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죄에서 떠나라
2024년 05월 19일 일요일 열왕기하 10:28-36
김양재 담임 목사님
1. 금송아지 숭배의 죄 (돈신의 죄)
바알교도들을 모두 꿀꺽 섬킨채 있던 바알 성전을 예후가 변소로 만들었다. 여기까지 좋았는데, 멸하였으나 그러나 이다. 예후의 통치기간이 28년인데 지금이 1년차이다. 예후가 아합을 물리치고 바알을 물리친건 대단한 업적이다. 그러나 그 뒤에 27년이나 있다. 잠깐은 속일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예후의 실상이 드러난다. 떠나지 않은게 에후의 실상이라고 한다. 어디서 떠나지 않았나? 예후 혼자 범죄한 죄가 아니라 이스라엘도 범죄하게 한 죄, 여로보암이 시작하여 그 아버지 느밧의 이름도 적혀있다. 여로보암의 죄를 이야기 할 때 아버지 느밧의 이름을 적는 이유는 그 문제는 다름아닌 그 아버지 느밧에게서 시작 되었기 때문이다. 우라는 자식이 속을 썩이면, 그때가 사과하고 기도해야 할 때인데 자식 탓을 한다. 무조건 믿음 있는 쪽이 사과해야 하는데, 믿음 없는 며느리 자식도 사과하지 않고, 부모도 아무도 사과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내탓이요 해야 하는데 그걸 하지 못해서 교회를 떠나고 싶은 것이다. 믿음있는 그 한사람이 사과하면 되는데, 사과가 안되는 것이다. 왜 안되는 것일까? 여로보암의 아들이 솔로몬의 아들에게 반역을 일으켜 세운것이 북이스라엘이다. 북이스라엘에 성전이 없다. 성전이 정체성인데 백성들이 아무리 강성해도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꼭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 되었다. 백성이 예배를 드리러 예루살렘에 갈까봐 북경지역 중심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 대신에 기도하라고 했다. 그러니 이것은 말씀대로가 아닌 그저 사이비인 것이다. 여로보암은 지금의 예후보다 더 부지런 해서 솔로몬이 인정할 정도였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악정을 위해 지금의 예후처럼 여로보암을 쓰신 것이다. 여로보암도 시작은 좋았으나, 12지파 중에 10지파가 따라와 강성해 지니 금송아지를 짓는 것이다. 그 이후로 왕들이 다 금송아지를 섬기는 것이다. 당장 하나님의 윤리와 명령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우리도 먹고살기 편해지니 당장 하나님의 윤리와 명령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 예후나 여로보암도 택자가 아닌데, 분별이 참 어렵다. 말씀으로 분뱔하는 수 밖에 없다. 근데 왜 금송아지를 섬겼을까? 농사를 짓는데, 농사의 신 바알에게 숭배하는 게 뭐가 나쁠가? 바알은 이단이고 금송아지는 전통교회에서 비는 기복신앙이라 괜찮은가? 예후는 아합을 물라쳤으니 존재자체가 특별하니 행복을 목적으로 하는 인생에겐 다 이루었다가 된 것이다. 오직 걱정은 이나라가 남유다가 들어가 자신의 왕권이 없어지는 것이 것이다. 결국 자신들의 권력이 하나님보다 1순위에 있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가면 안된다는 것이다. 모두 다 같은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실 수 있는데, 본인의 인간적인 생각으로 안된다고 하는 것이다. 황금을 보여주면서 너희도 열심히 노혁하고 나에게 충성하면 이 황금을 가질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금송아지교를 통해 자기만 칭송받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그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고 그 죄가 아무도 돌이키지 못한 북이스라엘의 원죄이다. 높이 올라가면 그 죄가 끊어질까? 올라가 보니 너무 좋아서 더 큰걸 원하고 끝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욕심이 그죄 원죄인 것이다. 그래서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는 다고 하시는 것니다. 그러나 성령의 도움이 없이는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는 것이 금송아지 죄이다. 아무리 교회를 다녀도 돈이 좋고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적용) 내 인생 거룩의 이정에서 세상의 성공 때문에 구원의 진도가 도무지 안 나가는 곳은 어디입니끼? (불신 결혼, 이혼, 사과 안 함, 목장 떠남, 삼림 인 함 육아 안 함, 회사 떠님, 질병 뒤에 숨음, 각종 사인 등) 조상으로 부터 기작된 원죄인 '그 죄'는 무엇이 있습니까?
2. 잘~보다 전심으로!가 중요합니다. (열심의 죄)
하나님이 예후를 칭찬하신다. 예후는 자기 마음이 진실하다고 주장했는데, 하나님께서 정직과 진실은 인정하신다. 마음이 아니라 행한 일이 정직하고 진실했더고 인정해주신다. 잘 행했다고 하시는 것이다. 에후는 모든 일을 잘하는 능력자는 맞다. 그 상급으로 예후 왕조가 4대나 이어졌다. 북이스라엘 중 가장 길게 이어졌다. 그러나 하나님이 가장 강력한 왕조를 주시며 칭찬해주시나 그 모든 것을 무색하게 만드는 그러나가 있는 것이다. 예후가 떠나지 않은 그 죄의 또다른 본질 전심으로 지켜 행하지 않은 것이다. 무엇을?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율법을 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심으로는 열심이 아니다. 제일 힘든 상사가 무능한데 부지런한 상사이고 해결책을 주지 않고 탱크처럼 밀어붙이는 것이다. 가장 졸은 상사는 유능한데 게으른 상사이다. 해걀책을 주고 괴롭히지 않는 것이다. 열심은 기번적으류 소유와 관련되어 있다. 무엇가릉 가지기 위헤 불타거나, 빼앗기지 않기 위해 나오는 마음의 쭈리에는 욕심 금송아지 욕신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전심은 나뉘지 않은 마음이다. 하나님을 섬긴다면서 두 마음을 섬기지 않는 것이다. 전심은 무엇을 잘하기 위해서 생기는 마음이 아니다. 사업가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면 실적이 안나올 수 있다. 열심과 잘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전심으로 하나님의 말슴을 지켜 행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열심히하고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슴을 듣고 행하는 사람이 반석위에 집을 짖는 사람인 것이다. 날마다 큐티하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전심으로 사는 사람인 것이다. 열심의 모델이 예후이다. 에후가 받은 사대가 왕조를 누린다는 말이 축복의 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대 이후엔 아합과 같이 멸망될 것이라는심판의 메세지도 들어 있다고 한다. 예후는 끝가지 알아듣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악한 날에 악한자를 쓰신 것니다. 이와 반대로 전심이었던 레갑 족속이 있다. 여호나답의 말을 듣지 않는 예후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자신의 욕심이 앞서 예후편에 서있었던 자신의 죄악을 회개하며 예후에게 인간적인 열심을 내었던 자신의 모습을 회개하면서 후손이 지켜야할 것을 만들었다. 아합은 나봇의 포도원은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이 충돌하는 것을 의미란다. 이럴때 여호나답은 예후와 같이 창칼을 들고 맛서눈 것이 아니라 집도 밭도 그 어떤 것도 소유 하지 말고 포도주를 먹지 말고 나그네 인생과 같이 언젠가 떠날 수 있는 삶을 살것을 말한다. 어떻게 10년도 아니라 몇백년 동안 이것을 지킬 수 있었을까? 광야는 낮에는 뜨겁고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하나님을 찾을 수 밖에 없다. 말씀이 나오는 곳이 광야라는 것이다. 이럴 때 악인의 길이냐 의인의 길이냐, 할때 예후는 악인의 길을 택한 것이고, 이 의인의 길을 레갑족속이 택한 것이다. 택자의 길은 광야의 길인 것이다. 250년 뒤에 레갑 족속을 시험하실 때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않은 것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저들은 조상의 말도 저리 잘 듣는데 너희는 왜 나 말을 듣지 않느냐며 책망하신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이 전심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성령님께서 함께 해야 가능한 일이다.
적용) 내 열심입니까, 하나님께 전심입니까? 광야가 말씀이 나오는 비결인 것을 믿습니까? 어떤 광야에 계세요? 물질, 건강, 인간관계(나홀로, 부부 간, 부모 자식 간, 목장, 회사, 학교) 등에서 전심으로 지켜야 할 사명은 무엇입니까?
3. 업적은 그 죄를 가릴 수 없습니다. (업적의 죄)
열심히던 예후에게는 당장 심판이 임한다. 하나님이 엘리사를 통해 세우신 하시엘을 쓰신다. 하사엘 채찍에 매를 맡고 있는 것이다. 인생이 그렇다. 일조벌면 이조 벌려고 하고 회사가 생기면 뺏기고 빼앗기는 것이다. 그래서 북이스라엘의 요단 동쪽 땅을 다 빼앗긴다. 요단 동쪽엔 성전이 없다. 서쪽에 와서 예배를 드리겠다고 했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바옥하고 생명력이 강한 땅을 다 빼앗긴 것이다. 그래서 항상 광야를 택하는 것이 축복인 것이다. 내 눈에 보기 좋은 땅이 남에 눈에도 보기 좋은 땅인 것은 당연한 것이다. 선남선녀가 결혼하면 싸우면 무조건 이혼하자고 하는 것이다. 헤어지면 잘먹고 잘 살 수 있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들이 탐내니 이혼도 쉽게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얼굴의 광야를 택해야 한다. 그래서 직업도 남이 안택하는 직업을 택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인 것이다. 예후가 그 앞에 있던 모든 왕들보다 못하게 된 수치를 받았다. 업적이라는 단어는 위대한일 큰 일이다. 그 업적이 쓰인 사람이 히스기야이다. 나머지는 전부 예후와 예후의 후손에게만 쓰였다. 예후에게 열심의 DNA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업적이 무엇인지 아무도 모른다. 이스라엘에 책에 남겨져 있다고 하는데, 타버라고 없어진지 오래이다. 예후가 28년 왕좌에 있었지만, 1년만 잘하고 나머지는 아람에게 이스라엘 영토를 빼앗기며 당하고 당하다가 왕좌를 물려주었다. 그래서 기록된 것은 그가 그 죄를 떠나지 못했다는 것을 지금의 우리에게까지 알려지는 것이다. 예후가 떠나지 못하여 이스라엘을 범죄하게한 그 죄를 떠나지 못한 것을 그 업적이 가릴 수 없는 것이다. 벌거벗은 자신의 몸이 다 보여지는 데도 그저 자신의 눈만 가리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레갑 족속은 어땟나? 그들은 늘 나그네 인생이라서 일어나 하면 일어날 수 있었다. 그래서 그것이 그들을 지켜주기도 하였다. 성경에서도 비천한 자라고 표현한다. 비천한 그들은 포로로 갔다가 돌아올 때도 가장 힘들고 더러운 문을 조사한다. 그렇게 그들은 800년 동안 조상의 명령을 지키다가 예수님께서 돌아오는 것을 가장 먼저 보는 목자가 되어 동방박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예수님 재림때도 비천한 레갑 족속같은 자들이 가장 먼저 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행한 어떤 업적도 우리가 행한 죄를 덮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전심으로 오셔서 십자가를 전심을 지셨고 성령님의 전심으로 우리안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계시는 것이다. 우리가 그 죄를 떠나지 못하는 쓸모없는 인생이지만 하나님의 성령의 힘을 받아 그 죄를 떠나야 한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업적인 것이다.
적용) 그 죄와 광야의 비천한 생활을 가릴 업적 쌓으려다가 더 큰 수치를 당 했던 적은 없습니까? 입시 실패, 취업, 재수, 승진누락, 허황된 재테크, 외모지상주의, 비천한 삶과 청빈함이 나를 보호해 주실 것을 믿습니까? 주제를 알고 맞습니다 합니까, 그게아니구요 합니까? 그래서 지금은 내 죄를 기려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고 있습니까?
목장나눔
Q.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C: 부모님이랑 크게 다투게 되었다. 아빠가 내 잘못이 아닌 일인데, 나를 탓하는 말을 했다. 대화를 계속 해도 통하지 않아 짐싸서 나오려다가 결국 엄마아빠 앞에서 크게 소리지르고 난리를 쳐서 크게 싸웠다. 그래서 오늘 집에 들어가기 싫다.
B: 밴드 공연을 잘 끝냈다. 병원에 다녀왔는데, 빈혈이라고 해서 약을 먹고 있다. 스트레스성 공황도 있다고 한다. 해야할 것이 많아서 그런거 같다. 밴드는 잠시 쉬고, 기타레슨만 받고 있다. 말씀에서 열심이라고 해서 좀 찔림이 있었다.
D: 그럭저럭 잘 지냈다. 같이 지내는 친구랑 잘 안 맞긴 한데. 그냥 내가 맞추면서 지내서 최대한 그냥 빨리 나가야 겠다 생각하고 있다. 학교 과제가 있아서 과제하고 있다. 언니랑 동생이 서울에 있어서 같이 지낼까 생각하고 있다. 같이 지내는 친구 집에 강아지가 있는데, 잘 돌보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뒤치닥 거리를 하고 있다. 근데 친구가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빨리 나가고 싶다.
A: 출장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 비가 많이 와서 일할때 말고는 나오지 않아서 단절된 삶이 좋긴 했다. 리프레쉬도 된 것 같다. 다만 목장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었다. 이직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자리가 없어서 좋은 이직 자리가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서 1인분을 못할 거 같아서 불안한 생각이 든다.
Q. 어떤 광야에 계세요? 물질의 광야, 건강의 관계, 인간관계(나 홀로, 부부 간에, 부모와 자식 간에, 목장에서 광야예요? 회사, 학교에서..) 다 광야입니까?
C: 그냥 다 광야인 것 같다. 엄마아빠랑 사이도 계속 안 좋고, 그러다 보니 함께 일하는 직장에도 영향이 가서 여기서도 저기서도 다 지치고 힘이든다. 광야에 있다고 하면 말씀이 잘들린다고 하는데,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 여전히 부모님이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냥 나를 좀 가만히 냅두면 좋겠는데, 집에서 나를 가만히 냅두질 않는다. 너무 숨막히는 것 같다.
Q. 내 열심입니까, 하나님께 전심입니까?
B: 내 삶에 하나님이 없는 것 같다. 목사님께서 얼굴을 보지 말라고 하시는데, 왜 그래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믿음이 좋다는 게 뭔지도 모르겠고, 그렇다고 고난이 많이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기도 하다. 신앙생활 하면서 친구들이랑 놀러가고 하는 것들이 쉽지 않기도 하다. 전심으로라는 게 어떻게 해야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주일 성수로 인해 제약 받는 것이 많은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열심히는 하고 있는데, 하나님을 위한 것인지, 그저 부모님께 잘 보이기 위한 것이지 잘 모르겠다. 어떻게 사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 그거에 대한 기준이 하나님으로 두는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데로 하면서 살지만 이것이 맞지 않는 것 같다. 계속 허무한 것이 생기는 거 같다. 밑빠진 독에 계속 붓는 느낌이다. 하나님만 믿고 내 삶을 맡긴다는 것은 조금 무섭긴 한다. 교회 부서섬기고 예배도 열심히 드리고 하는 행위에 치우친 것들을 많이 생각하는 거 같다. 믿는게 뭔지 모르겠다.
- 일단 삶에 예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활예배와 주일예배가 먼저 인것 같다. 부서를 섬기고 하는 것은 나중문제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먼저인 것 같다.
Q. 비천한 삶과 청빈함이 나를 보호해 주실 것을 믿습니까?
D: 항상 보호해주시고, 그런 일을 체험받긴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못 믿게 되고 그러니까 불안해 지는 것 같다. 복합적인 감정이라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주변에서 그런 나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도 싫다. 엄마께서는 너가 못 믿어서 그런거라고 하는데, 맞는 것 같다. 학업을 따라가지 못하거나,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정하지 못할 때 불안한 것 같다. 불안한 것을 들키기 싫어서 정작 중요한 것을 잘 못 나눌 때도 있는 것 같다. 전에 다니던 교회가 부모님이 목회자셔서 특히나 더 나누지 못했던 것 같다.
- 작은 것도 묻고 갈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생각한다. 내 삶에 사건이 올 때 해석하는 것은 우리가 이 사건이 나에게 왜 왔는지 띵크하는 것 같다. 앞으로도 잘 나누고 묻고 가자!
Q. 내 열심입니까, 하나님께 전심입니까?
A: 아웃리치 준비하는데, 사람이 많이 빠졌었다. 작년 아웃리치때 내열심을 내본 후에 열심대로 하면 안되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도 불안하고 초조해서 눈물이 났었다. 말씀들으면서 내려 놨다고 생각했던 내 열심과 욕심이 죽지 않는 식물처럼 뿌리채 뽑혀지지 않고 자라나 있는 것 같다. 아웃리치를 준비하면서 초점이 구원과 하나님이야야 하는데 관계와 일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은 하나님께서 예후를 칭찬 해주셨다고 하는데, 내 욕심을 내 열심이 가리지 못할 거 같다.
기도제목
A
1. 피에르의 건강ㅜ__ㅜ~
2. 주님 이직시켜주세요
B
1. 건강관리 잘 할 수 있도록
2.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질 수 있도록
3. 자기 열심을 좀 내려놓을 수 있도록
C
1. 결혼 후 미래와..진로에 대한 것들...잘 고민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2. 가정에서 계속 부모님이랑 부딪히는데, 내 모습 잘 볼수 있도록
3. 혼전순결.잘 지킬 수 있도록.
4. 생활예배 잘 드릴 수 있도록
D
1. 집 구할 수 있도록
2. 어느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