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2 송유진입니다.
모태신앙으로 태어난 저는 집 주변에 있는 작은 교회에 다녔습니다. 어릴 때는 작은 손으로 열심히 기도와 찬양을 드리며 신앙심을 유지해 왔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성장하며 세상에 물들다 보니 기도보다는 스마트폰을 먼저 찾게 되며 점점 하나님과 멀어졌습니다.
소심한 성격으로 인해 못된 아이들의 괴롭힘의 대상이 되거나 친구들끼리의 사소한 장난에도 상처 받았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좋은 누나이자 딸로 자라길 바라며 저를 자주 다그치셨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저는 학교에서의 관계와 부모님께서 주시는 부담감이 더해져 삶을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집 베란다에서 뛰어 내리려고 했습니다.
떨어지기 위해 올라간 난간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에게 쓰는 돈이 줄어드니 동생은 좀 더 행복해지겠지? 신경 쓸 짐이 하나 줄어드니 부모님도 개운하시겠지? 어차피 우리 가족은 나보다 동생을 더 아끼니까 내 판단이 맞는 거겠지? 하며 눈물을 흘리는데, 방에 계시던 아버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저는 제가 죽고 나서 저를 원망할 가족들을 상상했습니다. 조금이나마 슬픔을 느낄 가족들과 죽어서도 귀찮게 한다고 말할 것 같은 가족들이 상상되었습니다. 그런 상상을 하니 죽고 나서가 더 두려워져 난간에서 내려왔습니다.
이 일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초등학교 고학년, 학교에서 실시한 정서 불안 테스트에서 자살 위험 수치가 높아 가게 된 위클래스에서 털어놓게 되었습니다. 조심스레 털어놓았던 얘기는 그대로 어머니에게 전해졌습니다. 어머니는 자책하시며 제가 바보 같다고 하셨습니다. 우울감이 지속된 저는 자해를 시작하게 되었고, 씻는 도중에 들어오신 어머니가 자해 상처를 보시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한참 눈물을 흘리시다가 저에게 몸을 소중히 여기기로 약속하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오래가지 못했고, 저는 꾸준히 몰래 자해를 했습니다.
그러다 정말 자해를 심하게 하고 혼자 약을 바르던 새벽에 깨어계신 어머니께서 그 상황을 보게 되셨습니다. 그 당시 어머니는 우리들 교회에 다닌 지 1년이 되셨었고, 저의 자해를 어머니의 잘못으로 짊어지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 기도 제목으로 공유하셨습니다. 그 주 담임목사님의 설교 말씀에는 손목을 17번 그은 딸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때에도 저는 자해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우울감이 끊이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거라며 합리화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를 따라 우리들교회에 나가고, 목장에 내 얘기를 하고, 말씀으로 삶의 방식을 바꾸다 보니 저의 자해가 죄라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없어 자해하게 되는 저의 모습이 안쓰럽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외에도 큐티를 하며 저의 죄를 하나하나 알아갈 수 있었습니다. 마음 한편에 있던 자기 연민도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는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들교회에서 나눔을 하며 마음이 건강해지신 어머니는 저의 우울함과 부정적인 성격을 받아들이실 수 있게 되셨고, 기댈 곳이 없던 저는 어머니에게 저의 속마음을 얘기하며 우울함에서 조금씩 빠져나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눈치 보며 무서워했던 어머니는 이제 서로 의지할 수 있는 믿음의 친구가 되었고, 7년 동안 교회에 나오지 않으셨던 아버지는 양육도 받고 추석 예배도 이끌어 가시는 믿음의 가장이 되셨습니다. 저의 우울함은 답이 없다며 단정 짓던 저는 저의 우울함을 해결해야 할 죄로 받아들이고 심리 상담도 받게 되었습니다.
청색 끈을 매달아 주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큐티 말씀처럼 저도 제자 훈련을 받으며 우울감이 아닌 말씀의 기쁨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희 가족이 말씀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우울함이 찾아왔을 때 커터칼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게 기도해 주세요.
말씀으로 다시 살아나게 해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항상 진심으로 걱정과 기도해 주시는 신기정 선생님 감사합니다. 학생들을 위해 고생하시는 스태프분들,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솔직한 내용으로 말씀이 귀에 들리게 해주시는 최도원 전도사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