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279;#65279; 학교에 가면서 이어폰을 꽂습니다.
평소처럼 CCM을 들으면서 지하철을 탑니다.
'나의 백성이 다 겸비하여 내게 기도하며...'
너무나도 좋아하는 찬송 중 하나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듣던 찬송이었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아, 내가 죄에서 벗어나야 하나님께서 회복을 시키시는 구나!
그럼 죄에서 벗어나는 일은 뭐지?
적용하는 거구나!'
적용하기란 참 힘든 것 같습니다.
감사노트를 쓰겠다고 청큐 하단의 '적용하기'에 적어놓은 것이 벌써 세 번째입니다.
오늘 본문 3절에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이름조차 부르지 말라고 합니다.
저의 탐욕은 인정받기 원하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사람의 인정을 갈망하고, 또 갈망합니다.
음행은 역시나 음란물을 보는 일입니다.
이젠 끊어야지 하면서도 가~끔 마다 손이 갑니다.
더러운 것들은 우울함과 낮은 자존감, 염세주의 등입니다.
이전에는 더러운 것인줄도 몰랐던 것이었는데 감사하게도
이제는 더러운 죄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오늘 저에게 충격을 준 구절은 4절,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저는 제가 겸손하다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맞았습니다.
겉으로 저의 공로와 잘남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의 그런 모습은 믿음에서 온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깎아 내리고'있었습니다.
누군가 칭찬을 하면 자연스러운 겸손함이 아닌,
스스로 '나는 누구보다 못하잖아. 나는 이것을 못하잖아. 또 교만해지면 안 돼.'
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끌어내렸습니다.
왜 그런가를 생각해봤습니다.
중학교 1학년, 첫 번째 봤던 중간고사에서 전교 1등을 한 후에
저는 끊임없는 교만함과의 사투를 벌였습니다.
저도 모르게 교만한 생각들이 튀어나왔습니다.
그 때 예수님을 만났지만 십자가를 통과하지 못했기에
저는 저에게 주어진 자유도 어떻게 할 줄 몰랐던 것입니다.
그 때부터 저는 스스로를 깎아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누추함을 버리라고 합니다.
나 자신을 억지로 깎아내리는 누추함을 버리고
예수님께서 자연스레 주시는 겸손함을 입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몰라서, 하나님을 끊임없이 원망했던 어리석은 말을 버리라고 하십니다.
저의 주특기는 '나에게 왜 이러세요?'입니다.
이런 원망을 버리고 하나님을 제대로 알라고 합니다.
주위 사람들을 희롱, 정죄하지 말라고 합니다.
나 자신을 깎아내리다보니 결론은 정죄였습니다.
사소한 실수만 해도 스스로에게 욕을 하고,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는 서스럼없이 죽으라는 말도 참 많이 했습니다.
너는 저주 받은 사람이라고 저를 세뇌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을지... 이제야 그것이 느껴집니다.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하십니다.
주신 것에 감사, 구원하신 것에 감사하며
즐겁고 기쁘게 살라고 하십니다.
생각해보니 저를 정죄하고 깎아내려서
제가 올바른 자존감을 가지지 못했고,
그것이 결국 우울함으로 직결되는 길이었습니다.
이제는 항상 감사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겸손함과 자존감으로
자랑해야할 서은 자랑하고,
저 자신을 인위적으로 깎아내리지 않겠습니다.
적용
1. 하루에 한 가지씩 감사할 거리 찾아 노트에 적기.
2. 내가 잘하는 일들 노트에 적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