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실 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실 인은 목적이 달라야하고 가치관이 이 세계인들과는 달라야한다. 하나님의 품을 떠나버린 세상인 들은 스스로가 스스로의 목숨과 유익을 챙겨야하기에 자기 자신 외에는 그 모든 이들을 다 적으로 간주하고 경쟁을 한다. 겉으로는 가족의 유익을 챙기지만 언젠가 가족이 자기의 유익에 피해를 입히는 일이 발생하면 그 가족까지 버려버리는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과 다르게 살아야한다는 것을 그림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이스라엘의 나실 인이 되는 사건이다. 이스라엘은 특정기간 동안 하나님께 무조건 순종하겠다는 의미로 나실 인제도가 있었다. 이스라엘 백석 중에 남자든 여자든 하나님께 헌신하겠다는 마음으로 기간을 정해서 그 기산동안 나실 인이 되는 것이다. 나실 인이 되겠다는 기간엔 그 어느 죄도 지으면 안됐다. 심지어 가족이 죽어도 그 시체를 만지면 안됐다. 그러나 이 나실 인 제도는 너무 불완전하다. 나실 인의 제도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이지 그 제도를 구원의 기준점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대표적으로 기간이라는 시간이 정해져있다는 것 이다. 기간 동안만 나실 인이고 그 기간이 끝나면 나실 인이 아니지 않나? 그리스도인은 기간제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지구상에서 사는 시간 전부가 그리스도인 이여야 한다. 그럼 이제 나실 인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알아보자. 나실 인제도 규칙 중에 포도주에 관한 법이 있다. 나실 인이 되겠다는 기간 중에는 포도주를 마시면 안됐다. 그러나 기간이 다 끝났다고 점을 찍는 제사 뒤에는 그 포도주를 마셔도 좋다고 이야기한다. 말씀을 참조하면 민수기 6장 20절을 그대로 인용하면 ‘그런 다음에 제사장은 그것들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 바치는 제사인 요제로 드려라. 그것들은 거룩한 제물로서 제사장의 몫이다. 또 흔들어 바친 숫양의 가슴 고기와 높이 들어 올려 바친 넓적다리 고기도 제사장의 몫이다. 그런 다음에야 나실 인은 포도주를 마실 수 있다.’ 라고 쓰이다. 이상하다고 느껴지지 않나? 나실 인이 되겠다는 기간이 지났는데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아버지께서는 그를 나실 인이라고 불러준다. 그런 다음에야 나실 인은 포도주를 마실 수 있다. 이 구절을 말하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어는 남자가 나실 인이 되겠다고 하면 그가 나실 인을 하겠다고 결심한 기간에는 포도주를 마시면 안 된다. 그러나 그 기간이 끝나는 제사를 드리고 난후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나실 인이라고 불러주신다. 그리고 그는 포도주를 마셔도 된다. 그렇다 그는 포도주를 뛰어 넘는 것이다. 기간이 이 끝나서 그가 다시 죄인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지속적으로 나실 인으로 봐주시는 것이다. 이렇게 이 사건은 예수님의 희생을 그림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는 의인이 아니고 나실 인이 아니지만 예수님의 승리를 보시고 우리를 의인으로 여겨주신다는 하나님아버지의 자비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죄에 묶여있지 않는다. 우리는 더 이상 포도주에 묶여있지 않는다.
그러면 우리 나실 인은 어떻게 살아가야하는가? 하나님의 나라를 인생에서 최고 최우선 순위에 놓고 살아가야한다. 친구는 물론이고 가족도 하나님 아버지보다 우선순위가 되면 안 된다. 예수님을 영접한 엄마와 아들 그렇지 못한 아빠와 딸이 살아가는 가정이 필자의 가정이다. 이 가정에 예수님은 칼을 내려주시려고 오셨다. 예수님께선 이세상과 원수가 되게 하려고 우리들 손에 칼을 쥐게 하려고 이 세상에 내려오셨다. 칼이 있으면 전쟁을 하기 마련이다. 다른 것은 딸과 아빠는 세상의 칼 아들과 엄마는 말씀의 칼이다. 가족 간에도 하나님의 자녀와 자녀가 아닌 사람은 원수가 되는 것이고 적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전쟁해야하는가? 그리스도인의 전쟁의 표본이 되신 예수님을 보자. 예수님께서 이 세사에 내려오셔서 전쟁하셨고 전쟁에서 이기셨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각자만의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길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분의 방식은 세상적인 방식과 많이 다르다. 세상 사람들이 죽이려고 하면 죽임을 당하는 것이고 무시할 때 그저 무시를 당하는 것이다. 세상적인 의미에서 전쟁은 두 부류가 싸움을 통하여 누가 이길 것인가 고르는 것인데 그리스도인에게 전쟁은 그저 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당하는 것이 그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이신 사건을 독사가 예수님의 발꿈치를 물었지만 십자가에 돌아가셔서 그 뱀의 머리를 쪼갰다고 이야기하시지 않나? 그렇게 나실 인인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전쟁을 하면 살아가야 하는데 그저 당하는 전쟁을 하면 살아가야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