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10년 째 낫지 않는 저의 고질병, 틱 때문에 약을 받으러 다녀왔습니다.
병원을 오가면서 적용한 것을 지키기 위해 주일 설교를 들었습니다.
참 달고 오묘한 말씀... 집에 와서 설교 마지막 부분을 들을 때는
그냥 또 엉엉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도 제가 큐티한 것 보다는
설교 듣고 은혜 받은 것을 올려보려고 합니다.
고등학교 생활은 저에게 두려움이었습니다.
늘 인정을 받았던 중학교 시절, 공부도 잘 하고 인간 관계도 잘 하고,
착하고 선생님들께 인정 받았던 시절.
그 시절을 뒤로 하고 입학한 고등학교는
아무도 저를 인정해주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교만함의 노예로 살다가 성적도 안 나와 보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안 되어보니
죽을 맛이었습니다.
아침에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견디지?' 하다가도
저녁에는 '내일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날마다 두려웠습니다.
친구들과 대화하기 두려웠고,
수업 시간이 두려웠습니다.
저의 두려움은 고2 때 절정을 달해서
기숙사에 있는 날 보다 퇴사하고 집으로 도망가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날마다 퇴사하면서 '지금도 잘 못 견디는데 대학 가서는 어떻게 견뎌?'
라고 자책했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떨어지면서 저의 두려움이 극에 달했다가
송구 영신 예배 날을 기점으로 조금씩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다가 고 3 때 찾아온 깊은 우울함.
생각해보니 그 우울함은 제가 살기 위한 방법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윗이 살기 위해 미친 척을 했던 것처럼
저는 살기 위해 우울함으로 미쳤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 도저히 우울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갑갑한 학교, 그리고 친구들과의 관계
본격적인 입시로 인한 스트레스...
설교 막바지에 목사님께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슬프셨겠는가...'라고 하시는데 저의 이런 과거가 생각났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큐티도 열심히 했었는데...
하나님께서 제가 살기 위해서 우울했을 때 얼마나 슬프셨을지
다윗처럼 광야로, 기숙사에서 집으로 도망할 때마다 얼마나 슬프셨을지
그 사랑을 생각하니 눈물이 줄줄 흘렀습니다.
제가 교만했고
십자가를 통과한 신앙이 무엇인지 알기 못했기에
사건을 주실 수밖에 없었던 그 사랑이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성가대 연습을 하다가 운 이후에
예배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고
초등부 수련회 때도 울면서 기도하고
중 1 때 방언도 받고
중 2 중 3을 거치면서 많은 것을 신앙적으로 배웠지만
십자가가 뭔지 몰랐기에
고난이 있어봤자 약간의 우울함밖에는 없었기에
그냥 신앙 생활을 꾸준히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지나면서
비로소 십자가가 무엇인지 알게 해주셨고
지금은 영원한 집, 하늘에 소망을 조금씩 두게 하십니다.
제가 좋아하는 찬송 중에
'무엇이 변치 않아'라는 찬송이 있는데,
딱 그 찬송대로인 것 같습니다.
'십자가 십자가 그 그늘 아래 내 소망이 있네.
십자가 십자가 그 그늘 아래 내 생명이 있네.'
십자가 밑에만 제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다윗이 두려움이 오자 거짓말을 했듯이
저도 또 두려움이 오면 거짓말을 할 것입니다.
어제 말씀을 통해서 제가 그럴 수밖에 없는
장담할 것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때를 위해 지금 기도를 열심히 하늘에 쌓아두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