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08 간구하매 들으셨으니
열왕기하 13:1-9
여러분은 요즘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게 있습니까? 너무 간절해서 안 들어주시면 삐질 것 같은 그런 기도가 있으세요? 이런 기도가 그대로 응답되면 좋겠지만 그게 진짜 좋은 것일까요?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이런 메모를 남겼어요.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모든 걸 주시지는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속을 이루어주신다.' 그러니까 우리가 약속을 알아야 되죠. 약속에 근거한 우리 기도를 들으십니다. 우리의 모든 간구를 듣고 계세요. 매일 교회 홈페이지 여러 간절한 기도가 올라옵니다. 매일 새벽마다 예배당에 나와서 간절히 기도하는 분들이 계세요. 이 모든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가장 좋은 길로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이제 남유다 이야기에 이어 다시 북이스라엘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의 이야기입니다. 악한 왕이죠. 그런데 북이스라엘의 왕인 그도 여호와께 간구할 일이 생기네요. 더 놀라운 것은 그가 간구하매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는 거예요. 오늘 우리도 '간구하매 들으셨으니'를 우리에게 주시는 음성으로 들어봅시다. 그리고 여러분 사건에 이 발단과 전개와 결말이 이해가 되서 '음, 내 삶의 결론이구나.' 이렇게 이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1.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
1 유다의 왕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의 제이십삼 년에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십칠 년간 다스리며
-> 자, 여호아하스 제 23년에 무슨 일이 있었다고 해요? 요아스가 성전 수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그때 북이스라엘에서는 예후가 죽었어요. 예후는 그 시대의 개혁의 아이콘이었어요. 45년간 이어진 오므리 왕조, 즉 아합의 집을 멸했습니다. 아합의 아들인 여호람과 사위인 남유다의 아하시야를 죽이고 아합 가문을 끊었어요. 바알의 집도 멸했고요. 엘리야 선지자의 예언을 이룬 주인공 중 하나였습니다. 이 엄청난 업적을 1년만에 행했어요. 1년 동안 온갖 개혁을 행했지만 나머지 27년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고
열심은 있었지만 전심은 없었다고 했죠. 이에 반해 남유다 요아스는 39년을 정직히 행하다가 여호야다 대제사장이 죽고 나서 1년 동안 온갖 악을 행했는데요. 여러분, 1년을 악을 행한 것과 27을 악을 행한 것 누가 더 나쁠까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1년 동안 악을 행한 요아스는 은인의 아들을 돌로 쳐 죽였자나요. 비교가 안되는 거 같아요. '별 인생이 없다.'가 뼈저리게 느껴집니다. 1년이나 27년이나 우리 마지막은 예수로 끝나야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웅리가 정말 예수 믿게 하려고 늘 영접 기도하러 가고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예후 뒤를 이은 여호아하스는 그도 17년간 왕위에 있었어요. 예후는 아들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붙드셨다.'는 뜻으로 지었어요. 아마도 회개하는 마음으로 지었겠지만 2절이에요.
2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가고 거기서 떠나지 아니하였으므로
-> 여러분, 이름만 잘 지으면 뭐 합니까? 여호아하스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어요. 이것이 거꾸로 사람 보기에는 어땠을까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것은 사람이 보기에는 선하고 멋있고 위대한 것이 많아요. 열왕기상하 말씀을 나누면서 계속 보게 되는 것이 여로보암의 죄자나요. 오늘 본문에도 여러 번 반복되는 '따라가고', '떠나지 않는' '그대로 두는' 악인 이 여러보암의 죄는 무엇일까요? '떠나지 못했다.'가 아니고 '떠나지 않았다.'예요. 떠날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 여로보암의 죄에 대해 가장 많이 붙는 설명이 뭔지 아세요?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느밧이라는 아버지를 욕보이는 죄가 늘 따라 붙어요. 여로보암의 죄는 여로보암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아요. 아버지로부터 온 가족을 범죄하게 했고, 온 이스라엘을 범죄하게 했어요. 죄는 나 혼자만의 죄로 남지 않습니다. 죄는 전염돼요. 전염성이 너무너무 강해요. 세상의 어떤 전염병보다 강한 최강의 전염병은 바로바로 죄예요. 누구도 떠나지 않은 이 죄가 바로 금송아지 숭배인데요. 닫시 한 번 유추해보면 열 지파가 따라서 나가서 그 요셉의 후손인 여로보암이 북이스라엘을 세웠어요. 아무리 말을 해도 그쪽이 너무 좋아요. 나라가 분열됐다고 신앙까지 분열되는 것은 아니자나요. 에배는 예루살렘에서 드려야 하는데 그러면 모두 남유다로 가버릴까봐 가지 못하게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웠어요. 그냥 세워도 안되니까 번쩍번쩍한 금송아지를 세웠어요. 보이는 화려함으로, 이 막강함으로 못 가게 했어요. 그 다음에 제사장이 없으니까 아무나 세워서 공개 모집을 했어요. 절기도 남쪽으로 찾아갈까봐 다 바꿨어요. 결국 남쪽으로 내려가는 백성들의 마음을 붙드는 것은 하나님을 빙자해서 내 사람으로 만들려는 정권욕 때문이죠. 이것을 백성들이 알아요. 그런데 예루살렘은 초라하고 벧엘의 금송아지가 너무 번쩍번쩍거리니까 알아도 떠나지 못해요. 이렇게 부모가 눈에 보이는 금송아지를 주야장창 섬기는데 자녀들이 공부를 잘하 건 못하 건 간에, 속을 썩이 건 간에 삶은 부모를 그대로 닮아가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구속사로 선택하는가, 세속사로 선택하는가?'를 늘 눈으로 보기에 결국은 따라가는 거예요. 북이스라엘은 한 명도 예외 없이 이 부모를 따라, 악을 따라가고 떠나가고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집안이 이상하고 힘들게 자란 사람 중에서 예수 열심히 믿는 사람 많아요. 그런데 부모가 완절무결하고 열심히 공부를 시켰는데 이 부모의 완전주의와 교만이 그대로 내려가서 자녀들이 완전히 이중인격자로 자랄 수가 있는 거예요. 부모님 앞에서는 완전히 말 잘 듣고 속에서는 인간이 죄인이니까 부글부글 끓으면서도 결국은 번쩍거리는 금송아지를 똑같이 따라가는 거예요. 이것이 데카르트의 이원론입니다. 데카르트가 어려서부터 얼마나 부모 말을 잘 듣는 착한 소년이었는지 몰라요. 그래서 그는 이원론의 창시자가 됐습니다. 아이들이 도리어 어렸을 때 이상한 부모, 원색적인 인간의 가면을 벗은 모습을 보고 자라는 게좋을 수도 있더라고요. '나는 왜 이런 집에서 태어났나? 왜 이런 남편인가, 아내인가, 부모인가? 왜 이런 애들이!' 이러지 마시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인간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풍토를 허락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생각하시길 바라요. 나 죽은 다음에 집안 망치고 나라 망친 북이스라엘의 왕들이 나오지 않도록 우리는 이래도 저래도 감사해야 하지만 예수 믿지 않으면 다 헛 거예요. 육신에 거듭난 영을 담고 있지만 육신은 죄의 집합소인 거예요. 그러므로 모든 습관들이 다 죄예요. 특히, 예수도 안 믿고 일류학교 가고 육신이 열심이도록 노력한 사람이 변하지 않으면 쌓여 있는 그 모든 것들이 죄가 될 수 있어요. 그거 때문에 예수 못 믿어요. 그래서 성경에는 인간의 치적은 언급이 별로 안되어 있죠. 오직 하나님이 하신 일만 언급이 되어 있어요. 인간의 일은 아무리 부국강병이라도 한 줄로 지나갑니다. 예수 믿기 전의 성품들이 바뀌지 않으면 예수 믿기 전의 그 열심과 모든 것을 놓지 못해요. 예후를 보니까 정말 알겠어요. 그래서 내가 하나님 자리에 있기에 창업주들이 예수 믿기가 그렇게 힘든 거예요.예수가 없이 자기 힘으로 했기 때문에 부모가 너무 좋은 환경을 준 아이들은 자기가 노력할 필요가 없으니까 교만해요. 그런데 거꾸로 부모가 없을 때에는 노력하는 게 또 너무 많아서 자기 의가 세워집니다. 그러므로 모두모두 죄예요. 육신은 죄의 집합소예요. 우리는 믿고나서도 죄의 집합소에 이렇게 여전히 거하고 있어요. 51 대 49로 시작해서 내 육신의 습관이 계속해서 튀어나오고 들어가고 이럽니다. 적용질문이에요.
[적용] 나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합니까, 사람이 보기에 악합니까? 육신은 죄의 집합소라는 것이 얼마나 믿어지세요? 이렇게 악인 줄 알면서도 끊지 못하는 습관은 무엇입니까?
2.학대당하므로 구원자를 주십니다.
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노하사 늘 아람 왕 하사엘의 손과 그의 아들 벤하닷의 손에 넘기셨더니 4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학대하므로 ....
->3절, 4절입니다.
이 악한 결과 여호와께서 노하셨어요. 히브리어를 직역하면 하나님이 노하신 것은 코가 탈 만큼 열받으셨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이 열받으시는 진노는 우리처럼 감정의 폭발이 아니고, 진노가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처벌인 거예요. 그게 심판으로 이어져요. 이스라엘을 아람왕의 손에 넘기시는 심판을 통해 처벌하시는데 이스라엘은 갑자기 아람의 분노를 받아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어요. '내가 왜 갑자기 시집을 가서 시아버지의 분노를 받아야만 하는 처지가 되나?' 뭐 이런 거죠, 그렇죠? 시아버지 뿐만 아니고 그동안 제일 미운 라이벌, 원수의 손에 눌리고 찔리는 학대를 받게 하셨어요. 이것을 하나님은 '넘기셨다.'고 표현을 해요. 그들이 와서 쳤다고 그러지 않고 하나님이 주관하셨음을 분명히 알려줍니다. 여기 '늘'이라는 단어가 나오자나요. 이렇게 늘 범죄하니까 늘 대적의 손에 넘기시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인데, 이 '늘'이 은혜예요. All their days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하사엘만 죽으면 끝날 줄 알았는데 대를 이어 벤하닷이 기다리고 있어요. 북한도 김일성만 죽으면 끝날 줄 알았는데 지금 3대를 이어서 학대를 당하게 하십니다. 북한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조선 왕조도 계급이 있었자나요. 그런데 일제강점기도 대단했자나요. 그런데 북한이 그대로 지금 계급 사회라는 거죠. 일제강점기 끝나고 지금 북한이자나요. 그러니까 고난이 끝날 줄 알았더니 지금 전대 미문의 고난이 오고 있다고. 이럴 때 학대하는 아람만 이상한 게 아니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 밖에 없는 민족의 이 죄악을 봐야 하는 것이라는 거예요. 남과 북은 신과 불신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모델로 쓰임받고 있어요. 그렇지만 우리 남한이 잘한 게 하나도 없어요. 이걸 잘 생각하셔야 돼요. 나라도 그렇지만 내 자신도 내 악을 깨닫지 못하니까, 하나님이 늘 나를 하사엘에게 넘기시는데도 안되니까 벤하닷 같은 더 힘든 사람의 손에 넘기시는 거예요. 왜냐하면 버려두는 것은 사랑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노하심은 선하심이 시작되는 Start. 그래서 술술 풀리는 게 무섭다고 그랬자나요.
4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학대하므로 여호아하스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셨으니 이는 그들이 학대받음을 보셨음이라
-> 이 학대가 여호아하스를 정신차리게 합니다. 학대 가운데 여호아하스가 뭘 했습니까? 여호와께 간구를 했어요. 여기서 '간구하다.'라고 번역한 히브리어 '할라'는 원래 '약해지다, 아프다.'는 뜻이에요. 이 동사가 뜻을 강조하는 형태 '힐라'로 쓰이면 '아프다, 약하다.'가 '부드럽게 하다, 누그러뜨리다.'라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여호와께 간구하매를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여호와의 얼굴을 부드럽게 하매'가 됩니다. 무슨 말입니까? 악을 행한데 대한 진노로 코에 불이 나도록 무섭게 굳어진 하나님의 얼굴을 간구하니까 부드럽게 됐다는 거예요. 이게 뭔가 하면 내가 뭔가 잘못해서 식구들, 남편, 아내, 사장님 얼굴이 잔뜩 굳어지면 여러분 어떻게 해요. 손이 발이 되도록 빌자나요. 납작 엎드리자나요. 좀 불쌍히 여겨달라고 좋아할만한 일은 다 하자나요. 그렇게 애원하니까 높은 자리에 있던 요아스가 낮아지고, 악해지고 아픔이라고는 당해본 적이 없는 여호아하스가 아프게 되니까, 낮아지게 되니까, 그렇게 되니까 하나님의 진노하신 얼굴이 보인 거예요. 지금 아람이 미워했다고 그랬는데 그 뒤에 계신 '아, 하나님이 진노하신 사건이구나.' 하나님이 내 죄를 보라고 사장을 붙이고, 시어머니를 붙이고, 장모를 붙이고, 오빠를 붙이고, 언니를 붙이고 이게 비로소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이거는 내가 금송아지를 쫓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를 통해 학대를 하는 거예요. 이게 웬 은혜인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학대받는 것이 사랑이에요, 짧은 인생이니까. 학대를 받으니 여호아하스가 여호와께 간구하게 되자나요. 그런데 아니 학대 받아서 기도했는데 또 예쁘다고 들어주시니 이게 은혜라는 걸 아세요? 나는 죽어도 싼 인생인데, 나는 학대를 통해서 하나님하고 교류하게 됐자나요, 그렇죠? 그래서 하나님만이 어떻게 슬퍼할까를 가르쳐주세요. 참으로 인생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다가 이렇게 학대당하므로 기도해서 내가 누군가에게 기도해야 하는지 그 대상을 알려주시니 그 하나님께 간구하고 회개를 하니까 금세 들으셨어요. 여호아하스가 이뻐서 그랬을까요? 그거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이 학대받음을 보셨기 때문이라고 그래요.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내 백성이자나요. 그걸 하나님이 보셨다는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를 내가 보게 되는 것, 이걸 사명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여호아하스가 살려달라고 하는 간구를 들으셨어요. 비록 여로보암의 길로 멀리멀리 떠나고 있지만 그래도 언약 안에 있는 백성이자나요, 하나님의 택자이자나요. 그래서 여호아하스 같은 악한 왕의 간구라도 들어주시는 거예요. 예후에게도 하나님이 약속하셨죠, 왕위가 아합 집을 끊었기 때문에 4대가 갈 거라고. 그래서 우리도 북한의 이 악정을 누군가가 끊어주면 하나님이 4대는 이어지게 할 거 같아, 그 집을. 누군가가 끊어줄 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이 하나님이 여호아하스 간구를 들으신 또 하나의 이유예요.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때문이에요. 백성을 향한 약속의 말씀, 예후를 향한 약속의 말씀 때문에 하나님은 그 간구를 들으세요. 그렇게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나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어요, 기도할 수 있어요. 그런데 참 스스로 기뻐서 너무나 간구를 열심히 하게 되지를 않아요. 하지만 학대 받는 고난 가운데 있어면 저절로 '주여'가 나오자나요. '주여, 도와주세요.' 그런데도 하나님이 이 간구를 들으신다는 거예요. 그리고 어떻게 하시죠?
5 여호와께서 이에 구원자를 이스라엘에게 주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아람 사람의 손에서 벗어나 전과 같이 자기 장막에 거하였으나
-> 5절이에요.
이건 시간적으로 금세는 아니고 내가 학대 잘 받아서 구원자 주시는 것은 기다려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양육을 잘 받는 것은 잘 기다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양육이 잘된 사람은 목장에서도 잘 듣고 나의 사건에서 잘 기다리는 사람이에요. 가르치려고 양육 받는 게 아니고 잘 기다리려고, 잘 경청하려고. 학자들은 이 구원자가 앗수르왕일 거라고 추정합니다. 그런데 다음에 이어지는 흐름을 보면 이건 엘리사가 맞는데요. 그런데 저자는 이 구원자가 누구인지 밝히지를 않아요. 여기에 우리가 주목을 해야 돼요. 왜냐하면 앗수르가 구원했다고 해도 앗수르가 구원자는 아니기 때문이에요. 나를 괴롭혀서 내가 예수 믿게 했다고 해서 나를 괴롭힌 사람이 구원자는 아니예요, 우리는 그렇게 생각할 뿐이지만. 그리고 또 기적을 너무 많이 베푼 엘리사도 사람이자나요, 그렇죠? 그러니까 구원자에게 보다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문제의 해결자는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이기 때문에 이 두 이름을 다 감추셨어요. 결국 출애굽의 때 학대 받던 백성들을 하나님이 보시고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구원자로 보내신 사람이 누구죠? 모세죠, 그렇죠? 마찬가지로 학대받는 백성을 보시고 이렇게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를 보내셨어요. 그러니까 모세나 엘리사는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고, 이들이 예표하는 진정한 구원자는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세요. 이게 구속사예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구원자를 찾아 여기저기 헤매는 것은 소용 없는 헛수고예요. 내 삶의 자리에서 오늘 내게 주신 말씀을 듣는 것이 바로 구원자 예수님을 내 삶에 모시는 거예요. 말씀이 나를 살리는 거예요. 이렇게 장례 치르고 오늘 오셨는데 백승재 집사가 지난 주일 아침에 통증을 호소해서 응급실에 갔는데 패혈증 증세로 위독해졌어요. 그래서 보니까 신장과 간이 기능을 멈췄고 심정지가 올 수 있는 상황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주일 저녁에 임종 예배를 드렸어요. 제가 이제 그 보고도 받았고, 그때 이제 넋이 나가 있던 엄마가 예배를 마치고 '말씀으로 위로를 받았다.'고 '말씀 붙들고 담대하겠다.'고 고백을 했는데 이 고1 아들 그때도 임종 예배 때도 '아버지 덕분에 예수 잘 믿게 되었다.'고 감사 인사를 했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 위독한 상황에 그날 큐티 본문을 세 번이나 읽고 큐티를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어제는 드디어 한 주일만에 장례식을 치렀어요.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나는 이 고1 아들의 나눔이 기가 막혀서 다 읽지는 못하지만, 읽는 게 아니고 그걸 이제 어저께 나눈 내용을 녹취해서 저한테 보내주신 사역자가 있네요. 그래서 '우리들교회 오게 되면서 우리들교회로 인도한 아빠가 진짜 사명을 다하고 가신 거구나 인정이 되었어요. 왜냐하면 우리들교회로 오지 않았더라면 왜 우리 가정은 힘들기만 할까, 왜 그러는 걸까, 왜 이런 일만 있을까 너무 힘들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었기에 아빠가 천국 갔다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고, 아빠가 사명을 다했다는 게 너무 믿어져요. 물론 일상으로 돌아가면 아빠가 그리운 순간들이 많겠지만 말씀 하나로 버틸 수 있을 것 같고, 그렇기에 아빠가 큰 일을 하고 가셨다는 게 감사해요.' 아빠가 힘들었는데 그렇게 우리들교회로 부지런히 부지런히 데려다 놓고 지금 가신 거예요. 이게 기가 막히죠. '마지막으로 아빠에게 한 마디 할게요. 아빠, 이 예배 지켜보고 있겠지. 아빠한테 예전부터 해 주고 싶었던 말인데 아빠의 고난은 축복이었고, 예수님을 믿게 해 준 부모님이 최고의 부모님이라고 하는데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최고의 부모님이야. 고마워.' 이렇게, 우리 애들 대단하지 않아요? 중3을 갓 지난 고1 아이가 이렇게 해석을 다 하고, 이게 말씀으로. 아유, 아빠가 딱 위독하다고 그러니까 큐티 본문을 3번이나 보면서, 말씀이 우리를 살리는 줄 믿습니다. 이게 바로 간구하매 들으셨음이에요. 우리 자녀들의 교육을 십자가 튼튼히 붙잡고 갈 수 있도록, 부도난 남편, 술 먹는 남편, 바람 피우는 남편, 갑자기 천국 가신 이런 가족들 때문에 간구하게 되니까 이런 가족들이 얼마나 좋은 가족인지 뼛속 깊이 하나님 앞에 감사드리시기 바랍니다. 쥐어짜는 고통에서 간구하고 하나님께서 들으신 응답은 오늘 전과 같이 장막에 거하는 축복이에요, 전과 같이. 우리가 평범하게 일상을 사는 것이 얼마나 최고의 응답인 줄 아십니까.
북한에서 탈북한 지체들의 간증, 너무 배가 고파서 왔지만 조금 먹고 살만하니까 돈이 아무 필요가 없어. 가이드들이 그렇게 속여 먹어도, 돈이 얼마가 들어도 식구들과 같이 살게 해달라고. 우리가 일상의 생활을 이렇게 평범하게 사는 게 얼마나 축복인지 몰라요.
[적용] 학대받는 고난 가운데 낮아져서 부드러운 마음으로 간구합니까, 억울한 마음으로 간구합니까?늘 범죄하니 늘 넘겨주시는 것이 이해되십니까?대를 이어 학대받는 것이 있습니까? (부자간, 고부간, 장서간, 모녀간, 형제간, 자매간 등)전과 같이 장막에 거하는 일상의 축복이 최고의 응답임을 믿습니까?
이혼과 가출과 복수와 자살, 이런 거 하지 마세요. 평범한 인생 잘 사시기 바라요.
3.은혜를 잊으면 티끌같이 됩니다.
6 그들이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여로보암 집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그 안에서 따라 행하며 또 사마리아에 아세라 목상을 그냥 두었더라
-> 6절이에요.
떠나지 아니하고, 따라 행하며, 또 .... 그냥 두었더라 여호아하스와 이스라엘 백성은 학대가 그치고 편안하게 살게 된 것을 응답으로 여겼어요. 그건 가장 차원 낮은 결과인데, 그런 구원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닌데, 구원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인데요. 가장 중요한 응답은 구원자를 주신 거죠. 그런데 여호아하스는 하나님이 학대를 벗어나게 하셨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는 흔적도 없자나요. 학대를 보시고 간구를 들으사 구원자를 보내신 하나님만이 최고의 응답인데 여전히 여로보암 집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따라 행하며 또 아세라 목상을 그냥 두었대요. 아세라가 굉장히 음란한 아스다롯 신을 섬기는. 왜 남유다가 바벨론 포로로 망하게 하고,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망하게 했는지 그 이유를 계속 쓴 게 열왕기상/하예요. 학대 받아서 도와줬는데 여전히 번쩍번쩍 보이는 금송아지가 너무 좋은 거예요. 자식의 질병을 너무 애통절통해서 고쳐주었더니 하나님을 잊고 자식을 우상 삼습니다. 자식이 너무 좋아 껌뻑 죽어요. 자식만 봐도 좋은데 뭘 하나님에게까지 가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은 이 은혜를 어떻게 갚습니까? 여로보암 집의 죄에서 떠나지 않는 것으로 갚아요. 여러보암 집의 죄 안에서, 금송아지 우상 안에서 돈을 주인 삼아서 따라 행하는 걸로 갚습니다. 수도 사마리아 아세라 목상을 그냥 두는 것으로 갚아요. 은혜는 하나님께 받았는데 그들은 그 은혜를 우상에게 갚습니다. 하나님께는 원하는 것만 쏙 빼낸 다음에 입 싹 씻고 자기 하던대로 우상숭배하며 자기 욕심 위해 사는 거예요. 은혜를 완전히 잊어 버린 거예요. 모든 것, 돈, 자녀, 명예, 객관적으로 하나도 보지 못하고 다. 너무 좋은 게 있으면 사명 감당하지 못하죠. 잠시 후에 천국에 가서 다 똑같이 만날 인생인데 이 땅에서 이렇게 좋은 게 있으면 이 사명 감당하기가 어렵죠. 그러므로 높은 교육열은 열등감의 반로라고 교육심리학자들이 말한답니다. 자녀가 우상이고 자기 욕심이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자녀를 보고 '나를 닮아.' 그렇게 하는 거는 나르시시즘이고요. '나처럼만 살지마.' 그러면 자기 비하예요. 그런데 '나를 닮으면 좋겠어.' 이게 자존감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부모는 성공적으로 사는 부모라고 해요. 그러니까 내가 자존감이 있으면 믿음이 최고자나요. 우리가 다 가진 게 없고 그렇다고 그래도 우리 청년들이 잘 사는 이유는 자존감이 있기 때문이에요. 다 가진 것이 없는데 그렇게 다 잘난척을 해요. '나를 닮으라.',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 이래가면서. 그러니까 어떤 분이 유방암이 걸려서 막 눈물 을려서 기도하니까 고쳐주셨는데 그 다음에 큐티고 뭐고 다 흐지부지 되니까 다시 난소암을 주셔서 확고하게 되었다, 뭐 이런 얘끼를 들어써어요. 그러면 우리는 그렇게 난소암까지 가실래요? 인생이 그래요. 우리 청년부 나눔인데, 이 청년 아이가 '암 사건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너무 감사했어요.' 주님 만았어요. 그랬는데 남친이 우상인 거예요. 불신교제를 끊어내지 못하는데 '이 남자친구가 다정하고 너무 잘 챙겨주고, 성공 우상이 있는 남자친구의 능력을 보고 내 우상인 편안한 삶과 돈을 모두 해결해 줄 것 같아서' 이거 누가 싫겠어요, 그렇죠? 암에 걸렸는데 누가 가서 간호를 해주겠어요. 그런데 이 친구가 오직 말씀에는 관심이 없고 목장도 잘 안 가니까, 오직 믿음만 없고 다 있어. 그러니 어떻게 해요. 결혼을 시켜요, 말아요? 너무 이렇게, 그래서 우리가 금송아지를 못 버리는 거예요. 우리가 이론으로는 예루살렘을 아는데 현실로는 눈에 보이는 금송아지를 버리지 못해요. 그러니까 우리가 너무 슬퍼. 장사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어쨋든 이제 불신결혼이라는 타이틀로 너무 찔리고 눌리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기로 했다는 거죠. 그런데 찔리면서도 분별이 되지 않아서 하나님께 '상견례 때 답을 주세요.'라는 기도를 계속 했더니 남친 엄마가 나와서 '니가 암 환자였기 때문에 나는 보내기 싫어.' 직접 얘기했고 '내가 우리 아들 잘 키웠는데 너 때문에 교회 다니게 생겼자나.' 응답으로 알고 이별을 통보했지만 사실 결혼 앞에서는 다들 여로보암의 길,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거예요. 문자적으로 누가 이렇게 간호를 해주겠어요. '그러나 너무나 아까워하지 마라. 남친이 이때 엄마 말을 듣는 것은 이미 믿음도 사랑도 없는 거예요. 안 그래요? 믿음도 사랑도 없으니까 엄마 한 마디에 지금 이게 끊어지는 거지. 간구하매 하나님이 들으신 응답 맞습니다. 너무 속상해하지 말아. 인생이 짧아요, 짧아. '공동체 속에서 들을 말씀을 듣게 해주시고 불신결혼을 막게 해주신 단단한 마음을 갖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게 공동체 속에 있으니까 이런 해석을 하지 아니면 '나 죽는다.'고 '암 걸렸는데 남친한테도 버림 받았어.' 그러니까 해석이 안 되니까 해결이 안 되는 거예요. 사실은 이 자매는 '그냥 이 사람은 내가 짊어져야 하는 십자가구나.' 그래서 결혼을 하려고 생각을 한 거예요. 결혼을 이 자매가 하려고 생각했던 건데 거기서 이제 끊어준 거죠. 할렐루야.
7 아람 왕이 여호아하스의 백성을 멸절하여 타작 마당의 티끌 같이 되게 하고 마병 오십 명과 병거 열 대와 보병 만 명 외에는 여호아하스에게 남겨 두지 아니하였더라 8 여호아하스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과 그의 업적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9 여호아하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그 아들 요아스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 하나님을 버리고 불신결혼을 하고 은혜를 잊으면 그 결과, 7절서부터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도구인 아람왕이 배은망덕한 여호아하스와 그 백성을 이번에는 학대 정도가 아니라 멸절한다고 해요. 타작마당의 티끌같이 되게 한다는 거예요. 티끌같이 되게 한다는 거는 바로 그 미세먼지 있자나요. 보이지도 않는, 존재도 없는, 세상에서 지워버리는, 이건 구원받지 못했다는 거죠.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또 누구십니까. 우리 하나님은 사랑이자나요. 거기 보니까 남겨두신 게 있더라고요. 마병 오십 명과 병거 열 대와 보병 만 명을 남겨두셨더라고요. 아주 완전히 뿌리 뽑지는 않으신 거예요. 아합 때는 병거가 2천 대였고, 군대는 백만에 가까웠다는데 지금 이제 만 명만 남았어요. 그리고 이제 병거는 열 대만 남았어요. 여호아하스에게도 남은 사적이 있게 하셨어요. 역대지략에 기록될 업적도 남기셨어요. 조상들과 함께 장사될 수 있도록 남겨두셨고, 왕위를 이어 받을 아들 요아스도 남게 하셨어요. 왜 남겨두셨겠습니까? 은혜를 잊고 막 살아도 하나님이 다 용서하시고 살려주신다는 뜻이 아니고, 여호아하스는 그냥 악한 왕이에요. 나라를 거의 말아먹은 왕이에요. 그래도, 그래도 남기신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이에요. 예후각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고 그 아들도 여호아하스도 배은망덕한 악인이었지만 하나님은 예후 왕조가 4대를 이어가게 하신다고 약속을 하셨자나요. 이것이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입니다. 유다 자손에게 허락하신 다윗의 등불은 아니예요. 그런데 13장 23절에 보면 그보다 훨씬 전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하신 언약을, 그걸 기억하셔서, 하나님은 성경 구절 한 구절만 있어도 살리려고 하세요. 성경을 보면 온통 배역하고 반역한 인간들의 얘기인데, 그 배경하고 반역한 유대인들, 이스라엘 끝까지 사랑하시는 거예요. 하나님은 그래서 온 백성을 사랑하시는 거예요. 누구도 가망 없는 사람은 없어요. 사사기 패턴은 왕이 없던 시절에 범죄하고. 대적을 붙이시면 그때 기도하고, 그럼 회복이 되죠. 이게 늘 반복이 된 거예요. 그러니까 늘 환경을 바꿔달라고, 우리 왕 달라고, 왕 달라고. 그런데 지금 왕정이자나요. 바뀐 게 뭐가 있어요. 환경이 아무리 바뀌어도 내가 바뀌지 않으면 환경은 절대로 쓸 데가 하나도 없어요. 쓰잘데가 없어요.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날마다 약속, 말씀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약속하셨기 때문에 큐티하고 예배 드리고 목장 가서 약속을 받고 기억하는 거예요. 나를 전과 같이 지금 장막에 거하게 하신 이 은혜가 최고의 축복인데, 내가 큐티하고 예배 드리고 목장 갈 수 있는, 이 전과 같이 장막에 거하게 하는 이 은혜가 있으면 최고의 축복이고 최고의 응답인데 왜 집을 떠나요, 왜 이혼을 해요, 왜 죽으려고 해요, 왜 낙태 하려고 해요. 떠나고, 이혼하고, 죽고, 죽이려는 게 바로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버리는 거예요. 주신 은혜를 잊는 거예요. 은혜 잊으면 어떻게 된다고요? 멸절하여 티끌같이 된다고 그랫어요. 집 떠나고, 이혼하고, 자살하고, 낙태한다고 절대로 행복해지지 않아요. 그 뒤에는 티끌이 되는 거예요. 지금은 여러분들이 멸절 당하는 것 같아도, 내가 백만명에 비해서 만 명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그래도 거기서 마병 오십 명, 병거 열 대, 보병 만 명의 이 남은 것을 봐야 해요. 이게 그루터기에요. 거기서 씨를 피울 수가 있는 거예요. 씨가 되서 열매가 자랄 수 있는 거예요. 하나님은 악한 인간에게 한 약속이라도 '너는 악하니까 나는 약속을 안 지켜도 돼.' 하시지 않아요. 한 번도 당신의 약속을 깨신 적이 없습니다. 한 번 한 약속은 나쁜 사람에게 했을지라도 약속을 지켜야 돼요, 여러분 우리 예수 믿은 사람은 한 번 한 약속을 반드시 지키기로 그 결단을 하셔야 돼요. 하나님도 우리에게 약속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약속을 지키는 게 죽음에 이르는 십자가 짊 같은 정말 그것이 고통이에요. 약속을 지켜야 돼요. 하나님이 내가 나쁠 때는 안 지키고 좋을 때만 지키시는 그런 분이 아니예요. 우리 옆에 있는 사람들도 아무리 악하고 힘들고 했어도 하나님은 그도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기 때문에 우리가 '너는 안돼.' 이렇게 말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줄 믿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내가 오늘 있는 거죠. 적용질문이에요.
[적용]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까맣게 잊고 또 금송아지를 찾아다니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지금 멸절 당하는 가운데 남겨진 것은 무엇입니까? 은혜를 기억하며 이번 주에 공동체를 위해 할 수 있는 섬김은 무엇입니까? 자녀들이 나를 닮기 원합니까?
기도제목
크리스틴(수요일 출국) (양교)
1.남겨두신 것에 감사하고 크고 작은 고난들이 주님 만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큰 사랑이라는 것에 감사하도록
2.새로운 회사에서 잘하지 않고 갔다가 월급 받고 집에 오는 것으로
3.밴쿠버로 돌아가는데 살아있는 TT 인것을 알고 성령이 동행하심에 안심하도록
4.할머니 (103살) 아빠 구원위해 중보하도록
5.과거/미래에 원망과 염려을 멈추고 현재에 충실히 말씀으로 하루만 살도록
예선 (양교 청강)
1.업무 인수인계 관련 생색이 올라오는데 어려운 시간을 통과할 때 동행해주신 은혜를 잊지 말고 가지치기 할 수 있도록
2.대표님의 언행을 자꾸 판단하게 되는데 인간의 어떠함을 묵상하지 말고 질서와 역할에 순종하여 예의를 갖추어 대할 수 있도록
3.목요일에 건강검진 갑니다. 꽤 오랜만에 가는 거라 조금 걱정 되는 부분도 있는데 검사 잘 받고 덤으로 받은 시간은 쉼을 잘 누리도록
은우
1.티끌이고 티끌-이었음을 알고 겸비하여 있으라고 한 처소에 잘 거하며 감사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