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1학년 5반 교사 김창록입니다.
모태신앙인 저는 어렸을 적부터 선교사이신 아버지를 따라 선교활동을 다녔습니다. 하지만 내면은 생색으로 가득 찼었고 초등학교 5학년 땐 전국 수학 올림피아드 1등, 영재 육성 발탁, 전교회장을 하며 남들보다 뛰어나다는 교만에 빠져 속으로 남을 무시하는 겉만 착한 아이로 자라왔습니다. 하지만 6학년 때 찾아온 방황으로 어려서부터 담배와 술을 했고 중학교 때는 학교 폭력으로 강제전학을 당하는 사건을 겪었습니다.
이후 네팔에 계시는 아버지 친구분의 선교지에 가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전기와 물이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밝은 모습으로 예배와 찬양을 드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셨고, 저는 회개의 눈물을 흘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죄를 보게 하셨지만, 여전히 말씀이 들리지 않는 나병 걸린 게 하시 같은 저는 말씀이 아닌 성품과 자기 열심으로 그곳에서 섬겼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의사 선생님께서 할머니의 암이 발견되었고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저를 키워주신 할머님이셨기에, 저는 처음으로 울부짖는 기도했습니다. 기적같이 할머니 건강은 호전되셨고, 저는 응답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니 울며 기도했다는 것이 창피했고, 마음속에선 할머니는 나 덕분에 사신 거야.라고 하며 저의 마음은 교만과 생색으로 가득 찼습니다.
교회는 갔지만, 할머님의 건강이 회복되니 말씀을 멀리했고 기도로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습니다. 고3 시절, 네팔인 여자친구와 교제를 시작했는데, 부모님께서는 힌두교인 여자친구를 멀리하셨습니다. 저는 그런 부모님의 모습에 결혼하고 교회 데려가면 되는 것을, 왜 이렇게 싫어하시지? 선교사가 저래도 되는 건가?라며 부모님을 정죄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엔 저는 교회를 떠났고 음란 중독의 길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졸업 후 여자친구와 함께 미국에 가기 전 잠시 한국으로 왔을 때, 코로나가 발생했고 미국을 못 가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 혼자 있던 여자친구가 성폭행당하는 사건이 찾아왔고 죄책감과 트라우마로 폐인처럼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군대를 가게 되었고 휴가 중 어머니의 권유로 우리들교회를 처음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담임목사님의 설교 중 말씀이 들렸고, 저의 죄가 보이며 죄인임이 인정되었습니다. 처음엔 나눔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고, 잘 하지 못하는 저였지만 공동체에 붙어있기만 하라는 말씀을 듣고 조금씩 마음의 상처가 회복되었습니다.
그 후 아웃리치와 중등부를 성품과 자기 열심이 아닌, 은혜로 섬기게 되었고 공동체에 더욱 붙어 있을 수 있었습니다. 최근, 하나님께서 상속자라는 주제의 뮤지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는데, 나눔을 통해 가끔 하던 큐티를 매일 찾게 되었습니다. 삶 속의 고난이 축복임을 느껴주게 해주시고 평안이나이다라고 외칠 수 있는 제가 될 수 있길 기도 부탁드립니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게 나는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다.(요 1:20-23)라고 외친 것처럼 의를 내지 않고 겸손으로 나아가 은혜로 한 영혼 살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