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났습니다. 초등학생 땐 교회를 다니며 구원의 확신이 있었지만, 중학교에 올라오면서 저의 방황은 시작되었습니다. 부모님께선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이혼하셨지만, 그 후에도 종종 만나서 싸우시는 모습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제가 꼬마였을 때부터 부모님께서 다투시는 일들이 아직 흐릿하게 기억 속에 남는데, 커가면서 서로 칼을 들면서까지 싸우시는 걸 본 저는 거의 맨날 그러시는 부모님을 보며 이제 더 이상 어떻게 싸우시든지 놀라지 않았습니다. 낮에 싸우는 건 기본이었고, 새벽에도 자주 싸우셔서 자다가 깜짝깜짝 놀라서 깰 때가 많아 잠귀가 밝아졌습니다.
그러던 중 친할머니께서 엄마를 그 집에서 나가라고 하셔서 엄마는 집에서 쫓겨나셨고 할머니와, 고모가 저를 잘 키워주시겠다고 하시면서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부터 엄마를 내쫓은 할머니가 너무 미워서 집에 들어가기 싫어져 친구 집에서 잔 적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중1이 되었을 때 할머니가 나가시고 아빠와 함께 살면서 아빠는 새엄마라며 어떤 여자를 데려와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론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였지만 그분과도 자주 싸우시는 모습과 일도 안 나가시고 집에서 컴퓨터만 하시는 아빠와 함께 살려니 집에 있는 것이 짜증나고 싫었습니다.
그래서 친구 집에서 생활하는 날이 늘었으며 방학 땐 거의 살다시피 했습니다. 집에 들어가지 않아도 전화 한번 하시고 마는 아빠셔서 차라리 더 좋다고 생각하며, 집에 아무도 없을 때만 잠깐 들러서 옷만 챙겨 나왔고 그러한 생활은 반복되었습니다. 아빠와 엄마와 싸우시고, 엄마와 한번 아빠와 한번 이렇게 번갈아가면서 살았는데 아빠는 주일날 한번 만나는 엄마와도 못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엄마는 재판을 하셔서 양육권을 빼앗았고 나는 다시 엄마와 살게 되었습니다.
엄마와 살게 되어 너무 좋았지만 그때도 새벽 늦게 들어오는 생활은 계속 되었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방황했습니다. 그러다가 엄마한테 전화가 와도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이 좋았고 재밌었고 집에 있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여 학원도 가지 않고 놀았습니다. 엄마와 살면서도 그런 생활이 반복되자 엄마는 날 외국으로 보내셨습니다. 외국에 간 나는 친구들, 아끼고 사랑했던 주변 사람들과 헤어짐으로 맘 잡고 열심히 공부하려고 했지만 맘처럼 쉽지 않았고 거기에서 같이 생활했던 이모와도 항상 트러블이 생겼습니다. 엄마와 살 때도 항상 백프로 만족하지 못한 삶을 살았지만 친 이모도 아닌 이모와 함께 사니 답답했습니다. 그런 생각이 매일 들어 집에 들어가기 싫어 한국 친구들과 어울리며 놀다가 또 한 번의 가출을 했습니다. 그런 저를 엄마가 다시 한국으로 데려오셨고 괴로웠던 1년 2개월간의 외국 생활은 끝이 났습니다.
한국에 와서 엄마가 우리들교회에 다니셔서 나도 따라가게 되었는데 엄마가 그전과는 달리 변하셨습니다. 말씀보다는 돈이 우선이셨던 엄마, 예배보다 일이 먼저였던 엄마, 밤에도 일을 하셔서 내가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놀아도 별로 신경을 안 쓰셨던 엄마가 이제는 저녁 일곱 시만 돼도 저에게 계속 전화를 하십니다. 수요예배와 주일예배, 목장모임까지 빠지지 않고 가시는 모습과 사소한 일에 화내지 않으시는 엄마가 요즘 들어 더욱 바뀐 것 같습니다.
교회 온 지 얼마 안 되서 곧 수련회에 가게 되었는데, 가서 오픈을 할 때 나보다 더 많은 아픔이 있는 지체들이 있는 걸 알았고, 나의 아픔을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나도 변화되려고 노력할 것이고 힘든 일이 있을 때 기도를 하며 내가 먼저 주님께 다가갈 것입니다. 우리 세 식구가 삼촌 집에 살았었는데 이제는 엄마와 동생, 나 셋이 작은 집이나마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들교회를 섬기며 행복하게 살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김형민 목사님, 위혜정 선생님, 우리들 공동체 감사하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