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중3 신석우입니다. 저는 부족한 것이 없었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제가 어릴 때 회사일 때문에 집을 잘 안 들어 오시는 아빠를 엄마는 미워하셨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서로 시간을 가지시려고 다른 나라로 가셨습니다. 아빠는 일본에 회사를 옮기시려고 가셨고, 엄마는 인도네시아에서 특수교사를 하러 가셨습니다. 저는 왜 아빠와 엄마가 각자 다른 나라로 떠나시는 지가 궁금했지만 그냥 서로의 일을 하러 가시는 줄 알았습니다. 저와 동생은 엄마를 따라서 인도네시아로 떠났고 3년동안 아빠와 떨어져 지내게 되었습니다. 아빠가 한달 두달에 한번씩 오셨지만 다다 떠나실 때 마다 울고 불며 아빠에게 매달렸습니다. 그 때에서도 엄마와 아빠의 관계의 심각성을 잘 알아차리지 못했고, 계속해서 미뤄오던 상처가 곪아 이혼얘기가 나오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같이 교회를 가자고 하셨고, 저와 동생은 그냥 따라갔습니다. 그때는 교회가 어떤 곳인지 몰랐고, 일요일마다 주기적으로 가야 한다는 규칙이 싫었습니다.
무슨 상황인지 정확히 파악이 되지 않았을 때, 한국으로 5학년때 돌아왔고 엄마는 저에게 계속 아빠에 대해 싫은 점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저는 제가 아빠를 판단하는 죄를 저지르고 있는지 모르고, 아빠를 소외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아빠에게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아빠 앞에서 얘기하지 못하고 엄마에게 얘기했고, 아빠 때문에 힘든 일이 있으면 엄마에게 얘기하면서 아빠를 욕하며 울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리들교회에 오게 되었고, 그곳에서 제가 힘든 점을 얘기하며 처음으로 이런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을 만났었습니다. 모든 일이 아빠의 잘못에서 비롯됐다고 얘기하시던 엄마는 아빠만 고쳐지면 된다고 생각하시면서 교회로 데려가시려고 하셨습니다. 교회로 데려오려던 첫날, 아빠와 엄마는 분당 우리들교회 정문에서 소리지르며 싸우셨습니다. 그 때가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계속해서 싸우시는 날이 계속되다가, 어느 순간부터 아빠가 교회에 나오시게 되셨고 설교를 듣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고, 내가 중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아빠가 나아지신 모습을 기억하지 못하고 5,6학년 때 화내셨던 기억만 간직한 체 방황했고, 청소년 때 에 맞지 않는 행동을 일삼았습니다.
시간은 계속 흐른 채 중3이되었고, 어느 날이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그날 스타벅스의 ceo얘기를 하시면서 상대방에게 신뢰를 얻으려면 가장 개인적인 얘기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나는 무슨 얘기를 하면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갑자기 눈물이 나서 울었습니다. 내가 왜 울었는지를 모르고 있다가 아빠한테 가서 그 얘기를 했더니, 갑자기 아빠도 울었습니다. 서로가 왜 울었는지 모르지만 껴안고 울었습니다. 한 5~10분 동안 운 뒤에 아빠는 저에게 사과 하셨고 저는 훌쩍이며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날부터 왠지 모르게 설교 말씀을 적기 시작했고, 큐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큐티를 하면할수록 쌓여 있던게 풀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큐티로 내 하룻동안의 삶을 되돌아 보니 내가 더욱 나아지는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청소년 때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고 싶어하는 충동이 사라지지 않음을, 내 죄를 보지 못하고 남을 판단했던 때를 회개하고 고치겠다고 적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