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279; 어제 너무 늦게 잤습니다.
밤에 엄마와 아빠와 떠들다보니 어느새 한 시였습니다.
가족들하고 떠들면 시간이 가는 줄을 모릅니다.
왜일까 생각해봤는데 영적으로 말이 통해서인 것 같습니다.
물론 대부분이 저와 관련된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래도 영적으로 말이 통하는 부모님을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말씀 얘기도 한참 하고, 신앙적인 이야기도 한참 하고, 최근 있었던 고민도 얘기했습니다.
어제 나눔에 올렸던 상처받았던 이야기를 털어놨습니다.
부모님께서 남을 비방하는 기도는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고는 곧 이어 날아온 엄마의 한 마디!
"너 진짜 밴댕이 소갈딱지다? 호호"
평소 같았으면 기분이 확 나쁠 말이었는데
옳소이다가 되었습니다.
저도 내공이 쬐~금 생겼나봅니다.
오늘 여호사밧이 하나님께 구했다고 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 있는지 생각해봤습니다.
어제 목장 선생님과 통화를 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저에게 친구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할 것을 권유하셨습니다.
순간 마음이 콩닥거렸습니다.
그동안 일부러 중보기도를 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회복이 우선이었기에 중보기도가 하고 싶어 몸이 근질거려도 참았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렸습니다.
'혁중아, 이제 네 마음의 힘이 생겼고, 네가 건강한 이타심이 무엇인지도 깨달았지 않니?
그러니 이제는 주위 사람들을 위해 다시 기도해보렴.'
하나님께서 꼭 이렇게 말씀해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오늘 저의 키워드는 '잘 듣기'입니다.
저는 자존감은 낮은데 쓸데없는 자존심은 세서 남의 말을 잘 안듣습니다.
남이 싫은 소리를 하면 옳소이다가 되질 않고 분이 먼저 납니다.
그런데 돌아서서 생각해보면 남들이 싫은 소리한 것이 다 맞는 얘기입니다.
제가 제거해야할 산당과 목상이 옳소이다가 되지 않고 성품으로 행하는 것,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 우울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잘 듣고 옳소이다 하면서 갈 때 하나님께서 오히려 부유케 하신다고 하십니다.
생각해보니 그렇습니다.
바뀐 목장 첫 주부터 목장 선생님의 날카로운 분석과 처방을 들을 때 잠시 당황했었습니다.
그러나 내 모습임을 인정하자고 생각하면서 나아갔더니 너무나도 회복이 빨리 되었습니다.
엄마가 저보고 쪼다같다고 했을 때 웃으면서 "네~"했더니 제 죄가 너무나도 잘 보였습니다.
우울함이 빨리 사라져갔습니다.
이제는 중보기도를 하라는 목장 선생님의 말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겠습니다.
예전처럼 이타주의 중독으로 저를 위한 기도는 안 하면서
남들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칠 것처럼 기도하지 않고,
건강한 이타심을 가지고 저를 위해 기도하면서 중보기도를 재개해야겠습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의 길을 걸으라고 하십니다. 말씀에 순종해야겠습니다.
요즘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가니 하루하루 사는 것이 너무나도 즐겁고 편합니다.
이전에 누리지 못했던 참 평안과 기쁨을 날마다 누립니다.
그러다보니 공부도 너무 잘 됩니다.
문제를 풀 때마다 아주 날아다닙니다(?) (ㅋㅋㅋㅋ)
이전에 사라졌던 열의들이 생깁니다.
긍정적인 마음들이 생깁니다.
친구들과의 인간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교만한 것이 아닌가 조금 걱정될 정도로 자기 사랑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냥 감사한 것밖에 없습니다.
정말로 정말로 감사한 것밖에 없습니다.
진짜로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저를 살려가시고
우울함에 찌들어 살 수밖에 없는 저를, 고멜처럼 끊임없이 도망가는 저를 붙잡으셔서
깨끗한 옷을 입혀주시고 다시 세우시는 하나님의 그 사랑이 날마다 감격이 됩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저를 너무나도 사랑해주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너무나도 감격스럽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해주신만큼
건강한 이타심을 갖고 주위 사람들을 사랑해야겠죠?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만을 묵상하길 원합니다.
내 죄가 아닌, 내 무능한 모습이 아닌,
그것들을 통해 영광받으실 하나님을,
그리고 그것들을 깨뜨리시고 저에게 새로운 옷을 입혀주실 하나님을,
깊게 묵상해서 하나님을 더욱 깊게 만나길 원합니다.
조금 있다 수요예배에 갑니다.
가서 잘 듣고 오겠습니다.
잘 기도하고 오겠습니다.
잘 묵상하고 오겠습니다.
듣고, 기도하고, 묵상하겠습니다!
적용
1. 학교를 가면서 친구들을 놓고 중보기도하겠습니다.
2. 저를 위한 기도를 쉬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