, 비명과, 싸움과, 모든 것들이 난무하고 깨어진 가정이었는데 저희 아내가 저를 보면서 “하나님 놀랍다” 얘기하더라고요. 정말 박살난 가정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수많은 지진을 통해서 내 모든 것이 드러나게 하시고, 수많은 지진을 통해서 그 속의 말씀과 찬양으로 변하게 하시고, 수많은 지진 속에서도 “내가 여기 있다!” 하니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십니다.
적용 질문드려요.
Q.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도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Q. 다가오는 전도축제때 주보편지를 쓰며 전하겠나요?
우리 새가족 전도 카드 이제 쓰시기 바래요. 지금부터 기도하셔야 됩니다. 제가 하나 자랑할 것은 한 번도 아버지를 위해서 빼놓고 기도한 적이 없고, 어머니 그 치매 사건을 이후로 이제 어머니 기도도 제가 그때부터 시작을 했습니다. 그전에는 제가 기도 안 했거든요. 부자고 잘 사시니까. 지금부터 이름을 적고 기도하셔야 돼요. 그리고 다가오는 전도축제 때 주보편지를 보내셔야 됩니다. 적용했으면 좋겠어요.
말씀 맺겠습니다.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약속하십니다. 지진을 일으키시죠. 내가 금지하고 있던, 간수가 되어서 내가 지키고 있던 모든 것들을 드러나게 하시고 내 속에 깊은 감정까지 하나님이 보게 하십니다. 그 가운데 뭘 보게 하시나요? 죄를 보게 하시죠. 그런데 그 죄 속에 뭐가 있나요? 말씀과 기도와 찬양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말씀과 기도 앞에 내가 회개하니 나의 모든 악한 그 쓴 뿌리의 감정까지 하나님이 찬양의 제목으로 바꿔 버리세요. 우리 하나님 너무나 놀랍습니다! 그럼에도 열린 가운데도 “내가 여기 있다” 하니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십니다. 이것을 우리가 전해야 하는 것이죠! 찬양하겠습니다.
♬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내 고생하는 것 옛 야곱이
돌베개 베고 잠 같습니다
꿈에도 소원이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천성에 가는 길 험하여도
생명길 되나니 은혜로다
천사 날 부르니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
기도제목 이 시간 우리가 들은 말씀 가지고 기도하겠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주님, 우리 가정을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우리가 정말 우리 가족의 이름을 기억하며 내가 주보에 써야 할 그 이름들을 기억하며! 하나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내가 이 예배의 자리, 목장의 자리, 그리고 주님의 말씀이 들리는 이 자리, 지진이 난 순간에도 이 자리를 지키겠사오니 주여!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우리 가정에 임한 그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일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빌립보 교회를 세워 주시옵소서. 우리 한번 주여 한 번 부르짖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큰 지진의 사건 앞에서 이번 주도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주여 내가 그저 할 수 있는 것은 이 공동체에 나오는 것뿐입니다. 주여, 이 지진의 사건 속에 올라오는 나의 수많은 감정들과 거절감과 수치심과 아버지, 정말로 주님을 원망하는 이 마음들 가운데에 기도와 찬양이 들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옳으시다고 고백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정말로 한 말씀이 들릴 때에 나의 모든 덮어두었던 감정들과 수치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순간들로 변화되는 은혜가 우리 가운데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어두웠던 제 삶을 하나님, 변화시켜 주신 그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 은혜가 우리들교회를 통하여서 이 나라로 흘러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수치와 어둠과 실패와 좌절과 분열이 이제는 빌립보 교회가 세워지는 초석이 되는 은혜가 나 한 사람의 회개로부터 시작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는 내 모든 아픔과 죄악들이 정말로 이 지진 가운데 보였을 때 회개의 눈물을 흘리길 원합니다. 이 회개를 통하여 내가 흔들리고 내 생각이 흔들리고, 내 가치관이 흔들리고 흔들림 가운데 내게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들리게 하여 주시고, 이런 내가 여전히 여기 있습니다. 고백하며 나아갈 때 나를 통하여 하나님 빌립보 교회가 세워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나라에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칼을 들고 죽을 수밖에 없는 한 생명이 살아나게 하시고, 칼을 들고 죽을 수밖에 없는 한 생명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주여, 생명을 폐하는 모든 악법들이 폐하여지게 하여 주옵시고, 이 나라가 생명을 지키는 나라가 되게 하시며, 이 생명,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는 나라로 다시 세워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하나님 우리들교회를 기억하시고 우리와 함께하여 주시며 참으로 하나님 나를 살려주시며 간수같이 칼을 빼고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인생이지만 한 말씀이 들려 “칼을 내려놓으라 우리가 다 여기 있다.” 한 말씀이 들려 살아난 그 은혜에 감격하여 주님께 귀한 예물을 드립니다. 하나님이 예물을 받으시고, 이 예물을 드린 모든 손길 가정, 직장, 하나님 아버지, 사업장과 아이디어와 프로젝트에 기름 부어 주옵시고, 이 예물이 흘러가는 곳곳마다 죽을 수밖에 없는 한 영혼, 한 영혼, 그 심령 가운데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하며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적용말씀 정리
나와 내 집이 구원을 얻기 위해 먼저 바울이 풀려나기 위해서는,
1. 큰 지진이 나야 합니다(26절).
Q. 손해 볼까 봐 기독교인인 것을 숨기고 가두고 있나요?
Q. 내 내면 가장 깊숙한 곳에는 어떠한 감정이 자리 잡고 있나요? 그런 감정이 어떻게 형성 되었나요?
Q. 아직도 삼중으로 가둬놓고 지키며 고백하지 않는 연약함과 죄는 무엇인가요?
Q. 내가 결코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Q. 지금 내가 말씀으로 적용해야 될 것은 무엇인가요?
2. 여기 있어야 합니다(27-28절).
Q. 해결되면 어디로 떠나가고 싶나요?
Q. 지금 내가 여기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입니까?
Q. 내 삶의 지진이 기도와 찬양으로 변화되었나요?
3. 다 구원을 얻습니다(30-32절).
Q.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도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Q. 다가오는 전도축제때 주보편지를 쓰며 전하겠나요?
*** 기도제목
A
1.믿는 자녀 자존감으로 회복 되어 사명 감당하고 기도 하도록
2.컴퓨터 준비, 잡코리아 회원 가입 로그인 하기, 이력서 질문 적어오기
B
1.큰지진이 날때 말씀 붙들고 목장에 잘 붙어 있도록
2.큰지진과 함께 구원이 온다는 것 알고 기쁨과 찬양 하도록
C
1.있어야 할 자리에 있고 하루를 살고 감사 찬양 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