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지 잘 모르겠지만, 이 순간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오빠이다. 나는 우리집의 늦둥이였고 오빠는 나와 16살 차이가 났다. 오빠가 고2일때 내가 태어났고, 아직 내가 어린이집을 다닐 무렵에 부모님은 별거를 하셨다. 오빠와 아빠는 그대로 서울에 남고, 엄마와 나는 경기도에 내려가서 살았다. 엄마는 일하느라 바빴고, 나는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초등학교때 나는 잠시 게임중독에도 빠졌다가, 만화중독에도 빠졌다가 혼자서 그런식으로 시간보내기에 바빴다. 그러다가 오빠가 대학을 졸업하고나서 우리집에 들어오게 되었고, 우리는 식구는 세사람이 되었다. 아빠는 1년에 한두번 정도 만났다. 사실 나에게는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아빠가 없어도 우리는 괜찮았고, 나도 별로 이상하지 않게 여겼다 불신결혼이었기 때문에 언제나 부#46379;히는 일이 많았다. 그리고 오빠는 아빠에게 맡겨지고 나는 엄마에게 맡겨진채 아빠는. 희한하게도 아빠가 있는 애들도 별로 부럽거나 그러지는 않았다.(지금 생각해보니 하나님의 자비셨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우울증을 앓고 있던 오빠는 가끔씩 집을 나가서 강원도에 가곤 했다. 물론 언제나 돌아오기는 했다. 아빠나 엄마가 돈을 부쳐주기도 했고. 그러다가 외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에 가야했을때 오빠는 같이 가지 않았고, 나와 엄마는 며칠 그곳에 가서 있었다. 그리고 돌아와보니 오빠가 없었다. 그 사이에 집을 나간것이다. 걱정하고 있던 중 며칠뒤에 오빠의 연락이 왔고, 우리는 안심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고 몇주가 지나고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때도, 중학교를 입학할때까지도 오빠는 소식도 없고 돌아오지도 않았다. 그러던중 엄마는 기도를 하다가 큰 결심을 하고 아빠와 다시 재결합을 했고, 나도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우리 세사람은 그럭저럭 가족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었다. 아빠도 조금씩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을 때였다.
그리고 2006년 4월 22일, 내 생일 바로 다음날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 내용은 오빠에 관련된 것이었고, 우리는 몇개월만에(할머니 장례식이 10월달이었으니 약 6개월 뒤다) 연락이 됐구나 했는데......그 소식은 오빠의 사망에 관한 것이었다. 전화를 받는 엄마의 목소리가 울먹이는 소리로 바뀌고 전화를 끊고 우리에게 얘기해줬을때. 정말 그런 슬픔은 없을 것이다. 그때 나는 겨우 중학교 1학년이었지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정말로 정말로 내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아빠는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역시 큰 충격을 받았다. 연락이 온 곳은 강원도였고, 우리 가족과 이모네 가족은 (나는 학기중이었지만) 바로 차를 타고 그곳에 갔다. 학교 선생님에게 얘기를 하자 선생님이 사정을 듣고 결석처리를 하지 않겠다고 했고, 아빠와 이모부가 오빠의 주검을 사진으로 확인했다. 오빠가 발견된 곳은 산의 민간인은 출입하지 않는 군인들의 벙커였다. 그 곳에 있다가 동사한 것이었다. 엄마는 오빠가 화장할때 주저앉아 울었고, 우리 가족은 그렇게 오빠의 장례식을 치뤘다.
그 후에 우리는 서울의 지금 살고 있는 동네로 돌아왔고, 우리가 이곳에 살았을때 다녔던 예전 교회에 다시 나가게 되었다. 하지만 그곳은 말씀보다는 형식위주가 강했고, 우리 가족의 상처 치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말씀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동네에 좀 큰 교회인 청년교회인 삼일교회에 들어가게 되었다. 처음엔 정말 좋았고, 우리 가족의 상처도 그렇게 조금씩 치유가 되는 것 같았지만.. 워낙 큰 교회여서 그런지 사람들의 마음 하나하나를 터치해주기에는 조금 부족했다. 그러던중 엄마가 CTS를 통해 통해 김양재 목사님의 설교를 듣게 되었고, 인터넷으로 찾아듣기 시작하셨다. 처음에 엄마가 우리들교회에 가겠다고 했을때, 내 마음에는 반항이 자리잡았다. 삼일교회에 친구들과 서서히 얼굴을 익히던 때였고, 나는 그곳이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좋다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나는 물론 삼일교회에 있고싶었지만, 성령님께서 자꾸 우리들교회에 가라는 사인을 주시는 것 같았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했고, 결국 우리가족은 모두 우리들교회에 오게 되었다. 그리고 김양재 목사님의 말씀으로 변화되어가는 엄마와 아빠를 보면서 나도 우리들교회 고등부를 통해 깊은 말씀과 Q.T를 좀더 깊이 알게되면서 이 곳이 우리의 교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가족은 이곳에서 말씀을 통해 그렇게 치유함을 얻었고 지금은 감사함으로 말씀을 묵상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한때 오빠의 그 일은 우리에게 큰 고난이었지만, 그로 인해 우리 가족은 다시 뭉칠 수 있었고, 이렇게 우리들교회에 오게 되었다. 나에게 너무나도 잘해주었던, 그리고 이곳까지 오게해주고 우리 가족을 다시 합치게 해준 오빠에게 너무 고맙고.(내 생일 다음날 오빠가 발견된건 오빠의 선물이었던 것 같다)하나님께 감사하다. 언젠가 천국에서 볼 우리 오빠. 보고싶다. 나도 이런데 부모님 마음은 오죽하실까. 이렇게 우리 가족이 천국소망가지고 하나님의 일하다가 쓰임받고 천국에가서 할머니와 오빠도 만나고 하나님 곁에 영원토록 있고 싶다. 김양재 목사님이 가르쳐주시는 말씀을 잘 붙들고 하나님께 진정으로 쓰임 받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