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식 요리사였던 아버지는 출장가신 강원도 기숙사에서 동료3분과 함께 주무시다가 연탄가스 중독으로 3분다 유명을 달리하셨습니다. 철없던 그때 드는 생각은 아 이제 무서운 아빠가 안계시니 성적표가지고 오빠랑 비교하지 않아서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러나 버팀목 같았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니 너무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매일 매일 저녁이 되면 울면서 나도 빨리 하늘에 계신 아빠한테 가야겠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염세주의로 빠져서 죽음을 동경한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제가 기댈 공동체가 없었기 때문에 나의 힘듦을 누구한테도 털어 놓을데가 없었기 때문에 속으로는 늘 외롭다가 주제가 였습니다. 엄마는 일하시느라 얼굴을 보기가 힘들어서 말할 기회가 별로 없었고 오빠나 남동생은 그런 말을 하기엔 너무나 멀고먼 이방인 같은 존재들이었습니다. 동네 사람들한테 아빠없는 자식이라는 말 듣기 싫어서 가는 사람 오는 사람 볼 때 마다 인사를 그렇게 열심히 하니 나 스스로도 착하다는 착각에 빠져서 착하다는 말을 들을때마다 뿌듯했습니다. 착하지 않으면 안되고 남에게 기분나쁜 이야기도 해서는 안되고 어디서나 나는 나의 숨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남에게 민폐끼치지 않으며 조용히 아주 문제 없듯이 살아야 남들이 볼 때 아빠 없이도 살아도 잘 사는구나 라는 것을 보여 주기위해 무진장 용을 쓰며 살았습니다.
중,고등학교 생활기록부에도 성격란에 밝고 명랑 이라는 네글자가 6년 내내 똑같이 써있는 것을 보면 내가 참 학교생활을 잘 했다는 뿌듯함 보다는 뭔가 허전하고 공허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내 마음속엔 밝고 명랑만 있는건 아닌데 하며,,,속으로는 뭔가 알수 없는 감정들이 뒤섞여 있는 저를 직면하곤 했습니다. 울교회와서 담임 목사님의 수많은 어록을 들으면서 저에겐 많은 귀감이 된것도 사실이지만 제일 기억나는 말씀은 정정환 목사님의 설교말씀 중에 캔디라는 만화영화 주제곡을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 만화영화 노랫말중에 '괴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울어 웃으면서 다려보자 푸른들을' 하는 가사를 말씀하시며 캔디가 참 많이 아프다 라고 하신 말씀이 저의 폐부를 찌르는 것 같았습니다. 아 내가 캔디처럼 사는게 건강한게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캔디 보다 내가 더 아픈사람 이었다는 것을 우리들교회 와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 감정을 솔직하며 표현하고 살아본 적이 별로 없다보니 좋은게 좋은거라고 항상 긍정적으로 상대방을 무조건적으로 이해하려 하다보니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때론 웃음으로, 때론 말장난으로 승화시켜 버리는 저의 이중적인 자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런 행동이 저를 힘들게 할때가 많았습니다. 나도 속도 남도 속이는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오는 깊은 우울감 그 자체가 저의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58년동안 베데스다 연못에 누워있던 제게 하나님은 말씀으로 찾아오셨습니다. 하루아침에 에스겔에게 네 눈에 기뻐하는 아내를 데려가겠다고 하시면서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슬퍼하거나 울지말라 명령하신 말씀처럼 친정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더 이상 외로워 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을 체휼하고 위로하는 사명으로 나아가라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걸 오늘 중등부 간증으로 인해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담임 목사님께서 외로워 하는 사람이 교만한 자라고 하시며 이사람은 이래서 못 만나고 저사람은 저래서 못 만난다는 그 생각이 교만한 거라고 말씀해 주시니 스스로 괜찮은 죄인인척 하며 나의 완벽함속에 숨어있는 열등한 교만함이 나의 뿌리깊은 나병인것도 알게 하셨습니다.
이젠 하나님이 나의 구원자이시며 방패이신 주님을 신뢰하며 혼자가 아니가 항상 제 옆에는 피를 나눈 값진 공동체가 있음을 상기하며 주신 사명 잘 감당하길 원합니다. 하나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