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늘이 열리며 ( 행 10 : 9 - 16 )
오늘 제목은 하늘이 열리며 이다. 오늘 제목을 미리 보신 중고등 동역 목사님께서 하늘이 열리니 비가 오겠네요 연락이 왔다. 오늘 길에 비가 오더라구요. 우리가 열린 하늘을 닫으면 안 되죠.
사도행전 10장은 성경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장이다. 창세기부터 모든 신구약을 거쳐 사도행전 10장까지 온 내용과 이 이후의 내용은 완전히 달라진다. 타락 이후 하나님의 뜻은 온 천하 만민을 구원하는 것이었다. 그 꿈으로 말미암아 한 사람을 택하는데 바로 아브라함이다. 그런데 그 한 사람을 택해서 하나님이 영화롭게 하시고 한 민족을 이루셨는데 이 하나님의 꿈이 막혀버렸다.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세워진 유대민족이 자기들만 믿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에게서 딱 멈춰버렸다. 그런데 오늘 사도행전 10장이 이 멈춰버렸던 복음이 뻥 뚫린다. 우리 삶에도 멈춰있었던 복음이 뚫리기를 원한다.
성경을 보다보면 하늘이 열리다 라는 표현이 나온다. 신약시대 가장 큰 사건은 성령이 임하는 사건이다. 예수님 부활 이후 성령이 임하는 사건에도 하늘이 열린다.
하늘에서 성령이 하늘을 찢으시고 임하신다. 사도바울에게도 성령이 임하는 것도 사도행전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이 때에도 하늘이 열린다. 하늘로부터 빛이 비추는지라....
그래도 마지막 사건이 오늘 본문이다. 오늘 본문에도 하늘이 열리며... 표현된다. 우리 인생에도 하늘이 열리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우리 존경하는 담임목사님이 사역이 시작하실 때 에스겔 1장 1절 이 때에도 하늘이 열린다.
그럼 우리 에수님은 어떠신가요? 우리 예수님은 사역을 시작하실 때 뭔가가 확 열렸을까? 마태복음 3장 16절에 나와있다. 열려야한다. 취업의 문도 열려야하고 결혼의 문, 태아의 문도 열려야하고 수능이 얼마 안 남았다. 수능의 문, 합격의 문도 열려야하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막혔던 내 삶에 사명의 문이 열려 하늘의 문이 열려야한다.
하늘의 문이 열리는 것은 신비한 체험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 내게 들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 내게 들린다는 것은 하나님이 친히 내 삶에 개입하신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내 맘대로 살았으나 이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오늘 내가 큐티책을 폈을 때 말씀이 들리고 내 삶이 해석되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권능이다. 이것은 내 힘으로 여는 것이 아니다. 내 힘으로 말씀을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다. 이미 우리 주님께서 성령을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고 찢으셨다. 이미 하나님께서 하늘을 활짝 여셔서 그분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자 그리고 회개하는 자에게 믿는 모든 자에게 성령을 부어주신다. 그래서 하늘이 열린다는 것은 동참하는 것이다. 말씀이 나를 읽어 내려가는 것이다. 내 삶에 하늘이 열리기 위해서는
1. 기도가 열려야 합니다.
9절
10장 서두에 로마군인 백부장 고넬료가 등장한다. 이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구제를 많이 하던 자인데 이 고넬료가 기도하다가 환상 중에 베드로를 초청하라는 음성을 듣고 베드로에게 하인들을 보낸다. 이 때 베드로는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고 있다. 유대인들의 기도시간은ㅇ 아침, 정오, 저녁, 오후 4번 있었다. 베드로는 제 육시 즉 12시에 정해진 장소, 습관에 따라 기도하러 갔다. 예수님의 기도를 보면 항상 습관을 따라 올라가셨다라고 하셨다. 우리가 언제 기도하는가? 고난이 있을때 그러니 고난은 우리에게 기도훈련을 하게 하는 최고의 환경이다. 기도는 훈련이라 힘이 든다. 그래서 연습하고 훈련해야한다. 베드로가 기도하러 올라갔을 때 지붕으로 올라갔을때 어떤 일이 생기는가?
10-11절
기도하러 올라갔을 때에 우리는 꼭 만나야 할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 전에 하나님이 베드로를 만나주신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만남이다. 대화이다. 아마 뭐 좀 베드로가 배가 고팠을 거 같다. 정오가 되니 하나님이 그 상황에 맞게 만나주신다. 기도에 관해서는 수많은 설교와 가르침이 있다 중기학도 있고 .. 그런데 기도에 대해 수많은 책들, 간증들, 가르침이 있는데 기도에 제일 중요한 핵심은 무엇일까? 우리가 배웠던 제일 중요한 것은 하는 것이다. 하는게 제일 중요하다. 일단 하는 것이다. 내가 기도하는 것이 틀릴 수도 있고 기복적일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으나 해야한다. 내가 기도할줄몰라 가 아니라 하면 된다. 정해진 시간과 장소를 놓고.
군대 다녀오신 분들은 다 사격을 해보셨을 것이다. 처음 사격할 때 땅 쏘면서 영점 조절을 한다. 내가 보는 것과 총알이 날아가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을 맞추는 작업이 영점 조절이다. 어떻게 영점 조절을 하냐면 일단 쏜다. 이론, 총기 분해 필요없다. 일단 쏴서 이 총알이 어느정도 빗겨갔구나 쏴보아야 안다. 기도도 마찬가지이다. 사격을 해봐야 이 총알을 바르게 갈 수 있는 것처럼 우리도도 일단 해야한다. 그래야 이 기도가 뭐가 잘못됐는지 어디가 틀렸는지 하나님이 영점조절해주신다. 그날 말씀이 가이드라인, 가늠자, 가늠쇄가 되어서 내 기도를 조절해준다. 그래서 우리는 그날 말씀앞에 기도하는 연습을 해야한다. 우리는 또 이런 의문이 든다. 아니 하나님이 내 사정 모두 다 아시는데 기도할 필요가 있나? 그런 생각이 든다. 그래서 기도할 때 어떻게 기도하냐면 누워서 하시는 분이 있다. 하나님 땡큐 이러면서..저도 몇 번 그랬어요. 그리고 밥 먹을 때 눈치보면서 아멘 하고 먹는다. 이것은 기도에 대한 오해이다. C.S루이스의 책에 이런 내용이 있다. 고참 마귀가 조카 사단에게 어떻게 하면 크리스천을 넘어뜨릴 수 있는가 교육을 했다.사람들이 기도할 때 무릎을 꿇거나 앉아서 기도하기 보단 누워서 편하게 기도하게 해라 눈을 감고 무릎을 꿇는 대신 편안히 기도하게 해서 막연한 감정을 꾸게 해라 라고 가르친다. 우리는 이것에 반대로 하면 된다. 우리의 영과 육은 연결도어 있다.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께 아뢰는 시간이기도 하나 듣는 시간이다. 하나님은 우리 사정을 다 알지만 나는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 베드로도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있다. 이방인에게까지 나아가라는 뜻을 모른다. 그래서 어거스트는 기도는 내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시간, 대화하는 시간 그 뜻에 동참하는 시간이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누워서 땡큐를 하면 깊은 대화를 못한다. 그래서 정말 무릎을 꿇어서 예수님이 기도하신 것처럼 엘리야가 기도한 것처럼 해야한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다. 부부가 서로 막혀있을 때 뭐부터 하는가? 여보 미안해 이것부터 한다.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회개부터 해야한다. 이때 하늘이 열린다. 기도는 우리의 영혼이 살 수 있는 호흡이다. 하나님이 내게 능력주시는 통로이다. 이 때 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 때 대화가 확 시작된다. 우리가 오해했던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조정된다. 기도로 인해 막혀있던 내 삶의 은혜가 흐르기 시작한다 창세기부터 지금까지 막혀있었던 하나님의 뜻이 ㅇ기도가 열려야 뻥 뚫린다. 우리가 서두에 봤던 오순절 성령강림사건 때 무슨일이 있었는가? 성령이 임하기 전에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고 있었다.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될 때 사울이 눈이 멀었을 때 이때는 사울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몰랐기에 아나니아가 사울을 위해 기도해준다. 그리고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 하늘이 열렸다고 한다. 저도 참 기도 많이 했다. 7시간, 12시간기도 신학생 때는 산기도도 했다. 산기도 해보셨나요? 너무 무섭다. 산에 저 혼자 11시, 12시 올라가서 했다. 그리고 눈 올 때 눈밭을 헤쳐가면서 기도했다. 제가 기억나는 기도가 삼자 대면을 하고 머리를 빡빡 깎고 제 방에서 울면서 통곡하며 기도했다. 그리고 나 같은 죄인이 거룩한 강단에 서서 사역을 할 수 있겠느냐며 바울이 다소에서 사역을 3년 안했듯이 2년을 사역하지 않고 스파게티를 만들었다. 그렇게 하는데 주변에서 우리 스파게티 가게에 찾아왔다. 동기, 선배, 선교사님들 와서 사역을 시작하라고 하셨다. 2년 뒤 사역 시작해야하나 생각이 들어서 아내에게 사역을 할까? 했는데 아내는 기도하라고 했다. 아니 사역을 시작하려면 이력서를 써야하는데 아내는 그게 먼저가 아니라 기도를 하라고 했다. 저는 기도원에 가서 5일 금식을 했는데 금식할 때 하나님이 말씀을 주셨다. 이사야서 58장 금식에 대해서 설교하셨다. 5일 내내. 사역하는 사람들이 사역하기 전에 금식해야한다 이렇게 설교하셨다. 그렇게 금식을 하고 너무 배가 고파서 스파게티 가게로 다시 일하러 갔는데 거기에 제가 제일 존경하는 선배 목사님이 가게에 오셨다. 이분은 제가 졸업하고 한번도 만나뵌 적도 연락한 적도 없는데 굉장히 멀리 계셨던 그 분이 대뜸 김성우 목사 사역 시작하라고 하셨다. 그러면 제가 어디 교회로 갈까요 했더니 우리들교회 가보라고 하셨다. 이곳은 저희 교단도 아니고 어딘지도 몰랐는데 목사님께 형님이라면 우리들교회 지원하겠느냐 물으니 나는 안 한다 라고 하셨다. 그런데 너한테 꼭 필요한 교회라고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그 형님을 너무 신뢰하고 존경했기에, 저를 위해 굉장히 금식을 많이 해주셨기에 쓴 곳이 우리들교회였다. 그런데 같이 들어오신 목사님께서 제 이력서를 보더니 이런 형편없는 이력서로 어떻게 들어왔냐고 하셨다. 이력서로 들어온 것이 아니다. 기도로. 베드로가 기도하러 올라갔을 때 만나러 왔다. 제가 기도하러 올라갔을 때 하나님이 다시 살기 시작해주셨다. 이 교회 와서 아버지가 살아나고 어머니가 살아나고 저의 눈의 비늘같은 것이 벗겨지고 기도해야한다. 기도가 열려야한다. 정말 우리의 기도시간이 많이 있다. 노력이 필요하다. 산기도 눈밭기도 기도하러 몸을 움직여야 한다. 몸과 영과 육은 연결되어 있다. 우리들교회에 기도하는 좋은 모임이 많이 생겼다. 월요큐티모임, 수요예배 때 기도하러 올라오셔야 한다. 기도할 때 내가 간구하는 것보다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더 크고 놀라운 일을 준비하고 계신다.그리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이 맞아야 한다.
적용
내가 기도제목은 무엇인가요? 기도 시간과 장소가 정해져있나요?
주님이 다 아신다 하며 누워서 기도하고 있지는 않나요?
어떤 문이 열리길 기도하나요?
인생에서 정말 간절히 기도를 드려 본 때는 언제인가요?
2. 생각이 열려야 합니다.
10-14절
기도하러 올라갔는데 금식을 했던 거 같다.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베드로는 3-5천명 뿐만 아니라 중풍병자 애니아도 살리는 등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보니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 배가 고픈 베드로에게 하나님이 환상을 보여주신다.
11절
이런 환상을 보여주신다. 이 그릇 안에 뭔가 있다고 하신다. 하나님이 내게 대단한 것을 주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12절
이 말이 뭐냐면 이 안에 못먹는 것들 땅에 있는 네발 짐승, 기는 것, 공중에 나는 것이 있었다. 레위기 11장에 부정한 짐승들에 대한 표현이 나와있는데 이것은 부정하니 먹지말라~ 낙타, 너구리, 토끼, 돼지, 바퀴벌레, 두더지, 쥐, 카멜레온 이런 것들이 있었다. 독수리, 솔개, 말똥가리, 올빼미, 황새, 백로, 박쥐 등등.... 이런 것들이 들어있다. 그러면서 곧이어
13절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고 하신다. 여기서 잡다는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 제물을 드릴 때 쓰는 단어이다.
14절
베드로가 깜짝 놀란다. 하나님 한 번도 먹어본 적 없고 먹을 수도 없고 부정한 것을 접해본 적도 없다고 한다.차라리 먹고 싶은 것을 잔뜩 차려주시고 베드로 먹지 마 하는게 잠깐 이해가 될텐데 먹지도 못할 것들을 잔뜩 주시면서 먹어라 이 때 우리는 어떤 생각이 드나요? 하나님 실수하신 거 아닌가? 그 보자기 말고 다른 보자기입니다 하나님 뭔가 잘못하신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아니나 다를까 베드로도 똑같이 반응한다.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는 신약성경에 딱 2번 쓰인다. 오늘 본문과 이 일을 회상할 때 쓰인다. 부정을 강조하고 강조할 때 쓰인다. 마치 이 단어가 예수님이 십자가 지러 가실 때 베드로가 가로막으며 주님 그리 마옵소서 자신의 생각으로 십자가를 가로막았을 때를 생각나게 한다. 나의 편견으로 십자가를 가로 막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생각은 주님 당신이 맞고 옳습니다 까지 가야한다. 베드로는 사마리아까지는 괜찮았다. 반은 유대인이니까. 그리고 무두장이 시몬집에 머물고 있는데 이들은 백정과 같이 소외받고 무시받는 사람인데 이 사람들도 유대인이니 이해가 된다. 그런데 이방인까지는 주님 그럴 수 없나이다 하나님 틀렸어요 왜 틀렸는가? 속되지 않고 깨끗하지 않은 것을 내가 어떻게 먹어요 한다. 속되고 깨끗하지 않는다 이것은 육체적, 윤리적, 생각까지 더러운 것을 뜻한다. 모든 영역에서 부정하고 더럽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음식은 하늘로부터 왔다고 한다. 하나님이 특별히 고르고 고르고 골라서 내게 주신 것이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주신 것을 나는 속되고 더럽다 깨끗하지 못하다 라고 한다. 이것을 먹으라고 명령하신 하나님 당신은 속되고 더러운 것을 주신 분이고 이것을 내게 먹으라고 하시는 분입니다 말한다.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15절
내가 깨끗하다는 것을 네가 더럽다고 속되고 부정하다 하지말라 하신다. 속되고 더럽다 깨끗하다 거룩하다는 누가 결정하는가? 내가 결정하나요? 하나님이 결정하신다. 옳고 그름, ,선과 악은 하나님이 결정하시고 하늘로부터 말씀하시는건데 베드로가 결정하고 판단한다. 자기의 생각과 편견으로 결정한다. 내가 결정하는 태도 주님 이것은 더럽고 속됩니다 이 태도가 선악과 까지 올라간다. 이것이 깨어져야한다. 이 생각, 이 고정관념, 이 편견이 깨어져야한다. 이 생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이 막혀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깨어질 때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간다. 내가 맞다는 생각 옳다는 생각 저것은 더럽다는 생각이 깨어져야 한다. 하나님 내가 틀렸습니다. 당신이 옳습니다 여기까지 우리의 생각이 열려야 한다.
여러분, 이 생각이 굉장히 중요하다. 선악과를 따먹을 때 생각해보세요. 내 생각이 달라짐으로 달라진다. 뇌과학자들, 인지 과학자들도 이 말을 많이 한다.
죄가 어디로부터 왔는가? 하와가 뱀과 대화하는데 뱀이 이거 먹어봐 그것이 내 생각으로 들어왔다. 결국 죄는 생각으로부터 들어오고 나의 인지가 먼저 타락하는 것이다 그러니 채팅을 하면 안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외도할 때 생각으로부터 흘러들어온다. 뱀이 말한다. 이것을 먹어봐 하고.
수옙때 키 큰 분이 설교하셨잖아요. 뱀이 있다면 잡아 드시잖아요. 그런데 이 뱀과 대화를 한다. 생각에서부터 타락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생각이 아담에게로 흘러간다. 당신도 한 번 먹어봐. 선악은 행위 이전에 먼저 우리 인식에서부터 타락이 시작된다. 그러니 내 생각이 변화되는 것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이 변화되는 것이 나의 거룩이 시작된다. 하나님이 깨끗하다 한 것을 내가 속되다 하지 않는 이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번주 굉장히 재밌는 일이 있었다. 목장탐방을 매주 하고 있는데 가려고 했던 목장이 캔슬이 되어서 급하게 다른 목장을 가게 됐는데 새벽설교에 에디오피아 내시 만나는 본문으로 새벽설교를 했는데 거기 목자님이 에디오피아 전대사이셨다. 너무 재밌어서 어휴 에디오피아 고위 관직자시네요 하니 권찰님이 에디오피아 고자라고 하셨다. 이분이 외무고시를 합격하고 대사를 하시다가 직분을 내려놓으셨는데 음란의 사건에 연루되어서 큰 일이 있으셨다. 권찰님이 남편이 꺠끗하고 아름다운 음식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부정해서 못먹습니다 하고 이혼을 해야하는데 이 가정을 지키셨다. 그래서 이 목자님이 권찰을 아프게 한 것이 제일 후회가 되고 미안하고 가정을 지켜줘서 고맙다고 나누셨다.
그런데 우리 생각으로는 내 생각에 부정하면 버려야 한다 하며 버린다.
올 초에 목장탐방했을 때 부목자분이 교회오빠로서 교회에서 바람을 피고 들켰음에도 적반하장으로 따로 나와서 같이 사셨다. 아내분이 이혼을 해야하는 것이 정상인데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이 하나되게 한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의말씀으로 지키셨다.
제가 결혼하게 된 것도 저희 아내가 저를 택한 것은 아내가 어렸을 때 아내의 아버지가 다른 살림으로 집을 나갔는데 그 상처가 있었다고 한다. 신학생이니 이 남자는 바람피지 않을 것이다 거룩할 것이다 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아니니 결혼 전에 엄청난 원망을 쏟아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뜨리고 잡아먹으라고 하신다.
저 역시 마찬가지이다. 제 인생의 저의 아버지는 보자기로 다시 싸서 하나님께 다시 드리고 싶었다. 어떻게 이런 아버지, 어머니가 내 인생에 있을 수 있는가? 했으나 하나님은 이것을 깨끗하다라고 하신다. 하나님이 꺠끗하게 한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고 하신다. 나의 옳고 그름, 이것을 하나님의 옳고 그름으로 나아가는 것 이것이 생각이 열리는 것이다. 이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분은 폭력적이다. 저것은 틀렸으니 끊어버리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하나님은 네 눈에는 부정해보여도 내가 깨끗하다고 하는 것을 부정해보이지 말라고 하신다.
이 속되다고 하는 것을 하나님은 보자기에 싸서 주신다.
저도 추석선물로 꿀을 어머니께 드리려고 예쁜 보자기에 싸서 드렸다. 우리도 선물을 보자기에 싸서 준다. 이 속되고 부정한 것이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신다. 물론 보자기를 펼 때 우리는 깜짝 놀라지만.
그런데 서두에 잡아 먹으라의 잡아는 제사를 드릴 때 잡아라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제사는 나를 거룩하게 할 때 하나님과의 나와의 관계를 회복시킬 때 드린다. 그러니 보자기에 싸서 주신 것이 나를 거룩하게 해서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연결시킨다는 것이 내게 주신 부정한 것이라고 하신다. 생각이 열려야 한다. 무두장이 시몬은 괜찮은데 이방인은 안 된다 편견이 깨져야 한다. 귀를 막는 순간 편견이 고개를 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동과 서 좌와 우 수백년 수천년 골이 깊다. 그러나 나의 옳음이 앞서면 안된다. 이렇게 되면 폭력이 되고 나의 의가 된다. 그런데 나의 의가 하나님 앞에 부정한 것을 알아야 한다. 저 보자기에 쌓여 있는 것이 내가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 내 모습이구나 하나님이 보실 때에 내가 저 보자기 안에 쌓여 있는 부정한 짐승이구나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이 그런 나를 제거하셨나요? 폭력으로 다스리셨나요? 나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싸셨다. 그리고 하늘로 올릴 때는 보자기로 예쁘게 싸셔서 올려주셨다. 내가 부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 그 때 내 생각과 편견이 깨어질 때 창세기부터 막혀있던 은혜가 다시 흐르게 된다.
적용
결코 용납하지 못하는 나의 죄는?
부정하고 더럽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이것만큼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아직도 깨어지지 않는 내 편견은 무엇입니까?
3. 사랑이 열려야 합니다.
15-16절
베드로의 생각이 언제 깨어지고 열리는가?
보자기가 하늘에 내려와 열려지고 이 때도 아직 변화되지 않는데 이것이 세번 반복되었을 때 깨어지고 열린다. 베드로와 3번은 참 끈질긴 관계이다. 예수님을 세번 부인하고 예수님이 3번 고백하게 하신다. 반복되는 상황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우리 주님이 그 보자기를 들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강제로 먹이지 않으신다. 주님이 부활하셨을 때 베드로가 고기를 잡고 있을 때 멀리서 베드로를 부른다. 주님이 떡과 물고기를 베드로에게 주시며 베드로에게 베드로야, 네가 다른 사람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신다. 베드로는 주님 그렇습니다 주님이 아십니다 하신다. 한 번 더 물으시고 또 물으신다. 이 때는 베드로가 근심하여 대답하되 그러하나이다 한다. 세번 오르락내리락할 때 이 주님의 물음이 기억났을 것이다. 네가 나를 사랑하면 나를 믿어봐라....
네가 부정하다고 한 이것이 너를 거룩하게 할 선물이다 나를 믿어봐라 하신다. 베드로가 이 사랑을 깨닫게 되고 다시 이사랑을 기억하니 사랑은 기억인데 내 생각이 무너진다. 그 사랑이 무엇인가? 지금내게 허락하신 이 시간이 심판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기 위한 축복, 선물임을 알게 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임이 깨달아져야 한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할 때 이 사랑이 깨달아진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이 부정한 음식이 내가 부정하다고 생각했던 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저 음식이 부정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세번 부인했던 내가 부정한 사람이었습니다. 내 죄가 깨달아지니 하나님의 사랑이 깨달아졌습니다 내 죄의 깊이가 깨달아지는만큼 하나님의 사랑이 깨달아진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저주하며 부인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정죄하지 않으시고 보혈로 보자기로 싸셔서 그 부정한 것들을 다 싸셔서 하늘로 올라가신다. 하나님이 깨끗하다고 한 것이 누가 부정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저 죄 있어요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보자기로 싸신다. 하나님이 허락한 내 옆사람 그 한 사람을 용납해ㅑ한다. 정말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그 사람까지 용납할 때 막혀있던 은혜가 뚫리며 흐르기 시작한다.
어떤 집사님이 중학생 아들을 한 번 교회에 데려오기 위해 하나님이 우리를 기다리셨던 것처럼 엘리베이터 오르락 내리락 하는데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그런데 이 아이는 천천히 양말 신고 옷입고...이것을 40분 기다린다고 하신다. 누구야 함께 가자 나와라 하지만 엘베 앞에서 40분을 기다린다고 하신다. 이것이 주님의 사랑이다. 우리를 기다리신다. 우리의 생각이 열릴 때까지 이 가정을 지킬 때까지 기다리신다. 이것이 우리에게 선물임을 알기 때문에.
환상이 보이는 곳은 욥바이다. 요나 선지자는 이방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해서 이 욥바에서 다시스로 도망간다. 그런데 우리 주님 베드로에게 한 번 더 도전을 주신다. 베드로는 이것을 깨닫고 고넬료 집에 가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고넬료 집에 성령이 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베드로는 이 환상을 다시 상기하며 나누고 유대인들에게도 이방인에게도 하나님의 복음이 흘러가야한다 정리를 해준다. 그렇게 해주니 힘을 얻어 하나님의 말씀이 전 세계에 뻗어나간다. 그리고 이 베드로로 말미암아 우리도 이 말씀을 받게 된다. 내 생각이 깨어지는 그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행하신다.
적용
나는 언제 사랑을 느끼나요? 내 사랑의 언어는 무엇인가요?
내가 오래 참고 기다려야 할 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내가 결코 기다리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기도제목 :
a :
1. 하나님 습관처럼이 아니라 은혜로 말씀을 붙잡고, 주님과 동행하는 큐티가 되게 해주세요.
2. 하나님 가족의 건강을 지켜주시는 분이 주님이심을 믿습니다. 고통 중에도 은혜와 평안으로 채워 주세요.
3. 하나님 사업의 성패보다 주님 앞에서 충실히 서는 종이 되게 하시고, 일터가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통로가 되게 해주세요.
4. 하나님 저의 물질적 목표가 주님의 뜻 안에서만 이루어지길 원합니다. 물질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지키며 증거하는 도구가 되게 해주세요.
5. 하나님 앞으로의 저의 연애와 결혼을 주님께 맡겨드립니다. 제 외로움이나 욕심이 아니라, 주님의 뜻 안에서 준비된 만남을 허락하시고 서로를 거룩하게 세워가는 동반자가 되게 해주세요.
6. 하나님 사람의 시선에서 벗어나 오직 주님의 인정과 기쁨을 구하는 자로 살게 해주시요.
7. 하나님 허무한 위안이 아니라 주님의 임재에서 참된 기쁨과 만족을 누리게 해주세요.
8. 하나니 제 힘으로 변화하려는 교만을 내려놓고, 주님이 주인 되셔서 제 삶을 새롭게 해주세요.
9. 하나님 두려움 대신 주님을 신뢰하게 하시고, 제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선한 길임을 믿게 해주세요.
10. 하나님 세상과 사람에게 구걸하던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 마음조차 은혜로 바꾸셔서 오직 주님께만 구하는 자 되게 해주세요.
또한 저와 주변 모두에게도 은혜로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세요.
11. 하나님 첫째 아들처럼 제 힘으로 의를 이루려 하고, 둘째 아들처럼 편안함만을 찾는 교만한 자입다. 죄인인 저를 위해 순종하신 예수님처럼 순종하는 은혜내려주세요.
b :
1. 매일 아침 큐티할 수 있도록
2. 하루하루 주님을 의지하며 최선을 다하여 살 수 있도록
3. 자기전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를 꼭 할 수 있도록.
c :
1. 신교제,신결혼
2. 직장에 순종하며 잘 나아갈수있도록
3. 가족의 구원을 위해 기도할수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