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완전한 죄인으로 태어난다. 그 죄가 우리를 하나님과 단절시키고 우리를 지배하게 되어서 우리가 죄의 노예 가된다. 인간은 그 누구나 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였다. 그리스도인이건에 아니건 에 그러나 하나님이계시던 자리에서 하나님이 나오니깐 그 공허감을 채우려고 인간은 온갖 것에 집착하고 그 공간을 채우려고 하지만 모두 헛수고에 진날뿐이다. 오직 그 자리를 채울 수 건 오직 하나님아버지의 말씀이다. 영광이신 하나님께서 계시던 자리를 그 어느 것이 그 누가 채울 수 있게나?? 그 아무것도 없다. 그 말씀이 채우는 곳이 바로 교회인 것이다. 나에게 채워지지 않는 욕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나가는 것이 교회에 나오는 것이다.
발람이야기이다. 발람은 하나님의 신자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어느 것인지 다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발락의 제안을 전부다 끝내지 못했다. 그는 발락에 제안에 끌려다닌 것이다. 하나님 뜻이 무슨 뜻인지도 알면서 이 세상의 것이 너무 좋아서 100% 끝내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세상의 것들을 바로바로 끝내지 못해서 온 결과가 바로 이스라엘의 간음 사건인 것이다. 이 세상을 이기 못하고 이세상과 간음한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꼴을 면할 수 있나? 슬프지만 그 방법은 없다. 흔히 바리세인들과 같이 모든 행실에 열심을 부리고 항상 성실하게 살면 복을 받고 모든 고난과 시련을 다 피해 꺼리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예수님께서 그들을 독사의 새끼라고 부르지 않나? 그렇다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그 아무 죄도 끝내지 못하고 오히려 끝낼 수 있다는 생각이 죄인 것이다. 우리가 교회에 나오는 이유는 우리는 세상과 간음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내 안에 계시는 이 세상과는 간음하시지 않으신 예수님께 의지하고 그분께 안기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간음하시지 않으시는 것을 우리가 간음하지 않은 것으로 하나님께 봐주신 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그 죄를 끝내시나? 그 방법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방법이다. 이스라엘이 간음하고 불평하고 죄를 끝내지 못했을 때 하나님께서 때론 독사로 때론 땅이 갈라지는 사건으로 그들을 벌하셨다. 고통으로 그들의 죄를 끝내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고통을 사람들이 고난이라고 정리해놓은 것이다. 고난에는 분명히 고통이 따라온다. 우리 몸속 뼛속에 숨어있는 죄들을 끝내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뼈저린 고통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죽는 그 순간까지 그 고통과 함께해야한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을 믿음으로 이겨나가라는 말씀은 바로 죽음 후에 우리가 있어야하는 곳 천국에서 하나님과 같이 웃고 있을 당신의 모습을 상상해봐라 그땐 너무 기쁘고 기뻐서 무슨 일 때문에 고통을 당했는지도 모를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거지같이 비참하게 잔인하게 최후를 맞이할 수 있으나 죽음 후에는 그 아무것도 그 누구도 우리가 누릴 행복, 만족, 기쁨에 손대지 못할 거니 기뻐하라.
기도제목
희섭:큐티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