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제자들이 한 행동들 중에 예수님의 앞길을 가로 막는 행동들이 있었다. 예수님께서 전도하시며 구원의 일에 열중하실 때 제자들은 먹을 떡이 없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거기에 대하여 근심하고 걱정하고 거기에 얽매여 있었다. 예수님께서 수많은 기적들을 행하고 그들이 그 기적을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먹을거리나 식량이 떨어지는 것에 대해 많이 걱정했다. 그리고 그러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왜 그리 마음이 둔하냐고 꾸짖으셨다. 이 처럼 마음이 굳어있으면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들을 스스로 목격하고 체험해도 늘 불안해하고 걱정하는 것이다. 떡이 풍성하기를 원하는 삶을 내려놓아야한다.
예를 들어보자 베드로의 삶이다. 그는 예수님께서 ‘인자는 이제 곧 십자가에서 죽으리라’ 라고 이야기 하시자 걱정하듯이 말렸다. 아니 성경대로 하지면 붙들고 말렸다 그러지 마시라고 예수님을 말렸다. 그러자 오히려 예수님께서 화를 내시면서 ‘사탄아 물러가라’ 라고 명령하시고 그를 꾸짖으셨다. 왜 그러셨을까?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라갈 때 그는 그의 모든 것을 버려두고 따라갔다. 그는 전직 뱃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그의 배와 그물을 모두 뒤로하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제 내가 곧 죽을 것이야’ 라고 이야기 하시자 그를 말렸다. 이 행동은 얼추 보면 그가 예수님을 위로하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행동 인 것 같다. 진짜 그럴지도 모른다. 이제 상황에서 두 가지 가능성으로 나누어보자.
첫 번째 가능성 베드로는 예수님만 믿고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왔는데 이제 예수님께서 ‘나 이제 곧 죽을 것이야’ 라고 이야기하시자 불안해서 예수님을 말리는 척 하면서 진실로는 자신의 밥줄이 걱정되어서 일부러 말리는 척을 했다.
두 번째 가능성 베드로는 진실로 예수님을 사랑했다. 그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신다는 소리를 듣게 되자 그는 이제 그가 예수님께 해줄 수 있는 것 중에 무엇이 최선인가를 생각하게 되고 그리하여 그는 예수님을 말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 결국 그는 예수님을 말리려고 한다.
사실은 모른다. 성경에 그가 어느 생각을 하면서 그러한 이야기를 했는지 성경에 안 나와 있다. 이 두 가지 외에도 다른 생각, 다른 의도를 가지고 그런 말을 했을 수도 잇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 두 가지 혹은 두 가지 생각외의 모든 생각이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꾸짖음을 받을만한 것이라는 것은 알 수 있다. 왜? 베드로가 예수님을 말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심하게 꾸짖으셨으니깐. 그러면 이제 베드로가 꾸짖음을 왜 받았는지 알아보자.
첫 번째 가능성에서 나온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보자. 두말이 필요 없다. 그는 이때까지 말로만 하나님 예수님사랑해요. 라고 이야기하고 사실은 그 의 밥줄을 생각하니깐 두려워서 무서워서 말리는 척을 한 것이다. 그는 사실로 구원에 대해서보단 예수님께서 그에게 주시는 밥에 더 큰 관심과 마음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선 속으시지 아니하시고 그를 바로 꾸짖으셨다. 그때 예수님의 속마음을 추정하자면 ‘입으로는 네가 나를 사랑한다고 순종한다고 하지만 너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가는 일을 내가 한다고 하면 너는 그 뜻에 순종하지 못하는 구나’ 라고 생각 하셨을 수도 있다.
두 번째 가능성에서 나온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보자. 객관적으로 베드로에게 문제가 잇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 문제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제자가 스승을 사랑해서 말리는 것인데 왜 거기에 대고 꾸짖음을 행하는 것인지. 대충 보면 이해가 안가는 행동이지만 예수님께선 이미 다 아셨다. 뭘 아셨는지? 그가 나쁜 생각을 가지고 그런 행동을 행한 것? 아니다 그건 첫 번째 가능성에 나온 이야기이고 이제는 두 번째 이야기이다.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돌아가신다는 소리를 듣고 그는 걱정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판단하기에 최선의 일을 행했다. 바로 예수님을 말리는 일…….
이 이야기에 더 깊게 들어가기 전에 알아두어야 하는 것이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고 난후로부터 선과 악을 판단하는 비극이 일어났다. 베드로는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 이였기에 그도 당연히 선과 악을 판단하는 인간이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선악 판단에 의해 예수님께서 돌아가신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는 좋은 마음으로 그를 말리기를 결심한다. 첫 번째 이야기가 악을 행한 것이라면 두 번째 이야기는 선을 행한 것 이라고 정리하자.
다시 말하자면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돌아가신다는 소리를 들었다. 베드로가 그 소리를 듣고 그의 선악 판단이 일어난다.
그가 “악” 행했을 때 그는 예수님을 말렸다. 그는 그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왔다. 그래서 그는 겉으로는 걱정하는 척 그러나 진정으론 자신의 밥줄이 걱정되어서 걱정하는 척을 행하는 것이다. - 첫 번째 가능성
그가 “선” 행했을 때 그는 예수님을 말렸다. 그는 그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왔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밥줄보다 예수님을 사랑해서 예수님께서 고통당하시는 모습이 더 걱정이 되어서 예수님을 말렸다. - 두 번째 가능성
이 처럼 행해지는 행동은 똑같지만 그 행동 안에 있는 마음은 정반대이다.
이상하지 않나? 베드로가 예수님을 걱정해서 그런 것인데 왜 꾸짖는 것인지. 예수님께서 위로받으시는 것을 싫어하시나? 아니다 더 주의 깊게 생각해보자. 베드로가 좋은 마음으로 예수님을 말리는 것이나 나쁜 마음으로 예수님을 말리는 것이나 둘 다 말하는 핵심은 같다.
‘예수님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 안 돼요’ 라고 말 하는 것이다.
악한 마음을 가지고 그런 말을 하면
‘예수님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 안 돼요’ + ‘내가 당신만 믿고 왔는데 배신해? 장난해?’
이러한 마음이 거기에 더해지는 것이다.
선한 마음을 가지고 그런 말을 하면
‘예수님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 안 돼요’ + ‘제가 예수님 사랑하는데 예수님 아프면 안 돼요’
이러한 마음이 거기에 더해지는 것이다.
이제 조금씩 보이지 않나? 그렇다 선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말리는 행위는 불순종인 것이다. 이해가가지 않으면 더 주의 깊게 생각해보자. 왜 예수님께선 이 땅에 내려오신 것이실까? 십자가에서 못 박여 돌아가시려고 우리의 죄를 다 용서해주시기 위해 산 제물이 되어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려고 이 세상에 내려오셨다. 근데 이 세상 구원하시려고 오신 예수님께 ‘안 돼요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것 안 돼요’ 라고 말하는 것은 예수님은 물론 하나님께 대적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예수님을 말리는 일이라도. 인간의 선악 판단에서 선의 결과로 예수님을 말리는 일이 나와도 그 일이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면 그 결과를 보시고 하나님께서 꾸짖으시고 혼내시는 것이다. 인간의 선악 판단에 하나님을 가두지 말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말릴 때 악한 판단으로 혹은 선한 판단으로 어느 의도로 예수님을 말렸는지는 나와 잇지 않다. 그리고 거기에는 하나님의 분명한 의도가 있으시고 뜻이 있으시다. 인간에게는 도덕이 선이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이 선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 다음으로 일어난 사건은 제자들 중에 누가 더 크냐하고 다투는 사건이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자고 먹고 생활해서 거기에 대해 우월의식이 있었다고 추정된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 인데도 귀신을 내쫓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을 정죄하고 그들에게 하지 말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너희들이 너희들의 노력으로 인해 그러한 권능을 받은 게 아니라 나의 전적인 은혜로 말미 함아 그렇데 된 것이라고 이야기 해주셨다.
내가 중심이 되지 말자 내가보기에 악한 것이 하나님께 선일수도 있다. ‘예수님께서 이제 나 이제 곧 죽을 거야’ 라고 이야기 하실 땐 우리가 예수님의 은혜로 말미 함아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알겠습니다! 예수님’ 하고 순종하자.
기도제목
현수: 공부 열심히
태진: 교사/ 목자 역활 잘하도록
재덕: 순종하며 살게
경서: 죄짓지 않는 삶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