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30
제목: 기도하는 성전
본문: 누가복음 19:45-20:8
설교: 김성철 초원지기
45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46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47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48 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하였더라
1 하루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가까이 와서
2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3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내게 말하라
4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5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6 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니 그들이 다 우리를 돌로 칠 것이라 하고
7 대답하되 어디로부터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니
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내 속의 강도를 내쫓아야 합니다.
성전이 예수님의 집, 기도하는 집인데 강도의 소굴로 당시 성전 제사 제도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의 부패로 인해 성전에 돈 바꾸는 사람들, 비둘기 파는 사람들처럼 나의 유익을 구하며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삼은 사람들로 오염이 되어 있었습니다.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오는 백성들에게 로마 황제의 얼굴이 새겨진 로마 화폐를 성전세로 내는 것이 우상숭배이니 로마 화폐를 성전 화폐로 바꾸어 내야 한다며 투명하게 계산하지 않고 부당한 이득을 취해 돈을 바꾸는 사람들이 있었고, 또 성전에 올 때 멀리서부터 재물을 가져와야 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불편함을 덜어준다는 명목으로 성전 앞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바치던 재물이었던 비둘기를 몇십 배로 팔면서 폭리를 취하는 사람들을 통칭해 예배하는 백성이 아니라 장사하는 자들이라고 내쫓으십니다. 이렇게 교회에 각자의 유익을 감춘 채 기도하는 집, 주님의 집에 나의 유익, 나의 복을 구하며 기복으로 오는 발걸음이 강도의 발걸음이며, 하나님의 자녀보다 세상의 자녀로 키우며 주의 일꾼이 아닌 돈과 성공의 일꾼으로 가족들을 부추기는 것이 강도의 수구를 만들고 장사하는 내가 아니냐고 물으십니다.
적용질문: 하나님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드는 내 속의 강도는 무엇입니까?
날마다 귀를 기울여 가르치심의 말씀을 들아야 합니다.
강도의 소굴이 되었던 성전에 들어가서 직접 부패함을 내쫓으신 예수님은 그것으로 끝나지 아니하시고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은 내내 치유와 기적과 이적을 모두 복음 전하기 위해 사용하시며, 십자가 죽음으로 나아가는 그 순간까지 가르치심을 이어가셨고, 기도를 쉬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의해 자신들의 악이 드러나는 것이 불쾌하고 기득권을 빼앗긴다 생각하며 어떻게든 예수님을 잡아죽이기 위해 끊임없이 음모를 꾸미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에게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48절 전반부에 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즉 뇌가 귀를 기울여 듣는 것뿐입니다. 혼자는 안 되고 백성이 다 들어야 하고 뭉쳐야 합니다. 그러니 말씀만 듣지 말고 공동체에 들어가고 공동체 안에서도 또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예수를 죽이라는 나의 지도자가 있다고 해도 그 지도자를 불쌍히 여기고 그 자리를 인정해 주며, 예수님도 끝까지 기다려 주신 것처럼 포기하지 않고 사랑해줘야합니다.
적용질문: 나는 귀를 기울여 듣는 백성인가요? 절대 인정하지 않고 내가 옳다며 꼬투리 잡아 죽이려고만 하는 대제사장, 서기관, 백성의 지도자인가요? 내 옆에서 날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꾀하는 그 사람을 위해 나는 백성을 모으고 있습니까?
하늘로부터 오는 권위를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기쁜 소식 복음입니다. 복음을 통해 영원히 살 길이 열리고 하나님과의 막힌 관계가 열리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그 내용에 대해 묻고 궁금해하는 것이 아니라 권위를 반복해서 말합니다.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를 내쫓으시며 강도의 소굴이 된 그곳을 정화하시기 위한 개혁에 기뻐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그 체제가 바뀌지 않고 유지되어야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사람들이며, 제사와 물질과 욕심에 취한 유대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백성들이 자신들의 타락과 부패함을 다 알게 되는 위기감과 지금까지 쌓아온 권력을 빼앗길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비리로 하나 된 대제사장과 서기관들도 모자라 장로들까지 함께 예수님께 자격을 묻는 바탕에는 사내들인 공예가 인정하지 않는 권위는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그 권위는 결국 자신들에게 있다는 논리를 가지고 따지는 것입니다. 권위와 권력은 비슷해 보이지만 다릅니다. 권력은 자신의 의지와 목표를 강제적으로 사용하기에 이기적으로 사용되기 쉽지만, 영적 권위는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목적으로 두기에 날마다 죽이려는 사람들이 있어도 예수님처럼 찾아가고, 무슨 자격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비난을 들어도 대답하며 나의 감정과 생각과 판단을 멈추기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주신 어떤 환경도 하나님이 알고 계시고 내게 맡기셨다는 책임감으로 끝까지 버틸 힘을 하늘에서 공급받는 것이 영적 권위를 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결국 사명 때문에 권위를 주시는 것이니, 영적 권위는 십자가 지고 죽는 권위이고, 나의 자아를 죽여 한 영혼을 살리고자 하는 권위입니다.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처럼 아무리 가까이 와서 보고 들어도 권력만 붙잡고 싶고, 하늘로부터 받는 권위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죽고 싶지 않기 때문이고, 십자가 지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적용질문: 나는 무슨 권위로 어떤 일을 하나요? 빼앗기기 싫은 권력, 갖고 싶은 권력은 무엇입니까?
성령의 의논을 통해 대답할 때 이르시되의 응답을 듣습니다.
자격을 따지는 그들을 향해 예수님은 대답을 하십니다. 영적 암흑기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고 마치 상관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하나님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도, 다윗도, 유다도 택자이고 예수님의 조상이기에 하나님께서 찾아와 다시 말씀해 주시지만 죄를 짓는 당시 침묵하셨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가장 무섭고 두려운 시기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침묵이 길게 이어지는 때입니다. 대제사장들이 끊임없이 죽이고자 꾀하는 것을 알고 계시는 예수님은 요한의 세례를 통해 대답하십니다. 이런 대답이 성령의 지혜로 올무에 빠뜨리려는 그들을 올무에 빠지게 하는 대답입니다. 세례 요한의 사역을 인정하게 되면 요한이 선포한 예수님의 신적 권위를 믿는다는 것이 됩니다. 성령의 은원은 구원을 위해 살리고 세우는 은원인데, 예수님을 모르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는 그들의 은원은 예수님을 신성 모독죄로 몰아가려다 정작 자신들이 신성 모독죄를 인정하게 되는 올무에 빠지게 되었고, 그 불안함은 만일의 사단으로 두려움이 증폭됩니다.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는 것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인정하지 않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묵상하고 깨달았어야 하는데,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두렵고 돌로 치며 정죄하려다 그 정죄를 자신들이 받게 될까 봐 두렵습니다. 우리에게 말하라며 당당히 따지던 그들이 정작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요한의 세례로 반문하시며, 예수님이 세례 요한이 선포했던 그 메시아임을 알려주시는 질문에 나는 모른다고 회피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명백하게 거짓말입니다. 이때라도 솔직하게 대답하기 싫다고, 만일 이러면 어떻게 하냐고 두렵다고 나누었어야 하지만 자기 생각으로 꽉 찬 사람들끼리 의논을 하니 예수께서 원하시는 답을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씀이 들리지 않으면 날마다 옳고 그름으로 따질 것도 많고 자꾸 걸려서 넘어가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적용질문: 나는 누구와 어떤 의논을 하나요? 나는 사랑으로 말을 아끼나요? 무시함으로 침묵하나요? 주님의 이르시되를 어떻게 듣고 있습니까?
Q. 하나님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드는 내 속의 강도는 무엇입니까?
A: 신교제 신결혼 기도제목이 평안하고 바람안피는 화목한 가정을 갖고싶으니 구하게 되는 것 같다. 하나님의 집처럼 보이는 기도제목이지만 결국 인간적인 행복을 바라고 있는 내 속의 강도같은 기도제목이다.
B: 하나님의 집은 나와 하나님만 바라보고 걸어가는 것인데 둘이 잘 가고 있으니 걱정 없다.
C: 노숙자들이 타는 버스를 같이 타는 내가 왜 이래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과는 한 공간에 있기도 싫어하는 내 모습이 섬기고 싶다는 마음, 적당한 약자만 섬기고 싶지, 정말 낮고 추한 사람들을 섬기고 싶어하지 않는 모순적인 마음을 보게 된다. 도움받는 약자의 자리를 벗어나 내가 섬길 수 있는 자리에 올라가고싶고 세상적으로 잘 나고 싶던 마음도 있다.
Q. 나는 귀를 기울여 듣는 백성인가요? 절대 인정하지 않고 내가 옳다며 꼬투리 잡아 죽이려고만 하는 대제사장, 서기관, 백성의 지도자인가요? 내 옆에서 날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꾀하는 그 사람을 위해 나는 백성을 모으고 있습니까?
A: 귀 기울이는 것을 잘 못한다. 내가 옳다고 꼬투리 잡는것을 좋아해서 하나님이 좀 잘 들으라고 목장에 붙여주신 것 같다. 성깔 죽이고, 겸손한 마음으로 일 가서 환자 말들 잘 들어주고, 집에 와서 목장식구들 말을 잘 들어주어야 겠다.
B: 예수님 말씀은 잘 듣는것 같다. 다른 사람들 말 (교수님 등등) 은 말의 목적을 따지며 잘 안듣긴 한다. 누군가의 얘기를 들을때 그 사람의 마음을 깊숙하게 들여다보고 내 마음에 듣지 않으면 안듣는데 그 이유는 그 사람의 마음안에서 하나님의 순수한 마음이 아닌 인간의 마음이 섞여있기에 인데 그게 나에겐 여기서 나오는 대제사장, 서기관, 백성의 지도자이다. 예수님, 실제로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이 오지 않는 이상 인간은 예수님을 반기지 않을 것이다. 힘을 가지고 어느 위치에 올라가게 되면 다 자기가 옳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고 그것을 지키게 되니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그렇기에 내 답은, 그렇게 되지 않게 되려고 노력할 것 같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을 알기에 그 누구한테도 그 사람이 지키려 하는 힘을 지켜주려 하지 않는다. 그 사람 안에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지 않는 이상 신뢰주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이 아닌 정말 예수님을 위해 살아갈 사람을 찾고있다. 많이 없다. 예수님은 모두를 사랑하셨으니 내 잘못일 수 있지만 예수님만 을 pure 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찾게 된다.
C: 내가 버스에서 노숙자들 있는거만으로도 싫어하는 사람인데 냄새나고 더러운 곳에 오신 예수님을 내가 찾아가서 힘없는 예수님 모습 앞에 무릎 꿇고 경배할 수 있을까? 싶었다. 보이는것, 사람들이 수군대면 회의감이 둔다. 귀를 기울여 듣게 하는 환경에 나를 가둬두신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 현지 교회 사람들과, 우버 드라이버와 말씀을 나누게 되면서 자연스러운 일상 속에서 말씀을 듣게 하신다.
내 주변엔 인도인이 많다. 각자의 신앙이 강한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너희 문화 존중해 자세이지, 전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데 예수님도 그들을 구원의 대상으로 삼고계시니 회개가 된다.
Q. 적용질문: 나는 무슨 권위로 어떤 일을 하나요? 빼앗기기 싫은 권력, 갖고 싶은 권력은 무엇입니까?
A: 내게 사명으로 주어진 권위는 간호사로서 환자를 섬기고, 다른 전문가들과 일하는 권위이다. 사명을 위해, 내 기준에 쓸데 없는 것 같아도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틀렸을 때 모를 때 인정하며 겸손히 나아가는 것이 내가 누려야 하는 권위이다. 쉬는 시간 뒷담화를 하며 권력을 키워가는 다른 간호사들을 보며 나도 말주변이 좀 있으면 일 하는게 수월했을까 생각하기보다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섬김의 자세로 내일 출근을 해야겠다.
B: 교만한 사람이 주변에 항상 많다. 수업에서는 항상 겸손하라고 가르친다. 시험 점수로, 공부하면서 내가 얼마나 모르는게 많은지를 알게된다. 모르는 것은 끝이 없을텐데 내가 무순 자격으로 남이 이렇다고 판단을 어떻게 할 수 있나 고민을 하게 된다. 타인의 인생을 자기 손에 거는 것이 부담스러울 때가 많은 것 같다. 이번에도 시험 떨어진게 내가 무슨 권력이 있나 싶다. 권위는 항상 있다. 믿음이 있으니 자신감이 예수님을 통해서 나온다. 나에 대한 믿음, 자신은 예수님이 지켜주고 계시고 믿음이 있으니 뭐든 할 수 있다 - 라는 생각이 권위로 간다. 남을 조종할 수 있는 권위, 남을 위해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고 얘기하는 권위를 제가 가질 날이 올까, 그럴 자격을 받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이게 권력일텐데 이런 권력이 정치와도 연결이 되는데 내가 생각하는 옳음을 남에게 알려주며 바뀌게 하는것이 권력인데 저는 그런게 없거든요. 그런게 생겨도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기 때문에 그때 되면 하나님께 내려놓울 수 있지 않을까요. 또 전 저에대한 컨트롤만 해요 남을 도울수 밖에 없지 남을 바꿀 순 없다는 것을 깨달아서, 빼앗기고싶은 권력도, 갖고싶은 권력도 없다. 엄마가 나에게 막말했을때도 엄마가 그런 사람이다라고 깨닫게 해드리고 자기를 바꿀 수 있게 찔러준거지 그래서 엄마가 많이 좋아지고 계신거지. 제 권력이 아닌 권위로 얘기하는 것이죠. 남탓하는 엄마를 스스로 바꾸어보라 스스로를 보라고 옆에서 막말로 얘기를 많이 해주니 결국 엄마가 많이 바뀌고 계신다. 십자가를 지고 죽는것 나의 사명에 대해 신이 주신 끝까지 가지고 죽을때까지 버티고 버티는 것이 영적 권위라 생각한다. 누구나 다르겠지만 저는 저만의 왕국을 만들어서 (나의 비전: 예수님이 생각하신 비전과 비슷) 누군가와 지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제가 깨달은 사명을 지고 가는것이 영적 권위라 생각한다. 사명때문에 권위를 주시기 때문에. 누군가의 자아가 살아있으면 남을 바꾸려 들기에, 나의 세상에 끼워맞추려 하기에 제 세계에 들어오고 싶은 사람들만 들어오게 하지 남을 잡아서 내 세계에서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이 나는 내 자아를 많이 죽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아라는 존재가 결국엔 내가 최고야, 내가 옳아 라며 남의 세계를 인정해주지 못하는 것인데 인간관계나 정치에도 많이 보인다. 자기 자아에서 못나왔기 때문에, 너무 높기 떄문에 그렇다. 그것을 깨달아서 놓은 사람과, 숨기고 있다가 휘두르는 사람이 존재. 깨달은 사람들은 행동과 말이 남의 세계를 부시려 하지 않는다. 그것이 결국 옆의 사람을 살리는 것이고 희망을 주는, 세게를 인정해주며 나아갈 수 있는 한 영혼을 살리는 방안이다.
C: 내 판단, 내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공급해주시는 대로 사는것이 영적 권위라면, 나는 지금 하루하루가 영적 권위 없으면 살 수 없는 환경이다. 매일을 새로운 사실을 알게되며 서류문제와 세금문제가 하루만에 해결이 되니 하나님없으면 못살았겠다, 하나님이 쓰시려면 쓰시는 하루를 살고 있는 것 같다. 이런 권위를 나에게 주신다는 생각이 든다. 찰스엔터 유투버 처럼 영향력을 갖는 권력이 너무 부러웠다.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주고 사랑해주며 영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Q. 적용질문: 나는 누구와 어떤 의논을 하나요? 나는 사랑으로 말을 아끼나요? 무시함으로 침묵하나요? 주님의 이르시되를 어떻게 듣고 있습니까?
A: 내가 말씀이 들리지 않으니 날마다 옳고 그름으로 따질 것도 많고 자꾸 걸려서 넘어가지 않는 것이 많구나 인정해야겠다.
B: 아빠는 이혼을 원해하시고, 엄마는, 인간은 동물이기에 우리 모두 본성이 있다. 지성으로 본을 누르지만 제 엄마는 본성이 암컷 사자이고 아빠는 똑똑한 개 이기에 암컷사자가 개가 마음에 안드니 수컷 사자를 원하는데 개가 아니꼬우니까 수컷사자처럼 행동하라고 요구를 하신다. 개는 아무리 노력해도 개이고 수컷사자가 될 수 없으니 괴리감이 든다. 암컷사자가 화가 나니 개를 물어버린다. 개는 놀라 상처받은 채 도망다닌다. 엄마한테 말 하면서 아빠를 개로써 인정해주고 사랑해주어야 하는데 엄마는 인정하지 않으니 불행한것이다. 그 사람 그대로 사랑하는 법을 기르셔야 하는데 그것을 안하셨으니 그에 대한 값을 치루는 것이라고 말씀해드렸다. 여자는 항상 내 옆의 남자가 나보다 대단하기를 본능적으로 원한다. 아빠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기에 불안했지만 신을 믿는것도 안되기에 그런 불안함을 누를 수 없었다. 엄마는 모태신앙이었지만 한번도 예수님 말을 제대로 들은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자기가 항상 최고라고 생각하기에. 나보다 위 인 사람이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항상 엄마를 꾸짖는다. 하나님을 아래로 둔다며 엄마를 꾸짖는다. 엄마 마음에 아직도 자기 우상이 크고 나르시시즘이 있기에. 엄마와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엄마가 깨닫는것 같고 바뀌는 것을 보고 있지만 아빠는 이미 깨물린 자국이 너무 아파서 돌아가기 싫고 생각만 해도 손이 떨린다고 말씀하신다. 엄마는 자기가 했던 죄들을 많이 늦었지만 돌아보고 계신다. 예쁘고 말도 잘하니 모든 사람들이 엄마의 본체를 보지 못하고 꾀에 넘어가신다. 아빠는 생긴것 자체가 못생기고 착하고 말도 잘 못하니 모든 문제가 아빠한테 있는 것 처럼 보인다. 그렇게 20년동안 아빠는 당해오셨고 이제서야 엄마는 내가 엄마를 지적할 떄 발악하시는 부분을 찍어 누르니 엄마가 스스로를 볼 수 있는 것 같다. 엄마 아빠를 지켜보면서 깨달은 것들을 엄마와 대화를 하고 제가 말하는 것들이 사실이라는 것을 요즘 엄마가 깨달으신 것 같다. 거의 제가 예상하는 바에서 틀린 적이 없어서, 이것도 내 문제점이겠지만. 엄마와 얘기하고 의논하면서 우리 가족관계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찾은 것 같다. 원래 나는 비슷한 결이 아닌 사람과는 얘기하지 않는다. 여기에서는 딱 두명이 있는데 그 두명과 엄마랑과 의논하긴 하지만 다른사람과는 말하지 않는다. 새라자매님이 제게 말씀해주신 겸손해야 한다, 모든 사람을 다 안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라는 말을 나르시시즘 엄마가 많이 얘기하셨었는데 이제는 제가 말을 할 때 엄마가 스스로 돌아보고 생각하시면서 제 말이 맞다는 것을 인정하시는 것 같아요. 요즘은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계시고 조금씩 바뀌어 나가고 있다. 하지만 아빠는 무서워 도망가고, 사자가 다가오면 으르렁 거린다. 여자는 여자가 스스로 누구인지 성향파악을 해야 결혼 할 때 행복하다. 동물로서 쉽게 설명하기 위해 비유하는데 내 성향이 저 사람과 맞을까, 내가 원하는 성향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성향의 큰 뼈대는 맞아야 하고, 남자가 여자의 존중을 받을 스태터스가 되어 있어야 하고 여자도 남자한테 무시 안받을 스태터스가 있어야 한다. -(부목자: 요번 설교하신 분이 평신도 이신데 의사이셨고 아내가 바람피고 자살시도를 해서 이 아내만 아니었으면 하셨었는데 말씀이 들어가니 하나님을 알게 해준 귀한 아내라고 고백을 하셨다. 말씀이 들리면 세윤형제의 부모님도 말씀이 들어가면 다시 살아난다)
우리 아빠가 물리지만 않았어도 말씀이 들어갔을 텐데.
-(부목자: 그러니 기도하자, 엄마와 아빠가 그렇기 때문에 내가 3자가 아니라 외동아들이니 상처를 많이 받을텐데 객관적으로 생각하며 엄마가 이렇고 아빠가 이렇구나를 아는게 대단하다.)
실수가 많았다. 결국 둘 다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개와 사자 사이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게 된다. 부목자님 말씀대로 기도하는 것밖에 없다 라는 생각이 드네요
C: 의논을 안한다. 특히 엄마와 의논을 하지 않는 게 원망과 무시로 의논을 안하고 싶어한다. 엄마는 사랑으로 말을 아끼시는 것이겠지만 나는 엄마한테 원한으로 말을 아끼는것이, 전남친과의 헤어짐에 관심이 없으신 것도, 내가 차가 없던 것에 관심 없던것도, 오기로 원망하며 엄마한테 의논하지 않고 엄마를 대했던 것 같다. 엄마한테 묻지 않고 결정한 1년대학원도 힘들어지니 엄마를 원망하게 되고 차를 사라 하는 엄마도 내가 엄마 돈 없이 잘 살아볼거야 라는 생각으로 자기연민에 빠져있다. 차가 없어 힘들다고 얘기할 때 우버 타 비싸도 타 라며 말을 하는 부모님이 돈을 펑펑 쓰시지 않는 사람들이라 이중적이게 느껴져 힘들기도 하다.
Prayer Request/ 적용
A: 불신교제 안에서 내 가치관을 잘 분별하며 말씀의 인도함 받을 수 있도록, 신교제 신결혼 위해/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기,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일하기
B: 요번주 금요일 재시험 잘 볼 수 있기를/ 새로운 방식을 도전하지 않고 원래 하던 공부스타일대로 잘 하기
C: 비자 무사히 잘 나올 수 있도록, 미국 취업 위해/ 엄마가 졸업날짜 물어보시면 말씀해드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