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살아계신 하나님 ( 왕하 19 : 1 - 7 )
우리를 구원하옵소서 하는 기도가 절로 나오는 현실을 살고 있다. 정치, 경제가 점점 더 깊은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것만 같다. 사흘 전 복지차관이 결혼하지 않고도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가겠다고 했다. 이렇게 가치관이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이런 때 택자인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오늘 히스기야처럼 우리를 구원하옵소서 간절히 기도해야겠다. 우리를 구원하옵소서 이 기도를 어떻게 드려야하는지 히스기야의 기도를 통해 오늘 생각해보겠다.
1. 반복되는 조롱과 위협 때문입니다.
8-9절
지난 주 1-7절부터 보면 연설로 이스라엘을 모두 압도한 랍사게의 연설때문에 히스기야는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두르고 신하들에게도 그렇게 해서 이사야에게 보냈다. 왜 보냈을까? 대신들이 협상의 달인이라 보냈을까? 기도대장이라 보냈을까? 우리는 이렇게 넘어질 일이 왔지만 너무 다 두려워하고 있으니 말씀으로 꾸짖음을 받고 처방 받고자 보냈다고 생각한다. 그랬더니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을 대신하는 말로 하나님을 모욕하는 말로 두려워하지말라 그를 거짓영의 소문으로 칼에 죽게 하리라고 구체적인 처방을 해주셨다. 말씀 들으려고 보냈으니 말씀을 들었고 이 말씀을 붙잡고 기도한다. 우리가 말씀 없으면 환경만 붙잡고 울며불며 붙잡고 기도한다고 응답받는 것이 아니다. 예레미야 큐티를 보면 계속 경고하시고 돌아오라고 하신다. 말씀이 없으면 환경만 붙잡고 울며불며 기도한다고 기도시간을 그렇게 쓰게 된다. 그러니까 예레미야가 그 때 전쟁이 일어나는 중에 이것을 쓴 것인데 그렇게 경고를 하시면서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가 구절마다 나온다. 기도는 절대 말씀 붙잡고 하라는 것이다. 그 때는 이사야가 이렇게 성경이 많을때가 아니니 하나님 대신으로 말씀 역할을 했다. 그래서 말씀을 듣고 현실로 돌아온다. 랍사게가 돌아가다 듣고 앗수르 왕의 말을 듣고 다시 돌아온 것이 소문에 의한 것임을 어렴풋이 느껴진다. 그때 산헤립왕이 립나의 반란을 진압하는 중이었다. 앗수르의 목표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그 일대를 정복하고 애굽까지 정복하는 것이었다. 그 때 앗수르왕에게 소문이 들린다. 당시 애굽까지 통치하던 남쪽 구스의 왕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이었다. 아무리 천하무적 앗수르 군대라고 해도 전통강국인 애굽과 싸우려면 긴장해서 대비해야 한다. 그런데 예루살렘을 점령하지 못했다. 그 당시 앗수르는 적어도 유다의 46개 성읍을 다 파괴하고 정복했었다. 그래서 유다는 예루살렘 성읍 하나만 달랑 남은 위기상황인데 마지막 잎새처럼 예루살렘 성 하나가 안 넘어왔다.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는 병력을 빨리 빼서 애굽군과 싸워야했다. 그래서 산헤립은 다시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냈다.
10절
산헤립이 이번에는 편지를 보냈다. 먼저 보내는 랍사게를 통해 말로 전했는데 이번에는 글로 전한다. 말은 들을때 엄청난 일도 금세 잊혀진다. 말은 순간이다. 말 자체는 담아둘 수가 없다. 그러나 글은 언제든 볼 수 있게 남긴다. 그래서 역사에는 좋은 말 많이 한 사람보다는 좋은 글 남긴 사람이 많이 남다. 저도 큐티를 날마다 썼기에 이렇게 여러분을 만날 수 있게 됐다. 여러분은 차에서 큐티듣고 큐티하셨다고 하면 안 된다. 반드시 본문을 놓고 쓰면서 하셔야한다. 그래야 귀에 남는다.
그런데 편지의 내용이 나쁜 내용이면 더 괴롭다. 위협과 조롱의 말을 듣는게 힘들지만 편지로 딱 써서 주면 버리지만 않으면 죽을 때까지 남는다. 편지에 제일 먼저 쓴 내용은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앗수르 왕 손에 넘기지 않겠다고 하는 것을 너희들이 믿는 모양인데 믿지마 속지마 한다. 원어로 직역하면 하나님이 속이게 하지 말아 그거 다 사기야 이다. 랍사게를 통해 말로 할 때는 히스기야가 속이게 하지 말라며 히스기야를 욕했는데 이제는 하나님을 사기꾼 취급한다. 하나님을 믿는 생각과 가치관과 선택의 근간을 엄청 조롱하고 비웃는다. 조롱이 다가 아니다. 위협도 있다.
11절
지금까지 앗수르가 진멸한 왕들을 민족들을 열거하며 가슴에 줄줄이 단 훈장을 자랑한다. 유다보다 훨씬 더 강한 나라들도 앗수르에 다 멸망당했는데 네까짓게 어떻게 구원을 받겠느냐 망한 나라 왕들 찾을 수 있어? 한다. 그 나라마다 다 섞어놨기에 저 사마리아에 혼혈인들만 남게 된 것을 보라고 한다. 이미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망한 것을 유다가 봤다. 말로만 듣는 것보다 직접 본 것은 상상이 다른 두려움이다. 후에 그 혼혈족이 된 사마리아는 예수님 당시까지도 너무너무 무시 받는 민족이 됐다. 현실이 이런데 유다 네가 감히 대 앗수르에게 맞서려고 해? 이런데도 항복 안하고 버틸거냐? 한다.
여러분 오늘 아무리 힘든 문제를 가지고 왔다고 해도 이 문제만큼 힘들겠나요? 같은 조롱과 위협이 계속 반복되고 반복될수록 점점 더 커진다. 말로만 듣던 조롱과 위협이 박자가 되어 돌아오고 쫓아온다. 가정안에서도 가정 밖에서도 우리 속을 긁어놓고 조롱하는 위협의 사건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런데 바로 이렇게 힘든 상황에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하는가? 성경을 보니까 우리를 구원하옵소서 기도하라고 한다. 성경은 답을 준다. 힘들지 않으면 구원이 왜 필요하겠는가? 바랄 구원이 뭐가 있겠는가? 구원이 필요없으면 하나님도 찾지 않는다. 찾아오셔도 무시한다. 그러면 그것이 축복인가? 잠깐 행복하다가 영원히 고통을 당할텐데 어떻게 축복이겠는가? 우리 삶이 반복되는 조롱과 위협으로 갈수록 심해지기에 구원이 필요하고 구원을 하실 하나님을 찾게 된다. 오늘 우리가 당하는 조롱과 위협의 사건은 절망의 이유가 아니다. 그런 고난은 우리를 구원하옵소서 의 기도의 이유가 된다.
적용 어떤 조롱과 위협을 당하고 있나요?
반복적으로 점점 더 심하게 당해서 절망합니까? 구원에 더욱 간절해집니까?
언제 어떻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나눔을 하는데 남자들이 듣기 싫은 말이
아내가 약을 더 늘려보는게 어때?
설교 시간에 아내가 저건 네 얘기야,
반대되는 의견을 하면 너나 잘해, 애들 좀 그만 야단쳐 이런 이야기를 해도 예쁜 말로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하면 안 된다. 저 얘기는 나도 그렇구 당신 얘기 아닐까? 해야한다. 남편한테 어따 대도 네 얘기야 하면 안 된다. 질서가 있잖아요. 여자는 남편에게 너 이딴 이야기 쓰시면 안 된다. 애들이 보고 배우는게 진짜 없다.나이가 어려도 남편에게는 꼭 당신이라고 호칭을 예쁘게 써주세요. 그런 얘기를 한다고 그래도 당신이나 잘하세요 이렇게라도 써보세요. 너나 잘해가 뭐예요. 반말 찍찍 거리고 그러지 마세요. 그러면 친근감이 없어요 친근감 좋아하시네 연애할때나 그렇지만 결혼하면 여보 당신 꼭 쓰셔야 합니다.
너무 힘들게 살던 엄마가 아이를 서울대에 보냈는데 그 아이가 반복되는 스토커에게 힘들어서 학교를 못간다고 하니 경찰에 신고하면 되는데 우리들교회 오지 않으면 그것을 죄악시 여기는 거에요. 너무 쉬운 것을 못하는게 있더라구요.
2.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도드려야 합니다.
14-15절
히스기야가 이제 수많은 글을 받아보았을텐데 아마 이 앗수르왕의 편지가 가장 무겁고 무서운 글이었을 것이다. 너무너무 수치스럽고 분했을 것이다. 들고 있기도 너무 힘들고 인생의 무게가 너무 무겁고 힘들어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은데 히스기야는 그렇지 않는다. 내 인생에서 힘들고 절망하고 떠나고 사라지고 이혼하고 죽는 것은 절대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온 집안을 내려가며 더 큰 조롱과 위협이 반복될 뿐이다. 나무 십자가 피하면 철 십자가가 온다고 했다. 히스기야는 주저앉는 대신 성전으로 또 올라간다. 왜죠? 이미 이사야에게 말씀을 받았기 때문이다. 옷을 찢지 않는다. 더욱 말씀의 자리, 예배의 자리로 올라간다. 그리고 그 무거운 편지 쳐다보기도 싫은 편지 당장이라도불태우고 싶은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놓는다. 다 하나님께 보여드리고 맡기는 것이다. 성전에 와서 목장예배처럼 다 터놓고 말씀으로 해석받으며 그 말씀가지고 여호와 앞에서 기도하는 것이다. 응답받는 것은 내 환경에서 말씀 붙잡고 기도하는 것이기에 큐티하면서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모른다. 말씀을 붙잡는 것이 무엇일까
예레미야 30장 11절, 17절
주님은 너를 고쳐주리라 멸망시키지 아니하리라 하신다. 그런데 이 끝에는 무엇이 있는가? 그러나 내가 법에 따라 징계할 것이요 라고 하신다. 그러나 고쳐주지만 멸망시키지 않겠지만 참서니자인 예레미야 다음 말은 택자는 법에 따라 징계하시고 결코 무죄한 자로 여기지 않는다고 하신다. 값을 치뤄서 고쳐주신다고 하신다.위로만 하는 것이 고쳐주는 것이 아니라고 하신다. 이런 말씀을 붙잡고 기도해야 한다. 거짓선지자 스마야는 예레미야가 포로로 잡혀가서 집짓고 살아야한다고 하니 우리는 멸망하지 않는다고 포로로 잡혀가지 않는다고 하며 예레미야를 책망하라고 한다. 거짓선지자가 그렇게 말을 하니 예레미야 19장 32절에 스마야의 자손을 벌하리니 지금은 안 나타나는 것 같아도 그런 거짓예언을 하는 스마야의 자손을 벌하니 이 백성중에....말씀 붙잡는 것이 이런 것이다. 오늘의 주제가 라헬의 통곡이 있고 에브라임의 탄식이 있다. 다 믿음이 연약하고 멍에에 익숙하지 못하니 징벌을 내리셨고 하신다. 우리는 라헬과 에브라임이 요셉 후손이잖아요. 왜 라헬이 통곡하냐 그것이 멍에에 익숙하지 못해서 이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사니까 그래도 주님은 깊이 생각하시고 창자가 들끓어 불쌍히 여기신다고 하신다. 이 세상에 말씀이 깨달아지는 비결은 탓을 하지 않는 것이다. 탓을 하지 않으면 말씀이 깨달아지더라구요. 죽자 살자 성경공부하고 열심히 하고 큐티를 해도 깨달아지지 않는다. 이것이 이정표가 되는 삶이다. 여러분 이번 주간에 이런 말씀을 붙잡고 기도해야한다. 우린 만인 제사장 시대에 거짓선지자처럼 나만의 사생활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지 마세요. 모든 것이 일원론이다. 경건주의는 아니지만 거짓선지자처럼 죄만 짓는 모습을 보게 되잖아요. 상대가 아무리 악을 행해도 믿는 우리는 법과 약속을 지켜야합니다. 할렐루야. 믿는 우리는 법을 지켜야해요. 사울부터 시드기야까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에 42명의 임금이 있었다. 그 중에서 명시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기록한 왕이 다윗 솔로몬 히스기야 있다. 역대기까지 포함하면 므낫세도 있다. 그 가장 악한 왕이 회개하고 기도했으니 이것이 구속사이다. 다른 왕에게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서 하나님께기도한 왕은 단 3명이다. 기도라는 말은 너무 익숙하고 기도해야하는 것은 다 알지만 실제로 기도하는 사람은 드물다. 왕같은 사람은 더욱 더 안 한다. 왕 같은 사람은 가진게 많으니 기도를 안 한다. 동성애자들 중에 굉장히 부자가 많다고 한다. 왕같은 사람일수록 더 기도 안 한다. 왜그럴까? 기도를 받으시는 그 유일한 대상을 알지 못하기에. 성경에 죄라고 했는데 회개가 안 된다. 누구에게 기도하느냐가 너무 중요하다.
15절
그룹은 하나님 곁에 있는 천사이다. 세상 왕이 왕좌에 좌정한다면 하나님은 하늘 위 천사 위에 좌정하신다는 것이다. 진짜 왕의 권능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높으신 하나님이 바로 이스라엘 하나님여호와라는 고백이다. 이 하나님이 천하 만국의 홀로 하나님이라고 하신다. 천지를 만드셨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원탑이고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우리가 믿고 무릎을 꿇을 존재는 엄청난 군대를 끌고 와 우리를 조롱하고 위협하는 산헤립이 아닌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뿐이다.
16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날마다 들으라 하시고 보아라 하신다. 그러니 히스기야도 하나님께 들으시옵소서 보시옵소서 들은대로 기도한다. 그냥 듣는 것이 아니고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너무너무 간절하게 기도한다. 이 기가막힌 사연을 조롱과 위협이 가득한 이 편지를 여호와여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부르짖는다. 제발 좀 직접 들으시고 보시옵소서 하면서 부르짖는다. 이 조롱은 나만을 향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것이 아닌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한 비방이니 주님의 귀로 들으시고 주님의 눈으로 봐주시라고 한다.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눈을 떠서 보소서 하신다.저 높은 곳에 좌정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멀리 계신 하나님이 아니시다. 우리의 사정도 들으시고 말도 들으시고 신음과 생각과감정 심지어 우리의 무의식의 소리까지 들으신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기에 우리의 행동도 눈빛도 몸짓도 움직임까지 보신다. 높으신 하나님은 동시에 우리와 가장 가까이 계신 하나님 우리 안에 거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내 생각도 내 마음도 본다고 하시니 여러분은 두렵고 부담스러우신가요? 하나님께 들키면 안 되서 두려우세요 아니면 내 생각과 마음까지 아시는 하나님이 계셔서 평안입니까?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직접 보고 듣고 책임져주신다. 우리가 받은 특권이다. 우리 인생이 깊고 깊은 구덩이에 빠진듯한 이 상황에서 우리를 구원하옵소서 간절히 부르짖을 수 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보고 듣고 계시기에. 그러니 나를 구원할 구원자를 찾아 이리저리 방황할 필요가 없다. 어떤 사건에서도 기도하고 들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시기에 이분께 기도할 때 우리를 건지시는 구원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말씀을 붙잡고 이런 기도를 해야한다. 이 현실만 붙잡고 기도하면 공허하다.
적용
사람들 앞에 펼쳐 놓지 못하는 수치스러운 사건은?
해결을 위해 누구를(무엇을)찾아 방황했나요?
하나님께서 귀로 들으셨고 눈으로 보셨음을 믿습니까?
이제 하나님 앞에 펼쳐 놓고 기도하겠습니까?
이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니면 자기 얘기를 할 수 없다. 한 목자님의 나눔입니다. 저는 사람들의 외침에 주눅이 들어요 자신이 초라할 때도 있고요 새벽에 탑차를 끌고 출근해서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 일을 하니 사람들 눈에 내 모습이 어떨까 주눅이 든다, 우리들교회에서 주신 장로라는 직분이 가벼운 것이 아닌데 세상의 주눅이 되었다, 웬디덩같은 죄인이라고 인정이 되고 묵상이 된다고 나누셨다. 이분은 아주 배운 것, 가진 것 없어도 구속사를 늘 쫙 꿰고 계시기에 사람들을 살리신다. 이것이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증거이다. 우리가 거짓선지자가 난무하는 이 상황에서 그 후손은 살아남지 못한다고 한다. 의인의 후손은 걸식함을 보지 못한다고 하셨는데 이 구속사를 깨달아야 한다.
3. 영원 구원이 목적입니다.
17-18절
기도를 들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고백하고 기도할 수 밖에 없는 힘든 상황을 들어달라고 간구한 히스기야는 이어서 자기 앞에 놓인 문제를 인정하고 직면하는 기도를 드린다. 히스기야가 과연이라는 말을 한다. 앗수르 왕의 조롱과 위협에 대해서 나는 하나님 믿는다 너는 뭐냐 이러지 않고 앗수르 왕이 잘한거 다 맞다 맞다 당신이 다 물리쳤다 나는 따라갈 수 없다 인정을 했다. 세상 여러 나라를 황폐하게 할 만큼 강한나라라는 것도 맞고 힘든 신들을 던질만큼 쎄다는 것을 맞다고 한다. 닥친 문제를 직면하지 못하는 것은 두려움 때문인 거 같다. 우리들교회에서 어릴 때부터 자란 아이들이 하나님의 말을 쓰는 지도자들이 나오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연약하기 때문에 직면하지 못하고 회피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오히려 자아가 강하기에 직면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이 이 문제때문에 힘든 나보다 나아야 한다는 굳센 신념이 있기에 그 문제를 바라보지 못한다. 두려운 것은 문제 자체보다는 문제 때문에 상처와 피해를 받을 자신의 모습이다. 결국 내가 머물고 싶은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을 다 피하고 싶은 것이다.내가 처한 현실, 빠져있는 구덩이를 직시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기도의 자리가 가장 안전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미 내 생각 내 마음가지 보신 하나님께서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눈을 열어 봐주시기 때문이다. 내 힘이 아닌 나와 함께 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힘입어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앗수르 왕이 물리친 것이 맞으니 맞다고 인정해야한다. 네가 이기면 다야! 하나님도 안 믿는게 하면 안 된다. 믿음은 상식을 넘어서면 안 된다. 상식이 있어야 한다. 상식이 있어야 초월적인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주시는 것이다. 자신을 직면하게 되면서 이어서 히스기야는 매우 중요한 기도를 드린다.
18절 후반-19절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사람의 손으로 직접 만든 우상과는 다르다고 앗수르 왕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가서 기도한다. 상대방에게 직접 가서 얘기하면 안 됩니다. 강한 앗수르가 조롱하고 위협하는 문제를 직면하고 인정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다. 앗수르가 강할 수 있었던 것은 앗수르 자신의 능력뿐만 아니라 자신의 약함 때문이었다. 이방 나라들이 믿는 것이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닌 나무와 돌로 만든 우상이었기에 앗수르를 막지 못하고 진멸당했다는 것이다.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모든 것을 펼쳐놓고 기도하니 사태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는 것이다. 구속사를 모르면 사태 분별을 못한다. 그러곤 히스기야는 드디어 우리 하나님여호와여 부르짖는다.
드디어 19절에 이사야에게 기도부탁할 때는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했다가 자신이 성전에 올라가 문제의 편지를 펴놓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고백하며 자기 문제를 인정하며 우리를 구원하옵소서 기도하니 이사야의 하나님께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가 되심을 저절로 고백하게 된다. 우리가 기도할 줄 몰라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몰라도 예배의 자리에 올라가 함께 기도드리고 목장에 나가 지체와 같은 나눔을 듣다보고 나누면 우리 하나님 여호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되는 것과 같다. 한 번의 예배와 한 번의 목장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되는 것이다. 이 짧은 구절에 히스기야가 드디어 우리 하나님 여호와가 4번이나 나온다. 핵심은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이제까지 일어난 일을 보고 들으셨으니 저 무서운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주옵소서 구원하여주옵소서 간절히 기도한다. 왜 하나님이 자기 손으로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주셔야할까 ? 그 목적이 무엇일까?
우리를 구원하시면 여호와가 하나님이라는 것이 아니고요. 구원하시면 하나님이다 이딴 이야기가 아니라 이사야를 통해 말씀을 주신 하나님이 이제 말씀을 이루시기에 홀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목요일 큐티 예레미야 30장도 내 말을 기록하라고 하셨다. 야곱의 환난가운데 철필로 기록한 것처럼 내가 이 고난이 있어서 큐티를 기록했더니 70년 뒤에 이루어진 것처럼 저도 수십년전에 쓴 큐티가 이루어졌다. 그러니 오늘 말씀만큼 기록하고 라헬의 통곡과 에브라임의 탄식을 통해 멍에가 익숙하지 않기에 징계를 받기에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주 여호와가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됐다. 여호와여 여호와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저절로 나오는 것이다. 왜 구원하셔야 하는가? 모든 나라 백성이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시고 구원자이심을 확실히 깨달아 알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산헤립 조차도 온 천하에 하나님이 신이심을 믿게 되도록 우리를 구원하소서 기도해야 한다. 이쪽 저쪽 미워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전부 홀로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해야한다. 우리 사명의 목적은 오직 영혼구원이다.다른 것들은 수단이다. 결론이 영혼구원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아무리 교회가 부흥해도 아무 소용없다.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 뜻 가운데 최고의 뜻은 한 영혼이 주께 돌아와 기도하는 것이다. 따라서 살아계신 하나님께 우리를 구원하소서 부르짖는 기도도 목적은 영혼구원에 있어야 한다. 우리교회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오직 영혼구원에 초점이 맞추어져 저절로 창조 사역이 이어졌다. 예배를 드려도 목장으로 모여도 모든 심방에서 경조사에서 오직 관심은 영혼구원에 있었다. 한 영혼 예수께 돌아오기를 바라며 거기 함께한 지체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섬기게 하셨다. 이것을 처음부터 설계하고 계획한 것이 아니다. 제가 죽었다가 살아난 구원이 확실하니 그것만 보였다. 그렇게 주께 돌아오는 지체들이 생기니 계속 그것만 보였고 오늘까지 이어지게 해주셨다. 많이 모이는 것이 아니라 영혼 구원, 가치관이 올바로 세워져야 한다.
저는 99세 새어머니 장례를 통해 이복 여동생이 어머니가 우리집에 오신지 50년이 훨씬 넘었는데 그동안 얘를 전도해도 안 믿었다. 3일간 계속 예배드리며 마지막 화장할 때 마지막 순간에 영접기도를 따라했다. 그때가 정말 전도할 때더라구요. 화장하는 그 시간. 우리 어머니가 내가 죽어야 그 아이가 믿을까 하시더니 정말 그 때 믿게 됐다. 그러니 우리가 죽은 뒤에라도 자녀들이 믿게 될 것을 믿으세요. 기도는 내 뜻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는 것이다. 반대가 아니다. 큐티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인생은 우리 삶을 주님의 삶에 맞추고 그것이 거룩이고 구속사이다. 행복이 아닌 거룩이 목적인 삶이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구원을 목적으로 기도할 때 우리를 구원하옵소서 기도가 100프로 응답받고 7천배의 응답을 받게 될 것을 믿습니다. 3일동안 한 사람 공략할 것을 보고 기도하고 예배드렸다. 그 사람 위해서 우리가 모든 수치를 드러내고 간증하고 예배드려야한다. 때마다 위로예배 입관예배 모두 자기 얘기해서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해야한다.희어져 추수하게 됐는지 갈 때마다 영접을 하게 됐는데 지지난 주에 두분은 아멘을 안 하셨다. 제가 이렇게 했으니 제가 죽은 뒤라도 반드시 돌아올 줄 믿습니다.
적용
요즘 가장 큰기도제목은? 그 기도는 왜 응답됭야 하나요?
기도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내 삶의 최고 목적은 무엇입니까? 구원입니까?
요즘 광주에서 예배 후에 가족 인터뷰가 있다. 지난 주일에 한 부부 가정이 올라왔다. 남편 집사님은 토목회사 건설 대표인데 계약금을 양도자 측에서 최종 잔금만 치르면 되는데 겨우 3일을 남겨놓고 계약금을 두배로 물고 일방적으로 파기했다고 한다. 왜냐. 갑자기 그 회사가 42억짜리 낙찰을 받았기 때문이다. 인수하려던 그 회사가 3일만 기다리면 넝쿨째 42억이 들어왔을텐데 이게 무슨 뜻인가 눈앞에서 종합건설사가 사라지게 됐다고 하니 우리 목사님이 항상 공동체에 묻지 않고 일을 저질러서 걱정이 됐는데 속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3일을 남겨놓고 옷을 찢으시는 사건을 허락하신 거 같다고 앞으로 공동체에 다 묻고 가셨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아내 집사님은 예목과제물에 몇년전 주식으로 날린 돈이 3억이 아닌 7억임을 알게 됐다고 계약 파기보다 이게 더 분해서 주일 예배도 빠지고 남편도 예목 더이상 안 받겠다고 하시니 그 가정에 심방을 가셔서 아내 집사님이 너무 억울해서 옷을 찢고 싶으셨을텐데 오늘 말씀을 듣고 어떠셨냐고 물으니 남편에게 뭐라하지 않으시고 부부가 목자가 되어 사명을 감당하라고 하셨다하니 처방이 아내는 화려한 새 왕복을 찾는 거 같아서 일부러 남편을 혼내지 않았다고 , 두 분 다 목자 시키면 교회를 떠나시겠다고 하셨는데 이 일로 사명을 감당하라고 하셨고 자녀에게도 물으니 둘째딸이 엄마가 집에서 술 좀 그만 마셨으면 좋겠다고 폭탄을 터트렸다. 참고로 이 남편과 아내 집사는 광주 채플에서는 대표적인 선남선녀로 남편은 술을 싫어하지만 아내는 청소년때부터 마신 술을 못 끊어서 술을 매일 마신다고 한다. 이 집사님과 나눔과 아이들의 짧은 나눔에 은혜와 감동이 있었는데 대구도 예배 끝나고 가족인터뷰를 하셨으면 좋겠고앞으로 시간이 있는 교회에서는 가족찬양도 한 번 하면 좋을 거 같아요. 이분이 숙제를 굉장히 잘하셨더라구요. 고난 가운데서 이사야를 찾고 예목을 받으며 이 사건이 해석되고 여호왕를 부르짖으며 사명감당하게 됐는데 갑작스럽게 투자한 회사가 망했고 투자금을 날리니 남은 것은 외로움과 자책 하나님과 멀어진 거리감뿐이었다 그때야 비로소 주님보다 돈을 더 사랑했고 주님을 신뢰하기보단 제 계산과 판단을 믿고 있었음을 고백하게 됐다고 이번 말씀 묵상하며 이 어지러운 시기에도 모든 것을 때에 맞게 지으심을 새삼 느꼈다, 이번 계약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일 것이라고 믿었고 결과가 엎어졌을 때 큰 실망이 왔지만 제 마음속 엠마오 길에서도 주님이 함께 걸어오셨고 이 길 끝에서 주님이 문을 열어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이분은 그 계약이 잘 됐으면 큰일날 뻔 했어요. 우리는 다 인생이 허무한 인생이고 밑동 잘린 인생이다. 여호와여 기도하는 인생이 최고의 인생이다.
기도 제목
A: -이번주에 장기근속 상을 받는데 이 시기에 일에 대한 묵상을 나누게 된것이 우연이 아님을 알고 하나님 앞에 일해 대한 부끄럼과 낮아진 맘 가지고 나아가 기도할 수 있게!
(-감사한 맘으로 일하기, 직장내 자존감 회복되고 병원 안에서 누군가의 영혼구원의 통로로 쓰임 받을수 있으면 좋겠어요)
-퇴근후 짧게라도 말씀 먼저 보고 할일하기
-신교제와 신결혼 위해 잘 준비되어지도록
-엄마,아빠가 무시하는 마음 받지 않도록, 이래라 저래라 하지않고 딸로서 있을 수 있게
-안전하게 여행 잘 다녀 오도록, 동생과 주어진 시간 잘 누릴수 있게 ☺️
B: 1. 아버지 구원 위해서 기도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2. 직장생활 체력, 운동 등 몸관리, 건강관리 잘 하도록
3. 신교제 신결혼
C: 1 샵 장소 확신이 드는 매물 찾기까지 지치지 않고 주님을 신뢰하며 묻고 갈 수 있도록
2 나에게 맞는 믿음의 배우자 만나기를
3 영혼 구원에 관심 가지도록
4 주중에 여러 잡 생각들이 올라오는데 주님과의 관계에 집중하도록 (큐티⭐️)
D: 1 전세사기로 지치는데 열심히 교회에 붙어가면서 받아들일수 있도록
2 아빠가 다시 목장 참석할수 있도록
3 다시 큐티 및 운동 생활화 할수 있도록
4 남자친구가 교회 등록하는 것에 너무 조급해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