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집안의 막내로 태어나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자랐고,
사업하시는 아버지 덕분에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풍족한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 집처럼 화목하고 행복한 집이 또 있을까? 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깐요.
하지만 그런 생각이 무색할 만큼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되는 해에
잘나가던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영화에서나 볼법한 일들이 제게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빚쟁이들은 전화로 욕설을 퍼붓고 집으로 찾아와 행패를 부리며 힘들게 했고
아빠는 그런 빚쟁이들을 피해 집에 자주 들어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집에 들어오시는 날이면 엄마와 다투시고 엄마를 괴롭히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힘들어 하시는 엄마를 보며 행여나 이혼하시거나 나를 버리고 도망갈까 두려워
전화만 오면 뛰어가 빚쟁이들을 상대했고,
부모님의 싸움에 개입해 분별없이 무조건 엄마편만 들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버림을 안 받고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방에서 누워 주사를 꽂고 있는
아버지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마약이었습니다.
그날 밤 엄마는 철야하신다고 집에 들어오시지 않았고 행여나 아빠가 약에 취해 나에게 주사를 꽂을까
두려워 이불로 온몸을 칭칭 감고 책상 밑에 들어가 이젠 아빠는 더 이상 나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로 죽었다! 라고 세뇌시켰습니다.
하지만 저의 고난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몇 차례에 성추행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새벽기도, 철야예배도 모자라 기도원까지 가시며 집을 자주 비우셨고 엄마에게 보호받고 자랄 나이에 보호받지 못해 나에게 이런 일들이 생긴 것 같아 나를 지켜주지 못한 엄마가 너무 미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다면 내가 성추행 당하고 있을 때 막아주셔야 되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에는 분노와 증오와 원망만 쌓여갔고 그렇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13년이라는 괴로운 시간을 홀로 싸워야 했습니다.
내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고 낮은 자존감과 열등감으로 남들과 비교하며 지옥을 살았습니다.
학생의 신분으로써 최선을 다해야 할 학업에도 충실하지 못했고 가정에서는 질서에 순종하지 못하고
아빠를 무시하고 엄마를 미워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하나님을 만났지만 말씀으로 나의 고난을 해석 받지 못했고, 나의 고난을 나눌 공동체가 없어 힘든 청소년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나의 소원을 들어주시는 요술방망이처럼 생각해 고난에서 벗어나 제발 옛날처럼 잘살게 해주시면 하나님을 잘 믿겠다고
기도했지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결국 죽을 때 까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아빠와 환경들이 싫어 대학교 3학년 때 하나님을 위한 비전이라며
캐나다에 2년 동안 가게 되었지만 하나님은 속지 않으셨습니다.
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제작 년 7월 한국에 들어와 부모님을 따라 우리들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김양재 목사님께서 내 죄를 보라고 하실 때마다 그 말이 너무 듣기 싫었습니다.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잘못한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내가 아빠보고 사업을 망하라고 한 것도 마약을 하라고 한 것도 내가 성추행을 당하고 싶어서 당한 것도 아닌데 왜 내 죄를 보라고 하시는 걸까 도대체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문제부모만 있고 문제아는 없다라는 말에만 꽂혀 들은 말씀으로 부모님을 정죄하고 판단하고 무시하면서 이 모든 것이 엄마아빠의 살아온 날의 결론이라고 말하며 내가 함부로 대하는 것쯤은 감수하며 사셔야 하는 것처럼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나의 고난과 상처와 자기연민에 빠져 성추행 당한 사건과 아버지의 사건만큼은 절대로 어떻게든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석 할 수 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공동체에 잘 붙어 말씀을 듣고 목장모임 때 함께 나누고
일대일 양육교사 훈련을 받으며 선과 악으로 구분지으며 나의 고난을 생각했던 나의 세상적인 가치관들을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깨어 주시고 나의 사건들을 말씀으로 해석받는 은혜를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100% 죄인이라는 것이 전심으로 깨달아지고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는데 내가 무슨 자격으로 아빠와 나를 성추행 한 사람을 용서하지 못할 수 있는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정말로 최고의 복수인 용서로 잊어버림으로 떠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이 사건들을 기억에 떠올리며 혼자 울거나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우는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눈물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나의 고난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사건들이 100% 옳으신 하나님께서 나의 구원의 여정 가운데 꼭 필요한 일이기 허락하셨다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의 고난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른 사람을 살리는 구원의 약재료로 사용하신다는 말씀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깨달은 말씀을 가지고 주어진 환경가운데 십자가를 잘 지고
적용하며 죽을 때 까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며
다른사람을 살리는 사람으로 살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