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찬의 애인. <결혼> _펌_
작성자명 [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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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4.10.26
쉽게 설명해 보자. 우리의 운명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계획하심은 우리네 삶의 발걸음 한 자욱 한 자욱마다 미세하게 역사하셔서 우리는 그 이상을 볼 수 없다. 다만 그 인도하심이 선한 것이라는 신뢰 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면 그동안 우리의 삶이 참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 아래에 있었음을 깨닫게 되고 그래서 감사와 찬양을 드리게 된다.
크리스찬으로서의 모든 삶의 원칙이 이러할진대, 결혼 역시 마찬가지다. 교제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의 선택의 영역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호세아가 아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자네는 최진실과 결혼하게. 하는 직접적인 응답을 받는 사람은 아마도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런 느낌을 영감으로 받았다는 사람들도 나는 믿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합당한 지혜와 분별력을 주셨고 없다면 간구해야 할 일이며 있으면 그것을 가지고 선한 선택을 해야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교제 대상을 함부로 정하고 감정에 따라 사람을 택하는 풍조가 극심하며 극단적인 경우 그 감정의 바다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로 결혼에 이르기도 한다. 헤어진다 하더라도 피차 상처를 입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피할 수 없다면 몰라도 우리에겐 그만한 능력이 있고 그런 이상 왜 이런 소모적이고 지혜롭지 못한 행동 을 반복하는가.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합리적 선택과 그에 대한 책임
그래서 나는 여러분들에게 교제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가지고, 감정에 좌우되지 않고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연애 감정을 가지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올바른 이성관을 가지고 합당한 상대를 발견하여 지혜로운 교제를 하기만 하면 그 상대와의 결혼은 완벽할 것이냐는 물음이 나왔다. 위에서 설명한 신앙관을 바탕으로 생각해 본다면 답은 명백하다.
현재 해당자료를 가지고 있지 않아 원문을 소개할 수는 없는데, 코람데오가 만든 주보 [작은목소리]에서는 이성교제와 결혼에 대한 김성천 목사의 글을 4주간 연재한 일이 있다. 거기서 김 목사가 아주 딱 맞는 적절한 비유를 든 적이 있다.
그분의 말에 따르면, 결혼은 옷을 사는 것과 같다. 백화점에 옷을 사러 갔는데, 어느 매장에 들어가 점원이 권하는 대로 이끌려 이것 저것 입어 보았다. 마음에 확 드는 옷은 없었지만 점원의 친절과 또 그냥 나가면 미안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래도 괜찮은 옷을 하나 골라 값을 치렀다. 옷을 담아 가지고 나오는데 우연히 다른 매장에서 너무나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했다. 하지만 지갑을 열어보니 돈은 이미 써버린 후였다.
결혼은 선택의 문제이다. 교제를 제대로 했건 충동적이었건 여러분의 선택인 것이다. 다만 그 선택이 충분히 지혜로웠느냐 하는 것이다. 대충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제대로 선택해야 한다. 선택한 후에 다시 물르긴 너무나 힘이 드니까. 나는 그런 차원에서 교제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결혼한 다음에는?
그 다음은 관리의 문제다. 이해를 돕기 위해 크리스찬의 애인 7 에서 나왔던 한 선생님과의 인터뷰(?) 내용을 다시 살펴보자.
그런 게 어디 있겠니?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라도 있다는 거니? 있더라도 극소수겠지. 아무튼 나는 그런거 없었어. 하지만 나는 아내를 사랑해. 결혼은 신앙과도 같은 거야. 결혼할 땐 몰라. 살아가면서 이 사람 아니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참 감사하다. 하고 고백하고 또 고백하게 되는 거지. 신앙생활이 지속적인 하나님의 발견인 것처럼 결혼 역시 지속적인 사랑과 감사의 발견이야.
결혼은 신앙과도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 침 진리다 , 나는 올바른 선택을 했다 라는 확신이고 그 확신만 있다면 그 다음에 어떤 과정이 있건 - 힘들건 즐겁건 - 모든 것을 이겨낼 수 것이다. 결혼이라는 선택에 있어서 그런 확신 을 가능케 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안타깝게도 없다. 이럴 때 우리가 흔히 갖다 붙이는 요소가 감정 이다. 첫눈에 숨이 멎는 것 같았다 거나 무언가 느낌이 통했다 따위의 감정을 빙자해서 확신 을 갖고자 한다. (이런 걸 일컬어 자기 합리화 , 자기 기만 이라 한다고 무수히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어설픈 근거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감정은 결코 헌신 을 이끌어내지 못한다.(이 부분은 나중에 혼전 동거 를 이야기할 때 다시 다루게 될 것이다.) 점원의 친절과 미안함 때문에 생긴 순간적인 호감에 의해 옷을 산 것과 똑같은 수준이다. 우리가 모든 것을 이겨낼 만큼 헌신을 할 대상 은 좀더 가치 있는 대상이어야만 한다!
그래서 결혼이라는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교제라는 엄격한 문을 거치는 것이 지혜롭다는 것이다. 흔히 우리가 사용하는 감정이라는 도구가 돌팔이 보석감정사의 감정서라면 내가 말한 교제 라는 단계는 권위있는 인증 기관에서 발급해주는 보증서와도 같다. 그런 차이가 있다. 그 보증서를 믿고서 우리는 결혼 이후에 다가올 허다한 고비를 이겨나갈 수 있는 것이다. 로마 압정 하에서 크리스찬들이 사자에게 찢겨가면서도 천국에 대한 소망을 잃지 않을 수 있었나.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라는 보증서가 아니고선 불가능하다. 신앙이든 결혼이든 그것을 꾸려나가는 것은 확신 과 의지 의 두 바퀴인 것이다.
일전에 바늘 비유 를 했는데 기억하고 있는가. 방안에 바늘이 있다는 걸 알고서 찾는 것과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고 찾는 것의 차이, 바로 그것이다. 일단은 바늘이 있어야 하겠지만(확신), 있다고 해서 찾는 수고(의지)가 없을 순 없다. 결혼은 삶의 현실이다. 20년이 넘게 다른 환경 속에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살아온 차이가 단순하리라 생각하는가. 엄청난 갈등과 반목이 내재되어 있다. 다만 있다 는 확신만이 그 갈등과 반목을 타혐과 이해의 길로 인도해줄 수 있고 그 확신을 갖는 방법을 깨닫고 인정케 하기 위해 내가 이런 글을 쓰고 있다. 말 되는가.
결과론적 기만에 대해 덧붙임
또 하나 덧붙이자면 그건, 이 이성교제론 이란 것은 결과론적인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주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땅위의 모든 삶이 그러하겠지만, 내가 가지 않은 길을 생각하는 건 의미가 없다. 프로스트가 말했듯 그 선택이 나의 인생을 바꿔놓았다고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수는 있어도 결코 되돌릴 수는 없다.
이것을 뒤집어 생각하면, 결과만을 가지고서는 무엇이 선이었고 무엇이 악이었느냐를 판단하는 것 역시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뜻이 된다. 선택한 길을 걸어갔을 때 내가 기대한 시나리오가 이루어졌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선한 계획이었다고 확신할 수 없고, 내가 뜻한 바대로 삶이 풍요롭지 못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당신을 버렸다고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여러분은 세상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것처럼 이성을 만나 결혼할 수도 있고 내가 말한 대로 이성을 만나 결혼할 수도 있다. 나는 결과를 보여줄 수는 없다. 그건 세상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세상은 결과를 보여줄 수 있다는 듯이 이야기한다. 하지만 세상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진정한 결과가 아니다. 아직도 지급기간이 남아 있는 부도 수표와도 같다. 당장에 보기에는 완벽하고 극적인 연애를 하고 결혼에 이르는 것 같아도 실제 그들이 느끼는 바는 전혀 다를 수 있다.
물론 그들은 여러분에게 우리의 만남은 더할 나위없이 좋아요 라고 말하겠지만, 그것을 믿지 않는 게 좋다. 근거로 두 가지 예를 들어보자. 안은수(가명) 형제는 이미희(가명) 자매와 사귄지 2년이 다 되어 가는 연인이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끔찍하게도 잘해주었고 거리나 레스토랑 같은 곳에서도 스킵쉽과 키스를 주고 받는, 정말 잘 나가는 Church Couple이었던 것이다. 만약 그들이 여러분 교회의 지체였다면 얼마나 많은 청년들에게 부러움과 조급함의 영향력을 주었을까. 하지만 이미희 자매는 만남이 1년을 넘어서면서부터 서서히 안은수 형제에게서 마음이 떠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 달후 마침내 헤어지고 말았다. 그 사이 여러분이 길거리에서 다정스럽게 안고 걸어가는 그들을 보았다면 정말 잘 되어가는 연인이구나! 하고 생각했겠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런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또한 탤런트 김한석과 이상아 부부의 경우를 보자. 그들은 신혼기간에 얼마나 보기좋은 모습을 보였는가. 모 프로그램에서 방영한 몰래카메라에서는 시청자들에게 그들이 정말 서로의 반쪽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부러움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얼마지나지 않아, 냉각기간이란 것도 없이 별안간 두 사람은 헤어지고 말았다.
도대체 무엇이 진정한 결과인가? 우리가 믿고 그래서 그것을 근거삼아 안심하고 걸어갈 이성관계의 모범적 전형을 이 세상이 제시해 줄 수 있는가? 없다. 그래서 이성교제 결혼도 신앙의 문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러분이 내가 제시하는 내용을 크리스찬으로서 믿고 따른다면 좋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신앙의 문제이다. 두 가지를 놓고 눈에 보이는 사례로서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적 이성에 근거해서 판단하라는 것이다. 그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199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