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서영준입니다. 불신 가정의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교회 문제로 싸우시는 모습을 보며 자랐습니다. 어머니는 충청남도 태안에 살 때 다니던 교회에서 찬양팀 교사를 하셨고 그런 어머니를 아버지는 가정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교회에 눈이 멀었다며 이해하지 못하셨습니다. 그 때문인지 아버지와 어머니는 늘 의견이 대립하여 싸우셨습니다. 그런 두분의 모습을 보며 자랐던 저 역시 두 분의 화풀이 대상이 되어 사소한 일로 자주 맞거나 혼나는 일이 많았습니다. 일주일중 절반 이상을 교회에 따라나가야 했던 터라 교회에 악감정을 품으며, 싸움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교회에 다님에도 서로 싸우기만 하던 부모님을 미워하기 시작했고, 아들인 저와 교회에 다니던 다른 아이가 싸우는 와중에도 제 편을 들 줄 알았던 어머니는 교회에 나오던 다른 아이에게 괜찮냐며 물어보고 그 아이를 감싸주면서 제게는 욕설을 퍼붓는 그 모습을 보고 그때부터 저는 교회에 악질적인 행동들을 반복하기 시작했습니다. 소년부에게 말씀을 전하셨던 목사님에게 돌을 던지고 욕을 했으며 당시의 찬양팀 누나들에게 대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충청남도 서산으로 이사 오게 되었고, 그곳에 있던 교회에서는 평범하게 지낼 수 있겠지 라며 기대했던 저는 다시금 교회에 충성하는 어머니를 보게 되었고, 옛날에는 그나마 같은 편이었던 아버지마저 교회에 다니시게 되면서 저는 같은 편이 없어졌기에 매일 교회에 끌려 다녔습니다. 어머니는 이곳에서마저 찬양팀 교사를 하시고 매주 목요일 목장에 참석하시는 등 가정보다 교회라는 나치에 세뇌된 것처럼 충성하셨고, 일요일만 나오시던 아버지도 결국 적당히 하라며 다시금 싸우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이렇듯 두 분에게 시달리던 저는 이런 현실에서 대피하는 것으로 야동을 선택했습니다. 당연히 그 일은 아버지께 걸려 혼쭐이 났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얼마 되지 않은 구역예배 날이었습니다. 늘 그렇던 대로 가족 모두가 구역예배에 나갔는데, 저는 빨리 집에 가서 놀고 싶었던 마음에 칭얼거렸고, 어머니는 그런 저를 끌고 나오셨습니다. 저는 그대로 집에 가면 쉴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지만, 어머니는 나오자마자 아파트단지 한가운데에서 절 구둣발로 밟고 짓누르고 때리며 너 같은 자식이 창피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어른과 ‘하나님’에 대한 온갖 불신과 증오감, 어머니에게로 향한 분노가 치솟았습니다. 그 일이 있고 제가 초등학교 4학년 과정을 학교에서 마칠 때 즈음, 어머니와 아버지는 크게 싸우셨고 어머니가 외갓집 식구를 전부 불러 아빠에게 대들었고, 참다못한 아버지는 이혼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날 저녁 아버지께서는 제게 어머니와 아버지중 하나를 선택하라며 말씀하셨고, 저는 당연히 아버지를 선택했습니다. 이혼 당일 날에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몸싸움을 벌이셨고, 그 와중에 제 양육권 이야기가 나오자 어머니는 뻔뻔스럽게도 제게 넌 엄마랑 안갈 거야? 라고 묻는 어머니는 제게 저게 인간인가 싶을 정도로 한심해보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를 선택했고, 저는 어머니를 따라 경기 광주시에 있는 큰이모네 집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철이 좀 드셨는지 이미 이혼이 끝난 상태임에도 절 끌고 아버지 집 앞에서 빌었고, 저 역시 그 거지같은 광경을 봐야만 했습니다. 대체 이 여자는 왜 저질러놓고 후회하며 그 일을 반복하는 것인지 진짜로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머니를 같이 큰 이모 집에 얹혀살고 계시던 작은 이모가 우리들 교회로 데리고 나오시면서 저도 같이 우리들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우리들 교회에 나오시면서도 속의 분노가 많으셨던 어머니는 작은이모와도 같이 싸우셨으며, 저는 다시금 야동의 손을 빌리게 되었습니다.
그런 막장 가족인 저희를 보고 계시던 큰 이모께서는 늘 눈물기도로 저희 가족을 살리고자 하셨습니다. 이런 힘든 상황에서 저는 다시금 도피할 것으로 게임을 선택했고, 초등학교 6학년 그토록 염원하던 모텐도를 손에 넣게 되면서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6사단이 무엇인지 교회에 똑똑히 보여줬습니다. 설교시간에도 게임을 하고 있던 저를 막으시는 부장님에게 시발이라며 욕을 하기도 했고 찬양할 때 일어나라는 찬양전도사님에게도 엿을 날려주는 등 개 막장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 큰 이모의 집에서 얼마 멀지 않던 지금의 집으로 작은이모와 함께 오게 되었고, 제 순탄하지 않은 삶은 학교에서도 계속되었습니다. 학교에서도 나댔던 저는 틈만 나면 시비를 걸거나 맞고 다니기 일쑤였습니다. 당시 힘들었던 저를 어머니는 정신과에 데려가셨고, 우울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 정신과 치료는 아버지를 계속 언급해서 제 상처를 건드리셨던 원장선생님께 제가 반항하고 대들면서 끝이 났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때 즈음, 우리들 교회에 나오면서 변화되나 싶던 어머니께서 다시 속에 쌓여있던 분노가 터지시면서 이모와 싸우셨는데 그때 경찰까지 출동하는 모습을 보고 가출을 했습니다. 혼자서 야탑역 주변을 뱅뱅 돌던 중 우리들교회가 떠올랐고 니들 잘난 교회가 내게 뭘 해줄지 보자 싶어 교회의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드려 VIPS캠프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처음으로 제 나눔을 오픈했고, 당시 다른 분들의 간증도 들으면서 치유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교회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고 어머니와 닫혔던 관계를 회복하게 되면서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여전히 어른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있고 하나님이 믿어지지는 않지만 막장행동을 참아주셨던 부장님께 정말로 죄송하고, 고등학교시절까지 이어졌을 반항기와 제가 가야할 길을 바로잡아주신 목사님과 선생님들, 지금은 천국에 계시지만 저와 어머니를 늘 기도해주셨던 큰 이모님, 그리고 제가 이혼할 때 어머니에게 붙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