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3-8 남자반의 염혜찬입니다.
저는 사실 특별한 간증거리는 없는데요. 그냥 제가 살아온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여기 앉아있는 여러분들 중에 부모님 돈 훔쳐 본 적 있는 친구들 있나요?
저는 초등학교 때 종종 부모님 돈을 훔치곤 했습니다. 제가 어릴 땐 저희 집이 가난해서,
자주 이사를 갔어요. 그래서 전학도 자주 갔는데, 그럴 때마다 가난한 저희 집이 싫었습니다.
가난한 부모님도 싫었고, 가난하게 사는 저도 싫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품고 있던 어느 날,
아버지 옷 주머니에서 삐져나온 지폐 한 장을 보았습니다.
그 돈을 보는 순간 저는 그 돈을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이 떠올랐고, 조금 망설이다가 저질러 버렸습니다. 그 범행이 부모님께 걸렸을까요? 안 걸렸을까요? 물론 안 걸렸습니다.
그러니 두 번째 범행을 했고, 그 이후에도 계속 부모님 주머니나 지갑을 손댔죠.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제 범행은 곧 발각되어, 혼나기도 많이 혼났고, 맞기도 많이 맞았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는, 도둑놈 자식 필요 없다며 어머니가 밤에 산에 끌고 가서,
전봇대에 묶어 놓고 사라지신적도 있고, 4학년 땐가,
5학년 때는 엄청 맞은 다음에 홀딱 벗겨져서 집 밖으로 벌건 대낮에 쫓겨난 적도 있습니다.
만약 제가 그 때 독하게 마음먹고 당당히 거리로 나섰다면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지도 않겠지만,
그만한 용기가 없던 저는 그때 살고 있던 주택의 지하로 숨어 들어가 훗날을 도모하기로 했습니다.
시커먼 지하에서 서럽게 울며 저는 다짐했습니다. ‘이제 여기가 내 집이다.
이제부터 나는 혼자니까 가족이고 뭐고 다 필요 없다. 밤에 몰래 집에 들어가서 밥 훔쳐 먹고,
옷도 훔쳐오자!’ 이렇게 뻔한 초딩의 생각을 꿰뚫어보신 어머니가 지하실로 찾아오셔서,
저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때 죄에 대한 용서를 받은 다음부터,
정신을 차리고 그 이후로는 남의 돈은 전혀 손 안대고 살게 되었는데요.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보다는 벌거벗겨져 쫓겨난 게 어린마음에 큰 충격이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는 고난이라고 할 만한 사건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순종하면서 살았으니까요.
학교에서도 적당히 모범생처럼 사니까, 선생님들도, 다른 아이들도 적당히 잘 대해주고,
공부도 적당히 하다 보니, 적당한 성적으로 적당한 대학에 붙어서 적당히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학교생활을 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적당히’라는 단어를 상당히 많이 썼는데, 사실 이유가 있습니다.
이렇게 적당주의가 몸에 배다 보니, 문제도 많이 생겼는데, 우선 첫 번째로 게으름입니다.
적당히 공부하는 게 습관이 되어서 언제나 시험 하루 이틀 전에 공부를 하고, 그렇게 얻은 적당한 성적에 만족하다 보니, 학교에서 배운 것 외의 어떠한 능력도 가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가 사람들과의 관계입니다. 사람들과도 상처주고, 상처받지 않을 만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내다 보니, 친하다고 할 만한 친구들은 둘 셋 밖에 남지 않았고, 지금도 사람을 사귀는 것, 그러니까 제 마음을 여는 것이 너무나 어렵습니다. 이 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지만 생략하고, 어쨌든, 이런 저를 지켜보시던 하나님께서는 드디어 제게 적당한 고난을 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첫 번째 고난은 제대 후에 찾아왔습니다. 제가 군대에 가 있는 동안, 저희 부모님은 거의 별거에 가까운 삶을 사셨습니다. 울산에 있는 집을 비워놓을 수 없으시다며, 어머니께서 그 곳에서 장사를 하셔서 그렇게 되었는데, 이런 생활이 길어지다 보니, 두 분 관계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집안 분위기가 좋지만은 않았기에, 꼭 이 사건이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이 사건 때문에 관계가 더 나빠진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여자 분과 관계된 사건이 발생해서, 거의 이혼직전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 사건의 진위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 때는 거의 매일, 부모님 싸우는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한 두달이 지나다가, 제가 계속 이러면 가족 다 버리고, 어디 가서 혼자 살다가 죽을 거라고 부모님께 협박 아닌 협박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시고, 부모님께서는 이혼이라는 선택만큼은 포기하시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 갑자기 부모님의 관계가 좋아지진 않았지만, 조금씩 개선되어 지금은 잘 지내고 계십니다.
두 번째 고난은 단기 선교를 다녀온 직후에 발생했습니다. 부산에서 다니던 교회에서 티벳으로 단기 선교를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도 느끼고, 좋은 사람들과 좋은 추억도 많이 만들고 귀국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부터 몸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에서부터 시작된 기침이 한국에 돌아와서까지도 계속 된 것입니다. 잠시 괜찮아 지다가도 다시 심해지는 기침과 가슴의 통증은 결국 결핵성 늑막염이라는 병으로 판명되었고, 저는 졸업을 얼마 남기지 않고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폐결핵이나, 다른 위험한 부위의 결핵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면 다행인 사건이었습니다.
세 번째 고난은 졸업하고 나서 일어났습니다. 졸업 후에 무작정 서울로 올라온 저는 잠시 NGO 단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하나님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고 싶다는 생각에 1년여를 원고를 쓰며 보냈는데 그 원고가 완전히 무시당하게 되었습니다. 제 나름대로 하나님의 일을 한다며 한 일이라서,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고, 원고를 알아주지 않는 사람들도 원망했는데, 어쨌든 다른 방법이 없던 저는 취업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이 게을러서 자기 개발에 손 놓고 있던 저는 1년이라는 시간까지 허비하게 되자, 취업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능력 없는 사람을 쓰는 회사는 없으니까요. 그렇게 극도로 우울한 나날을 보내다가, 며칠 지나지 않아 저는 한 회사에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제 마음에는 들지 않았지만, 운전과 성실 외에는 별다른 것을 요구하지 않았기에 생활비가 급한 저는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회사는 매일 매일이 극도의 스트레스를 느끼게 해서 처음부터 정말 힘들었지만,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겠기에 열심히 일했고, 금세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제가 견딜만한 수준의 고난을 주시고, 또 그것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을 감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감사는커녕 변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적당주의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먹고 살기에 바빠서 하나님은 멀리한 채, 하루하루 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제게 하나님께서는 예전 보다 조금 더 큰 고난을 주셨습니다. 얼마 전에 제가 갑상선 암 진단을 받았는데요, 어떻게 생각하면 여전히 제가 견딜만한 고난일 수도 있지만, 수술을 하기 전인 지금은 솔직히 두려운 상태입니다. 이 고난을 하나님이 주신 고난으로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그동안 허투루 살았던 것을 회개하고, 제가 짓던 모든 죄악들에서 돌이켜 다시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입원해서 내일 수술하게 되는데, 수술 잘 되도록 기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