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인도를 받지 말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라.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이야기다. 모세는 가나안땅에 들어가는 사역을 하다가 고비를 만났다. 모세는 사역 도중에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불만을 견디지 못해 하나님께 차라리 죽여 달라고 애원했다. 그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아버지께서 그의 곁에 70인의 동역자인 장로들을 붙여주었다. 그 70인의 장로들은 성령을 받음으로 예언을 하나씩 하기 시작하는데 그 모습을 본 여호수아는 그들이 예언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모세에게 ‘그들이 예언하는 것을 막으셔야합니다’ 라고 말했다. 이 모습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습인가처럼 느껴진다. 하나님아버지께서 성령을 부으셔서 허락하신 예언의 모습인데 그 모습을 보면서 그들을 제지하는 모습은 그 아무리 여호수아라고 해도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직접 나셔서셔 성력을 부어준 것인데 그 일을 지적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서라고 하실 때 그때 나서야하는데 그는 그가 보기에 미성숙한 사람들이 예언을 한다고 그 불만을 참지 못하고 말해버린 것이다. 결국 자기 자신의 욕구해소를 위해서 말한 것이지 하나님의 영광, 이름, 나라를 위해서 움직인 게 아니다. 신자라면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 나라의 완성만 바라보고 그 일을 위해서 살아 갸하지 않느냐?
그 다음 사건은 모세의 구스여자 사건이다. 모세가 구스여자를 취한 사건은 특이한 점이 있다.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했다고 이야기 하지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이 노하셨거나 기뻐하셨다고 하는 말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다. 즉 그 모세 사건의 초점은 모세가 그 여자를 취했다 혹은 취하지 않았다가 아니라 그 다음으로 일어난 모세의 동역자인 미리안과 아론에 가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세가 구스여자를 취했다는 사실을 트집으로 모세를 비판하였고 그것을 들으신 하나님아버지께서 그들에게 노하셨다. 여자를 취한 모세에게는 반응이 없으시더니 오히려 그것을 비판하는 아론과 미리 안에게 노하시는 하나님 상황은 어색해도 이 사건에 중심은 모세를 비판한 아론과 미리 암이다. 윗사람이 실수하거나 잘못하면 기회라고 잡아서 그녀를 혹은 그를 신나게 비파하기보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안아주셨던 것 같이 그 혹은 그녀를 안아주고 기도해주어라. 안 그러면 미라 암처럼 문둥병 걸리니 조심하라.
마지막으로 가나한 땅 정탐이야기다. 그들은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이미 가나안땅에 무서운 민족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안후 가나안땅에 들어가는 것을 포기했다. 그리고 차라리 광야에서 죽는 게 낮다고 하나님의 뜻을 비웃고 믿지 못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들을 죽이겠다고 하시지만 모세의 기도로 그들의 죄를 용서 받고 40년 동안 광야에서 살아가게 된다. 하나님께선 한 사람의 믿음의 성숙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광야도 기꺼이 허락하시는 분이시다. 왜? 이 지구상에서 의미 있는 것은 하나 믿음이니 천국으로 들어갈 때 무엇을 하나님께 보여주겠느냐? 땅? 자식? 돈? 명예? 이런 것들이 과연 천국으로 갈 수 있는 통행료를 지불할 수 있나? 절대 못한다. 오직 믿음만이 천국으로 가는 길이다. 그리고 그 믿음의 성숙은 오직 하나님아버지께서만 이루시는 것이다. 거지같은 삶으로 믿음의 성숙을 이룰 수도 있고 부자 같은 풍요로움으로도 믿음의 성숙을 이루실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 수준의 상태가 미성숙했기에 하나님께선 그들을 광야로 보내셔서 믿음의 성숙을 이루신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 광야가 올 수 있다. 그 시간이 40년일 수도 1년일 수도 2일일지도 그 누구도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 광야의 시간은 언젠간 끝이 오고 천국에서 뛰노는 시간이 올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의 성숙이 자신의 감정을 숨기라는 것은 아니라. 힘들다면 힘들다고 보고싶다면보고 싶다고 배고프면 배고프다고 하나님께 울부짖어라 도움을 구하라. 물론 힘들다고 보고 싶다는 핑계로 하나님의 일을 안 ?는 것은 안 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부르짖음을 듣기위해 우리를 광야로 내보내실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