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구하매 들으셨으니
열왕기하 13:1-9
김양재 목사님
1.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
예후는 그 시대 개혁의 아이콘이었다. 45년 간 이어진 아합의 집을 했고 가문을 끊었다. 엘리야 선지자의 예언을 이룬 주인공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엄청난 업적을 1년만에 행했다. 1년동안 온갖 개혁을 행했지만 나머지 27년은 여로보암의 집에서 떠나지 않고 전심은 없고 열심만 있었다. 이에 반해 요아스는 39년을 정직히 행하다 여호야다가 죽고 나서 1년동안 온갖 악을 행했다. 1년 vs 27년, 누가 더 나쁠까? 1년동안 악을 행한 요아스는 은인의 아들을 돌로 쳐죽였다. 별 인생이 없는 것이 뼈저리게 느껴진다. 1년이나 27년이나 우리의 마지막은 예수로 끝나야 하는 것이다. 예후 뒤를 이은 여호아하스는 17년간 왕위에 있었다. 그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 이것이 반대로 사람 보기에는 어떨까?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것은 사람이 보기에 선하고 멋있고 위대한 것이 많다. 따라가고, 떠나지 않는, 그대로 두는 악인 이 여로보암의 죄는 무엇일까? 떠나지 못했다가 아니라 않았다이다. 여로보암의 죄에 가장 많이 붙는 설명은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의 죄는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죄는 나 혼자만의 죄로 남지 않는다. 전염된다. 전염성이 너무 강하다. 세상에 어떤 전염병보다도 더 강한 최강의 전염병은 바로 죄이다. 누구도 떠나지 않는 이 죄가 금송아지 숭배이다. 열 지파가 따라 나가서 요셉의 후예인 여로보암이 북이스라엘을 세웠다. 나라가 분열됐다고 신앙까지 분열될 일인가? 예배는 예루살렘에서 드려야 하는데 그러면 모두 남유다로 가버릴까봐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웠다. 막 그냥 번쩍번쩍하게... 보이는 화려함과 막강함으로 못 가게 했다. 남쪽으로 내려가는 백성들의 마음을 붙드는 것은 하나님을 빙자해서 내 사람으로 만드려는 정권욕 때문이다. 백성들은 이를 알지만 예루살렘은 초라하고 벧엘의 금송아지는 번쩍번쩍하기 때문에 알아도 떠나지 못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구속사를 선택하는가, 세속사를 선택하는가를늘 눈으로 보기에 따라가는 것이다.북이스라엘은 한 명도 예외 없이 부모를 따라 악을 따라가고 떠나가지 못했다.
- 나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합니까, 사람이 보기에 악합니까? 육신은 죄의 집합소라는 것이 얼마나 믿어지세요? 이렇게 악인 줄 알면서도 끊지 못하는 습관은 무엇입니까?
2. 학대당하므로 구원자를 주십니다.
그 결과 여호와께서 노하셨다. 그런데 하나님의 진노는 우리처럼 감정의 폭발이 아닌 죄악에 대한 공의로운 처벌이다. 이는 심판으로 이어진다. 이 심판으로 이스라엘은 아람의 분노를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제일 미운 라이벌, 원수의 손에 눌리고 찍히는 학대를 받았다. 하나님은 이것을 넘기셨다고 표현한다. 쳤다고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이 주관하셨음을 알려준다. 늘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우리가 늘 범죄하니까 늘 대적의 손에 넘기시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다. 이 늘이 은혜이다. 나라도 그렇지만 내 자신도 내 악을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이 늘 나를하사엘에게 넘기시는데 변하지 않으니 벤하닷 같은 더 힘든 사람의 손에 넘기신다. 왜냐면 버려두는 것이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노하심은 선하심의 시작이다. 이 학대가 여호아하스를 정신차리게 한다. 그는 여호와께 간구했다. 약해지고 낮아지니까 하나님의 진노하신 얼굴이 보였다. 내가 금송아지를 쫓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를 통해 학대를 당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학대받는 것이 은혜이고 사랑이다. 나는 죽어도 싼 인생인데 학대를 통해서 하나님과 교류하게 되었으니... 더 중요한 건 하나님이 그들이 학대당함을 보셨다는 것이다. 학대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내 백성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를 내가 보게 되는 것, 이것을 사명이라고 한다. 비록 이스라엘이 여로보암의 길로 멀리 가고 있지만 언약 안에 있는 백성이고, 하나님의 택자이다. 그래서 여호아하스 같은 악한 왕의 간구라도 들어주신다. 5절/ 내가 학대 잘 받아서 구원자 주시는 것을 기다려야 한다. 학자들은 이 구원자를 앗수르 왕이라고도 하고, 흐름 상 엘리사가 맞는 것 같으나 저자는 이 구원자를 밝히지 않는다. 앗수르가 구원했다고 해도 그가 구원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핵심이 구원자보다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이름을 감추었다. 출애굽 당시 구원자로 보냈던 모세나, 엘리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고 이들이 예표하는 진정한 구원자는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것이 구속사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구원자를 찾아 여기저기 헤매는 것은 소용없는 헛수고이다. 내 삶의 자리에서 오늘 내게 주신 말씀을 듣는 것이 바로 구원자 예수님을 내 삶에 모시는 것이다. 말씀이 나를 살린다.
- 학대받는 고난 가운데 낮아져서 부드러운 마음으로 간구합니까, 억울한 마음으로 간구합니까? 늘 범죄하니 늘 넘겨주시는 것이 이해되십니까? 대를 이어 학대받는 것이 있습니까? 전과 같이 장막에 거하는 일상의 축복이 최고의 응답임을 믿습니까?
3. 은혜를 잊으면티끌같이 됩니다.
여호아하스와이스라엘 백성은 학대가 그치고 장막에 들어가 편안하게 살게 된 것을 응답으로 여겼다. 가장 차원 낮은 결과이다. 가장 중요한 응답은 구원자를 주신 것이다. 그런데 여호아하스는 하나님이 학대를 벗어나게 하셨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는 흔적도 없다. 학대를 보시고 간구를 들으사 구원자를 보내신 하나님만이 최고의 응답인데 여전히 여로보암 집의 죄에서 떠나지 못했다. 아서라 목상을 그냥 두었다. 은혜는 하나님께 받았는데 그 은혜를 우상에게 갚았다. 하나님께는 원하는 것만 쏙 빼낸 다음에 입 싹 씻고 늘 하던 대로 우상숭배하며 자기 욕심 위해 사는 것이다. 은혜를 완전히 잊어버린 것이다. 돈, 자녀, 명예, 모든 걸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다 너무 좋은 게 있으면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다. 금방 천국 가서 다 똑같이 만날 인생인데 이 땅에서 이렇게 좋은 게 있으면 이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참 어려울 따름이다. 7절/ 하나님의 진노의 도구인 아람 왕이 배은망덕한 여호아하스와 백성들을 이번에는 학대 정도가 아니라 멸절한다고 하신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은 남겨주신다. 왜 남겨주셨나? 은혜를 잊고 막 살아도 하나님이 다 용서하시고 살려주신다는 뜻이 아니다. 요아스는 악하다 못해 나라를 말아먹은 왕이다. 그럼에도 남기신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예후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고 여호아하스도 배은망덕한 악인이었지만 하나님은 예후 왕조가 4대를 이어간다 약속을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이다. 환경이 아무리 바뀌어도 내가 바뀌지 않으면 환경은 절대로 쓸데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날마다 약속의 말씀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약속하셨기 때문에 큐티하고 예배하고 목장 가서 약속을 받고 기억하는 것이다. 나를 전과 같이 지금 장막에 거하게 하시는 은혜가 최고의 은혜이다. 떠나고 이혼하고 죽고 죽이려는 게 바로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버리는 것이다. 주신 은혜를 잊는 것이다. 은혜를 잊으면 결국 멸절하여 티끌같이 될 것이다. 지금 내가 멸절당하는 거 같아도 거기서 마병 오십 명, 별거 열 대, 보병 만 명에, 이 남은 것들을 봐야 한다. 이것이 그루터기이다. 여기서 씨를 피울 수가 있고, 씨가 열매가 되어 자랄 수 있는 것이다.
-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까맣게 잊고 또 금송아지를 찾아다니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지금 멸절당하는 가운데 남겨진 것은 무엇입니까? 은혜를 기억하며 이번 주에 공동체를 위해 할 수 있는 섬김은 무엇입니까? 자녀들이 나를 닮기 원합니까?
기도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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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리사 시험 붙회떨감
- 주어진 환경에서 감사하는 삶
- 부모님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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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을 날리지 않고 잘 보내기를
- 큐티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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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 관리
- 금전적 문제 고민 묻고 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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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 교회 정착할 수 있도록
- 무기력과 열등감 여자친구와 잘 분리해서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 할 일 미루지 않고 주어진 자리에 순종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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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의 영혼구원, 부모님 건강
- 지난 주 관계고난 내 삶의 결론임에 회개하고, 그들을 정죄하지 않을 수 있도록
- 늘 찾아오는 고질적인 무기력과 불안이 은혜임을 전심으로 묵상할 수 있기를
- 신교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