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279; 어느새 큐티나눔에 글을 올린 지도 한 달이 훌쩍 넘었습니다.
큐티를 하면서 저에게 무슨 변화가 있었는지 되짚어봤습니다.
주일날 정지훈 전도사님께서 설교하셨듯이
큐티에 관한 기억력이 꽝인지라 아침에 한 큐티는 금세 다 까먹어버립니다.
그래도 달라진 것이 있다면
큐티하는 것이 즐겁고,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하나의 기쁨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니 말씀과 제 삶을 연결하면서부터
신앙적으로 무럭무럭 자라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오늘은 기이한 도우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웃시야 왕을 기이한 도우심으로 돕는다고 하십니다.
기이한 도우심이 무엇인지 생각해봤습니다.
1. 죄를 반복하지 않도록 나병을 주시는 것이라고 합니다.
웃시야 왕은 나병을 얻었습니다.
성전에서 교만하게 분향하려고 하다가 나병을 얻었습니다.
아마도 웃시야 왕은 부끄러운 마음으로 평생을 겸손하게 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교만해지려고 하다가도 나병의 흔적을 보면
'내가 그랬지...'하면서 겸손해졌을 것입니다.
저의 나병이 무엇인지 생각해봤습니다.
생각하면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저의 나병은 무엇인지 생각해봤습니다.
기질적인 우울이 첫 번째입니다.
제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우울함, 하나님만이 승리케 해주시는 우울입니다.
부끄러운 일들이 두 번째입니다.
왜 여태까지 저지른 죄들, 부끄럽고 쪽팔린 일들은 이렇게 기억이 잘 날까요?
지우고 싶은, 이른바 '흑역사'가 저에게는 참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있었기에 제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사실이 인정이 되었습니다.
부끄럽고 생각하기 싫은 기억들을 통하여 저의 완벽주의가 깨졌습니다.
2. 애굽의 악한 문화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딱 변방까지만 강성케 하시는 것입니다.
8절, 왜 하필이면 '애굽 변방까지 퍼졌더라'일지 생각해봤습니다.
만일 애굽의 수뇌부에 웃시야가 강성해졌다는 소리가 들리면
애굽이 전쟁이 일어나거나 혼인 관계를 맺으라는 요구를 했을 것입니다.
나라가 망하느냐, 아니면 불신 결혼을 하게 되느냐하는
정체절명의 위기가 닥칠 수도 있었습니다.
유다가 다시 하나님을 떠날 수도 있었습니다.
오늘, 강성함이 확장되지 않는 것은
제가 예수님을 떠날까봐 하나님께서 걱정하시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진짜 사랑이라고 하십니다.
무조건 잘 되게 해주는 것이 사랑이 아니고,
예수님을 떠나지 않게 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십니다.
딱 제 믿음만큼만 강성케 하시고 소문이 퍼지게 하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T나눔에 글을 올리는 것이나,
아니면 주위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그렇습니다.
옛날에 믿음이 미성숙할 때는
무언가를 조금만 해도 사방에서 인정해주었습니다.
'내가 사울이었습니다.'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조금씩 성숙해가다보니
하나님께서 정말로 애굽 변방까지만 소문을 전파시키십니다.
저를 더 이상 애굽의 수뇌부에게 알리지 않으십니다.
제가 인정을 받으면
웃시야처럼 교만해질까봐
그래서 하나님을 떠나게 될까봐
하나님께서는 딱 저에게 알맞는 강성함을 주셨습니다.
이제는 교만함을 내려놓고
날마다 큐티로 죄를 보고
인정병을 내려놓음으로
더 강성함을 얻겠습니다.
강성함을 얻는 목적이 내가 잘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어야하기 때문임을 명심하겠습니다.
적용
1. 강성함을 키우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