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증 문
김드림
제가 3살 때 부모님께서 별거하시게 되셨습니다. 정확히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슬프고 혼란스럽고 절박했던 기분은 아직도 기억 속에 남아있습니다. 저는 그 이후로 아빠가 저를 버렸다는 인식이 박혀 버렸습니다. 저는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엄마도 날 버리면 정말 혼자가 되어 버린다고 생각해, 칭찬을 받기 위해 뭐든지 열심히 했습니다. 공부는 물론, 할 수 있는 건 다 했습니다. 또한 가끔 만나는 아빠에게도 착한 딸로 보이려고 아빠 마음에 들지 않을까봐 같이 살고 싶다고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빠가 여러 번 같이 여행을 가자고 하던 이야기를 믿고 기다렸지만 매번 약속을 어기던 아빠에게 혼자 상처받고는 아빠에게는 그런 말조차 꺼내지 못했습니다. 어릴 때는 그래도 아빠니까 괜찮다고 생각하고, 함께 살게 될 날을 기대하며, 손꼽아 기다리던 마음이 6학년이 되자 원망스러운 마음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나만 아빠가 없고, 평범한 애들처럼 엄마 아빠와 함께 살지 못해서 ‘내가 무슨 죄가 있길래,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책임지지 못할 거면서 왜 낳은 거냐?’며, 정말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에 살고 싶지 않아 자살 시도도 해보았지만, 하나님께선 절 죽게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원망하는 마음을 아빠에게 카톡으로 털어놨습니다. 그 이후로 중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연락이 끊겼습니다.
내가 원망하는 말을 말했기 때문에 아빠가 연락을 끊은 거라는 생각이 들어 후회도 많이 했습니다. 약 3년간 아빠가 없다고 생각하며 지내다가 이번에 우리들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우리들 교회에 처음 송구영신 예배와 청소년부에 오자마자 간 수련회에서 들은 말씀과 큐티 할 때마다 하나님께선 제게 ‘회개하라’ 혹은 ‘너는 죄인이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바른 생활 어린이인 척하며 모범생처럼 살아왔습니다. 그러면서 자만심에 빠져, 언제부터인지, 제 마음 속에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내가 적어도 저 애보단 낫지’ 라는 기본적인 생각이 깔려 있었고, 나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을 만나면 제3자에게 그 사람보다 인정받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 저를 예배와 큐티를 통해 처음으로 진심으로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목사님과 선생님의 강요로 하는 회개가 아닌, 하는 척만 하는 회개도 아닌, 제 죄를 처음 인정한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큐티를 꾸준히 하는 것도 아니고 기도를 많이 하지도 않았습니다. 제 상처를 건드리면 아플 것을 알기에 일부러 피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5월 2일 사사기 15장 18절부터 19절 말씀에 ‘삼손이 심히 목이 말라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께서 종의 손을 통하여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지겠나이다 하니 하나님이 레히에서 한 우묵한 곳을 터뜨리시니 거기서 물이 솟아나오는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 그러므로 그 샘 이름을 엔학고레라 불렀으며 그 샘이 오늘까지 레히에 있더라’ 라는 말씀을 읽고, 강한 척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연약한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고통을 느끼고, 갈증을 느끼니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서야 제가 아프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상처를 치유 받길 원했습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서 연약함을 인정하고 고백하고 회개하자, 하나님께선 제가 꽁꽁 숨겨두고, 방치해뒀던 상처를 치료해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멀쩡하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이 무색하게, 마음속에 박혀 있는 칼을 빼는 데는 정말 아팠습니다. 맨 처음 느낀 감정은 억울함 이었습니다. 난 열심히 노력했는데, 매일 하루하루가 힘들었는데, 제게 돌아오는 인정과 칭찬은 별로 없었습니다. 제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던 엄마는 제게 쓸데없는 칭찬은 해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인정을 갈구하던 마음 때문에 생긴 억울함을 제 입으로 이 마음을 토해내게 해 주셨습니다.
두 번째로 느낀 감정은 기대와 배신감 이었습니다. 갑자기 3년 동안 캄보디아에 계시던 아빠가 한국에 왔고 연락이 되어 5월 24일에 만나기로 했습니다. 연락을 받은 제 마음은 기대 반 걱정 반이었습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만나는 아빠라는 생각에 기대가 되었지만, 6학년에 했던 말들 때문에 아빠가 속상해 있거나 화나있었을 까봐 한 편으로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엔 정리를 하러 왔으며, 캄보디아에서 여자가 생겼다는 말을 듣는 순간, 정말 기대감이 배신감으로 뚝 떨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아빠를 만났을 때 6학년 때처럼 화가 나서 뱉은 말이 아닌 차분히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참 신기하게도 아빠의 ‘미안하다’라는 한 마디에 아빠가 용서가 되었습니다. 그 다음날에도 만나기로 했지만, 전 먼저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아팠던 시간에 비해 미안하다는 한 마디에 아빠를 용서하는 제 자신이 참 밉고, 아직은 아빠를 더욱 미워하고 싶은 마음에 연락을 하지 않고 피했습니다. 엄마가 불쌍하게 느껴져서 울었더니, 엄마가 예쁜 딸이랑 살아보지 못한 아빠가 불쌍하고, 교회를 다니고 다른 사람 보기에 좋은 일을 하지만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이 살아가는 아빠가 더 불쌍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아빠가 조금은 불쌍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저는 육체적인 아빠로부터 상처를 많이 받았고, 많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제 상처를 치유해 주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 제 상처를 치유해 주시고, 저의 아버지가 되어주세요.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