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회를 마치고 차에 오르면서,
하나님이 이번에는 정말 내가 제대로 은혜받게 하시려고 작정하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수련회는 다른 수련회와는 달리 편안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말씀과 거의 동시에 적용을 할 수 있을 만한 핍박이 따랐다는 점에서 달랐던 것이다.
어려움은 수련회 출발일 아침부터 시작되었다.
그동안 고3이라는 이유로, 담당 선생님께는 수련회 참석 여부에 대해 계속 모르겠어요 라고만 대답하며 사실은 안 갈 작정을 하고 있었고 엄마도 그렇게 알고 계셨는데, 수련회 바로 전날 조 편성지를 받아보며, 하나님이 나를 일부러 가게 하려고 하시는구나! 하는 확신과 동시에 엄마에게 어떻게 말해야 좋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선생님, 저, 수련회... 못 가겠어요.
목장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학원이 너무 많아서 손실이 크다는 이유로 그렇다 하니, 선생님은 기도해주시면서, 수련회에 참석하지 않으면 좋은 대학에는 갈 수 있을지 몰라도, 참석하면 너에게 믿음이 생겨서 더욱 더 담대하게 맞설 수 있다고 하셨다.
조 편성표를 보니, 조장은 고3인 나, 그리고 교회에 온 지 얼마 되지 않는, 그러나 나와 많이 친해진 고난 많은 친구 선혜, 그리고, .......현호가 있었다.
선혜와 같은 조가 된 것에 대해서는 기쁨이 앞섰지만, 조에 현호가 있는 것을 보니, 사실은 가슴이 철렁했다.
어떡하지? 그냥 가지 말까? 하는 생각도 여러 번 들었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그 때만큼은 나의 믿음을 굳건케 하셨기에, 이것도 내게 맡겨 주신 사명이다 하는 생각이 들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서 수련회에 가겠다고 말씀드렸었다.
수련회 날 아침.
동생은 친구들과 같이 간다고 아침 일찍부터 집을 나서고, 나는 세 개에 걸쳐 나눠 진 짐을 바라보며, 내심 엄마가 차로 태워다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엄마는 아침부터 좀 언짢은 얼굴로, 너 혼자 가. 라는 말만 계속 하셨다.
아침마다 학원 갈 때는 잘도 태워다주면서, 좀 태워다 주면 안 되겠냐고 말했더니,
엄마는 대뜸, 나는 너 수련회 가는 거 별로 안 좋거든? 하고 소리쳤다.
순간 나도 화가 나서, 현관 문을 아주 세게 쾅 닫고 집을 나섰고, 지하철을 타고 나서는 엄마에게, 도대체 목자라는 사람이 수련회도 못 가게 하느냐는 식으로 심하게 문자를 보냈다.
엄마가 나의 수련회 참석을 싫어하는 이유는, 내가 체면 때문에 간다는 것이었다.
물론 나의 부족한 전달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엄마는 내가 단지 조장이기 때문에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괜히 끌려 간다고 생각하고 계셨던 것이다.
솔직히 나도 고3인데다 3일동안 빠지는 종합반과 미술학원을 생각하니 속이 쓰릴 정도로 안타까웠지만, 막상 결정하고 나니 편안했기에 엄마도 당연히 기뻐하리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그렇게 엉망인 기분으로 교회에 도착, 양수리 수양관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수련회 첫 집회에서 설교 말씀을 해 주신 김여호수아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첫 순간부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 중 가장 나에게 직접적으로, 강렬하게 와 닿았던 것은 나의 부정적인 부분의 발견이었다. 고3에 대한 입시 스트레스로 인해 어느 새 말 끝마다 부정적인 어투가 붙고 사소한 일에도 동생에게 욕지거리를 했던 나의 모습이, 기도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너무나 부끄럽게 느껴졌고, 내 입술에 손을 대고 안수 기도를 할 때는 까닭 모를 은혜로 눈에서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나왔다. 그렇게 한참을 기도하고 나서 은혜 받은 첫 집회. 그러나, 그렇게 은혜 받은 나를 하나님이 바로 시험하시는 사건이 일어났다.
저기요, 4명씩 줄 서라고 하는데 우리 4명이거든요? 혼자니까 뒤로 좀 가세요.
저녁을 먹고 나서 숙소에 갔는데 친구들이 아무도 없어 혼자 저녁 집회에 들어가려고 본당에서 줄을 서 있는데, 어느 새 내 옆에 있던 3명의 사람들은 어디론지 가 버리고 나 혼자만 덩그마니 서 있을 때, 뒤에서 좀 불량스럽게 보이는 4명의 여자애들이 끼어들면서 나에게 한 말이었다.
나는 좀 어이가 없었다. 뒤로 좀 가시면 안돼요? 의 청유형도 아니고, 끝에 붙인 요
자만 빼면 완전히 명령형이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 제가 먼저 왔는데요. 라고 말했다.
근데, 어디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ㅈㄹ이야?
그들 중의 한 명이 갑자기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어둠 속이라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는 내가 불리한 상황에 놓였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 욕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고, 여기도 원래 네 줄이었는데요, 3명이 어디 가버렸거든요? 나도 지지 않으려고 한 마디 던지자, 또 다른 아이가 썩소를 지으면서 하는 말.
그럼 가서 데리고 오세요. 근데 진짜 눈ㄲ 동그랗게 뜨고 말할래? 수련회 와서 뭐 하는 짓이야?
이젠 적반하장까지.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나도 뭐라고 말하고 싶었다. 솔직히, 이런 상황이라면 한 성질 하는 나도 지지 않을 자신 있었다. 다만, 수련회에 온 상황이 아니라면.
그 순간, 첫 집회에서 듣고 기도했던, 내 입술에서 부정적인 언어가 나오지 않게 하라 는 말씀이 생각났다.
그래서 나는 말 없이 눈을 내리깔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자리를 양보한 것이다. 늦게 와서는 줄 맞출 생각은 않고 무작정 내게 비키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자리를 양보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안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욕을 듣고도 대응하지 않는 건 나에게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을 하자, 눈물을 삼킬 수 있었다. 내가 하나님의 방식대로 잘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갑자기 감사가 절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저녁 집회에 임하니 하나님의 은혜가 더 뜨겁게 다가왔다.
두 번째 날 집회 때는 당연히 은혜받았으므로 별 언급을 하지 않겠다. 다만 내 다리가, 한 쪽 종아리에만 알이 배겨서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비틀거리게 되고, 안 그래도 작은 목소리가 더 작아지고 쉬었다는 것만 보아도 얼마나 열정적으로 예배에 임했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날.
그 동안 받은 은혜를 시험해 보려고 하시는 하나님께서 또 내게 사건을 일으키셨다.
GO! 라는 제목의 김형민 목사님의 설교를 2층에서 듣고 있는데, 뒷좌석에 앉은 남자 애들 4명이 너무 시끄럽게 떠들었다. 내 옆의 옆에 앉아 계시는 선생님께서 조용히 하라고 몇 번 지적을 하셨는데도 그 때 뿐, 애들은 계속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설교 말씀을 자기들끼리 이상하게 해석해서 도저히 설교 말씀에 집중할 수가 없게 만들었다.
좀 시끄럽거든?
참다 못해 내가 한 마디 했다. 사실, 이것도 감정이 섞인 말이었으니 그들도 듣기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ㅆㅂ
아, 예.
여기까지는 대충 예상했던 반응이라 조용히 참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내 어려 보이는 얼굴 때문이었는지 애들은 전혀 듣지 않고 대답하자마자 또 바로 떠들었다.
알면 조용히 해야 하는 거 아냐?
내가 또 말했다. 나도 여기까지는 말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걸 깨달았다. 후회하는 순간, 옆에 있던 아림이가 그만 해. 하며 말렸다.
그래서, 화가 났지만 이를 악물고 조용히 참고 있었다.
애들은, 마침내, 이제는 나보고 들으라는 듯이 떠들기 시작했다.
책상을 쾅쾅 내리치고, 과자 껍질을 앞으로 자꾸 날렸다. 그리고 내 머리에 주먹질(바람이 느껴졌으므로)을 해대고, 이상한 노래 따위나 지어 대면서 초딩처럼 엄청 유치하게 굴기 시작했다.
나는 썩소를 지으면서, 이를 갈았다. 생각 같아서는 목이라도 졸라 버리고 싶었다. 이럴 때 내 얼굴이 삭아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 짜증났다. 하지만, 그렇게 꾹 참고 있다가 나는 마침내 결심했다. 용서해버리자, 하고.
마침 그 때 설교 말씀이 끝났다. 그리고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주여! 를 세 번 외치는데,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분노의 마음에서, 서서히 불쌍함의 마음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하나님께, 저들이 하나님을 잘 몰라서, 말씀에 사모함이 없어서 저런다고, 사단이 저들의 믿음 자라는 것을 방해해서 그런다고, 그러니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시고 내가 저 아이들을 진정으로 용서하게 해 달라고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했다.
기도가 끝나고 찬양을 하는데,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분노는 씻은 듯이 내려가고, 내가 저들을 용서했다는 것을 깨닫자 하나님이 자랑스럽고 든든하게 느껴졌다. 생전 처음으로 용서의 기쁨을 느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했다, 는 생각에 하나님의 존재가 더욱 가까이 내게 다가왔다.
원래 수련회 마지막 날은 별로 전과 같은 은혜가 임하시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해 왔는데, 마지막까지 이렇게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게 하시는 모습을 보며 나는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했다. 당연히, 하나님이 옳았다. 성령의 은혜는 첫째, 둘째 날에만 임하는 것이 아니라 셋째 날에도 임한다. 꼭 수련회 때만이 아니더라도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면 언제라도.
사실, 이번 수련회 때 내가 가장 집중적으로 놓고 기도한 것은 나의 불신이었다.
몇 달 전부터, 갑자기 기도를 하는데, 마음 속에서, 그런데, 하나님이 진짜 계셔? 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나에게 마귀가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 생각을 아무리 떨쳐버리려고 애써도 도저히 없어지지 않아서, 나는 다시 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별다를 바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중이었다.
큐티를 통해, 그것이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로만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간절히 기도했다. 그런데도, 불신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꽤 오래 사단은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련회를 통해 나는 이 사단을 마침내 물리쳤다. 하나님이 나를 해산의 고통으로 낳으시고 나를 친히 부르시고 내 이름을 불러 주시고,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던 내 고민을 들으시고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아셔서 움직여 이토록 은혜받게 하시는데 왜 하나님이 존재하시지 않는단 말인가! 이 사실이 가슴 깊이 새겨지자 불신은 어느 새 저 멀리 달아나고 없었다. 혼자서 아무리 떼어내려고 노력했던 불신의 귀신이 드디어 떠나간 것이다. 성령님의 힘으로!
마지막으로, 나와 함께 해 준 11조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나이가 가장 많아서 조장일 뿐이지, 사실상 믿음은 별로 크지 않은 내가 아이들을 잘 이끌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참 많다. 다른 조 아이들은 금세 친해져서 서로 게임도 하고 금방 잘 노는데, 나는 목소리도 작고 설득력도 별로 없어서 애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도 별로 대답이 없었다. 아마 용호 오..(빠가 아니라) 선생님이 안 계셨으면 서로 이름도 모른 채로 다시 헤어졌을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내 뒤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기에, 든든하다.
고3생활을 시작할 자신이 생겼다. 내 삶의 이유가 확실해졌고, 불신이 사라졌기에 뜻이 바로 세워졌다. 나의 목표를 위해 올 한 해를 하나님 안에서 보낼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조금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