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4.09.23 주일예배
제목 : 갈등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 ANC온누리교회 김태형 목사님
본문 : 야고보서 4장 1~10절
기존에 있던 QT 세미나는 주로 하나님의 뜻을 찾는데 포커스 했다면, 이제 구속사 QT는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죄를 계속 들여다보는 훈련을 하고 있어요. 그런 면에서 복음의 가장 아름다운 혜택 중 하나가 회계라고 생각합니다. 복음이 있기에 회계가 가능한 것이죠.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는 아버지가 있기에 죄를 드러내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이미 용서를 받았기에 근데 솔직히 이민사회가 하나 건너뛰면 다 아는 사이기에 죄와 수치를 드러낸다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근데 큐티인의 적용 질문들이 마음에 있는 죄를 볼 수 있게 도와줍니다. 그리고 또 여러분의 묵상 간증들에서 마음속 가장 깊고 무겁고 수치스러운 죄 상처와 우상들을 드러내고 또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치유의 과정을 잘 전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리 죄가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하나님의 은혜는 더더욱 위대한 것을 보게 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이제 우리들 교회 슬로건처럼 공동체에 붙어 있어야 된다. 그런 말을 제가 많이 하고 있어요. 마지막 때 혼자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사탄의 먹잇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도 여러 가지 갈등과 문제와 이슈들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제 설교도 거기에 대한 주제인데 하지만 제가 계속해서 얘기하는 것처럼 공동체를 떠나지 맙시다 함께 고민합시다. 함께 말씀 봅시다 함께 어떻게 주님이 일하시는지 바라봅시다 하고 저희 교회 얘기 나누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들 교회에서 선교의 창원으로 큐티인을 나눠주신다고 들었는데 이 은혜가 여기만이 아니라 한국 교회만이 아니라 한국을 넘어서서 전 세계에 펴지기를 함께 또 축복해 주시며 기도하기를 부탁드립니다. 오늘 준비한 말씀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설교의 주제는 갈등입니다. 갈등을 생각하면 무조건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갈등이란 주제 자체가 갈등이죠. 저도 오늘 여러분을 처음 만나면서 갈등에 대해 나누는 것에 대해 갈등했었습니다. 근데 복음이 우리의 내면과 중심을 바꾸는 하늘의 영적 능력이라면 우리가 매일 삶 가운데 부딪치고 무너지고 힘들어하는 주제 바로 갈등에 대해서 분명히 역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복음을 제대로 안다면 매일 우리 삶 속에 크고 작은 갈등 가운데 내가 중심인 반응이 아니라 복음이 중심이 되는 반응이 나오는 능력이 나타날 줄 믿습니다. 오늘 저희가 읽은 야고보서는 초대교회 크리스천들에게 보낸 글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에게 갈등의 구체적인 원인과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주는 갈등에 대한 복음의 관점을 함께 보기 원합니다.
첫째로, 갈등은 모든 인간에게 있는 삶의 현실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크리스찬이던 아니던 갈등은 우리 피부로 느끼는 가장 실제적인 문제예요.어떤 분들은 갈등이 기관장 총처럼 따다다닥 그러면서 계속 있어요. 매일이 전쟁터입니다. 목사님 하지만 이 순간에도 갈등의 먹구름이 우리 머리 위를 맴돌며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게 괴롭히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놀랍지 않아요. 그럼 갈등은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죄인이기에 또 죄가 있는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는 모든 문화권의 모든 나라의 모든 가정 모든 부부 사이에 그리고 직장에서 오늘 성경이 보여주듯이 모든 교회와 사역 가운데도 갈등은 충만합니다. 이 인간의 문제를 성경은 외면하지 않습니다. 성경에도 갈등의 이야기들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있는 거예요. 아브라함과 사라 부부간 안의 갈등 다윗 왕과 아들 압살롬 부모와 자녀 간의 갈등 교회 안에서의 갈등 사역자들 사이의 갈등 뭐 가끔씩 이런 얘기를 많이 듣죠 우리가 초대 교회를 본받아야 한다. 하는데 그럼 초대 교회 갈등이 없었다는 것이 아닙니다.미국 이민교회 안에서도 이런 일들이 종종 있기에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습니다. 특별히 다음 세대들은 갈등 때문에 교회가 갈라지고 소송하는 것들을 경험해서 그런지 교회에 대한 이미지가 부정적이에요. 특별히 믿음을 저버리는 이야기들이 너무 자주 있어서 참 목사로서 제가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그럼 갈등이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 이것을 폭발함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공동체가 깨지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살아있는 한 갈등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갈등을 접근하는 관점을 복음으로 바꿔야 합니다.
적용 질문. 여러분 갈등이 올 때 놀라고 낙심하십니까? 혹시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지는 않으신 씨입니까?
둘째로, 갈등은 우리의 우상을 드러내기에 영적 성장 의 기회입니다. 갈등은 우리 안에 있는 죄와 우상들을 발견할 수 있게 합니다. 그래서 갈등 가운데 우리는 회개 할 수 있고 십자가를 제대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인데 모든 것이 다 잘될 때 화목할 때가 아니라 갈등 가운데 죄들이 드러날 때 용서를 구하고 또 용서를 베풀 때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고 믿음이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여기 컵이 있는데, 제가 들고 가다가 여러분에게 부딪쳐서 커피를 다 썼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래서 옷이 젖고 더러워졌습니다. 근데 그 이유는 제가 여러분과 부딪쳐서가 아니라 이 컵 안에 뭐가 있었어요. 커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갈등과 부딪칠 때 내 안에 있는 것이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갈등은 남의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 발견하게 하는 거예요. 큐티인에서 그런 마음을 들여다보는 간증들이 많이 나오죠. 그것이 진정한 변화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갈등 가운데 우리 컵에서 화평을 이루는 것들이 쏟아지길 원합니다. 불평과 원망이 아니라 감사가 분노가 아니라 온유가 사나움이 아니라 친절히 변명이 아니라 회계가 미움이 아니라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화평을 심는 자들은 의의 열매를 맺는다고 했습니다. 우리 우리들 교회 성도님들은 갈등 가운데 더욱더 풍성한 의외 열매를 거두시는 삶이 되기를 주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적용 질문. 여러분은 갈등 가운데 마음의 우상을 발견하고 계십니까? 혹시 상대방의 결점이나 남의 우상들에게만 집중하신 것은 아닙니까?
내 우상을 발견하셨다면 회개로 이어졌습니까? 갈등 가운데 목표가 무엇입니까? 화평과 화목입니까?
셋째로, 갈등 가운데 우리 내면의 죄를 인정해야 합니다. 서로의 다름이 있지만 갈등의 주된 원인이 나의 죄성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갈등하게 합니까? 심리학에서는 서로의 기대치가 맞지 않아서이라고 말을 합니다. 채워지지 않는 바램 아까 말씀드린 선교 드림팀 이 바울과 바나바도 갈등의 주된 원인이 무엇이었을까요? 바울은 도중에 포기한 마가를 믿을 수 있냐 이건 아니다. 바나바는 아니 그래도 1번 더 기회를 줘야 하지 또 자기의 사촌이기도 하죠. 그러니까 아무래도 팔이 안으로 굽겠죠. 둘 다 이해가 됩니다. 성격도 다르고 있는 위치에 따라 관점도 다르고 철학도 다릅니다. 그러기에 서로 부딪치는 것이 당연한 합니다. 그렇게 서로 다른 것이 갈등을 가져온다라는 것이 세상의 관점이죠. 그런데 하나님 말씀에서는 더 확실한 원인 다이그노시스를 줍니다. 자 1절부터 3절을 우리 야고버섯 4장 같이 한번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의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다 나는 것이냐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함으로 다투고 싸우는 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력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여기서 2번 나오는 정욕이라는 단어 영어로는 패션이라고 써 있어요. 그래서 마음속에서 일어날 욕구 욕심입니다.하나님 말씀은 갈등의 원인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의 죄성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의 생각 나의 선택 나의 안전 나의 편리 나의 큰 추로 나의 통제 이것이 남들보다 더 중요한 것이에요. 이곳의 뿌리에는 교만이 있습니다. 내가 우선이기에 나를 위해 먼저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의 본능 본질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갈등이 있는 것이에요. 다른 것은 마이 라이프 폴 유 당신을 위한 나의 삶 당신의 필요보다 내 필요가 우선의 삶이던지 아니면 당신의 필요가 내 필요보다 먼저인 삶 매 순간 우리가 내려야 하는 선택입니다. 근데 우리의 본능적인 반응은 항상 우리 자신을 위하는 것입니다. 나의 관점이 맞다고 우기고 나의 정력을 채우는 것을 저는 우선으로 했습니다. 상대방이 그것에 맞추는 것을 요구했고요. 물론 목표는 결론은 누가 이겼겠어요. 제가 이겼어요. 갈등 가운데 우리의 자연스러운 반응 그럼 크게 보면 2가지일 것 같아요. 어떤 사람들은 공격형 아니면 다른 사람은 회피형들이 있을 것 같아요. 공격형은 내가 이길 때까지 갈등은 끝나지 않는다.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한다. 변호사처럼 상대방을 다그치고 따집니다. 끝장을 봐야 돼요. 아니면 여러분이 생각하셨던 그 갈등 가운데 회피형이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갈등은 하 어떻게 하든 피하자 아니 지금 꼭 이 얘기를 해야 돼 내일 하면 안돼 응 그래도 싸우지는 않지만 꽁하고 간접적으로 공격을 하는 사람들이 있죠. 그래서 삐쳐서 말을 하지 않거나 밥을 주질 않거나 갈등의 자리를 피할려고 하는 자 공격형 회피형 제일 최근에 있었던 갈등을 생각하시며 여러분의 성향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밖에서는 회피형 근데 집에 와서는 공격형이 된다고도 합니다. 어찌 됐든 이것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반응이라는 것은 복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공격형 회피형 둘 다 죄성입니다. 복음 중심적은 의도적이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서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기에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적응 질문. 그 갈등 가운데 여러분은 어느 쪽 주로 공격행위입니까? 회피형입니까? 그 자연적인 성향이 죄라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교만을 인정하며 회개하십니까? 예수님의 영광이 아니라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정욕을 채우려고 갈등한다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마지막으로, 복음이 제시하는 갈등의 해결은 겸손으로 시작합니다. 겸손으로 야고보서 4장 6절에 그러나 더욱더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어떤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까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복음 중심이라는 것은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기에 온전히 은혜입니다. 그 은혜는 겸손한 자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세상도 갈등의 해결책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책방에 가시면 여기에 대한 이 테크닉과 아이디어들이 많이 담긴 책들이 여러 군데 있을 거예요. 주로 이런 책들을 읽으면 세상의 해결책은 타협입니다. 협상이죠. 그래서 모든 관계자들의 기대를 인정해 주고 아 우리 둘 다 이기는 방법을 찾자 근데 이 타협의 원리는 일시적인 거예요. 본질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냥 반창고 붙이는 것입니다. 마음을 변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인간의 정력은 어떤 물질 상황이 조금 맞추어졌다고 완전히 해결되지 않아요. 다음에 똑같은 상황에서 그렇게 변화돼서 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야구 부서에서는 본질을 다루고 있습니다. 7절부터 쉽게 숙제를 같이 읽어보겠는데요. 근데 여러분이 그 갈등했던 그 사람 아 그 사람을 생각하지 마시고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세지로 받기를 원합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그런 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청할 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의 웃음을 애통으로 너의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아멘 이런 갈등의 원인이 우리의 죄성인 교만이라면 해결은 회계에 이르게 하는 겸손입니다. 이 갈등에 그냥 나와 그 상대방만의 문제가 안 아니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예수님 안에 속한 자로서 그 갈등 가운데 나와 하나님의 이슈가 되는 것입니다. 나의 반응이 내가 나타나는 것인지 아니면 내 안에 계시는 성령님이 나타난 것인지 결국에는 그 갈등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지 아니면 내가 이기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힐 것인지 축복 아니면 저주 생명 아니면 죽음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 앞에 겸손히 서 있는가 입니다. 겸손이라 그래서 무슨 소극적이거나 자신감이 없는 것이 아니에요. 진정한 성경적인 겸손은 이런 말이 있어요. 겸손은 자신을 작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덜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할 때 나의 정력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크리스천에게는 예수 그리스의 십자가의 복음이 그 동기를 주는 거예요.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내어주시므로 우리의 정체성이 확정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만큼 사랑하신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분의 완벽함에 의로움을 우리에게 입혀주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내세울 필요가 없어요. 그러기에 겸손은 부족해서가 아니라 엄청난 채워짐이 있기에 당당하게 우리 자신을 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저는 예전에는 이겨야 된다고 많이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제 안에 있는 굶주림 때문에 인정의 우상이 있으니 사랑한다고 생각하면 우울하고 분노하고 어쩔 수 없으면 자기 연민으로 빠지고 그래서 주로 어떤 면에서는 또 회피형이다. 보니까 말도 안 하고 꽁 하고 얼굴은 온통 못마땅한 표정 평안이 없는 것이죠. 그것은 저에게 또 제 주위의 모든 사람에게 특별히 제 가족에게 괴로움이었습니다. 근데 복음 안에서 채워지니 이기지 않아도 돼요. 이제는 내가 내 자신을 방어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러니 갈등 가운데 김양재 목사님이 자주 쓰시는 당신이 뭐라고요. 옳소이다.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나도 틀릴 수 있다라는 겸손으로 갈등을 맞이하니 대화가 됩니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습니다. 왜냐면, 내가 죄인이기 때문에 나도 틀릴 수 있다. 생각하니 놀라운 거죠. 제가 회피형이지만 제 생각도 이제는 잘 전달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니까요? 그 결과가 저를 정의하는 것이 아니니 제가 얘기하고 난 후에 결과까지도 주님께 맡겨버리고 나는 평안할 수 있어요. 복음이 우리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게 합니다. 그분의 사랑이 완전하시기에 우리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것이 가장 완전 안전합니다.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와 하나님을 반역하는 죄를 영적 간음으로 표현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의 신랑 남편이 되신다는 거예요. 근데 완벽한 남편이세요. 근데 남편만 있어야 할 그 자리에 다른 남자가 있다면 시기하는 것이 당연하고 거룩한 것입니다. 자기 아내가 딴 남자를 바라보는데 시기를 하지 않는 것이 잘못된 것이죠.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곳에 마음을 줄 때 시기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물질이든 어떤 사람이든 일이든 가족이든 사역까지도 하나님은 질투하세요. 그것은 뭡니까? 모든 것을 다 해서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표현입니다. 그 사랑은 포기할 줄 모르고 완벽하세요. 그야 사랑 안에서 우리는 갈등 가운데 안전하게 또 겸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적용 질문. 갈등 안에서 나도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십자가의 사랑 안에 여러분이 필요한 모든 의로움과 인정이 채워졌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믿으시길 주님의 이름을 축복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갈등은 인간과 인간 사이가 아니에요. 우리를 창조하신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갈등입니다. 인간이 죄를 지으며 하나님께 등을 돌림으로 영적 가늠을 저지르며 갈등이 찾아왔습니다. 이 갈등은 우리가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하셔야 하는데 어떻게 하신다고 했습니까? 빌립보서 2장 5절을 보시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 마음은 겸손함이에요.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자기를 죽기까지 낮추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 갈등 가운데 분노하시고 우리 모두를 싹 쓸어버리셔도 되는데 그러지 아니 하셨습니다. 자신의 임재를 거두지도 않으시고 자신의 무한한 힘을 과시하지도 않으시고 오직 희생함으로 우리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오늘 관계로 초청하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과의 화목의 길이 열어주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가 우리를 위한 것임을 저 같은 죄인을 위한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영원히 있었어요. 우리 모두는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다 깨달은 것은 갈등은 피할 수 없지만, 나쁜 것이 아니다. 우리를 겸손하게 하고 또 겸손하면 우리를 위해 겸손해지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게 될 줄 믿습니다. 그 은혜를 깨달으면 남을 위할 수 있게 돼요. 여러분 갈등에 부딪칠 때 여러분에게서 화평의 열매가 쏟아지는 매일매일 복음의 능력을 누리시는 우리들 성도님 되시길 축복합니다.
적용질문
1. 갈등이 올 때 놀라고 낙심하십니까?
- 혹시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2. 여러분은 갈등 가운데 마음의 우상을 발견하십니까?
- 혹시 상대방의 결점이나 남의 우상들에게만 집중하신 것이 아닙니까?
- 내 우상을 발견하셨다면 회개로 이어졌습니까?
- 갈등 가운데 목표가 무엇입니까?
- 화평과 화목입니까?
3. 갈등가운데 여러분은 어느 쪽 입니까?
- 공격형 입니까? 회피형 입니까?
- 그 자연적인 성향이 죄라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 교만을 인정하며 회개하십니까?
- 예수님의 영광이 아니고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나의 정욕을 채우려고 갈등한다는 것을 인정 하십니까?
4. 갈등 안에서 나도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 십자가의 사랑 안에 여러분이 필요한 모든 의로움과 인정이 채워졌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기도제목
한민석
1. 신교제 신결혼 인도함 받도록
2. 여전한 방식으로 겸손하게 하루하루 적용하며 살기
3. 양교 가운데 잘 듣고 잘 나눔할 수 있도록
4. 목장 식구들의 건강
박기훈
1. 장래의 문이 열릴 수 있도록
2. 소설이 좀 막혔는데 잘 쓰여질 수 있도록
3. 큐티 열심히 할 수 있도록
4. 감정 조절 잘 할 수 있도록
고현승
1. 목,손목 통증이 빠르게 좋아지도록
2. 가족 관계가 좋아지기를
3. 기초양육 받는 동안 꾸준히 임하기
장주영
갈등속에서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직면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나의 연약함과 수치를 잘 드러내고 정욕대로 내 방식으로 하지 않고 공동체에 묻고 갈 수 있도록
신교제 신결혼을 위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