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 형 유다의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대략 이러하다. 예전에 요셉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그는 여러 명의 형제들과 같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요셉의 아버지가 오직 막내 요셉만 사랑해서 그의 형제들이 그를 질투하고 시기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엔 그의 형들이 요셉을 상인에게 팔아버리고 아버지에게는 들짐승들에게 공격당해서 요셉이 죽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 사건이 일어나고 몇 년 후에 요셉의 형들이 살던 곳에 가뭄이 들어서 먹을 것이 없어서 이집트에서 먹을 것을 얻어오려고 한다. 때 마침 이집트에 팔려간 요셉이 이집트에서 높은 계급을 가지고 통치하던 때였더라. 그러나 그의 형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했다. 요셉이 그의 형들에게 누명을 씌워 그들 중에 막내였던 사람을 감옥에 넣으려고 하니깐 요셉을 팔아버렸던 첫째 유다가 대신해서 벌을 받겠다고 발언을 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이야기를 잘 알 것이다. 필자가 쓴 내용은 틀린 부분이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흔히 요셉의 시점을 중심으로 이야기 된다. 종으로 팔려나갔다. 어느 나라의 권위자가 된다는 이야기. 수많은 시력과 고난을 하나님과 함께 이겨 나아가고 결국에는 한 나라의 지배계층이 되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가 맞긴 맞다. 그러나 오늘은 요셉이 아니라 나머지 형들의 시점에서 이이야기를 살펴보도록 하자.
요셉의 아버지는 (유다의 아버지이기도 함) 오직 유다만을 끔찍하게 사랑했다. 흔히 성경에 나온 사람들이 하는 짓이 모두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될 것이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어느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서 점차 의인의 형상과 모습으로 지어져가는 과정을 성경에서 담고 있는 것이지 그 어느 사람이 하는 행동이 다 좋은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생각된다. 요셉의 아버지가 요셉만을 사랑하는 행동은 잘못된 양육방식이다. 그 결과 형제들 사이에서 질투와 시기가 일어나게 된다. 결국 막내를 상인에게 팔아넘기게 된다. 요기가지 보면 유다는 의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는 악한 일을 행했고 그는 죄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만의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유다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시다. 또한 성경은 어느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서 의인으로 되는 과정을 적어놓은 책이지 처음부터 의인인 사람이 나와서 그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을 적어 논게 아니다. 이 말은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것이지 하나님이신 예수님껜 적용이 되지가 않는다. 무슨 소리인지 알지 않나? 이제 유다가 의인이 된 다음에 겪는 사건을 알아보자. 그가 살던 지방에 가뭄이 들어 먹을 수 있는 식량이 다 떨어지자 그는 이집트에서 먹을 것을 가지고 오려고 이집트로 향했다. 때 마침 이집트로 팔려간 요셉이 승진의 승진을 거듭해서 총리로 일하고 있었을 때이다. 요셉은 형들을 알아보아서 그들을 시험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그들 중에 막내였던 베냐민의 살 자루에 몰래 비싼 컵 하나를 넣어놓았다. 즉 누명을 씌운 것이다. 그러나 첫째인 유다는 달라져 있었다. 그는 그가 막내 대신하여서 벌을 받으리라 라고 말한다. 마치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대신하여서 십자가에 못 박힌 사건과 비슷하지 않나? 유다가 의인이 되어가는 과정은 성경에 나와 있지 않는다. 모두 요셉 이야기이지 유다에 대해서는 그리 많은 게 나와 있지 않다고 필자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가 똑같은 사건에 대해서 다르게 반응하고 이야기 하는 것을 보면 그는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다의 길을 걸을 줄도 알아야한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아도 순종해야한다. 유다는 적어도 이름을 남겼지 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순교자들이 얼마나 많나? 물론 처음부터 수박만한 믿을 을 요구하시지는 않는다. 처음에는 겨자씨 그다음 복숭아씨 이렇게 점차 성장해가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인용하자면 100마리의 양중에 1마리가 없어지면 예수님은 그 양을 찾으러 가신다고 하셨다. 우리의 삶 중에 1마리의 양이 되는 때도 있지만 우리가99마리의 양의 일부분 이여야 하는 때도 있다. 그러나 99마리의 양떼 속에 있다고 해서 조금 과심을 받지 못한다. 고해서 유명해지지 못한다고 해서 하나님께 때 쓰지는 말자. 예수님은 죽기까지 순종하셨는데 우리가 그 길을 가야하니. 이처럼 예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길을 불평과 불만으로 걸어는 일이 가능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