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찬의 애인 전문 출처 : reedyfox.com
7. 넌 크리스찬과의 연애와 결혼
신앙적 문제인가 뜻을 같이 하지 않는 이와 멍에를 함께 하지 말라 는 말씀을 들어 넌크리스찬과의 결혼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그간의 도식적인 기독교계의 사고 방식이었다. 흔히들 목사님들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랬고 아마 신실하다는 대부분의 신앙 선배들도 그렇게 말할 것이다. 내 생각을 밝히자면, 별 문제 없다고 말하고 싶다. 저 둘이 좋아 죽겠다는데 뭐 어쩌겠는가. 같이 살아야지.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죽고 살기 식으로 두 사람 사이를 막으려드는 분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다. 불신자와 결혼하면 지옥 가냐고....... 그럼 그분은 이렇게 대꾸하실 것이다. 지옥 가는 짓만 아니면 뭐든 해도 좋으냐고. 그러면 나는 또 이렇게 대답한다. 그런데 왜 당신은 꼭 지옥이라도 가는 것처럼 그들을 정죄하고 핍박하느냐고. 나는 그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본질적인 문제가 아닌 것을 본질적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그래서 대상을 마귀의 조무래기 정도로 몰아붙이는 것 말이다. 내가 자살론 에서 자살한 이들을 동정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얘긴데, 어째서 뜻을 같이 하지 않는 이와 멍에를 함께 하지 말라 는 말씀이 인용될 수 있다는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 (제가 무식해서 그런가요?) 그걸 결혼에다 갖다 붙인다면, 같은 논리로 넌크리스찬이 운영하는 회사에는 취직도 하지 말아야 하고, 넌크리스찬이 운전하는 버스를 타지 말아야 하고, 넌크리스찬이 대통령으로 당선이라도 되는 날에는 천만 크리스찬이 이민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이런 무리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학을 했다는 분들까지도 넌크리스찬과의 결혼은 신앙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는 이상한 말씀을 하신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이런 말씀은 읽어본적이 있을란가 모르겠다. 가까이에 성경이 없을 것 같아 여기에다 그대로 옮겨보겠다.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저를 버리지 말며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아내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고린도 전서 7장 어드메쯤)
나는 목사님들로부터 위의 말씀을 들어본 역사가 없다. 언제나 넌크리스찬과의 결혼 문제가 나오기만 하면 멍에 운운 하는 것밖에 듣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왜곡이 있을 수가 있나! 성경은 오히려 둘이 죽고 못살면 헤어지지 말아라 고 명백하게 말씀하시는데 왜 우리는 그간 쓸데없는 상담이나 하고 있었던 것일까? 넌크리스찬과의 결혼은 신앙적인 차원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다만 아래와 같은 두 가지 경우를 짚어볼 수는 있다.
1. 상황적 인도가 없는 경우 장만덕 목사라고 혹시 아시는지. 몰라도 괜찮다. 별로 유명하신 분이 아니다. 지금 가슴 벅찬 교회 라는 개척교회에서 사역하고 계신 분인데, 그분이 사역 나오시기 전에 25세이상 청년부와 신혼부부반을 맡아 섬기신 경험이 있어 이성관계에 관한한 상당한 노하우를 축척하고 있으시다. 그런 노하우를 바탕으로 그분은, 진행중인 이성관계가 바람직한가를 진단하는 7가지 기준에 대해 강의하신 적이 있었다. 나도 그걸 들을 수가 있었고 내용이 참 좋아서 서브노트를 해뒀는데(안타깝게도 분실했다. 유익한 내용이 될 텐데, 여러 군데 알아 보았지만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듯.) 그 중 하나가 상황의 인도를 받는 만남 이란 것이었다. 날카로우신 분들은 벌써 이거 문제있는거 아냐? 생각하고 계실터. 하지만 상황신앙과는 차별화되는 정확한 내용을 그분은 집어내셨다. 그(그녀)를 만난 이후로 영적인 침체나 사고, 평안치 못한 심적상태가 계속된다면 과감히 헤어지라는 말씀이었다. 상황신앙 편에서도 다루겠지만 상황은 어느 정도 우리가 주의깊게 살펴보아야 할 부분이 된다. 그런 시각에서 볼때, 그분의 지적은 적확한 것이었다.
넌크리스찬과의 결혼이 신앙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부모님 내지는 일가친족들의 반대가 극심할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즉, 축복받지 못하는 결혼, 상황적 인도가 없는 경우 말이다. 반대에는 절대적인 건 아니지만 타당성있는 이유가 있다. 넌크리스찬과의 결혼을 반대하는 사람은 부모일 경우가 거의 전부인데 그 분들께서 드는 이유는 앞에서 적은대로 성경을 근거하기도 하지만 보다 주요한 이유는 1)결혼 이후 신앙생활의 어려움이나 해이 2)신앙적 가풍에 거스르는 불신자에 대한 불용납 때문이다. 틀림없이 이것은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 넌크리스찬과 결혼한다고 해서 그 결정이 비신앙적인 것은 아니지만 신앙인과 결혼하는 것보다는 마이너스의 측면이 없지 않아 있다는 뜻이다. 이런 내용을 이유로 부모님의 반대가 너무나 심해서 절대불가 를 고수하신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내가 앞에서 상황의 인도 , 순적한 만남 을 괜시리 설명한 게 아니다. 극심한 반대는 현재 진행중인 상황이 선하지 않다거나 하나님의 뜻이 아닐 수 있다는 이차적인 표지(일차적인 표지는 성경말씀이다.)가 된다. 부모님이 잘못된 생각에서 반대를 하신다면 무시해도 된다. 예를 들어, 상대가 고아라거나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또는 학벌이나 직장, 재산이 기대에 못미친다는 이유로 반대를 하시는 거라면 말이다. 그건 다분히 이기적이고 악한 동기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렇지가 않다. 어쩌면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반대는 자신의 이익을 고려하는 측면이 전혀 없고(혹시 높은 직분에 있는 분이라면 명예 때문에 그러실 수도 있겠다.) 단지 자녀의 신앙생활을 걱정하는 순수한 동기에 기인한다. 더구나 앞서 말한 바대로 그 걱정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런 신앙적 반대, 특히 극심한 반대일 경우는 하나님이 당사자의 만남 자체를 원하지 않으신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나타내실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이는 것은 상황의 인도 없는 순적하지 못한 만남을 고집하는 것이 된다. 상황의 인도에 대해선 두 가지 상반된 예를 들 수가 있다. 이삭의 배필을 찾으러 떠난 엘리에셀은 상황의 인도하심을 아주 제대로 경험한 사람이다. 그는 선하고 지혜로운 기도로 1초만에 주인 도련님의 배필을 찾았다. 반대로 형을 피해 삼촌 라반을 찾아간 야곱은 상황의 인도를 거스른 사람이다. 그는 예쁜 얼굴과 몸매에 반해 21년을 낭비했다. 상황의 인도하심을 무시하면 후자와 같은 결과를 맞이할 가능성이 크다.
2. 자기기만에 빠진 경우 이런 극심한 반대가 다가오면 우리는 그것을 우리가 이겨내야 할 고난 쯤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싸구려 3류영화에서 주인공이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만 한다면 어떤 고난이라도 이겨낼 수 있어. 하고 말하는 것 처럼 말이다. 그래서 가끔은 극단으로 치닫기도 한다. 이런 심리의 원인은 드라마틱한 것에 대한 집착이다. 영화 접속을 보라. 만나게 될 사람은 언젠가는 만나게 된대요 라는 전도연의 말 한 마디는 우리를 얼마나 행복하게 하는지! 그런 드라마틱한 사랑에의 집착은 어려운 난관을 극복해야만이 비로소 Perfect Love 내지는 Forever Love 를 이룰 수 있다는 이상한 사고방식을 낳는다. 포스트가이드 1999년 7월호에 Lord, keep her from harm 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글에는 착실하고 신앙심 깊으며 긍휼함까지 갖춘 제니의 이성교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 내용을 다 실을 수는 없고, 요약만 하면, 제니가 넌크리스찬인 매트에게 반하게 되었는데 제니의 부모가 볼 때 영 아닌 청년이라는 걸 깨닫고 만류하지만 제니는 끝끝내 매트의 편을 들다 나중엔 동거까지 하게 되고 그러다 무지하게 고생하다 자기 오판을 깨닫고 도망쳐 나온다는 얘기다. 내가 볼 때, 이 사례 역시 신앙좋은 제니가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매트에게 반해버린, 아주 전형적인 케이스다. 이 제니라는 자매는 이내 매트가 문제 있는 청년이라는 것을 깨달았는데 문제는 거기서 생겼다. 내가 그토록 강조한 자기기만 이라는 것을 어떻게 적용했냐하면, 나는 매트를 변화시킬 수 있어. 그게 내 사명일지도 몰라. 라고 생각해 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자기기만은 거론한 바대로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어서 신실한 자녀가 부모를 버리고 집을 나가버릴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여기서 포인트는 이거다. 상황적 어려움은 자기기만이 가장 좋아하는 먹이라는 것. 이것은 바꿔 말하면 고난에 대한 환상이다. 어쩌면 신앙관의 문제점으로 분류할 수도 있겠다. 고난...... 그거 중요하다. 대단히 중요하다. 불로 연단한 후 정금같이 나오리라는 고백도 있지 않은가! 아주 중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고난을 절대시할 때다. 고난을 일부러 찾아 느끼려고까지 한다. 이거 문제 있는 거다. 쓴약도 때에 맞게 써야지, 항생제도 자주 맞다보면 내성이 생긴다지 않는가. 인도에서 성지순례를 할 때 고행한답시고 길바닥에 철퍼덕 철퍼덕 하는 거랑 대동소이하다.
또 고난과 동고동락 하다보니 고난없이 찾아오는 결과는 모두 일종의 사탄의 미끼 정도로 생각해 버린다. 그러니 사랑도 뼈를 깎는 고난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보는게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데 조금더 발전하면 고난을 빙자 하게 되는데, 그게 골치 아프다. 고난이 없이는 참된 것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를 스스로 전제한 다음에, 자신의 처한 사랑의 문제점을 고난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참된 것을 위한 고난이라는 논리가 성립되니까 결국 자신의 행위를 신앙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아주 좋은 비유가 떠올랐다. 우리집에 개를 두 마리 키우는데, 그중에 세라 라는 녀석은 개밥을 잘 안 먹으려 한다. 그 녀석에게 밥을 먹이려면 조금 수고를 해야 한다. 그 녀석의 밥그릇을 빼앗는 것이다. 슬금슬금 밥그릇을 빼앗을라 치면 세라 는 갑자기 으르렁 거리며 밥을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것이다. 이거랑 비슷한 거 같다. 당초 충분한 교제 끝에 결혼을 결심한 상태에서 반대가 있다면 그 애통함이야 어찌 헤아릴 수 있으랴! 그러나 교제가 진행 중인 상태에서 아직까지 결혼에 대한 확신도 없는데도, 반대가 개입되면 은근히 저항하는 심리가 생기기 쉽다. 그래서 아까 말한 제니처럼 사랑 의 감정이 의무 또는 사역 처럼 머리에 각인되고 그 다음부턴 상황이 장난 아니게 되는 것이다.
체크 리스트 몇달전에 주제토론 중에 동성동본과의 결혼 이란 게 있어서 나는 다음과 같이 글을 올렸다.
크리스찬의 혼인이 갖춰야 할 요건중 하나가 주변 사람들로부터의 축복 이라고 생각합니다.(저만의 생각이 아니라 여러 기독서적의 공통된 내용입니다.) 결혼이 인생의 종착역이자 나의 마지막 사역지라고 생각한다면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혼인할 순 있을 겁니다. 하지만 결혼은 다만 우리의 신앙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돌리며 그것을 바탕으로 주의 일(목회든 일반 사회생활이든)을 하게 하는 하나의 도구일 것입니다.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이 사랑을 이루리라!....는 생각은 성경적이지 못하며 오히려 텔레비전이나 영화등 세상풍속적인 잘못된 애정관에 기인한 경우가 많습니다. 혹시 동성동본과의 결혼을 마음에 두신다면 다음의 항목을 체크해보시는게 어떨까요?
1.주변의 믿음의 동역자들로부터 지지를 얻고 있는가 2.교제(애인으로서가 아니라 친구로서)의 단계를 충분히(적어도 2년) 거쳤는가 3.상대방을 위해 기도할 때 마음에 평안함이 있는가 4.상대방과 혼인함으로서 포기하게 될 것, 박탈당하게 될 것이 당신이 하나님을 하는 데에 꼭 필요한 것들은 아닌가(쉽게 말해 주님이 바라시는 일을 등지고 애정만을 택하는 것은 아닌가)
아마도 위의 내용이 대체로 넌크리스찬과의 결혼 문제에서도 유효한 체크 리스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주변 사람으로부터의 반대를 전제했으므로 1번 은 해당사항이 없다. 다른 것들은 잘 이해가 되리라 믿는데 4번을 부연설명 해보자. 극심한 반대 속에서 넌크리스찬과 결혼을 할 때 관계의 단절이나 불화가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런 것들을 감수할 수 있는가, 또 그런 것들을 감수할만큼 당면한 애정이 소중한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크리스찬과 결혼함으로써 얻게될 영적 평안이나 성장을 뒤로 하고라도 상대방과 결혼해야 할만큼 당신에게 적합한 사람인가, 그리고 결혼후 서로의 신앙생활 존중에 대한 사전 교감은 있는가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199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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