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제와 연애,(펌)
작성자명 [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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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4.10.26
조급함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다
연인에게 띄우는 사연을 라디오를 통해 듣고 있노라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네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단순하다. 자기가 애인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나도 빨리 생겨야 될텐데... . 대학가나 캠퍼스를 걸으면 그런 상대적 박탈감이 극대화된다. 왜그리도 연인들이 많은지...(그리고 왜그리도 티 를 내는지....) 이때부터 조급함이 발동한다. 군입대 전후 6개월이 위험하다는데, 이유는 일맥상통한다. 누군가가 나의 마음에 꼭 들어서 그를 좋아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궁급함과 필요에 따라 대상을 찾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삭의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의 짝을 찾으러 고향을 향했고 이삭은 그를 기다렸다. 언제 돌아올지, 정말 짝을 찾아오기나 할는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그는 삶에 충실했고 하나님을 신뢰했다. 그에게는 그것이 그의 때였기 때문이다. 우리도 각자의 때가 있다. 하나님에 그 때를 분별할 수 있는 영적인 예민함을 달라고 기도할 일이지, 어, 저 녀석은 애인이 있는데 왜 난 없지? , 좋은 시절 뭐하며 보냈나... 하는 마음은 금물이라는 얘기다.
이런 항의도 있다. 빨리 빨리 애인을 만들어야지, 꾸물거리다가는 좋은 사람 다 채어간다구! .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좋은 사람이라고 빨리 채어가고, 아닌 사람이라고 늦게까지 남겨져 있는 게 아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도 그들에게도 때가 있다. 그들이 그 때를 분별할만큼 좋은 사람이라면 - 비록 늦은 나이라 할지라도 - 당신을 위해 순결한 이성으로 예비되어 있을 것이다. 그게 하나님의 섭리고 그걸 믿는 게 신앙이다.
배우자 기도는 필수이다
배우자 기도는 구체적이어야 한다. 배우자 기도를 하는 이들 중 일부는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사람을 주세요 , 제게 합당한 사람을 주세요 하는 식의 구름 잡는 기도를 한다. 그보다는 어떤 생각, 어떤 신앙, 어떤 가치관, 어떤 취미, 어떤 직업, 어떤 외모를 원하는지 구체적인 항목을 세워서 기도하는 것이 좋다.
배우자 기도는 우선 하나님께 구한다는 의미를 가지지만 가장 큰 의의는 우리의 배우자상을 정립시킨다는 점이다. 배우자상이 미처 형성되어있지 않은 사람은 조급함에 빠져들거나 순간적인 이미지 에 혹하기 쉽다. 자신의 기준이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성의 매너, 친절, 우연이나 드라마틱한 상황에 빠져들게 된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배우자 기도가 필수인 것이다. (1999.7.18)
교제와 연애 그리고 결혼
주안교회 청년1부 주보인 작은목소리 에 연재되었던 김성천 목사의 칼럼을 보면 결혼을 전제로 하지 않은 교제(사귐) 를 권장한다. 이러한 제안은 비단 김 목사만 아니라 이성교제 내지는 결혼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식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수긍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청년들중 일부는 아직도 교제는 곧 결혼 이라는 도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런 부류의 청년들이 가진 허황된 생각의 전형은 백마탄 왕자 , 잠자는 숲속의 공주 이다. 거기에다 적절한 신앙론까지 가미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예비해 놓은 왕자 또는 공주가 있는데 그 사람을 발견하기만 하면 만사형통이라는 논리를 편다.
그러나 이제 교제와 연애 그리고 결혼을 구분하는 지혜를 가졌으면 한다. 먼저 분명히 하고 넘어가자. 정해진 배우자는 없다. 하나님은 자유로운 교제를 원하시고 우리에겐 그럴 자유가 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배우자 라고 굳이 의미부여를 하지만, 어디까지나 기도하는 가운데 평안과 감사가 있고 그래서 주어진 상황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결정까지 가는 과정에서 대상을 하나님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영적 예민함과 인격적 성숙함일 것이다.
그래서 풍부한 교제가 강조되는 것이다. 결혼의 전제없이 출발하는 교제는 서로에게 우정 을 심어주고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존중하게 해 준다. 또한 이미지에 혹한 분별없는 애정을 방지하는 효과도 있다. 특히 여러 명의 이성과 교제하는 가운데 자신의 이성상을 알아가는 소득이 있다. 다양한 가치관과 신앙관을 접하며 진정 내가 어떤 배우자(동역자로서의)를 원하는가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는 것이다.
교제를 하다가 어느 정도 공감이 되었다면 자연스럽게 연애 의 단계로 발전하게 된다. 이렇게 보면 교제 와 연애 가 별반 다를 게 없이 보이지만 엄연한 차이가 있다. 오늘날 다수 청년들이 생각하는 개념의 교제(사귐) 는 실상 연애 와 다르지 않다. 외형상으로는 교제(사귐) 라 부르지만 아예 교제의 단계를 뛰어넘어 연애 로 직행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예를 들자면, 누군가가 좋아졌는데, 기껏한다는 행동이 그 사람을 만나 난 니가 좋아. 하는 식이다. 이렇게 시작된 만남은 교제 의 단계가 생략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를 친밀하게 만들 수 있을지는 몰라도 처음에 품었던 이미지 수준을 벗어나기 힘들다. 뿐만 아니라 만남이 중단될 때, 어색한 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내가 말하는 교제 는 말 그대로 친구로서의 교제다. 그럼에도 자꾸 교제와 연애가 불분명해지는 것은 결혼에 대한 무의식적 조급함이나 강박관념 때문이거나, 이성을 바라볼 때 그의 내면적 가치보다는 순간의 이미지에 지나치게 이끌리는 성향 때문인 듯하다. 그리고 이성끼리 친밀한 것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청년부 분위기도 거기에 한몫 하는 것으로 보인다. 거리에 둘이 함께 있는 게 보이면 다음 주에 소문이 퍼지고 덕이 안된다 는 이유를 달아 교제의 길 자체를 막는 분위기는 빨리 고쳐져야 한다. (1999.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