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4.11.03 주일예배
제목 : 여전한 산당 제사_비천한 환경 / 겸손한 환경
본문 : 열왕기하 15:1~7
오늘은 얼마나 산당 제거가 큰 죄인지 산당제사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산당을 제거하려면 첫째로, 겸손한 환경이 축복입니다. 이건 52년 중에 공동 통치하던 때 24년을 의미해요. 아마샤가 신결혼해서 아들을 그래도 믿음으로 키울 수가 있었습니다. 믿음의 양육은 고난 중에 빛을 발해요. 역대아 26장에 아사랴의 다른 이름이 우시야로 나와요. 우시야는 우리들께 다 알지요 아주 자세한 기록이 있는데요. 같은 역사를 11개는 공동체 관점에서 기록했고 역대기는 그 구속사적인 개인적 관점에서 기록했기 때문에 더 자세히 기록이 됩니다. 우시야가 특히 그런데 아주 굉장히 거기 중요한 기록이 있더라고요. 26장 5절에 하나님의 몫을 밝게 하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우시야가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 하나님을 찾았다고 해 무슨 일이든 스가랴를 통해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뜻을 구했다는 거예요. 우리가 스가랴서를 통해 아는 그 스가랴와는 다른 사람이에요. 루시아는 왜 하나님을 쫓았을까요? 어머니를 통해서 믿음으로 양육을 받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겸손할 수밖에 없는 고난 가운데 절망하거나 다른 우상을 찾지 않고 하나님을 찾았을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우시야를 형통케 하셨어요. 패배 후 15년을 숨죽이며 지냈는데 그때가 겸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잖아요. 하나님 아니면 기댈 존재가 없어요. 그러니까 형통의 비결은 오직 하나님을 찾는 데 있는 거예요. 하나님만이 복의 근원이시며 우리 인생에 상급이신 줄을 믿습니다.
적용 질문. 여러분의 환경이 비천하다고 생각하세요. 겸손한 환경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래서 남을 탓하며 원망합니까? 하나님의 양육을 지금 잘 받고 있습니까?
두 번째는 형통을 주시니까 강성해졌어요. 그 강성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강성하니 산당을 제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난 주일에 200만 성도들이 함께 기도했어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무서운 게 뭐냐 하면 죄를 죄라고 말하지도 못하게 만든다는 거예요. 그래서 죄를 더 익숙하고 평범하게 만드는 것이 그야말로 악법인데요. 그러니까 어떤 산당을 짓고 어떤 산당 제사를 드려도 다 옳다고 해야 된다는 거예요. 물론 지금 우리가 침묵하는 게 더 포용적이고 지적이고 교양 있게 보여요. 그래요. 우리 체면 생각하면 그렇게 다 용납하고 내버려두고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녀들을 생각해야 돼요. 우리가 별생각 없이 내버려 두면 우리 자녀들은 죄가 죄인 줄도 모르고 살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유언으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거죠. 그니까 한쪽에서는 목사들이 더 나쁘다 더 불법을 행하는데 왜 그런 걸 위해서는 불법을 막아달라고 기도 안 하고 이 동성애자들의 소수인권만 막아야 된다. 보호받아야 된다. 이러면 맞아 보이잖아요. 그죠 이게 회개 없는 정직을 말하니까 여기서 큰 차이는 동성애 자들을 미워하는 게 아니구요. 동성애는 성경에서 죄라고 하는데 왜 죄냐면 생명을 낳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생명과 영혼권이 제일 중 육적인 생명이 중요하고 영혼권이 중요한데 창조질서를 어지럽히는 죄이기 때문에 이게 행위와 믿음의 차원 행위와 믿음의 이 차원이 아주 다른 얘기를 하는 거예요.
산당 제사를 평범한 일상으로 여기며 끊지 않고 여전히 드린 인생의 결론이에요. 죄가 죄인 줄 모르고 반복하는 악의 끝은 귀가 막히는 거야. 듣지 못하는 거예요. 듣기 싫어요. 왜요 내가 제일 옳기 때문이에요. 내가 옳다고 자신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것 하지 말라고 하면 화를 내는 거 그래서 한마디로 가난하면 듣고 부유하면 안 들어요. 가난하면 그냥 듣는 척 하는 거예요. 아무것도 없으니까 산당을 제거해야 여전한 산당제사가 멈추는데 산당을 제거하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중요한 건 제거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제거하지 않는 거예요. 왜 익숙하고 평범하고 편하니까 내버려 둬요 아주 영적으로 잠이 들어있는 상태인 거예요. 겸손한 환경은 이런 잠을 깨워주기라도 하니까 이미 축복이라 그랬잖아요. 근데 형통하고 강성하면 그냥 여기가 좋고 이대로가 좋사오니 할 수 있는 게 많아져요 그래서 계속해서 여전히 편한 것 찾고 더 가지려고 하고 더 높아지려고 하고 그래서 산당 제사를 드리는 것이 이게 지금 우리 사회 모습이라고 생각을 해요. 정말 1027을 통하여서 이제 종교개혁이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믿는 자 사람의 진리를 수호할 수 있기를 소원하는데요. 우리는 정말로 산당을 제거해야 합니다. 내 욕심만 채우려는 수고 높아지려는 노력 내가 다 가지려고 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다 제치려고 하는 일들이 모두 산당해요. 나쁜 습관 중독 내가 옳다는 확신 이거 다 산당의 연약함과 아픔 뒤에서 숨어서 교묘히 내 주장만 하는 것도 산당이에요. 이 산당을 제거하지 않고 내버려 두니까 백성들이 여전한 산당 제사를 끊을 수가 없어요. 집에서는 가장이 끊어야 되고 목사가 끊어야 되고 지도자가 위정자가 끊어야 하는데 이 한 사람이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 몰라요. 여전한 산당 제사를 제거하는 적용은 또 여전히 여전한 방식의 날마다의 QT와 적용이에요. 여전히 산당 제사를 지내지만 여전히 QT 하면 이걸 막을 수가 있는 줄 믿습니다.
적용 질문. 내 욕심과 교만으로 추구하는 내 산당은 무엇입니까? 내가 그것을 제거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제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 오늘 무엇을 하겠습니까?
세 번째는 하나님이 치시는 거예요.하나님은 하나님보다 더 위에 가고자 하는 이 죄를 가장 견딜 수 없어하세요. 그래서 믿음과 행위의 죄는요 견딜 수가 없는 거예요. 행위와 이 믿음의 죄는 행위와 구원에 비교할 수가 없는 거예요. 구원을 여러분들이 방해하면 안 되는 거예요. 성령을 방해하면 인제 안 되는 거예요. 그니까 영적 교만은 이제 하나님이 간과하지 않으신다는 걸 아셔야 해요. 그래서 그것이 뭐 무서워서 우리는 목회자라 그러면 벌벌 떠는 게 있어요. 또 기복이 또 하늘을 실은 그렇다고 떨지 않고 목사가 별거야. 이러면 더 무섭죠 사람이요. 근데 지위와 그 손톱만큼 지위와 권세가 있게 되면 다들 하나님의 영역을 넘보는 거예요. 없으면 그냥 감 놔라 배 놔라 하지도 않아요. 많은 사람이 믿음 없이 이 영적 영역에 도전하고 싶어 해요. 교회를 나오잖아요. 그럼 인간은 가르침 받는 것보다 가르치는 걸 좋아하는 습성이 있어서 믿음이 있거나 없거나 이제 교회 나오기 시작하면 가르치고 상담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본능이 발동을 해요. 사람이 자존심의 동물이고 인정받기 좋아하다 보니까 인제 그러다 보니까 교회에서 이제 가족 문제가 생기죠 처음에는 안 해 안해 하다가 지나보면 왜 안 시켜주지 섭섭하기 시작합니다. 이게 다 영적인 영역의 일인데요. 이거를 육적인 영역에서 보니까 저 사람은 왜 아무것도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는데 왜 좋아하지 잘 가르쳐서 그런가 그래서 가르치는 일에 이제 나도 가르쳐 봐야 되겠다. 그래서 이거를 세상에서 받는 존경과 똑같이 생각하고 그 영적인 것 생기니까 문제가 인제 시작되는 거죠. 제사장이 받는 그 인정을 받고 싶어 합니다. 그러니까 인위적으로 뭔가 해서 인정받으려고 하면요 똑같이 행동하는데 열매가 없어요. 흉내를 내도 제 이야기를 달달 외워서 앵무새처럼 해도 성령에 임하지 않으면 열매가 생기지 않아요. 근데 자기 지위로 강성해 주니까요? 상처를 준 그 제사장들이 지금 제사장들은 실력이 있는데, 무조건 도매금으로 자기 아버지 때 할아버지 때 이 제사장들 생각하고 실력이 없다는 거예요. 꼴 보기 싫은 거 다 틀렸다는 거예요. 내가 예배드리는 게 너희들보다 훨씬 낫다 그럴 수 있었겠죠. 근데 이 땅에는 때가 될 때까지 질서가 있다고 했잖아요. 근데 이 질서를 강조하면 우리도 싫어하는 분들이 있더라구요. 이게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고 구원의 문제인데 아사리아가 강성해지니까 금세 구원 같았는데 선악의 문제로 몰고 가는 거예요. 예전에 제사장들 때문에 내 아버지 할아버지 죽었다 원수 갚을 때가 되었다. 여러분 그렇게 보면 자신도 그쪽에서 보면은 죽인 자의 아들 아니에요. 그런데도 왕으로 세움을 받았잖아요. 근데 산당은 항상 내 입장만 옳기 때문에 내 입장을 위해서 기도하고, 내 교만 내 연민 내 절망을 편들어 달라고 기도하는 게 산당 제사인 거예요. 언제나 위로 안해주면은 화를 내고 우시아처럼 내가 주인공이야 나를 위해서 다 기도해 줘 목장도 다 나를 위해서 기도해 줘 외모라고 나한테 처방질을 하는 거야. 이렇게 인제 되는 거죠. 그렇게 도와주시다 보니까 일순간에 교만해졌다구요. 그래서 이제 우시아 왕이 26장 21절에 보면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져 별궁에 살았다고 해요. 역대하는 단절의 핵심을 짚어 알려줘요 하나님의 백성에게 이 성전은 모든 생활 네트워크의 중심이에요. 거기서 끊어지면 다른 관계도 다 끊어지는 거예요. 나병보다 더 무서운 것은 성전에서 끊어진 거예요. 스스로 네트워크의 중심이고자 했던 우시아인데 오히려 거기서 완전히 단절되고 말았어요. 잠시 전까지 자신이 주인이었던 왕궁은 아들 요담에게 맡겨야 했습니다. 그리고 여전한 방식으로 그렇게 예배 중독자처럼 제사하던 산당을 더 이상 갈 수 없게 됐어요. 이 아사리아의 돈과 권세가 지금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밑동 잘린 나무인데 이 분리의 집인 별궁에서 완전히 분리 단절되어서 연명하다가 거기서 죽고 마는 거예요. 하지만 하나님은 예수 씨 때문에 다윗의 후손에게서 등불을 빼앗지 않으셨어요. 다 단절된 오시아라도 다른 왕들처럼 그의 사적과 행한 모든 일을 유다왕 역대 지략에 기록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다윈성에 조상들과 함께 장사 되게 해주세요. 그리고 아들 요담이 왕위를 이어가게 하시는 거예요. 영적 후선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이렇게 뜻인거죠.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시야를 치신 심판이에요. 그런데 이게 그냥 때린 게 아니고 뭐라 그랬어요. 손보신 거라고 했어요. 부숴버리는 게 목적이 아니라 고쳐 쓰시려고 만지고 보살피시는 손길인 거예요. 같은 매라도 그냥 패는 것과 손 보는 것은 천지 차이인 거예요. 패는 건 죽이려는 거고, 손 보는 건 살리려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수준이 높으면 아사리아처럼 별궁해서 나병이 걸리는 거예요. 수준이 높으면 그러나 이 별궁은 우연히 생긴 게 아니에요. 내가 별궁에 거하게 된 일이 누구 실수로 생긴 게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별궁에 거하게 하신 겁니다. 왜죠 내 안에 비워야 할 것이 너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에요. 욕심을 비우고 확신을 비우고 자랑을 비우라고 별궁에 거하게 하셨어요. 한순간에 가장 저주받은 자리로 지하 1층도 아니고 10층 바닥으로 확 떨어졌어요. 눈 깜짝 할 사이 망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저마다 별궁이 있습니다.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어요. 심지어 여러 관계 속에서 살면서도 단절감을 느낄 때가 많죠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고 고부간에 형제간에 다 많아요. 그러나 이 시기마다 별궁에 거하시게 하는 것이 참으로 축복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것이 지금 나를 단절되고 갇힌 별궁에 거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전한 산당 제사들이는 나를 쳐서 그 악을 비워버리시는 하나님의 손보심이에요.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인 거예요.
적용 질문. 여호와께서 치신 사건이 있었습니까? 어떤 별궁에 갇혀있습니까? 별궁 같은 상황에서 내가 비워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공동체를 통해 채워주시는 은혜를 어떻게 누리고 있습니까?
우리들 교회는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선물입니다. 감옥에 별궁해서 이렇게 산당제사를 패하게 되는 거죠. 예배가 최고잖아요. 고난 많은 한나가 이렇게 예배를 준수하게 되니까. 우리들 교회도 고난 많은 사람 땜에 우리들 교회가 이렇게 걸어가는 줄 믿습니다. 고난 많은 사람들에게 다 가서 절하기 바라요. 그분 땜에 우리들 교회가 그분의 살려달라는 기도 때문에 우리가 살아 있는 거예요. 하나님 지키시고 뭐하시는 거예요.산당 제사는 그러므로, 겸손한 환경이 산당 제사를 폐하게 되는데 우리는 너무 비천할 때도 산당을 포기하지 못함 너무 강성해도 산당을 제거하지 않아요. 내 편을 들어주는 예배가 있어야 돼 이 땅에 내 연민 내 교만 내 절망을 그냥 알아주는 그 예배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근데 너무 사랑하시니까 하나님이 나병으로 치시는 거예요. 지금 그냥 어마어마한 나병으로 치셨으면 예수님의 계보에 올라가게 할려고 하나님이 손 보시는 사건인 줄 믿습니다. 우리 주님은 인애하시거든요. 인애하신 구세주를 찬양합니다.
적용 질문
1. 여러분의 환경이 비천하다고 생각하십니까?
- 겸손한 환경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그래서 남을 탓하며 원망합니까?
- 하나님의 양육을 잘 받고 있습니까?
2. 내 욕심과 교만으로 추구하는 내 산당은 무엇입니까?
- 내가 그것을 제거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이제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 오늘 무엇을 하겠습니까?
3. 여호와께서 치신 사건이 있었습니까?
- 어떤 별궁에 갇혀 있습니까?
- 별궁 같은 상황에서 내가 비워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 공동체를 통해 채워주시는 은혜를 어떻게 누리고 있습니까?
이번주는 김태현 목사님께서 목장에 오셔서 함께 나눔을 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지금 들어야 말씀으로 처방과 체휼을 해주시고 기도로 함께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하고 귀한 나눔시간이었습니다.^^
기도제목
박기훈
한글의역자 면접차 테스트를 전부 번역해서 현재 메일로 제출했습니다. 최선를 다했고 하나님께 결과를 맡기고 계속 기도로 준비할 수 있도록
한민석
1. 신교제, 신결혼 인도함 받도록
2. 허리치는 사건 주시면서 내 죄를 다시 보고 겸손하게 하루하루 살아내기
3. 가족과 목장 식구들의 건강 회복
고현승
기초 양육 모든 과정 교육 수료. 감사와 기쁨으로 세례 받을 수 있도록
계속 공동체 안에서 양육 훈련 받을 수 있도록
장주영
일상에서 여전한 방식으로 큐티하고 주신 말씀에 삶에서 적용하고, 내 죄 볼 수 있도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