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908
간구하매 들으셨으니
열왕기하 13:1-9절
1.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
1절
요아스 23년에 요아스가 성전수리를 시작했고 그때 북이스라엘 예후가 죽음. 45년 동안 이어진 아합의 집을 멸함. 아합의 아들여호람과 사위인 아하시야를 죽이고 아합가문을 끊어냄. 바알의 집도 멸함. 엄청난 업적을 1년만에 행함. 1년 동안 온갖 개혁을 행했지만 나머지 27년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고 열심은 있었지만 전심이 없었음. 그래서 생명이 아닌 사망으로 끝나고 맘.
예후 뒤를 이은 여호아하스 그도 17년이나 왕위에 있었는데 예후는 아들의 이름은 하나님이 붙드셨다 하는 뜻으로 지음. 아마도 회개하는 마음으로 지은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음.
2절
여호아하스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함. 이것이 거꾸로 사람 보기에는 선하고 멋있을 수 있음. 열왕기 상 하 말씀을 보면서 보게 되는 게 여로보암의 죄. 여러 번 반복되고 따라가는 떠나지 않는 죄인 여로보암의 죄는? 떠나지 못했다가 아니라 떠나지 않았다! 떠날 마음조차 품지 않았다는 것. 여로보암의 죄에 대해 가장많이 붙는 설명은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했다는 것. 여로보암의 죄는 여로보암 한사람에게서 끝나지 않음. 온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됨. 죄는 한자리 하나에서 끝나지 않음. 죄는 전염됨. 세상의 어떤 전염병 보다도 더 강한 최강의 전염병은 바로 죄. 그래서 불신결혼 하면 안됨. 불신은 죄를 모름. 평생 살아도 죄가 뭔지 모름. 누구도 떠나지 않는 이 죄가 금송아지 숭배. 열 지파가 따라 나감. 그런데 나라가 분열되었다고 신앙까지 분열된 건 아님. 예배는 예루살렘에서 드려야 하는데 남유다로 가버릴까봐 금송아지를 세움. 그냥 세우면 안되니까 번쩍번쩍한 금송아지를 세워서 날마다 윤을 냄. 화려함으로 압도되게 해서 못가게 함. 절기도 남쪽으로 찾아갈까봐 다 바꿈. 남쪽으로 내려가는 백성들의 마음을 붙드는 건 하나님을 빙자해 내 사람으로 만드려는 정권욕 때문임. 허름한 예루살렘 가서 예배 드리려는데 여기서 금송아지가 번쩍번쩍하니까 머리로는 아는데 떠나지 못함. 거기서 말하면 병이 나을 것 같고 돈이 생길 것 같고 그럼. 이렇게 부모가 눈에 보이는 금송아지를. 섬기니 속을 썩이거나 안썩이거나 삶은 부모를 닮아가는 경우가 많음. 가장 중요한 건 구속사를 선택하냐 세속사를 선택하냐임. 자녀들은 늘 눈으로 보이는걸 따라감. 그러니 북이스라엘은 한명도 예외없이 부모를 따라 악을 따라감.
예수도 안믿으면서 올바른척 훌륭한척 경건한 척 이러면 여기서 이중성이 나오게 됨. 그러니까 나는 우리집은 왜 이런가 왜이럴까 이러지 마시고 내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인간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풍토를 허락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생각해야 함.
성경을 보면서 이게 내 모습이다 이걸 봐야 함. 결론은 예수 믿지 않으면 죄. 모든 습관들이 모두 죄.
적용질문
나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합니까, 사람이 보기에 악합니까?
육신은 죄의 집합소라는 것이 얼마나 믿어지세요?
이렇게 악인 줄 알면서도 끊지 못하는 습관은 무엇입니까?
2.학대당하므로 구원자를 주십니다.
3-4절
악한 결괴 여호와께서 노하심. 하나님이 노하신 것은 코가 탈만큼 열받으셨다는 것. 하나님이 열받으시는 진노는 감정의 폭발이아니고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처벌. 그래서 심판으로 이루어짐.
아람 왕의 손에 넘기는거로 심판을 이루심. 이스라엘은 아람왕의 분노를 받아야 할 처지. 그러니까 내가 상사의 분노 친구의 분노를 받아야만 하는 처지가 된 것은 내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기 때문. 아람이 분노하는 게 아니라 원수의 손에 눌리고 찔리는 지금 학대를 받게하심. 하나님은 그들이 처들어왔다고 하시지 않고 늘 그들의 손에 넘기셨다고.늘. 대적의 손에 넘기시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늘.. 늘.. 늘이 은혜인 것.
우리는 하사엘만 죽으면 끝날 줄 알았는데 대를 이어 벤하닷이 기다리고 있음.
학대하는 아람만 이상한 게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 밖에 없던 민족의 죄악을 바라봐야함. 이스라엘을 보면서 유다가 회개하고 유다가 이스라엘 보면서 회개해야 하는데 남쪽과 북쪽 믿음과 신과 불신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음.
하나님이 늘 나를 하사엘에게 넘기셔서 학대를 받게 해도 안되니 벤하닷 같은 더 힘든 사람 손에 넘기심. 왜냐하면 버려두는 건 사랑이 아니기에 하나님이 나에게 노하셨다 학대가 시작되었다! 이건 선하심이 시작되었다는 것. 하나님께 잊혀진 자는 고통이 없음.
4절
학대가 여호아하스를 정신 차리게 함.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는데 간구하다 라고 번역한 히브리어는 약해지다 아프다는 뜻. 이 동사가 강조하는 뜻으로 쓰이면 부드럽게 누그럽게 하다로 쓰임. 그래서 번역하면 여호와의 얼굴을 부드럽게 하매. 가 됨. -> 악을 행한데 대한 진노로 코에 불이 나듯 무섭게 불이 난 하나님의 얼굴을 부드럽게 한다는것..
우리가 잘못해서 잔뜩 굳어지면 우리는 풀어주려고 불쌍히 여겨달라고 진노 거두어 달라고 납작 엎드려서 애원하잖아요? 그것
높고 높은 자리의 여호아하스가 낮아짐. 그러니까 하나님의 진노하심의 얼굴이 보이는 것. 아람왕만 원망하고 미워하고 저주하던 높은 자리에서 떨어지니 그 뒤에서 진노하고 계신 하나님이 비로소 보인 것. 그 배후에 있는 진노의 하나님이. 내가 여호와께 악을 행했구나, 내가 금송아지를 좋아했구나. 내 악을 봐야함.
내가 금송아지를 쫓고있기 때문에 누군가를 통해 학대를 받는 것. 내가 학대 받는게 사랑. 학대를 받은 여호아하스가 여호와께 간구하게 됨.
이게 은혜임. 하나님만이 내가 진짜 어떻게 슬퍼할까를 가르쳐주시는데. 참으로 인생이 어디서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다가 학대함으로 기도하다가 내가 누구에게 기도해야 하는가의 대상을 알려주시는 것.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남친 여친을 계속 찾고, 거기서 또 만족을 못하면 그렇게 슬퍼함. 그러니까 하나님만이 어떻게 슬퍼할까를 알려주심. 하나님께 간구하고 회개하면 그냥 간구를 금새 들어주심. 여호아하스가 간구하면 들어주심. 이뻐서 그런게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이 학대받음을 보셨기 때문. 학대받는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내 새끼인것. 그걸 하나님이 보심. 하나님의 내새끼를 보는게 사명이라고 함. 그래서 여호아하스가 살려달라고 하는 간구를 들으심. 그래도 이스라엘이 언약안 택자 백성이기에 불쌍히 여기심. 그러니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여호아하스같은 악한 왕의 간구라도 내 백성 때문에 들어주심. 예후에게도 약속하심. 왕위가 4대를 이어질 것이라고. 이것도 여호아하스의 간구를 들으신 이유..
예후가 아합의 고리를 끊음. 그래서 내가 4대를 네 자녀에게 허락하겠다. 이건 하나님이 약속하셨기 때문에 들으심. 우리는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나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음. 기도할 수 있음. 나는 틀렸어 이건 없음. 근데 스스로 기뻐서 간구하게 되지 않음. 모든 걸 다 갖추니 기도가 안나옴. 학대받는 상황 속에 있으면 저절로 기도가 나옴. 간절히 하는 그런 기도는 하나님이 반드시 들으심
5절
늘..범죄하고 거하였으..나~~를 기억해야함
구원자가 누군지를 밝히지 않음. 저자의 의도가 중요. 나를 괴롭히는 사람을 통해서 계급이 없어지는데 그렇다고 일본이 구원자는 아님. 그러나 역할은 함. 이럴 때 이름을 안올림..
앗수르가 아람을 깨부심. 그런데 갑자기 물러남. 그렇다고 구원자는 아님. 엘리사는 기적의 선지자. 독이 든 것도 없애고 사람도 낫게 하고 그러니까 엘리사의 이름을 여기 올려놓으면 구원자보다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춰야함. 문제 해결자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기에 그래서 여기는 감추심.
그런데 모세나 엘리사는 결국 애굽에서도 학대를 당하니까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모세를 보내심. 여기서도 학대를 당하는 이스라엘 보시고 엘리사를 보내주셨다면 모세나 엘리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 그들이 예표하는 진정한 구원자는 하나님의 말씀이신 에수.
내 삶의 자리에서 오늘 내게 주신 말씀을 듣는 것 찾는 것이 바로 구원자 예수님을 내 삶에 모시는 것.. 이게 중요함.
말씀을 듣는 것이 간구함에 들으시는 비결
최고의 응답은 여전한 방식으로 전과 같이 장막에 거하는 축복.
적용질문
-학대받는 고난 가운데 낮아져서 부드러운 마음으로 간구합니까, 억울한 마음으로 간구합니까?
-늘 범죄하니 늘 넘겨주시는 것이 이해되십니까?
-대를 이어학대받는 것이 있습니까?(부자간, 고부간, 장서간, 모녀간, 형제간, 자매간 등) 전과 같이 장막에 거하는 일상의 축복이 최고의 응답임을 믿습니까?
3.은혜를 잊으면 티끌같이 됩니다.
6절
여호아하스와 이스라엘 백성은 학대가 그치고 편안하게 살게 된 것을 응답으로 여김. 구원자가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라는 걸 생각 안함. 그러니 여호아하스는 아람이 물러가니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는 흔적도 하나도 없음. 구원자보다 더 중요한 응답은 구원자를 보내신 하나님 자체인데 하나님만이 최고의 응답이며 상급이심을 알아야 하는데 여호아하스는 여전히 장막에 거하였으나 여전히 여로보암 집에서 떠나지 아니함. 따라 행하며 또 사마리아에 아세라 목상을 그냥 둠. 오뚜기처럼 죄의 공장. 학대받아서 도와줬더니 또 번쩍 보이는 금송아지를 여전히 좋아함. 자신의 질병을 고쳐주었더니 하나님 다 잊어버리고 자신을 하나님 자리에 놓음. 그래서 그들은 이 은혜를 여로보암 죄에서 떠나지 않는 것을 갚음. 돈을 주인 삼아서 따라 행하는 거로 갚음. 은혜는 하나님께 받았는데 그들은 그 은혜를 우상에게 갚음. 입 씻고 돈 좋아하고 여자 좋아하고 금송아지가 너무 좋으니 자기 욕심에 삼. 예수 믿으면 자존감이 생김.
7-9절
하나님의 진노의 도구인 아람왕이 여호아하스와 백성을 학대 정도가 아니라 아예 멸절함. 타작마당의 티끌같이. 털려서 없어져 버리는 가치없는 무력한 티끌.. 같이.. 세상에서 지워버림. 결국 구원받지 못했다는 의미. 우리의 하나님은 또 누구세요? 우리를 사랑하심..
하나님은 그렇게 무서운 하나님이 아니심. 사랑 많은 엄마하고 똑같음. 셋 셀 동안까지 안오면 너 때린다.. 하는데 셋을 못셈. 그래도 남겨두신게 있음. 마병 오십명과 병거 열대와 보병 만 명.
군대는 100만에 가까웠는데 만명만 남음. 비교하면 멸절된 것 같지만 그래도 남겨주심. 여호아하스에게도 남은 사적이 있게 하시고 조상들과 장사될 수 있도록 남겨주시고 왕위를 이어받을 요아스도 남게하심. 은혜를 막 잊고 살아도 살려주신다는 게아 니라 여호아하스는 악한 왕임. 그럼에도 여호아하스를 남기신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에.!!!
예후왕조가 4대를 이어가게 하신다는 약속이 있기 때문임.
유다자손에게 허락하신 다윗의 등불 때문에 약속을 지키시는게 아니라 이 언약 약속을 유혹해서 어떻게든지 살리게 하심.
하나님은 이렇게 온 백성을 사랑하심. 세상없는 정권이 바뀌어도 내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같음.
큐티하고 예배드리고 목장가서 약속을 받고 그 약속을 기억하는 것. 이것이 내가 장막에 거하는 최고의 축복. 주신 은혜를 잊으면 멸절하여 티끌같이 됨. 멸절하는 것 같아도 거기서 마병 과 병거 보병 만명의 남은 것을 봐야함.
적용질문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깜깜하게 잊고 또 금송아지를 찾아다니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지금 멸절 당하는 가운데 남겨진 것은 무엇입니까? 은혜를 기억하며 이번 주에 공동체를 위해 할 수 있는 섬김은 무엇입니까? 자녀들이 나를 닮기 원합니까?


목자님이 가져오신맛있는 유부초밥과 부목자의 빵으로 배부르게 목장했뚭니당 ~~~ o3o
기도제목
A
-양교 잘 나갈 수 있도록
-두려운 게 많은데, 내 생각대로 결정하지 않도록
-하나님이 주신 은혜 오래 가도록
-남자친구에 대해 들어야 될 말을 잘 들을 수 있도록
B
-큐티하기
-분별할 수 있는 지혜 주시도록
C
-결혼준비 중에 있는데 많이 묻고 갈 수 있도록
-화요일에 정신과 가는데, 솔직하게 자 얘기할 수 있도록
-내 열심이 아닌 전심으로 일할 수 있도록
-가정에서의 내 모습 잘 볼 수 있도록
D
-직장에서 내 죄 보며 갈 수 있도록
-나의 금송아지 우상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신결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