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다녔습니다. 저희 오빠는 뇌성마비 장애로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누워만 있었고, 말하지도 못하고 밥도 혼자 못 먹어서 항상 엄마는 오빠만 돌봤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어날 때부터 외로웠고 오빠가 장애인이란 이유로 엄마는 저를 잘 챙겨주지 못했습니다. 저는 친구들이 오빠 이야기를 할 때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너희 오빠는 어디 고등학교 다녀?’라고 물을 때마다 대답을 회피했습니다. 친구들은 우리 오빠가 장애인이라는 걸 알았을 때 동정의 눈으로 날 쳐다보곤 했고 저는 그게 싫어 항상 숨기려고만 했습니다. 그러나 오빠는 우리 가정에 천사 같은 존재였고 엄마가 교회를 다니게 된 이유도 오빠 때문이었습니다. 오빠로 인해 우리 가족이 교회를 접할 수 있었고 오빠는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통로였습니다.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웃는 모습이 정말 천사 같고, 엄마가 우울증 때문에 누워있을 때 아무것도 못 먹고 누워있는 오빠를 보면 불쌍하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제가 초등학생 때 사기를 당해 집이 경매로 날아갔고 그 일로 인해 우리는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가야만 했습니다. 그때부터 아빠는 자주 술을 드시고 저를 때리기도 했습니다. 그전부터 자주 싸우시던 부모님이었지만 이땐 거의 매일 싸우셨고, 한번은 엄마가 수면제를 들고 와 나한테 같이 죽자는 말도 했습니다. 엄마아빠가 이혼을 하려고 했을 때 저는 혼자 작은 방에 들어가 기도를 했고, 이혼하기 전날 주민등록증 두 개가 다 없어지는 일이 일어나 저는 그때 하나님이 계심을 확신했습니다.
엄마는 젊었을 때부터 우울증이 있으셨고, 오빠가 누워서 엄마를 힘들게 하거나 아빠랑 싸우셨을 때는 방문을 잠그고 하루 종일 방에서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학교를 빠지고 오빠를 돌봐야만 했습니다. 엄마는 한 달에 한 번씩 자주 그러셨고 그럴 때마다 저는 너무 힘들고 아빠가 미웠습니다. 모든 잘못은 아빠가 했고 아빠 때문에 엄마가 누워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아빠를 무시하곤 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아빠가 없어져버렸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악한 나의 죄를 보지 못했고 위선자같이 교회에서 인정만 받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사람의 인정으로 채워지는 것은 없었습니다. 중학교에 들어와서는 가정의 고난 이외에 다른 고난을 당해야 만했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로부터 배신을 당한 것입니다. 친구가 뒤에서 내 욕을 하고 있음에도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세상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가난하고, 공부도 못하고, 그렇다고 예쁘지도 않은, 아무것도 못하는 무력한 내가 싫었고 자살을 생각했던 적도 수백 번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엄마가 TV에서 우리들교회 김양재 목사님의 설교를 듣게 되셨습니다. 엄마가 교회를 옮기려 했을 때 저는 제가 인정받는 교회를 떠난다는 게 힘들었지만 엄마는 반강제적으로 우리들교회로 나를 데려왔고, 저는 가기 싫었던 우리들교회에서 내 죄를 봤습니다. 항상 무시했던 아빠가 불쌍히 여겨졌고, 수련회에서 엄마를 원망하고 오빠를 마음속으로 미워하는 내 죄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교회에 오고 난 뒤 무엇보다 엄마의 삶이 많이 변했습니다. 엄마는 우리들교회 오기 전에도 믿음은 있었지만 아빠를 싫어하는 마음이 가득해서 항상 저에게 아빠 욕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김양재 목사님 말씀을 듣고 적용하는 삶을 살려고 아빠에게 항상 잘 대했고 아빠도 엄마의 변화로 술을 거의 끊고 열심히 일을 하고 계십니다. 가끔 아빠엄마가 틀어지실 때도 있지만 이제는 목장 식구들과 목사님 말씀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전 열심히만 살려고 했고 그럴 때마다 열등감으로 무너져 살았지만 이제는 내 열심이 아닌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특히 목사님이 하신 말씀 중에 ‘당해낼 수 없는 손이 날 치더라도 당해낼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시면 견딜 수 있다’는 말씀이 많이 힘이 되었습니다. 아직도 우울증으로 무너지는 엄마를 볼 때마다 힘들지만 하나님은 나를 내버려두지 않으신다는 것을 믿어 견딜 수 있습니다. 힘들었던 제게 우리들 공동체를 허락해 주시고 숨 쉬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