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저희집에 첫째로 태어났을 때 아빠는 저에게 별로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그리고 3년후 남동생이 태어 났을때도 여전히 저는 아빠의 관심 밖이었고 아빠의 관심은 오로지 일뿐이었습니다. 아빠는 오랫동안 해오던 사업을 실패하셔서 망하는 사건을 겪으시면서 많이 힘들어 하셨습니다. 그런 아빠를 보면서 엄마는 많이 힘들어 하셨고 아빠의 사업 실패가 우리가족에게 온 첫 번째 고난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빠는 무뚝뚝하고 냉정하며 자기 표현을 잘 하지 못하시는데 반대로 엄마는 너무 감정적이라 감정 기복도 심했고 눈물도 많았습니다. 엄마는 아빠에게 기대고 싶은데 아빠가 그것을 받아주지 못하자 엄마는 자식들에게 공부만 잘 하라고 했고 저희들의 학업에 엄마의 관심을 모두 쏟았습니다. 그러나 저희들도 엄마의 공부에 대한 기대에 차지 못했고 저는 공부보다 음악에 관심이 많아서 피아노를 열심히 배웠습니다. 교회에서 반주를 하면서 인정 받았지만 예배와 말씀 보다는 인정받기 위해 열심히 반주를 했던것같습니다. 공부로 인정받지 못했던 저는 피아노를 열심히 쳐서 교회에서 반주자로 인정받기 만을 원했고 반주에만 치우치게 되면서 공부는 뒤로 해서 그 결과로 시험점수가 나오면 엄마한테 항상 매를 맞았고 심지어는 제 생일날 시험점수가 나와서 생일파티도 못하고 하루종일 혼났던 기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부모님은 원래부터 사이가 좋지는 않았었는데 제가 중학교2학년때 거의 1년 동안 심한 냉전 상태이셨습니다. 저도 그때 가장 절정으로 놀았었고 역시 공부도 안 했었습니다. 엄마는 어느날 저에게 만약 엄마가 죽으면 어떻게 살 거냐고 물어보셨습니다.
그때 저는 그런 엄마가 너무나 불안했고 항상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엄마는 밤에 남동생이나 아빠와 싸우면 집앞 하천에 나가서 바람을 쐬다 진정이 되면 들어오셨고 제일 만만한 저에게 거의 모든 불평을 하소연 했습니다. 또 부모님이 밤에 싸울땐 자는척 하면서 그 얘기를 다 들었고 이혼 얘기도 많이 나왔었는데 저는 만약 부모님이 이혼하면 누구와 살까를 고민했습니다. 이렇게 제일 민감한 나이에 부모님이 1년동안이나 냉전상태여서 저는 갈피를 잡지 못하며 친구들과 놀기만 했고 남동생 역시 힘들었을 거라 생각이 됩니다. 그러다보니 중학교때는 아예 공부를 멀리하게 되면서 하위권에서 놀았으며 성적표가 나올땐 침울해하며 엄마에게 주었고 항상 1시간 넘게 잔소리를 들어야 했고 일주일 정도는 엄마 눈치를 봐야 했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3학년때 조금씩 정신을 차리면서 과외를 시작하게 됐는데 선생님과 잘 맞아서 성적이 상위권으로 잠깐 올랐었습니다. 그때 아빠는 원래 없던 관심을 저에게 조금씩 돌렸고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잘 한다며 사람들에게 자랑을 했습니다. 그땐 속으로 아빠를 욕했습니다.
그러던중 사건이 터졌습니다. 6학년이었던 남동생이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첫 가출을 시작으로 세상적인 비행소년, 문제아가 되었습니다. 저희 가족은 갑자기 날아온 이 사건으로 하루하루를 지옥같이 살아야 했습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 중에 엄마가 우리들 교회 김양재 목사님을 알게 되면서 18년동안이나 다녔던 교회를 떠나 우리들 교회로 오게 되었는데 저는 처음에 교회를 왜 옮겨야 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저 또한 우리들 교회로 오게 되었고 처음엔 그동안 다녔던 교회와 너무 달라 적응하지 못했고 찌질한 우리집 얘기를 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점차 적응하며 내 고난을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남동생을 위해 기도도 했지만 여전히 남동생은 선배들과 연류돼 오토바이, 절도, 무면허, 삥뜯기등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켜 엄마는 경찰서를 수시로 가야만 했고 남동생이 엄마에게 하는 욕들도 고스란히 다 들어야 했습니다. 또 밤마다 남동생을 찾아 학교 앞 분식집 선배들, 친구들을 찾아 배외 하셨고 그런 엄마를 보면서 아빠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셨고 가끔은 몸싸움 까지 해야 했습니다. 저는 그런 동생과 집에 있는게 너무나도 싫었고 남동생이 없었으면 하고 남동생을 벌레보듯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남동생이 선배들과 관련된 사건이 너무 많아 가정법원에 가서 재판을 받던중 판사의 판결로 보호관찰2년, 야간외출금지6개월을 판정받았고 안양분류심사원에 3주간 들어 가야만 했습니다. 엄마는 15분면회를 위해서 매일매일 동생을 만나러 갔고 동생도 엄마를 보면서 마음의 문을 조금은 열게 된 것 같았습니다. 김형민 목사님께서 심방도 해주셨고 저도 2번 면회를 갔었는데 그곳에서 동생을 본 순간 울컥해 눈물이 날 뻔 했습니다. 정말 영화에서 보던 면회소 같았습니다. 내 동생이 이런 곳에 있게 될 줄 상상도 못 했지만 현실을 인정하면서 우리 가족의 소중함을 느꼈던 시간이었고 동생도 그곳에서 있는동안 많이 반성을 하는 듯 했고 잘 하겠다고 다짐 했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친구들과 세상을 쫓아서 놀다가 중학교1학년때 유급을 당해야 했고 학교만은 포기할수 없었던 부모님도 아들이 유급을 당해서 많이 힘들어 하셨지만 저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에 힘들어하지는 않았습니다. 남동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방황하고 있지만 예전에 비해서는 조금씩 변하고 있고 저도 남동생을 더 감싸주며 사랑하고 남동생의 친구들까지도 잘 챙겨주고 다른 또래 아이들과 똑같이 보고 아이들에 대한 가치관이 변하게 되었습니다. 남동생과 저의 변화가 엄마의 변화된 모습만큼 변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또 항상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그랬던 엄마가 우리들 교회에 다니게 되면서 목사님 말씀을 듣고 자신의 모습을 깨달아 가면서 이제는 예배와 큐티가 우선이라고 말씀 하시고 공부에 대한 압박도 하지 않는 엄마를 보면서 말씀의 능력으로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엄마가 변하셔서 조금 놀랐습니다. 그리고 김양재 목사님의 말씀대로 보석인 남동생으로 인해 믿음이 없는 저희 아빠까지 우리들교회에 등록하게 되었고 매주 나오는건 아니지만 쉬는날에는 교회에도 나오고 가끔 부부목장 예배를 드리는 선물도 주셨습니다. 또 무뚝뚝하고 잘 표현하지 않는 아빠의 성격을 아빠도 깨닫고 변하려고 많이 노력을 하시고 우리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려고도 노력하시는게 저도 보입니다. 그래서 저도 이제는 매일매일 큐티를 보려고 노력하고 제 자신을 돌아보면서 저의 문제를 보고 고칠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 정말 우리들교회에 오게 된 것이 지금까지 살면서 제일 잘 한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우리들교회를 알지 못했다면 저희 가정이 어떻게 되었을까 정말 끔찍합니다. 목사님께서 고난이 축복이라고 하셨는데 정말 저희 가정을 택하셔서 고난을 주시고 이 고난을 통해 저희 가정이 회복될수 있어서 전 하나님께서 주신 이 고난이 정말 축복이라고 느껴집니다. 저희가정에 고난을 주신 하나님께 정말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