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7.14.
주일예배
본문: 열왕기 12:4-116
제목: 파손된 성전을 수리하라
설교 말씀
중세 고딕 양식 성당 하면, 하늘 높이 솟은 십자가 탑이 상징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배당 건물이 퀠른 대성당인데, 640년간 건축이 되었는데, 완공 이후에도 전쟁, 사고를 겪으며 파손되고 수리되기를 반복해서 세상 끝날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말이 있다고 해요. 그렇게 대단한 예배당에 높은 십자가 탑을 세워도 천국가게 해주지는 못하잖아요? 화려한 성전을 짓고 수리해도 영혼의 성전이 준수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오늘은 파손된 성전을 수리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생각해보겠습니다.
1. 교훈을 넘어서려는 마음을 수리해야 합니다. (여호야다의 교훈)
4-5절.
요아스가 여호야다의 교훈을 듣는 동안은 정직히 행했지만 산당은 제거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3절까지가 요아스의 결론입니다. 그러면 제거하지 못한 요아스의 산당은 무엇일까요? 오늘 큐티를 해보십시다.
요아스는 40년이나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다윗만큼 오래 다스렸는데, 그보다 오래 다스린 왕은 아사, 우시야, 므낫세 왕 셋 뿐입니다. 그런데 왕들의 행적에 비해 요아스는 성전 수리밖에 없습니다. 제일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4절에 제사장들에게 지시를 내립니다.
이 때는 여호야다가 아직 살아있는 대제사장입니다. 성전 관한 일을 하려면 여호야다에게 지시해야 하는데, 대제사장은 부르지도 않고 제사장들만 불러 지시합니다. 사소한 지시라면 또 모르는데, 100년 넘은 성전의 파손된 것을 수리하라는 중요한 명령을 제사장들에게만 내립니다.
방법도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백성이 드리는 은을 모아 수리하라고 하는데요, 그 헌금을 제사장들이 각각 아는 자에게서 받아들이라고 합니다. (5절). 그 때는 아달랴의 박해로 제사장들이 아는 사람에게 헌금받아서 살았나봐용. 물론 성전 수리를 위해 헌금을 받으러 돌아다닐 수 있지만 여호야다와 상의가 없는 것이 잘못입니다.
성전에서는 대제사장이 최고 질서입니다. 그 질서를 깨트리고 있습니다.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는 동안에는 요아스가 정직했다고 하는데, 이 때부터 교훈에서 떠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인본적 관점에서는 약자인 요아스가 옳아야 합니다. 그래서 띵크를 해봐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요아스는 약자이며 피해자입니다. 이렇게 억울할 수 없습니다. 이 찐 고아 입장에서 보면 여호야다를 배제하고 제치려는 것이 이해됩니까?
갓난아기부터 숨어자랐고 아버지가 될 수 없는 증조할아버지 뻘의 고모부 여호야다의 엄한 교훈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그러니 여호야다가 어렵고 두려웠을 것이 공감되지 않으세요? 그렇지만 분별과 공감은 다릅니다. 이해되고 공감되니까 무조건 옳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그 자체로 선하고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인본주의 끝판왕의 관점입니다. 불쌍함이 옳음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은 그 자체로 선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불쌍할 수도, 재수없을 수도 있지만 100% 죄인입니다. 이게 성경적이고 복음적이고 구속사적인 인간 이해의 출발점입니다. 불쌍한 요아스이지만, 그도 전적으로 악하고 음란한 죄인입니다. 제사장들만 불러 유래 없는 지시를 하는 것도 성경적 인간론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요아스의 결론이 좋지 않기 때문에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를 정직하게 한 것은 여호야다의 교훈이었습니다. 요아스는 왕이 되고 보니 백성들이 산당 예배를 너무 좋아하고 있습니다. 눈치 보며 효율적으로 있는 자리에서 예배 드리라고 산당을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백성이나 요아스나 기복의 악한 마음으로 연합했기 때문에 요아스에게는 믿음보다 정치가 위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일로 요아스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높아져도 여호야다의 그늘 아래 있습니다. 여호야다가 자신을 복직시켜준 영웅입니다.
왕이 되고 보니 여호야다 위에 자기가 있는데, 밑에 있다는 생각에 답답하고, 자기 연민이 커지고 피해의식이 올라와 열등감이 됩니다. 시기와 질투로 야망이 올라오니 권위주위에 휩싸입니다. 결론은 여호야다를 제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겉으로는 묻는 척, 듣는 척, 순종하는 척 하지만 속으로는 칼을 갈고 있습니다. 아무도 하지 않은 공격을 받고 이를 갑니다. 인간이 이렇게 악하고 어리석습니다. 찐고아라서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한국인의 제끼고자 하는 민족성으로 1년에 무고죄로 고발되는 건수가 일본에 비해 인구수를 감안하면 500배가 넘는다고 합니다. 보이스피싱 피해도 아시아에서 가장 많다고 합니다.
요아스는 산당 제사를 없애지 않고 있고, 인기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 좋아보이는 여호야다처럼 보이기 위해 성전수리 카드를 꺼냈습니다. 여호야다에게 잘 보이고자 하며 배제한 것이 발톱을 드러낸 사건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제사장들도 여호야다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도와줄 수 없고 대놓고 반기를 들 수도 없습니다. 성전에서는 여호야다지만, 이 나라에서는 요아스가 질서의 최고봉이기에 왕명을 수행하지 않고 제사장들이 가만히 있습니다. 명분은 있지만 능력이 없습니다. 제사장들이 뒤로는 받았지만 대놓고 받을 수는 없습니다.
요아스도 알고 있지만 제사장들을 야단치기엔 힘이 부족해 때를 기다립니다.
6-7절.
때가 왔습니다. 요아스가 보기엔 제사장들이 배째라고 하고 있습니다.
왕이 된지 23년인데 언제 명령했는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요아스의 영은 서지 않고 여호야다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때 요아스는 여호야다가 결혼도 시켰다고 했습니다. 여호야다 없이도 국정이 돌아가고 있으니 제사장들에게 눈을 돌립니다. 그런데 그동안에는 제사장들에게만 얘기하다가 대제사장까지 불러서 혼냅니다.
이 때 역대하를 보면 대제사장에게만 뭐라고 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넘을 수 없던 산과 같은 존재에게서 넘어섰음을 과시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넘어서고 자기 맘대로 하고싶어 합니다. 아무리 잘 수리하면 뭐합니까? 하나님의 진짜 성전인 자기 마음이 하나님을 제끼려고 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거하시려고 하는데, 우리는 자꾸 떠나고 넘어서려 합니다. 이것이 파손된 성전입니다. 내적 성전이 우리가 수리해야 할 진짜 중요한 성전입니다. 파손된 마음을 수리하지 않으면 아무리 화려한 육의 업적을 세워도 무너집니다.
적) 요아스처럼 약자, 피해자가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어디에 열등감을 느낍니까? 내가 넘어서고 싶고 제끼고 싶은 사람은 누구입닙까?
속으로 칼을 갈고 있는 일은 없습니까?
2. 뜻대로 되는 게 문제임을 알아야 합니다.
7-8절.
제사장들 앞에서 여호야다를 야단친 요아스는 제사장들에게 성전 수리하는 일에서 손을 떼라고 합니다. 수리를 위한 비용을 백성들이 직접 드리게 하라고 합니다. 당연히 성전 수리하는 일도 관여하지 못하게 합니다. 성전 수리는 7살에 왕이 돼서 언제 명령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는 사람에게 성전세를 받았던 그 시기의 제사장들이잖아요? 그러니 마치 여호야다의 약점을 잡은 것처럼 수리하지도 말라고 하니 제사장들이 동의했습니다.
9-12절. 성전수리 2탄
열왕기 기록은 여호야다가 새로운 수리계획을 집행한 것처럼 보이지만 역대기에서는 이것을 지시한 사람이 요아스임을 알려줍니다. 요아스가 새 계획을 지시했고 여호야다는 순종해서 수리를 이행했습니다. 새로운 계획은 백성이 직접 궤에 두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계산하는 일도 왕의 서기가 하게 합니다.
대제사장은 명분상으로 있고, 왕의 사람이 일하게 합니다. 이 때부터 왕권이 강화됐습니다. 돈을 받아서 수리할 작업자들에게 주고, 재료를 구해서 수리하게 합니다. 그런데 이 계획이 너무 잘 돼서 수리공사 진행이 잘 됩니다. 역대하에서는 점점 진척되었다고 합니다. 요아스 계획대로 성전수리가 척척 진행됐습니다. 어려웠던 여호야다를 한 순간에 제압했습니다. 요아스가 오히려 놀랐을 것 같고 좋아했을 것 같습니다. 명실상부한 만인지상이 됐습니다. 사람들은 직접 돈 넣는 것이 투명해보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여호야다의 태도가 이때 바뀐 것이 아닐 것입니다. 자기를 책망할 때도, 왕의 자리가 비어있을 때도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후에게도 바른 말 하는 레갑 족속이 있었습니다. 이런 한계를 본 레갑은 광야로 떠날 수밖에 없었겠지만, 여호야다는 요아스를 보는 데 한계가 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이상 교훈하지 못하는 자신의 한계에 마음이 아팠을 것 같습니다.
왕이 자기를 인정하지 않으니 왕을 거역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왕을 아프게 할 수는 없던 것 같습니다. 진정한 반역을 요아스를 향해서만큼은 하지 못했습니다. 이 땅에 온전한 사람은 없기에 요아스의 내적 성전이 더 파손될 수밖에 없었겠죠. 파손된 만큼 하나님을 떠나고 그 마음이 정점에 올랐을 때 여호야다를 제끼고 진행한 성전수리가 너무 잘 진행돼서 그만큼 하나님을 더 떠났습니다. 이것을 기점으로 교만해졌습니다. 따라서 뜻대로, 선한 것 없이 이뤄지는 형통은 축복이 아닙니다. 인간은 이것을 선하게 받아 누릴 수 없습니다. 받을 수 없을만큼 부패한 우리 자신이 문제입니다. 존재 바탕이 파손된 성전입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고난이 축복입니다. 절망으로 하나님을 찾게되기 때문입니다. 고난으로 말씀 안에 들어오니 축복입니다. 육의 성전이 무너져야 영의 성전이 세워집니다. 내가 수리하고 싶은, 눈에 보이는 성전이 파손된 것에 슬퍼하며 욕심, 탐욕, 정욕을 간과한다면 파손된 채로 끝납니다. 기대가 무너지는 사건을 만났다면 오히려 감사한 일입니다. 그 일을 통해 내 죄를 보고 주님께 나오게 되기 때문입니다.
적) 내 뜻대로 되게 하려고 애를 쓰는 일은 무엇입니까?
뜻대로 술술 풀리게 됐다고 하나님을 멀리 떠났던 적 있습니까?
뜻대로 되는 게 축복이 아니라는 고백을 할 수 있습니까? 고난이 축복임을 믿습니까?
3.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13-14절.
은 집기는 예배할 때 사용했습니다. 제물을 다룰 때 쓰기에 계속 파손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아스는 이런 예배 물품도 만들지 못하게 했습니다. 성전 수리에 쓰라고 했습니다. 성전과 예배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합니까? 무엇이 더 우선이 되어야 합니까? 예배입니다.
성전은 예배를 위해 필요한 수단입니다. 예배와 받으시는 하나님 중에는 하나님이 비교 불가합니다. 하지만 요아스 눈에는 성전밖에 안보입니다. 세상에 보일 업적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여호야다를 제꼈다는 차별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성전 수리는 이렇게 했는데도 아무도 칭송하지 않았습니다. 이 성전수리는 130년 전 솔로몬이 성전 건축한 것의 기념비적인 일이었습니다. 급한 일이 생기니 요아스는 중요한 것을 잊었습니다. 게다가 산당도 있습니다. 성전이 공사중이니 산당에서 예배드리라고까지 합니다.
이렇게 요아스 머리에 성전은 자기를 빛낼 기념비가 되었습니다. 성전은 예배드리는 곳이라는 원칙을 깨트렸습니다. 누구보다 원칙을 지켜야 할 왕이 원칙을 어겼습니다. 문자적으로 장소라는 개념으로 예루살렘 성전을 생각하면 안됩니다.
15절.
이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성전 수리에 쓰인 은을 회계하지 않았습니다. 은을 쓰는 사람들이 성실하게 일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얼핏 들으면 멋진 리더 아닙니까? 직원을 믿어주는 사장님 같잖아요. 매력적인 상사입니다. 꼰대같은 여호야다와 비교가 안된다고 칭송하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이 은은 백성들이 하나님께 바친 헌금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된 성물이었습니다. 피 같은 헌금이라고 하듯이 귀하고 무겁게 다뤄야 합니다.
어떤 용도이든 회계를 확실히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헌금이니,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신 것이기에 1원짜리 하나도 그냥 두지 않고 철저히 해야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16절.
또 있습니다. 속건제, 속죄제의 은은 수리에 쓰지 않고 제사장의 생활비로 썼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사장이 쓰는 헌금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원칙이 있는데, 임의로 바꿔 백성들에게 은으로 내게 하고, 성전에 드리지도 않고 제사장 생활비로 주게 했습니다. 앞에서는 제사장들에게 채찍을 내리더니 이제 당근을 준다는 뜻입니다. 인정받는 것이 율법이 정한 원칙보다 중요했습니다.
아무리 성전을 빨리 지으면 뭐 합니까? 원상태로 성전을 돌려도 원칙을 지키지 않고 무시하는 마음으로는 진짜 성전인 자기 마음은 세상 가치관에 좀먹어 방치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짜 힘써야 할 파손된 성전 수리는 우리 마음이고 그 첫 걸음이 원칙을 지키는 것입니다. 사소한 것이라도 지키는 것이 파손된 영혼을 지키는 첫 걸음입니다.
사소한 원칙 하나까지도 명령처럼 무겁게 지키려 애를 썼습니다. 그런 시간들과 노력을 하나님이 귀하게 봐주셨습니다. 이 정부가 새로운 저출산 정책으로 돈을 주는 것이 반가울 수 있지만,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얼마나 부담되겠습니까? 낙태법, 차별금지법은 다 허락하면서 아이 낳는 것은 막고 돈 주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입니다.
우리들교회는 아이 낳는다고 돈 주지 않아요. 원칙을 지키니까 다들 결혼하고 아이 낳고 이혼 안하는 적용을 지키지 않습니까? 그러니 하나님의 사람 살리는 원칙이 가장 무서운 원칙입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한 가정이 회복되니 낳고 낳고의 가정이 준수된 줄 믿습니다.
붙어만 계시니 하나님이 수리해주신 가정이 한 둘이 아닙니다.
적) 평소 원칙을 지키는게 편합니까, 내 맘대로 하는게 편합니까?
사소하게 여기며 잘 어기는 원칙은 무엇입니까? 가족들에게 내 맘대로 강요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기도제목
A
물질욕심이 올라오는데 무엇이 중요한지 잘 분별할수있도록
매일큐티와 기도하기
B
주일성수 잘지키기
큐티하기
C
아웃리치 갈수있는 은혜 허락해 주시길
기도하기 감사함으로
D
어머니와의 관계가 잘 중재되기를 바랍니다.
E
매일 큐티로 하나님께 하루를 묻고 가기
고집 부리지 않고 귀 열어 질서에 순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