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저희 아빠께서는 오랜 투병 생활을 하시다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자연히 집안의 가장은 엄마가 되셨고 집안일은 저의 몫이 되었습니다. 엄마께서는 돈을 버시려고 사업을 하셨지만 실패하여서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고 엄마의 짜증도 많아졌습니다. 그 때마다 그 짜증은 집에 있는 제가 다 들어야 했고 엄마와 자주 마찰이 생겼습니다. 그 때부터 엄마를 미워하기 시작했습니다. 농구선수였던 오빠가 휘문고로 스카웃이 되어서 저희 가족은 강남으로 이사를 가야만 했습니다. 집안이 화목하지 않아도 친구들과 노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고 친구들이 우상이었던 저에게 강남으로 이사를 간다는 것은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습니다. 원치 않은 전학을 간 학교에서 저는 적응을 하지 못하였고 친구도 사귀지 못했습니다 .이 모든게 다 오빠탓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힘들었던 저는 웃지도 않았고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화가 나지 않았어도 너 왜 화났니라고 물어봤었습니다. 그런 제가 못마땅하셨던 엄마는 오빠와 함께 말도 안하고 웃지도 않는다며 이상한 애라고 제 앞에서 험담을 하고 때리기도 하였습니다. 매일매일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엄마와 오빠에 대한 분노와 미움은 더 커져만 갔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죽여버리겠다며 칼을 휘드르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건들이 와도 변함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날 엄마의 무관심함에 지친 저는 엄마에게 밥도 안 해주는 엄마가 엄마냐며 미안하시다는 장문의 문자 메시지로 엄마께 대들고 집을 나왔습니다. 그 때 엄마께서는 엄마 목장의 목자님께 처방을 받으시고 저를 집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그 후 엄마의 말이나 행동에 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시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언제나 엄마 오빠탓만 하며 미움과 분노로 살았던 저는 조금씩 말씀이 들리고 큐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되었다 함이 없는 저에게 이번 수련회 김형민 목사님 말씀이 제 말씀이었습니다. 용서하지 못해서 늘 우울했고 힘든 얼굴로 살았음을 알게 되었고 용서 못하는 분노로 평생 힘들게 살뻔 했습니다. 가장 심각한 병이 용서 못하는 병이라고 하셨는데 내가 할 수 없지만 말씀이기에 믿음으로 용서하기로 마음먹었는데 내 마음이 편해지고 기쁘게 됨을 알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젠 그 누구보다 나를 위해서 용서하며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