柯枝本色 - 홍콩 영화 제목 아닙니다...
분명 못 읽으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만.. 그러거나 마시거나
한자 실력과는 결코 상관없는 휴 전도사님의 사랑 메시지는 오늘도 계속 됩니다.
요약문 대신 오늘은 한 편의 글로 남겨 보렵니다.
추수감사절을 지내고 나면 남은 한 달은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가버릴 것입니다.
2004년 한해, 어떤 일이 가장 기뻤습니까. 지워버리고 싶은 일은 없습니까.
기쁜 일이든, 지워버리고 싶은 일이든 그것을 기억하며 남은 한해를 보내기 바랍니다.
치우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말씀 묵상이 필요하고, 또한 기억하며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뿌리를 알아야 치우치지 않습니다.
이사야서 11장 1절 말씀을 보면 이새 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난다고 하셨습니다.
이새는 다윗의 아버지입니다. 다윗이 왕이 되었기에 유명해졌지 이새 자신은 보잘 것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사야는 멸망 당하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대단한 다윗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이새의 이름을 언급했습니다. 그 줄기에서 메시야가 오실 것이라고 합니다.
망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다윗보다는 이새를 기억하게 해야합니다.
야, 네가 그래도 다윗 왕의 자손이잖아! 네가 그래도 왕년에는 잘 나갔잖아! 이런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새처럼 내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사람이었는지를 기억하라고 해야 합니다. 너무나 보잘 것 없는 죄인임에도 나를 구원해주신 은혜를 기억하게 해야 합니다.
앗수르, 레바논 같은 대적은 삼림, 빽빽한 삼림 에 비유를 하시더니(10장) 이제 세 번째 메시야의 언약을 주시면서는 줄기, 싹, 가지 에 비유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반드시 반대의 영으로 이 땅에 임합니다.
빽빽한 삼림 같은 앗수르를 대할 때는 나는 줄기다, 가지다 하고 다가가야 합니다. 거짓말 하는 사람에게는 무조건 진실함으로, 무섭게 화를 내는 사람에게는 무조건 온유함으로 다가가야 하는 것입니다.
2절에 가면 연약해 보이는 가지의 본색이 드러납니다.
지혜와 총명 , 모략과 재능 ,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함 이 그 본색입니다.
가지는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3절에서 5절까지의 말씀에서 가지의 역할과 특징을 살펴보면 예수님의 성품을 알 수 있습니다.
3절을 보면 지혜와 총명 이 있는 사람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고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않고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않는다 고 합니다.
4절에서 모략과 재능 이 있는 사람은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겸손한 자를 판단하고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고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인다 고 합니다.
아무 것도 없어도 내 입에 말씀이 있으면 세상을 칠 수 있습니다. 말만 잘한다 고 비난하기도 하지만 말 잘하는 사람도 꼭 필요합니다. 말 한 마디를 잘해서 안 되는 일도 되게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또 입술의 기운 으로 노래를 잘해서 남북을 오가며 화해 모드를 조성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5절에서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 하는 사람의 특징을 보면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고 성실로 몸의 띠를 삼는다 고 합니다.
허리띠는 남들에게 보이는 것이고, 몸의 띠는 겉으로 보이지 않지만 몸에 항상 착용하고 있는 속옷으로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남들이 볼 때 항상 공의를 행하며, 누가 보지 않아도 성실하게 일하고 공부하는 것이 우리가 갖추어야 할 예수님의 성품입니다.
이 모든 예수님의 성품을 하나님의 형상인 우리에게 주셨는데 문제는 우리가 어느 한 쪽에 치우친다는 것입니다.
지혜와 총명에 치우친 사람은 혼자 잘났다고 생각하고, 쓸데없는 자기 확신이 많습니다.
모략과 재능에 치우친 사람은 매사에 의심병이 들어서 의심을 합니다.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함에 치우친 사람은 남을 가르치려 들고, 비공의를 행하게 됩니다.
이렇게 치우치기 때문에 우리 인생이 괴로운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갈 때, 그 때 공동체의 회복이 이루어집니다.
6절 말씀의 그 때 는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사단이 완전히 결박되어 그 세력이 진멸되었을 때를 말합니다. 그러니 내 살아 생전에는 이런 날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면 됩니다. 지난 주에도 말씀 드렸듯이 내 윗질서는 절대 안 변합니다. 내 남자친구, 여자친구도 절대 안 변합니다. 나도 안 변하는데 누가 변하기를 바라겠습니까.
그래서 6절에서 8절까지 묘사된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으며... 어린 아이가 독사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는 문자적으로는 해석이 불가능합니다. 영적으로 해석해서 지금 내가 속한 공동체, 가정, 교회, 목장으로 적용을 해야 합니다.
무서운 이리와 표범이 양, 염소가 같이 놀게 된다고 합니다. 공동체 안에 질서와 평화와 조화가 이루어집니다.
이런 회복이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오늘의 결론인 9절 말씀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이 세상에 충만 함으로 이루어집니다.
내 공동체에 무서운 이리 때문에 내가 힘들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리 때문에 힘든 것이 아니라 나에게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충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저 사람이 너무 무서워, 저 사람만 없으면 살겠어 이렇게 생각하지만 나에게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충만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보기에 내가 이리, 사자일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이 세상에 충만 하다는 것은 하나님을 지식으로 안다는 뜻이 아닙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원리대로 살아가게 된다는 뜻입니다.
열방의 각축전 속에 이스라엘은 멸망하고 있는데 이사야는 700년 후 오실 메시야의 언약을 이야기합니다. 힘든 상황에 있는 목원들에게 어떻게 상담을 해줘야 할지 모를 때 우리는 말씀대로, 원론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답만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말씀대로 정답을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이사야의 입장이고 우리의 입장입니다.
But, 그러나
이사야가 700년 후 언약을 이야기했어도 하나님께서는 70년 후에 포로 귀환을 통해 갈라졌던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하나로 회복되게 하셨습니다. 상담을 할 때 말씀대로 원론을 이야기하되 육적인 조언, 구체적인 조언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목원들이 찾아와서 이성교제에 문제가 있다, 혼전순결을 지키지 못했다.. 고 할 때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이야기하되 구체적인 처방책도 제시해줘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이 세상에 충만할 때, 은혜의 물이 우리의 죄의 바다를 덮을 것입니다.
나는 100% 죄인이고, 무슨 짓을 해도 죄를 없앨 수 없기에 오직 더 큰 은혜를 사모함으로 죄를 덮어야 합니다. 오늘도 700년 후의 약속을 70년으로, 10분의 1 이나 앞당겨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와 청년부 모두에게 임하기를 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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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우리는
말씀 한 절, 한 절을 놓고 간절하고 긴 기도를 드렸습니다.
본문 말씀이 짧아 메시지가 일찍 끝난 때문도 아니었고
유난히 빈 자리가 많아진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이새 를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보잘 것 없는 죄인인 나를,
온 몸으로 부대끼며 몸부림을 쳐도, 무슨 짓을 해도 죄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나를
덮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의 물이 전도사님과 그 자리에 함께 한 우리에게,
우리가 기억하며 기도하는 청년부 지체들 모두에게 흘러흘러 넘쳤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